기후변화 시대, 도시농업으로 활력 얻기

기후변화 시대에 도시 농업의 위치와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한다. 또한 도시농업의 특이점을 통해 기후변화의 변곡점을 넘어설 가능성을 살펴본다.

기후변화의 시대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아주 싫어한다. ‘위기’라는 낱말이 불러 일으키는 패닉은 평온하고픈 나의 상태를 자주 흔들어 놓는다. 우리는 기껏해야 5만 년의 선사시대와 1만 년의 역사시대를 살았다. 그 짧은 시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지구에 대한 지식은 굉장히 협소하며 심지어 편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좁은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의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 아닐까.

당연하게도, 나의 이런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적은 지식으로 작금의 사태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가 극적이지 않다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기후변화가 극적이고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다양한 방법과 각도에서 견해를 취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 도시 농업의 길을 모색하다.
사진 출처 : radekkulupa
기후변화 시대 도시 농업의 길을 모색하다.
사진 출처 : radekkulupa

우리는 지구에 대해 알아가고 경험해야 할 것이 많다. 위기라는 단어가 우리 시야를 좁혀서 애초에 다양한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이것을 극복할 수도 있고 치열한 과정을 통해 지독한 대가를 치르며 이겨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다양한 가능성은 우리에게 더욱 넓은 지식을 제공할 것이며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위기라는 단어로 생각이 고정될 수 있음에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의 도시농업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여 농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도시농업 분야에서는 조금 더 드라마틱하다. 과거 농업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의 지향이 단순한 향수 또는 새로운 먹거리 조달에 대한 충족이었다면, 2023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 농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도시농업 뿐 아니라 텃밭을 찾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한 세대에서 기후변화 시대에 대응하는 대안으로써의 농업은 핫하게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농업이 기후변화를 오히려 부추기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농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논농사는 여차저차 탄소를 포집할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한 물을 사용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밀과 같은 곡물은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약 1,000톤의 물을 사용하는 데 반해 논농사는 그 2배인 2,000톤의 물을 사용하며,(농업진흥청 자료, 1999) 또한 전세계 물 소비의 69%는 농업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UN 세계물개발보고서, 2020). 게다가 농업으로 생산된 곡물의 대부분은 축산업을 위해 유통되고 있으며 방목을 위해 산림을 훼손하고 축산업 자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용수의 양도 계산하기 어렵다. 이미 농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지구의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주된 요인이지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면도 살펴보자.

도시농업의 새로운 접근

농업이 가진 기후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시농업은 다양한 방면에서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첫째 지속적인 농업에 대한 가능성을 연구한다. 기존 농업지역에서는 시도하지 못하는 무농약, 무비료 농업을 지향하며 탈자본의 형태를 취하는 퍼머컬쳐와 농생태학을 접목하여 지속가능한 농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것은 기후변화 시대에 대한 자각과 텃밭 이용자들의 다양한 교육 수요와도 맞닿아있다. 믿을만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의 안전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기에 수요 또한 지속적일 수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농업을 시도하며 물 사용을 최소화한다. 생산과정에서의 관개를 최소화하고 빗물이나 집에서 사용하는 허드렛물(예를 들면 쌀뜨물)을 가져와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으며, 생태화장실을 이용함으로써 하수용수도 줄이고 액비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불편함은 첫번째의 다양한 의도와 맞물리면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서 ‘모두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셋째, 공동체를 복원한다. 농업기술 전수를 바탕으로 적정기술과 더불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서로의 유대감을 상승시킨다. 과거의 두레와 같이 직접적인 공동체는 아니나 서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만큼, 공동체 형성은 당연해진다. 이런 ‘현대판 두레’는 느슨하되 결코 가볍지 않고, 느슨하기에 오히려 쉽게 맺어진다. 이는 같은 노동을 해나간다는 연대감과 반복된 의식을 통해 다양한 체험과 공유의식을 만든다. 리추얼은 이렇게 재복원된다.

도시농업은 다양한 방면에서 활력을 준다.
사진 출처: Katya_Ershova
도시농업은 다양한 방면에서 활력을 준다.
사진 출처: Katya_Ershova

넷째, 기후변화에 대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력은 도시민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채식주의가 그 한 예다.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언론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들어낸다. 텃밭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서로 연대하고 최일선에서 그것을 수행한다. 육류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 결정적인 한 가지는 도시가 가지는 소외와 배제를 도시농업의 현장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 속의 오아시스처럼 한밤의 어둠이 내려앉은 텃밭은 고요함을 얻을 수 있는 도시의 거의 유일한 창구로써 역할한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몰려와서 평안을 안고 떠난다. 사람들이 사라진 도시 속의 텃밭은 광활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밝다.

탈근대와 특이점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의견을 종합하면 도시농업은 지극히 탈성장적이다. 이는 농업이 가진 비성장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 어쩌면 도시가 가지는 생산성에 정면으로 부정하는 도시농업이라는 아이러니가 탈성장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는 부정확한 해석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 의견이 집중되는 곳, 아젠다가 모이는 곳에 자원은 집중되며 이런 집중으로 새로운 시장과 논리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렇듯 도시농업은 탈성장이라기보다는 탈근대의 상징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챗 GPT 등 AI를 통한 특이점이 먼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AI를 통한 특이점이 늦어진다면 새로운 방식의 리추얼을 만들어내고 있는 도시농업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일 수 있다. 과거로의 답습과 역행이 아닌 새로운 시대로의 주역이 될 수 있다면 도시농업은 기존의 관행농업이 차지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후변화 시대를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이점을 기다리는 시각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도시농업의 이런 선도적 역할은 정부나 지자체등 관공서와의 협력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뼈아픈 점이기는 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시대가 실재하기에 도시농업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시대가 원하고 사람들이 원한다면 도시농업을 통한 특이점이 진실로 올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특이점이 세상에 도래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텃밭으로 출근한다.

노지훈

누구나 찾아와 기댈 수 있는 공원의 작은 벤치 같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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