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⑧ 빈곤은 찬양될 수 있을까?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통장에 잔고가 없다!

벌써 하루가 지나갔네요. 천일야화처럼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하루하루가 참 짧기만 합니다. 오늘은 빈곤과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문명은 점점 단조로운 일상을 구축하여 이야기구조, 서사구조를 잃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빈곤은 찬양될 수 있는가라는 명제에 대해서 두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발적 가난이고, 다른 하나는 빈곤은 찬양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저는 이러한 두 입장에 대해 모두 대답할 수 있는 개념이 아마도 기본소득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뒷부분에 전개되는 기본소득 이야기가 들어간 이유도 그런 연유 때문이지요. 이에 앞서 저는 제가 겪었던 가난 혹은 빈곤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내려고 합니다.

요전 날 아내가 한번은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어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봤지요. 아내는 230원이 찍힌 저의 통장 잔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배꼽 빠지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가난한 자의 설움이나,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와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사실 저의 통장 잔고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몇 십 만원이다가 최근 몇 년 동안은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돈이 없어도 옆에 아내가 있고, 고양이들이 있고, 연구실이 있어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시절입니다. 물론 집세를 내야 하고, 사료를 사야 하고, 살림에 드는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돈 꾸고 빌려 쓰는 것이 그렇게 서럽거나 억울하지만은 않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내가 고생이 많지요.

돈이 없으니 변한 것이 참 많았습니다. 먼저 소비형 만남을 자제하게 되었고, 대신 공부하고 세미나하고 토론회를 찾아가는 등의 활동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육류와 주류를 일체 먹지 않으니 술 마시는 데 쓰이던 돈이 제로가 되었지요. 대신 책을 사는 데 더 많은 부분의 지출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재정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은사님이 가르쳐 주신 건데,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하나의 주된 소득원이 아니라 다양한 소득원을 갖고 되도록 낭비나 방탕에 드는 비용은 제로로 만들라는 조언이었지요. 대학강의와 책 인세, 특강, 프로젝트, 자투리 글쓰기 등으로 다변화해 놓으니, 사실 하나의 혈자리가 막혀도 다른 혈자리를 뚫어서 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방학은 길고 긴 무소득의 시간이었고, 아내가 보여준 통장잔고는 저를 웃음으로 배꼽 빠지게 만들었지요.

빈곤했던 청년 시절

청년 시절에는 돈이 없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 우울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진출처 : 1820796
청년 시절에는 돈이 없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 우울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진출처 : 1820796

생각해보면 제가 돈을 충분히 갖고 있었던 시절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학 시절 동안 다양한 알바를 했지요. 빨간펜 선생님, 은행 수위, 파일공장 프레스공, 과외 알바, 결혼식장 도우미, 학원 강사, 워드 작성, 아이스크림 공장 노동자, B급 영화관 직원, 전시회 도우미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알바를 전전했습니다. 그때는 돈이 없으면 우울해지고 침울해져서 금방 다른 알바를 구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하다가 때려치우고 몇 주 쉬다가 다시 구하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돈이 없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 우울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지요.

대학원 시절 동안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또 많이 바쁜 시절을 보냈습니다. 시민단체와 자살예방센터에 다니면서 직장이 단지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무엇을 갖고 있다는 점도 깨달았지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버스에서 책을 읽고, 직장과 대학원을 오가다가 하루를 마치고 누워 있으면 직장에서 생긴 일과 학교에서 생긴 일이 교차적으로 꿈에 나오기도 했지요. 소득은 작았지만, 빈곤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일에 대한 지긍심과 가치가 더 우선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은 훨씬 높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책 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직장과 대학원으로 바쁜 시절이었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는 데 할애했습니다. 저녁 7시에 직장에서 돌아오면 밥 먹고 바로 잠들어서 새벽 2시에 일어났고, 아침 출근할 때까지 책을 썼습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잠을 충분히 안자니 엄청난 비만이 찾아오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때를 생각해보면 학업과 노동, 활동, 소규모 제작 등을 영리하게 배치하고 계획했던 시절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 일들을 한꺼번에 진행하다보니 아주 재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횡단하고 이행하고 변이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문제는 생각이었습니다. 일에 집중하다보면 고정관념이 생겨서 다른 일로 이행이 늦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사 출근할 때는 버스에서 회사 일에 대한 계획과 일정을 체크했고, 대학원 갈 때는 발제문을 읽고, 집에 와서는 모든 일을 접고 일단 자고 나서 새벽에 일어나 책 쓰는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횡단하는 능력, 그것이 최대의 능력이었습니다.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다가오고 막혀 있을 때는 과감히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가거나 함으로써 생각에 단락을 만들어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초점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좋아하는 펠릭스 가타리의 책을 읽다보니 ‘횡단성 계수’라는 개념이 등장하더군요. ‘횡단성’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우화가 거기서 등장하지요.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한 무리가 굴에 모여 있는데, 추워서 가까이 다가가면 가시에 찔리고, 멀어지면 추워지는 딜레마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결국 적정거리를 찾게 된다는 얘기지요. 또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야생말을 조련하기 위해 눈조리개를 달아주어서 처음에는 한정된 범위만 보이다가 점점 눈의 시야를 틔워주는 것도 횡단성계수라는 얘기 말이지요. 저는 가타리의 횡단성계수라는 개념을 통해서 절도 있고, 적정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매끄럽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 속에서 사회라는 관계를 익힐 수 있었지요.

제로용돈의 삶

결혼 전 아내와 동거하고 있을 때, 저는 아내에게 한 주 7만원씩 한 달이면 30만원의 용돈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내가 꽤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용돈을 두둑히 주었지요. 저는 군것질도 하고, 짜장면도 사먹고, 택시도 타고, 술도 마시고 풍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내는 작은 항아리에 돈을 넣어두었는데, 제가 그 항아리를 열어보고 느끼는 환희는 상상을 능가했습니다. 사실 저는 용돈을 받고 살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예상치 못한 불로소득이 저를 들뜨게 만들었지요. 심지어 아내는 급할 때 쓰라고 신용카드 한 장을 저에게 지급해 주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신용카드를 만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용카드의 마법에 빠져들었지요. 그래서 한번은 후배들이 15명이 술을 마시는데, 찾아가서 아내가 준 신용카드를 긁고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혼날 줄 알았는데, 아내는 오히려 피식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한도금액이 낮은 신용카드로 교체를 단행했지요.

그런데 결혼 이후 저의 학위논문이 통과하고 박사학위를 받자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항아리의 용돈도 3만원으로 줄어들었지요. 아내는 모든 통장을 압류하였고, 저는 일주일에 3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소비생활을 줄이지 못하니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그날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제로 용돈 시대를 개막한다고 선언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사실 돈이 없어도 물건이며 신용카드가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을 살면서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돈이 없으니 가게에 안 가고, 가게에 안 가니 씀씀이가 줄어들고, 씀씀이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지요. 돈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데 관심이 많이 가게 됩니다. 고양이와 함께 노는 것이나, 책 읽는 거나, 책 쓰고 글 쓰는 거나 뭐 하나 돈 드는 것도 아니니, 고즈넉하게 일상을 지낼 수 있었지요.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소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지갑에 돈이 아예 없고 비상용 신용카드만 있으니, 소비하고 사들이는 것과는 무관한 삶이 되었습니다.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 갔지요. 아내와 일과를 마치면 둘이 모여 앉아서 그날의 세미나에서 오갔던 이야기나, 읽었던 책에서의 아이디어, 뉴스와 소식 등을 도란도란 얘기합니다. 만약 소비생활이 풍족했다면,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관계 대신 소비로 풀 필요가 없더군요. 요전 날에는 아내가 필요하면 쓰라고 5만원을 지갑에 넣어주었습니다. 한 달 동안 가지고 다니니까 괜히 부담되고 그래서 아내 지갑에 다시 넣어주었습니다. 쓸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괜히 음료수를 사 마시면 살 찔 것만 같고, 택시를 타도 게을러진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부질없이 돈을 쓰는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가난하면 또 어때?

칼 맑스는 “어떤 경우라도 빈곤은 찬양될 수 없다”라는 입장이었다지요. 생태주의자들의 자발적 가난에 대해서 말하자 많은 맑스주의자들이 비판을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반응이었지요. 저의 경우에도 청년 시절 때는 빈곤을 벗어나 돈을 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의 대화보다는 야간 알바를 하거나, 친구와의 만남을 전폐한 채 직장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빈곤의 문제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특히 정신적인 빈곤, 마음의 빈곤, 관계의 빈곤은 더 확대되어 늘 가난하고 궁핍하고 궁색해졌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저는 적은 소득으로 풍요롭게 사는 노하우를 익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을 쓰고, 토론회를 따라 다니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책이 주는 마음의 풍요를 느꼈지요. 대학원과 직장을 오가며 읽는 책도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청년 시절 내내 비정규직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낮은 임금은 그런 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동일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정규직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것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포장마차에서 잔술을 먹으며 인생을 곰곰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 두고 다시 입사하고를 반복했습니다. 당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사회가 평가하고 있는 저 자신은 너무도 자존감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과학과 혁명과 예술을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쓰고, 읽고, 말하고, 듣고 하는 모든 과정을 저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행복을 소득이 대신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진출처 : Towfiqu barbhuiya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행복을 소득이 대신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진출처 : Towfiqu barbhuiya

대학 시절 저와 친구들은 새우깡에 소주 한 병밖에 살 여유가 없어서도 자취집에서 소주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인생과 혁명을 얘기하며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한 명의 친구가 저의 가난과 함께 한다면, 그것은 가난이 아니라 풍요와 행복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졸업 후에 친구들과 만날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모두 개인으로 분해되는 순간 가난은 모두 개인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를 쓰고 돈 벌려고 직장을 다니지만, 고독하고 외롭고 더 가난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연구실에서 아내와 제가 함께 작업하고 밥 먹고 대화하면서, 사실 가난하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게 뭐 큰 문제는 아니라는 낙천적인 생각이 들고, 가까이에 아내가 있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근심과 걱정이 들어설 여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잠자기 전에 한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린 가난하지?”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난하면 또 어때? 함께 있는데!”

기본소득과의 만남

오늘날 노동과 소득의 고리는 끊겨 있는 상황입니다. 일자리를 통해서 복지를 대신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낡은 발상입니다. 대부분의 노동이 질 나쁜 불안정고용, 비정규직, 일시적인 아르바이트인 상황에서, 정규직 몇 명 늘린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첨단기술사회에서 노동은 주변화되었고, 잉여가 되었고, 기득권이 됩니다. 제 4차 기술혁명이다 인공지능 시대다 뭐다 하면서 말이 많은 시절입니다. 소수자와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민중, 심지어 생명까지도 노동하지 않더라도 욕망을 가졌다는 이유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노동하지 않고도 욕망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소득이 보장되는 시대가 개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기본소득에 대해서 처음 접한 것은 2003년도에 〈Basic Income〉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당시에는 사회보장소득으로 많이 회자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을 통해서 수많은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파는 기본소득을 통해서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였고, 좌파는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의 종말의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우파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철저히 기본소득을 사회복지시스템을 개인책임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합니다. 반면 좌파는 기본소득보다는 노동의 권리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고 기본소득을 보편적 복지로 바라봅니다. 어찌 됐건 기본소득은 기계에게 전기를 주듯 욕망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전하는 행위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기계류를 혁신할 수 있는 집단지성을 산출해낼 사람들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지요. 예를 들어 첨단기술사회에서 기술혁신의 재료는 대부분 집단지성이나 오픈소스, 생태적 지혜로부터 추출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비노동 민중이거나 소수자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하지 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보상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본소득은 복지와 같이 관리에 드는 인력과 행정을 과다하게 국가에 집중시키지 않습니다. 통장으로 바로 보내주니까요. 동시에 자존감이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기성세대의 우려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지만, 성남시와 서울시 등에서 추진했던 청년 기본소득 실험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부분의 청년들이 기본소득의 해택을 자신의 낮은 소득과 살림에 보태 썼다는 점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도덕적 해이는 없었고, 있을 수 없는 팍팍한 살림살이가 청년의 현주소였습니다. 다른 세대나 계층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기본소득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소득원 중 하나 즉 경우의 수 중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은 소득이라도 소득원의 다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든든하고 안심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림살이의 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동, 활동, 제작, 자기고용, 아르바이트 등의 다변화된 소득원을 추구하며, 그중 하나의 경우의 수로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부자가 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와 저녁 때 맥주 한 잔 할 정도의 여윳돈이 있으면 좋겠고, 한 달에 한 번쯤 아내와 같이 극장 한번 가면 좋을 따름입니다.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행복을 소득이 대신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본소득이 생기면 저는 더 자발적 가난을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더 작고 미세한 경제 즉 살림살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자발적 가난을 작은 행복의 요소로, 횡단과 이행, 변화의 요소로 바꿀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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