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디학교 일지] ① 시작하는 글 – 대안이 뭐길래!

나의 10대를 고스란히 함께 보낸 곳은 ‘제천간디학교’, 대안학교입니다. 그곳의 냄새와 소리와 공간과 시간과 사람이 만든 사건들을 풀어내 보려 합니다. 이야기를 전하듯이, 적당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면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대안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안적인 인간이 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9년 겨울,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학교를 떠났습니다. 나의 10대를 고스란히 함께 보낸 곳은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제천간디학교’로, 중고등 통합 6년제의 비인가 대안학교입니다. 고개를 어느 쪽으로 돌려도 마주치는 산, 마주쳐도 눈길 주지 않는 무심한 산들로 둘러싸인 이곳에 2층짜리 학교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 ‘왓슈’라고 쓰인 큰 글씨가 찾아온 이에게 인사하고, 외벽에는 벽화와 담쟁이들이 크고 작은 창문들과 어울립니다. 4월의 봄바람이 불 땐 구름다리에 매달린 노란 리본들이 살랑이곤 합니다. 여름철 큰비라도 내리면 며칠은 질퍽거리는 흙모래 운동장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 놓인 평상을 식혀주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진한 풀냄새가 나고, 겨울이면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가 찬바람에 실려 오며, 봄날 저녁이면 개구리들 울음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이곳에서 나는 백 명 남짓의 학생들, 스무 명 남짓의 교사들과 6년을 살았습니다. 기숙사 생활의 답답함, 많은 회의와 과제에 의한 피로감이 점차 고조되어 더 이상 이곳에서 못 살겠다! 싶었을 즈음, 졸업이 내 앞에 다가왔습니다. 의외로 기쁘지도, 서운하지도 않게, 조금은 시시하게 왔던 졸업.

졸업식장 한 편에는 졸업 포트폴리오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6학년들이 한 달 전부터 준비한 포트폴리오는 자신이 지나온 6년의 시간을 돌아보고 이를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의 매개이며 결과물입니다. “이곳에서 6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질문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내게 찾아왔고, 졸업식을 마친 뒤엔 집까지 뒤를 따라왔습니다. 뒤돌아서 질문과 마주하면 6년간 있었던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대부분 졸면서 들었던 수업들, 고생길의 연속이던 프로젝트들, 지겨운 회의들, 사람들과 관계 맺던 순간들, 기숙사에서 꾸려나간 삶들. 이 많은 순간을 지나온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무엇이 달라졌나?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답하기 어려운 건, 졸업하고 주어진 성적표가 없기 때문일까요. 공교육 학교를 졸업하면 갖게 될 학력이 없기 때문일까요. 당분간 내 삶의 방향을 조금은 제시해줄 이정표가 없기 때문일까요. 순간순간 살아왔던 시간들이 쌓아 내 안에 남았을까요. 나무액자에 담긴 졸업장과 나의 글 몇 가지, 나에 대해 사람들이 써준 글 몇 가지와 함께 말이죠.

출처: 대안학교 제천간디학교 유튜브. [Official Music Video] 제천간디학교 교가 (Jecheon Gandhi School Song) – 꿈꾸지 않으면 (If You Don’t Dream)

1년 먼저 학교를 졸업한 선배가 나에게 말합니다. 사실 돌아보면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었다고, 그냥 놀았던 거라고. 선배는 대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숙학원에 들어가 학교에서 하지 않던 공부를, 하지 않던 자세로 밤낮없이, 주말 없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속에서도 부지런히 대학 생활을 시작한 또래의 청년들을 보며, 문득 나의 발걸음이 꽤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이 공기처럼 들이마셔져 몸속을 스칩니다. 이번에는 나보다 1년 늦게 6학년이 되어 인턴십1을 하는 후배가 말합니다. 이곳에서 한 사람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 중 자신에게 없는 것, 모르는 것이 많다고. 간단한 엑셀 문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배운 적이 없다고.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니 고졸 학력자를 조건으로 붙이는 공고들이 눈에 보입니다. 순간순간의 시간을 살아온 탓에 현실의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 있을 때는 없었던 고민들이 자꾸 생겨나 때로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곳에선 무엇을 배워요?”라고 묻는 이에게 뭐라고 답할지 몰라 긴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냥… 어떻게 같이 잘 살지…”라고 얼버무려 답하지만, “오…” 한 마디로 반응하는 상대를 보며 내 안에서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제천간디학교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대안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안적인 인간이 되었을까? 조금 특이한 인간이 되었을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배웠을까? 대안학교는 왜 대안학교일까? 대안학교는 과연 대안일까? 대안은 무엇일까? 정해져 있는 것일까?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데에 큰 몫을 하고 있을 간디학교에서의 6년이라는 시간이 졸업 후 학교 밖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어떤 대안이나 특이점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 답을 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지요. 먼저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잘 들여다보면 조금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와 제천 간디학교가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난 일들과 그곳의 냄새와 소리와 공간과 시간과 사람이 만든 사건들을 풀어내 보려 합니다. 이야기를 전하듯이, 적당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다가 고민을 이어 붙일 통로를 발견하면 잠시 샛길로 새어도 보겠습니다. 저와 비슷한 질문을 어딘가 간직해두셨다면, 혹은 대안학교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있으시다면 가벼운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편안히 보시면 좋겠습니다. 읽으면서 샛길로도 새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솔직하고 재미나게 써보겠습니다.

간디학교 삶 안에는 무척 다양한 사람과 사건이 어우러지지만, 저는 이를 관계, 교육, 삶이라는 3가지의 큰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관계는 커다란 배움이며, 배움의 과정은 삶과 떨어질 수 없기에 이러한 편의상의 구분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계 부분에서는 간디학교에서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구성원의 수가 적고, 학교 공간이 작으며, 매일 기숙사와 학교에서 서로를 만나야 하는 이곳에서의 관계는 고민과 피로를 부지런히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관계를 맺기를 위해 함께 열심히 시도하고 노력하기도 했지요. 관계 맺기는 친구, 선후배, 교사와의 관계를 넘어 마을과 비인간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교육 부분에서는 간디학교에 어떤 수업이 있으며, 학생들이 어떻게 수업을 선택하고 배우는지 전합니다. 학생회, 동아리 등 학생 자치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어갑니다. 마지막 삶의 부분은 학교에서의 삶과 졸업 이후의 삶으로 나눴습니다. 앞에서는 학교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일어났던 일들을 전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며, 꽤 스펙터클합니다. 특히 규칙을 둘러싼 일들이 그러하지요. 뒤쪽에서는 졸업 이후에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써보려 합니다. 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이야기도 모아볼 것입니다.

총 10번의 연재 글이 담는 이야기 속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차츰 드러나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뵈어요.


  1. 제천간디학교 6학년 주요 교육과정 중 하나이다. 사회를 이해하고 스스로 진로에 대한 고민과 체험을 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에서 3개월간 활동하는 인턴십을 진행한다.

이재형

안녕하세요. 이재형입니다. 된장찌개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 밥은 두 그릇을 먹습니다.

댓글 2

  1. 여러 편의 이야기중 첫번째 글이군요. 글쓴이님께서 개구리 소리가 소나기처럼 퍼붓는 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잘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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