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특별한 능력이 있다 -디즈니 영화 《엔칸토》를 보고

디즈니 에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보고 얻은 나의 재능과 세계를 둘러싼 힘에 대한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디즈니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 포스터.
디즈니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 포스터.

여섯 살 딸이랑 네 살 아들과 함께 디즈니 영화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보았다. TV나 스마트폰 대신 아이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한다. 《엔칸토》는 작년 12월에 개봉한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으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60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주토피아》의 감독 바이론 하워드와 자레드 부시가 의기투합하고, 800명의 아티스트가 동참해서 5년간 공들여 만들었다는 작품이다. 네 살배기 아들도 러닝타임이 무려 109분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즐겼다. 움직이는 마법의 집도 아이들 눈엔 신기했을 테고, 화려한 마법과 다채로운 빛깔이 가득한 영상미, 그리고 중간중간 삽입된 뮤지컬 역시 아이들의 흥미를 더했던 것 같다. 《모아나》의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하는 OST도 매우 훌륭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린 이 OST를 하루 종일 반복해 들으며 마루가 들썩이도록 춤을 추었다. 그만큼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기 딱 좋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콜롬비아 산악지대에 자리한, 놀라운 마법과 활기찬 매력이 넘치는 세계 ‘엔칸토’에 살고 있는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 미라벨의 할머니인 아부 엘라는 젊은 시절 세 아기를 안고 피난을 가다가 강가에서 남편을 잃는 대신 마법의 촛불을 얻게 된다. 아부 엘라는 이 촛불의 힘으로 엔칸토라는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이 촛불의 힘으로 누구나 하나씩 마법의 능력을 갖게 된다. 꽃을 피우거나, 엄청난 힘을 갖거나, 날씨를 변화시키거나, 동물과 소통을 하거나, 음식으로 병을 치유하거나, 미래를 보거나 하는 힘이다. 그런데 정작 한 사람, 주인공 미라벨만은 마법의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다.

언니인 이사벨라가 청혼을 받기로 예정된 날, 미라벨은 엔칸토를 둘러싼 마법의 힘이 위험에 처하고 집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미라벨은 비록 마법의 힘은 없지만 자신이 이 집을 구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할머니는 오히려 미라벨 때문에 가족이 위기에 빠진 것이라고 미라벨을 다그친다. 하지만 사실 엔칸토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할머니 아부 엘라가 가진 마음 속의 두려움이었다. 혹시라도 이 완벽한 세계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반면 미라벨은 비록 특별한 마법의 힘은 없을지언정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와 누구보다도 깊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 용기와 사랑으로 결국 할머니 마음 속의 공포를 녹이고, 가족들도 마법의 힘 뒤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용기와 사랑이야말로 실은 가장 강력한 마법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화려하고 신기한 마법이 아니더라도, 사실 누구나 하나씩 이렇게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꽃을 피우거나, 산을 옮기거나 미래를 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타고난 재능을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그림이든 노래든 춤이든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소설 속 ‘모모’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능력을 가졌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잘 이어주거나 어우러지게 하고, 분위기를 잘 띄우는 사람도 있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 능력을 가진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은 손재주가 있어서 탁자든, 책꽂이든 뭐든 만들어내는가 하면 더 나아가 자기 손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기계를 잘 고치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고, 정리를 잘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요리를 잘 하는 것도 큰 재주일 터, 실제로 좋은 식재료로 정성이 담긴 음식을 만들어 나눈다면, 한번에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은 아닐지라도 차츰 몸과 마음을 치유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 즉시 꽃을 피우게 하는 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로써 주변을 웃게 만들고, 존재 자체로 주변을 환하게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이 영화에서는 마법의 능력을 받는 방법을 어느 시점-아마도 열 살 생일날-에, 마법의 문 앞에 서서 받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아이가 열 살쯤 되면 이미 자신만의 재능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 거나 가족들이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부모의 역할 중 하나가 자기 아이가 열 살쯤 되면 고유의 재능을 발견하여 그 능력이 꽃필 수 있도록 해주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 교육은 암기를 잘하는 능력, 수학적 계산을 잘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을 그 타고난 능력과 무관하게 의사, 판검사로 만들려고 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영화를 보고 나는 스스로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고, 언변이 유려한 것도 아니고 주변을 웃게 한다기보다 오히려 서늘하게 만드는 편이다. 다만 대상의 핵심을 파악해서 글로 전달하는 능력만큼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능력은,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의 얽힌 생각들을 정리해주고 좀 더 나은 상상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앞으로 내가 어디에 역점을 두고 노력해야 할 지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얻은 큰 수확이다.

타오르는 촛불. 나는 우리 안에 '신성한 불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진출처: Hakan Erenler
https://www.pexels.com/ko-kr/photo/289756/
타오르는 촛불. 나는 우리 안에 ‘신성한 불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진출처: Hakan Erenler

하나 더,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마법의 촛불’ 이야기이다. 미라벨의 할머니는 강가에서 이 촛불을 얻어 그 힘으로 마법의 집과 마법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촛불의 힘이 엔칸토를 둘러싸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미라벨의 가족에게까지 힘을 주었다. 나는 이 마법의 힘이 상상의 세계 엔칸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우주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촛불이 상징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보다 더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위대한 힘을 신(神)이라고 해도 좋고, 브라흐만(Brahman), 도(道), 뭐라고 해도 좋지만 나는 우리보다 더 위대한 힘이 있어서, 이 우주가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이 영위된다고 본다. 그 힘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어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차원들이 있고, 우리는 그 힘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신성한 불꽃’이 존재한다고 –그 불꽃을 ‘사랑’ 혹은 ‘열망’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다- 믿는다. 그 위대한 힘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리고 내면의 불꽃을 밝힐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비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꽃 피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다(동학의 수운 선생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더 위대한 힘이 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내 안에는 불멸의 ‘불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의 최고 명대사를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별은 빛나는 게 아니라 타오르는 거야.”

김용휘

동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 방정환한울학교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 대구대 교수. 2018년부터 2년간 인도 오로빌공동체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경주에 정착해서 두 아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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