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성찰과 정화 – 기후 환경 위기 속에서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읽기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작가 아이스퀼로스의 희곡인 「아가멤논」 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성찰과 정화의 계기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이 텍스트가 지금 여기 기후 환경 위기 속에서는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성찰과 정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작가 아이스퀼로스의 희곡인 「아가멤논」 은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을 그의 아내인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의 사촌 동생인 아이기스토스가 공모하여 죽이고 권력을 잡는 과정을 소재로 한 것이다. 지금 여기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희곡은 막장 드라마 소리를 들어도 싸 보이지만, 처음 상연되었을 때는 아테네의 안녕을 간절히 기원하는 제사의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이 제사에 참례한 아테네의 시민들은 원형극장에 진지하게 앉아서 「아가멤논」 이 공연되는 것을 보면서, 극중 인물에 빗대어 자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였다고 한다. 이 제사는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시작되는 시점에 올려졌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연극을 보는 것은 새로운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거치는 성찰과 정화의 과정이었다고 한다. 극작가는 연극 주인공의 인물 됨됨이를 성찰과 정화의 계기가 되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구축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해설에 따른다면, 오래전 미케네의 왕이었던 아가멤논을 희곡 「아가멤논」 속에 주인공으로 끌어올 때 극작가는 아가멤논에게 성찰과 정화의 계기가 되어줄 수 있는 성격을 부여하였을 것이며, 원형극장에 둘러앉은 시민들은 각자 자기와 연극 속의 아가멤논을 동일시하는 것을 새봄을 살아가기에 앞선 성찰과 정화의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공포와 불안

희곡 「아가멤논」 속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코로스장 :
왕의 신음 소리로 미루어 범행이 이미 실행된 것 같소이다.
무슨 좋은 방안이 있나 함께 의논해보도록 합시다.

(열두 노인들 차례차례로 말한다.)

코로스 1 :
나는 거리낌없이 내 의견을 말하겠소. 전령들을 시켜
시민들을 지체 없이 이 궁전으로 불러모으는 것이 좋겠소이다.

코로스 2 :
내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안으로 뛰어들어
아직도 칼에 피가 묻어 있는 동안 범행을 확인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소.

코로스 3 :
나도 그 제안에 동의하오. 무슨 행동이든
행동을 해야 하오. 지금은 지체할 때가 아니오.

코로스 4 :
이것은 분명히 우리 도시에 대해 참주정치를
하겠다는 전조요. 그들의 행동이 이를 말해주고 있소.

코로스 5 :
우리가 우물쭈물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들은 신중의 명예를
짓밟고 있고 그들의 손을 쉴 줄을 모르오.

코로스 6 :
나는 어떤 계획을 제시해야 할지 모르겠소.
계획을 세우는 것은 역시 행동하는 자가 할 일이오.

코로스 7 :
나도 같은 생각이오. 죽은 사람을 말로써
다시 일으켜 세울 방도를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

코로스 8 :
그렇다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이 집을 더럽힌 자들을
우리들의 지배자로 떠받들겠다는 말인가요?

코로스 9: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 차라리 죽는 편이 낫지.
죽음이 참주정치 보다는 더 나은 운명이니까.

코로스 10 :
하지만 신음 소리만 듣고 그 분께서 돌아가셨다고
어떻게 확실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코로스 11 :
먼저 확실히 안 연후에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추측과 확실한 지식은 전혀 별개의 것이니까.

코로스 12 :
여러모로 생각해본 결과 먼저 아트레우스의 아드님께서
어떡하고 계신지 확실히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들이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문들이 활짝 열린다.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욕조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욕조 속에는 수놓은 큰 옷에 덮인 채 아가멤논의 시체가 누워 있다. 바로 옆에는 캇산드라의 시체가 누워 있다.) [1346~1371]”1

아이스퀼로스 저 「아가멤논」, 이 실려있는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문예출판사, 2001) 표지.
아이스퀼로스 저 「아가멤논」, 이 실려있는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문예출판사, 2001) 표지.

여기에서 ‘코로스’는 코러스 즉 합창대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의 진행을 관객에게 안내하고 누군가의 생각을 연극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 듯하다. 인용문에서는, 1에서 12에 이르는 코로스가 열두 원로 하나하나를 대변하는 것처럼 서술하여, 왕의 침실 앞에 모여있다가 왕이 살해당하였음을 알아차린 열두 노인 즉 미케네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원로의 생각을 코로스가 대변하고 있다고 명시하다시피 하였다.

“왕의 신음소리로 미루어 범행이 이미 실행된 것 같소이다. 무슨 좋은 방안이 있나 함께 의논해 보도록 합시다.” 원로들의 대표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 말이다. 원로들이 보여주는 것은 신속한 사태 수습이나 통 큰 결단이 아니라 마음의 흔들림인 듯하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원로들은 다들 왕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왕의 침실 앞을 서성인 듯하다.

한 원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나는 거리낌 없이 내 의견을 말하겠소”라고 먼저 말한다. 그냥 곧바로 의견을 말하면 되는 것 아니었나? 이 말은 군말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모든 원로의 마음속에 공포가 깃들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왕비가 왕을 살해하리라는 예상이 미케네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왕비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 또한 널리 퍼져있었을 것 같다. 통제할 수 없는 왕비의 힘이 원로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듯하다. 어떤 원로는 당장 현장에 뛰어들자고 이야기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몇몇 원로들은 불안해한다. 안심을 불가능하게 하는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면서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 우왕좌왕 설왕설래한 끝에 먼저 사실확인 즉 아가멤논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자는 데에 생각이 도달하기 직전에, 왕을 죽인 왕비가 먼저 침실 문을 열어젖히기에 이른다.

아테네 시민들이 연극 「아가멤논」 을 보며 진지하게 성찰과 정화의 계기로 삼은 인물은 아가멤논이었을 듯하다. 그런데 기후 환경 위기 속에 있는 어떤 사람은 아가멤논보다 열두 원로들이 보여주는 공포와 불안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기후 환경 위기에 처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 위기를 어렴풋이 감지하긴 하였으나 명확한 인식에 도달하진 못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런 지점에 있음을 몹시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그들의 마음 상태는 아마도 열두 원로의 마음 상태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열두 원로에 공감할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는 사람도 있고, 나아가 그 열두 원로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 비웃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남몰래 공감할 듯도 하다.

다시 성찰과 정화

연극 「아가멤논」 이 제사의 일부분으로 상연되던 시절의 아테네에서 여자는 시민이 아니었다. 그런데 연극은 여자인 왕비 클뤼타이메스트라와 망국의 공주 카산드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이메스트라는 둘 다 아가멤논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만한 인물이지만, 비교하여 보면 여자인 클뤼타이메스트라가 훨씬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기스토스 :
속이는 것은 예로부터 분명히 여자의 일이고
나로 말하면 이 자의 숙적(宿敵)을 의심받아왔으니까.
하나 나는 이제 이 자의 재물을 밑천으로 삼아
시민들을 지배할 생각이다. …… ” [1636~1639]2

“클뤼타이메스트라 :
제발 불행에 불행을 쌓아올리지는 맙시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남자여!
여기 이것만 해도 거두어들일 게 많아요. 불행한 수확이어요.
재앙은 이만하면 족해요. 이젠 피 흘리는 것만은 피하도록 해요.
노인장들은 집으로 돌아들 가셔요. 그대들의 행동이
고통을 가져다주기 전에, 우리들은 운명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고통이 이것으로 끝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여자인 나의 생각이여요.” [1654~1661]3

아이기스토스는 복수가 끝나자마자, 복수에서 비난받을 만한 면은 여자에게 떠넘기면서, 참주라도 되고자 하는 욕망을 촐싹대며 드러낸다. 그에 비하여,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라도, 복수 자체가 해야만 해서 한 것이었으나 그것이 완수된 마당에 복수가 복수와 무관한 사람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는 투의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인물 사이의 차이는 작지만 중요해 보인다. 성찰과 정화를 위한 연극이 상연된 아테네에서 여자는 시민도 아니었지만, 그 연극 속에서 성찰과 정화의 계기가 되어주기에 더 걸맞은 인물은 여자들 특히 틀뤼타이메스트라인 듯하다. 아이기스토스가 “속이는 것은 예로부터 분명히 여자의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으로부터 유추하여 볼 수 있듯, 아테네 남자들은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성성을 강요하면서도 시민으로 인정하여 주지도 않은 듯하다. 제사장이었던 여자들을 신격화하면서도 거기에 가두고 남자들만 시민이 되어 권력은 나눈 정치체. 아테네를 이런 정치제로 설명하여 볼 수도 있을 듯하다. 희곡 「아가멤논」 은 이와 같은 아테네의 모습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숨기지 않은 것은 이것뿐이 아닌 듯하다. 희곡 속 열두 원로의 행태도 숨김없이 드러냄의 한 예 같다. 극작가 아이스퀼로스는 열두 원로의 행태를 담담하면서도 상세하게 그려서 희곡에 담았다. 이 열두 원로와 아이기스토스 나아가 결국은 클뤼타이메스트라까지, 희곡 「아가멤논」 속의 인물들은 모두 불완전하며, 망해가는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 희곡이 제사의 일부로 상연되던 시기에, 아테네 또한 그리 흥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문명이 그러하듯, 아테네가 속한 고대 그리스 문명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희곡 「아가멤논」 은 지금 여기에서 오늘도 읽히고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기후 환경 위기에 처한 인류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위기 앞에서 허둥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고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라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희곡 「아가멤논」 은 여러 면에서 가치 있는 텍스트이며, 특히 지금 여기 기후 환경 위기 속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각의 계기가 되어줄 만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1. 아이스퀼로스, 「아가멤논」, 소포클레스·아이스퀼로스, 천병희 (옮김), 『오이디푸스왕』, 대한민국 서울 :문예출판사, 2001, 88~89쪽.

  2. 위와 같은 책, 103~104쪽.

  3. 위와 같은 책, 104~105쪽.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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