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내재적 권리를 갖는가

인권의 토대인 권리론은 각 개체를 배타적인 존재로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각각이 서로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경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동물, 더 나아가 생명의 경우에는 어떨까? 세균과 유기체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공진화하면서 관계 속에 존재하지 개별적인 존재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 각각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동물권’ ‘생명권’ 등 권리론이 가진 한계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가 생명을 대하는 방식은 어떠해야하는지 생각해보자.

정말 오랜만에 사촌 모임이 있어서 지리산을 다녀왔다. 지리산을 다녀왔다고 해서 지리산 종주나 그런 것을 상상하시면 안 된다. 그저 1박2일 코스로 지리산 계곡의 펜션에 머물면서 계곡에 흐르는 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왔다. 지리산 계곡의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서 오랫동안 발에 쌓여 있던 묵은 때를 지리산 계곡 물에 모두 씻겨 보내고 새하얀 발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면서 잠시 지리산에 터 잡은 수많은 생명들을 느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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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계곡 이곳저곳 눈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덮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풀들과 나무들, 그리고 꽃들, 또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들, 또 땅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개미들, 그리고 느릿느릿 기어가던 집이 없는 달팽이까지. 이렇게 저렇게 많은 생명들을 보며 이 생명들에 내재적 권리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은 요즘 동물권과 연관되어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 탓이었다. 동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관심 밖의 영역이겠지만, 동물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거로서 제시되는 것이 동물권이다. 이 동물권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인간에게는 그 인간이 어떠한 상태이던지 간에 우리가 보호해주어야 하는 인권이라는 기본권이 있는 것처럼 동물에게도 그러한 기본권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동물권의 철학적 배경이 되는 철학자로는 피터 싱어나 톰 레건과 같은 철학자들이 있다. 싱어는 고통을 느끼고 즐거움을 경험하는 능력을 유정성(sentience)이라고 언급하며, 유정성이 있는 존재는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에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또 레건은 삶의 주체들에게는 기본권(basic rights)이 있으며, 어떤 개체가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 행위자들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동물들에게는 기본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주체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동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권리가 없다는 반론이 제기 된다. 또 이러한 반론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심신미약자의 경우 대리인이 그들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것처럼 동물들의 권리 침해에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에 의해 그들의 권리를 대리하여 주장할 수 있다는 반론까지 다양한 논쟁들이 오고가고 있다. 이러한 논쟁들이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기실은 동일한 패러다임 내에 있는 주장들이다.

근본적으로 문제의 시작은 인간에게는 내재적 권리가 있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천부인권이나 기본권과 같은 인권에 대해 학습을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이 너무나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산출된 인의적인 개념일 뿐이다.

인권의 토대가 되는 권리론은 각 개체를 배타적인 존재로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각각이 서로에게 주장할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경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개체간에 구분을 짓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서양의 사고방식이다.

서양의 사고방식을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동양의 사상을 대표하는 중국의 역사의식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인들은 삼황오제(三皇五帝)와 같은 집단의식을 대표하는 성인이나 군왕을 기원으로 하여 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인의 미덕을 근간으로 한 법률과 사회 규범을 제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군왕은 국가를 다스리고 개인은 공동체적인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의지나 행위보다는 집단과 공동체를 중요시 여겼다. 고대 중국인들은 안정된 역사와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회 집단이나 군왕, 그리고 예의 제도를 사회의 근본 요소로 간주했으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인간의 역사관을 발전시켰다. 그들에게 국가와 법률은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사람들 역시 그것을 따라야 했다. 공동체적 토양 속에서 형성된 고대 중국인의 의식은 군왕과 예의와 같은 “집단의 표징이 사회의 본질임을 강조”하였고, 그에 따르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오직 가정이나 씨족, 그리고 국가의 일원으로서만 존재를 인식할 뿐, 스스로를 하나의 독립적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만물과의 관계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일정한 지위를 차지할 뿐이지 결코 만물을 통치하거나 만물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주재자로 생각되지 않았다.”1

  • 유교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는 자연적 질서의 일부
  • 조화로운 사회적 삶은 인간 존재가 타고난 본성에 가장 어울리는 것

그에 비해 고대 그리스는 산맥과 강으로 분할된 환경과 수시로 발생하는 전쟁 속에서 통일된 성인(成人)의 형상을 세우는 문제는 중시하지 않았으며 개인 상호 간의 계약을 통해 분업이 이루어지고 사회단체가 결성되었다. 그로 인해 비교적 일찍부터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회 계약론이 발전되었다. 그들에게 국가와 법률은 개인의 정치의식의 산물일 뿐이었다. 사회의 기원과 발전을 이루는 토대는 사회 공동체나 통일적 국가나 예의 및 법률 제도가 아니라 바로 개인이었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Prothagoras)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여,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 관계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였다.2

서양은 이러한 개체 중심적인 사고의 틀에서 타인과 계약 관계를 맺고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 다양한 권리론이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패러다임 속에서 서양의 권리론자는 권리론이 없다면 개인을 보호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양의 공동체에서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장이 없어도 공동체로부터 개인은 보호를 받는다. 이는 서양과 동양의 가치 체계의 근본적인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유교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는 자연적 질서의 일부이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조화로운 사회적 삶을 사는 것은 인간 존재가 타고난 본성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고 각 개인은 그러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들과 그러한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에서 “인간이 존중받아 마땅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3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이유가 권리론자는 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유교적 공동체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라는 기본 교리를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엄마가 어린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이유가 권리론은 어린아이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이 있기 때문이고 엄마에게는 아이를 돌볼 의무가 있기 때문이지만, 유교적 공동체에서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은 엄마와 사회 공동체의 책무이기 때문에 그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유교적 공동체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다양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공통적이다.

이하라(Craig K. Ihara)는 “개인, 개인의 합리성과 자율성 그리고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요구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서양의 특유한 관심사이며, 유교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사회 그리고 계몽 시대 이전의 서구 사회에서조차 명백하게 인간을 다른 의미로 이해했다”4고 말한다. 인간 존재에 존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며 권리론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중국 전통 사회뿐만 아니라 많은 공동체들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장 없이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그러한 개인을 보호해야 할 공동체가 온전하지 못하다면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자는 개인적인 안전망이나 권리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이하라는 이야기한다. 권리론은 개인을 보호해줄 확고하고 안전한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자유주의적 사회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인위적인 가치일 뿐이지 중력의 법칙과 같이 모든 사물과 생명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존재하는 가치 체계가 아니다.

  • 권리론은 개인을 보호해줄 확고하고 안전한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자유주의적 사회에서 형성된 또 하나의 인위적인 가치일 뿐

지리산 골짜기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체들, 가령 풀밭에 줄을 서서 기어가는 개미에게 권리가 있는가? 그들 각각의 생명체들이 자신에게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권리를 주변 생명체에게 존중해달라고 주장하는가? 인간이 배제된 자연에서 각 생명체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본인이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인지 아직까지 자연의 어느 생명체도 스스로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공진화하는 꽃과 벌.
출처: pixnio

권리론의 한계는 생명체들을 개별적인 존재로 구분하면서 각각에게 권리를 부여하지만 생명체는 결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개미는 개미 집단으로서 존재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존재하지 개별적인 존재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모든 유기체는 내외부적으로 세균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세균과 유기체는 서로간에 권리를 주장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균과 유기체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공진화하면서 관계 속에 존재하지 개별적인 존재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 각각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연의 생명체들은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는 그 관계에서 혜택을 받으며 또 그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이바지한다. 각 생명체는 그러한 관계 속에 존재할 뿐이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또 내재적 권리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생명을 구분짓고 권리를 부여하려다 보니 싱어는 무척추동물이나 나무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신경 쓰거나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복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레건은 삶의 주체라는 기준을 ‘1년 혹은 그 이상 된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포유동물들’에게만 적용하면서 나머지 자연의 생명체들은 권리의 대상에서 배제하였다. 이것이 권리론이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 오랜 세월 공진화하면서 관계 속에서 존재할 뿐, 생명은 권리 주장하지 않아
  • 생명에 대한 예의, 권리론 아니라도 늘 견지해야할 삶의 기본적인 태도

자연의 어느 생명도 개별적인 존재는 없다. 우리는 생태계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의 생명체에게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기본권이 있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견지해야 할 다른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자 예의이기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길 위의 달팽이를 피해 가신다. 그것은 달팽이의 생존권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다른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여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할머니께서 권리론을 알겠는가?

  1. 진위평 편저, 같은 글, 275쪽.

  2. 진위평 편저, 같은 글, 268-274쪽.

  3. Craig K. Ihara, “Are Individual Rights Necessary?”, A Confucian Perspective, Confucian Ethics: A comparative Study of Self, Autonomy, and Community, Kwong-loi shun(ed.), David B. Wong, Cambridge Univ Press. 2004, p. 23.

  4. Craig K. Ihara, ibid, p. 25.

박종무

지구 생명의 근원은 해님이라고 믿는 생태주의자. 해님의 에너지를 받는 지구 모든 생태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희망한다. 특히 동물들이 생태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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