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⑮ 학교 다녀왔습니다

보성댁 가족은 순천에서 가까운 밤골로 이사하고 순천에 있는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기차를 타고 통학한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놓친 큰딸을 기다리며 보성댁은 초조한 시간을 보낸다. 큰딸은 두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보성댁은 딸의 겁없음이 더 걱정된다.

상덕씨의 일자리 문제로 순천에서 살다가 소록도에 가서 11개월을 살다가 나왔다. 소록도에 가게 되었을 때 고2인 둘째 아들, 중3인 셋째 아들, 중1이었던 큰딸은 보성댁의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보성댁의 어머니도 가난한 과부의 처지라 자식 셋을 맡기기 위해서는 방을 하나 더 얻을 수 있는 돈을 보태고 먹을 양식도 대야 했다. 그걸 넉넉하게 대지 못 해 보성댁은 늘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살았다. 소록도에서 11개월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상덕씨는 고향인 여수머리 이웃 동네인 밤골에 있는 성당으로 옮겨 근무를 하게 되었다. 보성댁이 처음 혼인했을 때 여수머리에 있던 공소가 같은 생활권이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동네인 밤골로 옮겨가 있었다. 세 아이들 때문에라도 순천 가까운 곳에 있는 이곳으로 서둘러 오려고 애를 썼다. 새로 근무하게 된 곳은 정확히 말하면 사제는 없는, 신도들만 있는 교회, 공소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순천과 거리가 가까워져 통학을 할 만한 거리가 되었고 보성댁의 친정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지내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성당 뜰에 보성댁 가족이 살 사택이 후루룩 지어졌고 후루룩 지은 덕에 좁고 웃풍이 많은 집이지만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밤골에서 순천까지 버스도 다니고 기차도 다녔는데 아이들 학교에서는 버스정류장보다 기차역이 더 멀었다. 그렇지만 기차승차권을 월 단위로 구매하면 요금을 할인해 주고 한 달 버스 요금의 1/3 정도를 절약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 기차 월권을 사주고 학교에 다니게 하였다. 여수에서 올라오는 기차가 밤골역을 출발하는 시간은 6시 50분. 아이들을 깨워서 밥 먹이고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 하는 보성댁은 새벽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전기밥솥은커녕 석유풍로 하나 없던 시절이라 밥을 지으려면 안방에 군불 때는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 밥을 짓고 작은 방에 놓은 연탄불에 국을 끓이거나 해야 했다. 새벽 네 시 이전에 일어나지 않으면 아이들 밥을 제 때에 차릴 수 없었다.

보성댁은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일어나면 연탄불에 물을 먼저 올리고 부엌 옆방인 ‘식당방’에서 자는 딸들 옆에 물이 끓을 때까지 잠시 눈을 붙였다.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밥 짓는 솥에 불을 때며 국도 준비하고 도시락도 준비해야 하니 보성댁은 잠시도 숨돌릴 틈이 없었다. 날이 추울 때는 세수할 물도 데워놔야 해서 더 바빴다. 밥에 뜸을 들기 시작하고 국과 도시락이 얼추 준비되면 아이들을 깨웠다.

기차는 둑실쯤 지나갈 때면 곧 도착할 거라고 알리는 건지 빼액 기적을 울렸고 그 소리가 들릴 때면 아이들이 나가야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
사진출처 : pxhere

밤골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녀서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둘째딸과 셋째딸을 한쪽으로 밀고 밥상을 차리면, 기차를 타야 할 아이들은 서둘러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면 가방을 챙겨들고 서둘러 나섰다. 기차는 둑실쯤 지나갈 때면 곧 도착할 거라고 알리는 건지 빼액 기적을 울렸고 그 소리가 들릴 때면 아이들이 나가야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차역이 집에서 5분 거리로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기차를 타러 가서 보면 더 먼 곳에서 30여분 걸어서 기차를 타러 오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가서 순천역에 내리면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 용식은 그나마 학교가 가까운 편이라 잰걸음으로 걸으면 20분 정도 걸려서 학교에 도착한다고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딸 선자는 더 힘들었을 터였다. 보통 걸음으로 걸으면 학교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지만 같이 등교하는 친구들과 함께 잰걸음으로 걸어서 40분 정도면 학교에 도착한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뛰다시피 걸어야 그 시간에 학교에 도착했을 것이다. 시내버스가 다녔지만 시내버스 차비를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그게 있었다면 완행버스를 타고 다니게 했을 일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은 딸이 다니는 중학교까지 20분 거리였다.

그렇게 힘겹게 학교에 다니면서도 애들은 불만스러워하지 않았고 공부도 제법 잘했다. 딸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보성댁을 가슴 졸이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더워져 가는 속에 저녁을 준비하던 보성댁은 저녁 기차가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애들이 곧 들어오겠다 싶어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그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 없이 학교에 간 아이들이 걱정스러웠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용식이 다녀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어서 딸 선자가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릴 거라 기다리는데 아무 소리가 없었다. 용식은 아들들끼리 쓰는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선자 소리가 안 나지?

딸 소리가 나지 않는 것에 궁금해하면서도 저녁밥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위하수증으로 허기를 잘 견디지 못 하는 남편을 걱정해 서둘러 밥상부터 차렸다. 식당방에서 놀고 있는 딸들에게 일렀다.

“아이, 아부지 진지 잡수시라고 해라. 오빠랑 아그들도 밥 묵으라 하고. 느그 언니는 안 왔냐?”

“언니 안 왔는디요?”

둘째 딸 미선이 수저를 놓으며 대답하고 셋째 딸 미자는 식구들을 부르러 갔다.

“아부지 진지 잡수세요. 오빠 밥 먹소. 느그들도 밥 먹으란다.”

밥 먹으러 들어오는 용식에게 물었다.

“아이, 선자 같이 안 왔냐?”

“예 기차에서 내릴 때 봉께 없든디요? 그래서 먼저 온지 알았는디?”

“오기는 뭐가 와야. 차가 있어야 오제.”

상덕씨와 용식은 작은 상을 마주하고 앉고 보성댁은 작은 아이들 넷과 도래상에 둘러 앉았다. 허기를 못 참는 상덕씨도, 학교에서 조금 전에 온 용식이도 모두들 별것 없는 밥상이지만 맛있게들 뱝을 먹는데 보성댁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딸이 왜 오지 않았는지 알아볼 방법도 없고 딸의 연락을 받을 방법도 없어 답답하고 걱정이 되었다.

“엄마 나 씨레기국 더 먹고 싶어요.”

“이따 언니 줄 것만 남았응게 그냥 짐치에 묵어라.”

셋째 딸 미자는 아쉬운 표정을 하며 밥을 깨작거렸다. 저러다 남기려나 싶었지만 깨작거리는 중에도 남은 밥을 싹 비운다. 반찬을 가리는 것은 이것저것 있으면서도 딸 셋 중에 밥을 가장 많이 먹는 아이였다. 정작 밥을 남긴 건 보성댁이었다. 소식이 없는 딸이 걱정이 되어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미자는 늘 같이 밥을 먹던 언니가 없으니 궁금했는지

“엄마, 언니 언제 와요?”

하고 물었다.

“금메 나도 모르겄다. 어째 기차를 안 탔으끄나. 나도 몰라서 깝까압흐다.”

시원한 답을 들은 것도 아닌데 미자는 지 할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아이, 용식아. 선자 친구들은 봤냐? 다들 기차 탔디야?”

“예 대충 다 온 것 같든디, 왜 선자가 기차를 안 탔을까요?”

그렇게 대답하곤 밥을 다 먹은 용식은 일어나 지가 쓰는 방으로 가버렸다.

“아이, 느그들이 상 좀 치라. 나 나가봐야 쓰겄다. 느그 언니 온가.”

그렇게 설거지를 딸들에게 맡기고 나섰지만 별 수가 없었다.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딸은 소식이 없으니 보성댁은 애가 탈 뿐이었다. 기차역에도 가보고 버스 정류장에도 가 봤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고 마음만 초조해졌다. 얼마 전, 저녁에 시골길을 혼자 가던 아낙이 숭악한 남자를 만나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떠오르고, 길가다 지나던 차에 사람이 치었다는 뉴스도 생각나고 산길 가다가 오소리를 만났는데 같이 있던 개가 짖어서 쫓아 버렸다던 작은 시누 남편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어디서 먼 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랑가 모르겄네.

동네 앞길에서 서성이는 보성댁을 보고 지나가던 가산댁이 말을 걸었다.

“옴마, 어째 나와 기시오? 저녁은 잡샀소?”

“이, 우리 큰딸이 아직 안 와서. 어째 아직 안 오는가 애가 타네.”

“음매, 어째 아직도 안 오까요? 기차를 놓쳐부렀는갑네.”

“긍께. 그랬는갑서. 기차를 놓치고 어찌케 집에 오는가 모르겄네.”

가난한 살림에 용돈을 여유있게 주지 못해 버스 탈 돈도 없을 것인디 하는 생각에 보성댁은 더 애가 탔다. 하릴없이 동네 앞에 서있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하루의 노동으로 지쳐 오래 서있을 기운이 없었다.

“어이, 선자가 왜 안 온당가.”

남편도 늦게 돌아오지 않는 딸이 걱정되는지 물어왔다.

“아이고오, 나가 잠 알고 잡소. 왜 안 오는지. 지가 연락이 없는디 나라고 어찌 안다요?”

밥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집에서만 걱정하고 있는 남편이 얄미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거 사람이, 참.”

보성댁의 뾰족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상덕씨는 입맛을 다시면서도 보성댁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부엌에 가보니 설거지는 되어 있는데 행주는 빨지 않은 채 물에 잠겨 있었다. 속으로 저녁 설거지는 미자가 했나 생각했다. 미선이는 성격이 남편을 닮았는지 매사 꼼꼼하고 거기에 한술 더 떠 깐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동생들의 사소한 잘못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혼내고 몰아붙여 불만이 생긴 동생들과 종종 다투곤 했다. 아무튼 그런 성격이다 보니 미선이가 설거지를 하고 나면 행주도 깨끗이 빨아 두고 뒤처리가 깔끔했다. 미자는 순순하지만 매사 설렁설렁해 설거지를 하고 난 다음도 깔끔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니 미선이가 미자에게 설거지를 시켜서 억지로 한 것인지 미자의 입이 댓발 나와 있었다. 미선이는 숙제를 하는지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밑에 두 놈은 공부하는 제 형에게 쫓겨 나왔는지 마루에서 둘이 씨름을 하고 있었다. 네 살이나 차이가 나다 보니 막둥이는 제 위의 형에게 어림이 없지만 계속 씨름으로 이겨보려고 덤비고 있었다. 딸들도 아들들도 큰딸이 들어오는지 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방에서 공부하는지 책상 앞에 앉은 용식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나이 더 먹은 값을 하는지 방을 들여다보는 보성댁에게 선자 아직 안 왔어요? 물어본다. 그도 그것뿐 들고 있는 책으로 눈이 돌아간다.

보성댁은 한숨을 푹 쉬며 문을 닫고 안방에 있는 남편이 얄미워 딸들이 있는 식당방으로 가서 벽에 기대고 앉았다. 집에 오고 있는지 무사히 오는지 걱정에 마음이 심란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는 걸 보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 가보려는데 지서 앞에 희끄무레한 것이 다가오며 엄마라고 부른다. 돌아보니 선자였다.

“아이고, 아가. 왜 인자 오냐? 어쩌다가 기차를 놓쳐븠어?”

“엄마, 학교 다녀왔어요.”

그 와중에도 인사를 차리는 딸이 가엾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아이고, 나가 애가 터져 죽는지 알았다. 아이 어쩌코 왔냐. 이 시간엔 기차도 없을 것인디……”

부슬부슬 내리는 비였지만 큰딸은 꽤 오래 걸었는지 교복이 축축하니 젖어 있었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로 비포장인 길도 진흙밭이었는지 신발은 흙범벅이었고 치마도 못지 않게 더러웠다.

“엄마, 나 배고파요. 얼릉 들어가요.”

“이, 그래 들어가자. 춥고 배도 고프겄다.”

데리고 들어가서 딸이 옷 갈아입고 씻는 동안 얼른 밥상을 차렸다. 그 옆에 앉아 딸에게 물었다.

“아이, 어찌된 거냐? 왜 기차를 못 탔어? 글고 어찌케 왔어?”

배가 고팠는지 딸의 숟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아,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이 얼른 안 파해줘 가꼬.”

“아니, 왜?”

“우리 반 애기 하나가 돈을 잊어 븠는디 선생님이 돈 나올 때까지 집에 못 간다 해가꼬”

“나가 니 기다리느라 얼마나 애가 터졌는지 아냐. 십 년은 감수한 것 같다. 그래 됐다. 니가 이리 벨 일 없이 왔응께 됐다” 사진출처: J W

딸은 입에 밥을 문 채 대답을 해서 중간중간 무슨 말인지 알아 먹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대충 들으니 좀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딸의 이야기로는 반 아이 하나가 돈을 잃어 버렸는데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담임 교사가 돈 가져간 사람 좋은 말 할 때 내놓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순순히 내놓을 거면 애초에 가져가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담임이 돈 나올 때까지 모두 집에 못 간다고 했다는 거다. 다른 반 아이들은 다 집에 갔지만 선자네 반만 집에 못 가고 모두 교실에 꼼짝 못 하고 있었단다. 돈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가 담임 자신이 퇴근할 시간이 되자 그제서야 아이들을 하교시켰는데 그 시간이 여섯 시였고 기차는 여섯 시에 출발하는 기차여서 그때서야 학교를 나서는 딸이 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 그럼 기차 시간 때문에 얼른 가야 흔다고 말을 해야지.”

“했어요. 근디 선생님이 나가 그 말을 흔께 아그들한테 돈 훔쳐간 사람 때문에 선자가 기차를 놓치믄 되겄냐? 긍께 얼릉 돈 내놔라 글기만 하고 안 보내줬당께요.”

보성댁은 기가 막혔다. 돈은커녕 종이 한 장을 훔칠 줄 모르는 우리 딸을 돈 훔쳐간 아 때문에 집에도 안 보내주고 기차를 놓치게 만들었단 말야?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는 어찌케 왔냐?”

“나가 돈이 쪼끔 있었는데 그 돈으로는 해룡까지 차비밖에 안 되길래, 해룡까지만 버스 타고 해룡서부텀 걸어 왔어요.”

“오메 세상으. 아이 돈이 없으믄 차라리 할머니 집으로 가든가. 아니면 버스 차장한테 말해 가꼬 그 돈만 받고 밤골까지 좀 태워 주라고 말이라도 해보지 그랬냐. 적으나마 뭣흔 사람 같으면 그 정도는 태워주기도 할 것인디.”

“내일 학교 준비물 때문에 할무니 집에 가서 못 자요.”

“아이, 어둑어둑해진 길을 올 때 안 무섭디냐.”

“별로 안 무서웠는디. 길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사람도 사람이지만 들짐승 그런 거 나오믄 어쩔라고 겁도 없이 그러고 와.”

“그런 거 없었는디.”

“나가 니 기다리느라 얼마나 애가 터졌는지 아냐. 십 년은 감수한 것 같다. 그래 됐다. 니가 이리 벨 일 없이 왔응께 됐다. 얼른 밥 묵어라.”

딸은 정말로 무섭지 않았는지 엄마가 걱정하는 것이 별로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이 그나저나 니 내일 학교 갈라믄 교복도 그렇고 신발도 그렇고 얼른 빨아야 되겄다. 나가 교복 빨아서 대릴 겅께 니는 신발 빨아서 연탄불 위에 걸쳐서 말리자.”

비에 다 젖고 흙범벅이 된 옷을 그냥 입혀서 보낼 수 없었던 보성댁은 상 치우기가 바쁘게 교복을 빨았다. 요즘처럼 빨래 건조기가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집에 선풍기 한 대 없던 시대이니 교복 말리는 것이 큰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기 다리미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보성댁은 아직 숯불 다리미를 사용하고 있었다. 춘추복 윗도리는 비교적 얇아서 빤 후에 마른 수건에 넣어 짜서 다림질을 하니 어렵지 않게 말라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그런데 검정색 교복 치마는 천이 두꺼워 빨기도 어려웠고 말리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들 자야 할 시간이라 마루에 큰딸이랑 마주 앉아 치마를 다리는데, 치마 한쪽 귀퉁이를 잡고 있던 큰딸이 꾸벅꾸벅 조는 거다. 시간을 보니 열두 시가 넘어 있었다.

“아이, 니 언능 들어가 자라. 낼 아침에 인나서 학교 갈라믄 힘들겄다. 나가 흐꺼잉게 들어가 자야.”

“그래도 이거 잡아야 하잖아요.”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얼렁 들어가 자.”

그제서야 큰딸은 마지 못 한 듯 자러 들어가고 보성댁이 교복치마를 그럭저럭 입을 만하게 말려 걸어놓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가 넘어 있었다. 보성댁도 쓰러지듯이 자리에 누웠다. 눈꺼풀이 말도 못 하게 무거웠건만 눕고 나니 딸을 기다리던 때의 일이 생각나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아이고, 저것이 아무 일도 없이 들어 왔응께 망정이지. 먼 일이라도 생겼드라믄 어찌 살았을 꺼나. 그저 하느님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보성댁도 어느덧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만이 이 가족의 잠을 지키고 있는 듯한 밤이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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