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빗질’ 첫 번째 이야기, “흔들리는 지구별 위에서 노래하자.”

태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엄청난 쓰레기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쓰레기를 발견했고, 나와 비슷한 사물들에게 희망의 자리를 내주었다. 몸을 굽혀 쓰레기를 줍는 즐거운 노동과 명랑한 이야기를 만드는 몸짓에서 숨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2020년 8월부터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나와 세 조카들은 마스크 없이 뛰어다니며 숨을 마음대로 헐떡일 수 있는 명랑한 길을 잃었다. 금강 곁길과 숲이 모두 물에 잠겼다. 우리 가족이 강가 마을로 이사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가뜩이나 코로나로 우울한데, 마을에 한 갈래뿐인 산책길도 잠겨버려 모두 집 생활자가 된 우울한 여름이었다. 대청댐은 가두어 둔 물을 활짝 흘려보내기 시작했고, 강물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아랫마을 숲과 논밭이 한꺼번에 불어난 물에 잠겼다.

2020.8.8. 위_마을 산책로가 물에 잠겼다. 숲길이 없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산책을 한다. / 아래_금강, 곁길을 산책하며 사람의 흔적들과 자주 마주쳤다. 사진 제공 : 빗자

오랜 시간 숲길을 산책하며 혼자서, 또 아이들과 즐거이 쓰레기를 주워놓곤 했다. 강가에 버려진 쓰레기는 물에 젖어 무겁기도 하고, 줍다 보면 양이 많아져서 우리는 우묵한 곳을 찾아 몰래 쓰레기를 모아놓곤 했다. 그때부터 쓰레기를 가지고 노는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다. 강 주변에는 낚시를 하고 남은 미끼쓰레기, 소풍 온 사람들의 돗자리나 숯과 불통, 숲 안에 은밀히 일구어놓은 텃밭 물건과 농약병, 버려진 옷과 신발과 밥통, 산책하며 먹고 흘린 사탕과 주스 껍데기, 플라스틱 컵이 많았다. 언젠가 손수레를 가져와야겠다고 한 다짐은 점점 뒤로 미뤄지면서 모아두었던 쓰레기 더미들은 결국 강으로, 바다로, 다른 세계로 휩쓸렸다.

이 시절 지구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떠다니는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하고 싶은 몸짓과 뜻에 대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혼자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을 벗어나 다른 숨들과 연결되고 싶었고, 서로의 숨꽃이 피어나는 빛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예술은 가능할까? 서로에게 바람이 이어지는 솔직한 몸짓과 뜻은 어떻게 해야 함께 살아질까? 이런 고민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깜깜나라에 가두어 버렸다. 그림자를 달래기 위해 명랑한 척하지만, 쓸모없는 몸짓 같아 스스로 가두기를 반복했다. 잠시 황홀했던 유일한 시간은 깊은 밤 혼자 숲길을 걷고 뛸 때, 그리고 지렁이, 맹꽁이, 사슴벌레, 버드나무, 조카들, 꼬물거리는 삶들과 만나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틈틈이 쓰레기를 스무 자루 정도 모아 두었지만 그해 여름 모두 바다로 가버렸다. 사진 제공 : 빗자

여름 내내 지독했던 비린내와 작별하려면, 지구별에 사는 즐거운 몸짓과 뜻을 찾아 이어야 했다. 물 위에 떠있는 쓰레기는 우리들 삶과 비슷해 보였다. 아직 멀쩡하지만 별로 필요하지 않은 어디선가 잃어버린 물건, 세상은 그만 우리를 깜빡하고 누군가 흘린 쓰레기처럼 여기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가뜩 쪼그라진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쓰레기를 찾는 것이 나를 찾는 일이 될 것이라는 조금 오싹한 마무리를 지었다.

엄마에게 잃어버린 삶빛을 함께 찾아 달라고 울며불며했다. 엄마는 자신의 생일만 다가오면 깜깜해지는 딸 때문에 슬퍼했다. 어느 날 문득, 이어진 속 깊은 이야기가 엄마와 바다와 나를 이어주었다. 처음 둘이서 여행을 했다. 이틀간 태안의 ‘꾸지나무골’부터 보령의 ‘원산도’까지 바람과 바다, 모래를 훑어보고 만졌다.

2020.8 28. 엄마와 숨바꼭질 여행 중, 태풍 후 바닷가. 바다와 바람과 모래, 그리고 쓰레기. 사진 제공 : 빗자

숲에 모아두었던 쓰레기와 비슷한 것이라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바다에 갔지만, 사실 누군가와 가까이 있고 싶었다. 나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에게 어둠을 잠시 기대어,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바다는 명랑한 마법 같았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엄청난 쓰레기들이 흩뿌려있었다. 운이 좋게도 바닷가에 쓰레기가 많이 쌓이는 계절에 딱 맞춰 갔던 것이다.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쓰레기를 발견했고, 나와 비슷한 사물들에게 희망의 자리를 내주었다. 몸을 굽혀 쓰레기를 줍는 즐거운 노동과 명랑한 이야기를 만드는 몸짓에서 숨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 밤, 숙소로 돌아와 모든 게 설레고, 기분 좋고, 위로받고, 행복한 마음으로 색을 띠어가는 엄마와 나는 조금 들떴다. 여름의 끝물, 바다에서 엄마와 오랜만에 손을 잡고 마음이 일렁일렁해서 같이 밤을 노래하며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는 수줍은 아이처럼, 떨면서 가족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 앞으로 바다에서 쓰레기 주우면서 같이 놀지 않을래?”

어린 조카들과 동생 부부, 아빠는 모두가 상상하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족에게 내가 흘린 쓰레기를 찾으러 혼자서라도 바다에 가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곁 사람들은 혼자 가지 말고 같이 가서 줍자고 말해주었다. 그런 다정한 마음 덕분에 ‘바다 빗질’을 시작할 수 있었고, 지구별에서 ‘나’라는 작은 숨빛이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는지 찾아가는 물길을 열어주었다.

2020.9.13 첫 바다 빗질을 한다. 흔들리는 지구별 위에서 노래하자. 사진 제공 : 빗자

빗자

함께 빛그림을 그리고 이야기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구별과 사람, 자연과 관계, 평화와 마음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짓고 싶습니다. ‘엘레아가’ 일곱 곁 사람들과 ‘바다 빗질’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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