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확하고 부정합적인 이야기의 미덕 -〈백조애기와 금상(세화본향당본풀이)〉 독후기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제주 북동부 해안에 있는 세화 마을 당신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제주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하기도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속성에 관해서도 근원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

제주도 송당 마을과 세화 마을, 신들의 이야기

〈백조애기와 금상(세화본향당본풀이)〉1는 천자도, 백줏도, 금상님이 제주특별자치도 구좌읍 세화리 본향당의 당신(堂神)으로 좌정하게 된 내력을 담은 이야기다.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송당본향당본풀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듯하다. 송당본향당본풀이는 제주특별자치도 구좌읍 송당리 당신의 내력을 담은 이야기이다. 세화리는 제주도 북동부 해안지역의 일부라고 할 수 있고, 송당리는 세화리의 내륙 쪽 경계에 접하면서 제주 중산간 지역에 걸쳐있다. 송당리 당신이 백조할망과 소로소천국에서 그의 자녀 가운데 하나인 말째 아들로 바뀌고 말째 아들의 형제들이 각기 다른 지역의 당신으로 좌정하게 되었다는 것이 송당본향당본풀이의 내용이다.2 한편 송당 마을의 북서쪽 경계와 제주도 동북부 해안 사이에 있는 세화 마을에서 전승된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송당본향당본풀이를 바탕으로 하면서 천자도와 관련된 화소와 금상과 관련된 화소 등 여러 화소들 특히 돗제3에 관한 화소를 더한 후, 천자도·백줏도·금상의 세 신의 내력과 힘을 ‘천자도본풀이’·‘백줏도본풀이’·‘금상님본풀이’의 차례로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 전체의 결말에 해당하는 풍경은 금상이 당신으로 좌정하고 정기적으로 돗제가 행하여지는 세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이 풍경은 아직 세화 마을에 남아있으나 얼마나 더 지속가능할런지는 알 수 없다.

제주에서도 정기적으로 돗제가 행하여지는 마을은 많지 않다.
사진 출처 : Kenneth Schipper Vera

김헌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송당본향당본풀이는 영웅서사의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제주도의 본향당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당신의 주된 시조신 노릇을 하는 본풀이이므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송당은 제주도 본향당의 원향당으로 취급된다. 중산간에 모셔져 있으면서 여러 당의 근거를 이룬다.”4 이 주장에 따르면 중산간[송당리]에서 먼저 당산 신앙이 발생하고 해안 쪽[세화리 등]을 향하여 유사한 당산 신앙이 퍼져나갔다고 추정하여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강정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신을 모시게 된 사정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래 제각기 별도의 당에 모시다가 사정이 생겨 함께 모시게 되면서 본풀이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그 결과가 일반적이지 않아 제주도 당신본풀이 가운데 특별한 사례로 꼽힌다. 송당본향당본풀이와 같은 신명이 등장하며, 크게 보면 남녀 신의 관계도 같은 궤도 내에서의 전승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개별 신을 중심으로 한 내력담이 제각기 전승되기도 하고, 상호 맥락이 이어지는 하나의 내력담으로 전승되기도 한다.”5 이 주장에 따르면, 송당본향당본풀이와 세화본향당본풀이 사이에는 같은 신명이 등장하는 등 공통점도 있지만, 송당본향당본풀이가 제주도의 수많은 당신들의 기원과 분화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데 비하여,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제주도 내의 다른 마을 당신들의 본풀이와는 다르게, 성격이 다른 여러 신을 모시면서 무당이나 굿에 따라 어느 한 신을 더 중시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는 면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금상이 세화 마을에 좌정하고 돗제가 행하여지기까지

강정식은 세화본향당본풀이를 천자도본풀이·백줏도본풀이·금상님본풀이를 융합한 것으로 설명하였다.6

천자도본풀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천자또[천자도]는 한라영산의 지질게 백록담에서 솟아났다. 일곱 살이 되자 천문 지리를 두루 달통하니, 하늘 옥황에 가면 옥황의 소임을 맡고 지하에 가면 지하 소임을 맡아 했다. 하늘의 명을 받아 제주섬 세화마을 본향으로 자리잡아 한라산을 지키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7

이는 세화본향당본풀이에 있는 천자도본풀이라 할 수 있다. 송당본향당본풀이에서 보다 여기에서 천자또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천자도의 기원이 밝혀져 있지도 않고 천자도를 창세(創世)의 주인공으로 보지도 않는다. 그냥 ‘대단한’ 혹은 ‘쎈’ 신으로만 그렸을 뿐이다. 여기에서 천자도의 역할은 뒤에 나오는 백줏도[백조할망/백조애기]의 외할아버지 라는 데 국한된 것 같다.

세화본향당본풀이에서 백줏도본풀이 부분을 찾아보면, 조천에서 제주도에 상륙한 백줏도가 멍동소천국[소로소천국]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지만 폭행자의 손이 닿은 자기 손을 자르며 뿌리치고, 세화 마을에 이르러 외할아버지 천자또를 만나 “너는 무슨 음식을 먹느냐?” 라는 질문에 “얼음 같은 백시루떡이나 흰밥에 청감주 계란안주와 정과 백돌래를 먹습니다.” 라고 대답함으로써 천자또로부터 육식자가 아님을 인정받고, 멍동소천국은 백줏도를 성폭행하려 한 것과 육식을 한 것 때문에 천자또의 가혹한 제재를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비하여 송당본향당본풀이에 보이는 백줏도본풀이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백조할망은 육지부에서 곡종과 농경 기술을 익혀서 그것을 갖고 제주도로 온다. 그래서 사냥바치 노릇을 하고 다니던 남편 소로소천국에게 밭 가는 일을 전수한다. 하루는 소로소천국이 밭을 갈다가 배가 고파서 일을 시키던 소를 잡아먹는다.”8

결국 육식을 하지 않는 백조할망과 사냥바치 노릇을 하며 육식을 하는 소천국이 부부가 되었음에도 헤어진 원인을 ‘식성 갈등’9이라고 하는데, 이 갈등은 취향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을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백조할망과 소로소천국은 헤어지지만, 둘 사이에 생겨난 말째 아들은 넓은 세상에 나가 역경을 겪고 세화로 돌아와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여 새로운 당신이 되고 그의 형제들은 제주 각처의 당신으로 좌정한다.

한편 금상은 세화 마을에서만 모시는 당신이어서인지, 송당본향당본풀이에는 금상님본풀이라 할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금상님본풀이라고 할만한 것은 세화본향당본풀이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백줏도가 넓은 세상에서 역경을 겪고 세화로 온 금상을 만나, 금상으로 하여금 육식을 참게 하여 천자또의 인정을 받아내서, 금상과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부부를 맺고 석달 열흘이 지나가는데 먹던 음식을 못 먹어 몸이 뼈와 거죽만 남을 지경이 되었다. 백조애기가 민망하게 여겨 천자또에게 말했다. “소녀 때문에 천하명장이 굶주려 죽으면 어찌합니까? 할아버지와 제가 한 상을 받고 금상은 따로 상을 받게 마련하면 어떻겠습니까?” 천자또가 그럴듯하게 생각해서 허락을 하자 백조애기가 아랫마을 좌수 집에 조화를 부려 금상이 좌정한 것을 알게 하고 돼지를 잡아 제사를 올리게 했다. 금상이 밥과 떡을 많이 먹고 술과 돼지고기를 먹으니 비로소 포동포동 살아났다. 이후로 금상은 백조애기와 함께 천자또를 모시고 살면서 세화마을 수호신 구실을 맡게 되었다. 금상은 제사를 받고 나면 소주로 목욕하고 청주로 목욕하고 청감주로 입을 씻고 나서 백조애기와 자리를 함께 한다.”10

돼지고기를 먹은 후 백조애기와 함께 하려면 금상은 목욕을 먼저 해야 했지만, 어쨌든 식성 갈등의 해소가 시도되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하다. 그리고 금상은 세화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하였고, 돼지를 금상에게 희생으로 바치는 제사[돗제]가 정례화되었다. 돼지는 동네 사람들이 키웠을 것이고 제사가 끝나면 동네 사람들이 돼지를 나눠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돗제의 시행은 목축의 정착으로 볼 수도 있다.

부정확하고 부정합적인 이야기의 미덕

이 신화는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김헌선은 제주도 북동부 중산간 지역 송당 마을에서 전승된 송당본향당본풀이에 두 세대에 걸친 영웅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앞 세대 영웅 이야기는 토박이신과 떠돌이신이 결합하는 이야기이며, 뒷세대 영웅 이야기는 소로소천국·백주할매 부부와 말째 아들이 싸우는 이야기이며, 앞 이야기는 남녀 갈등·식성 갈등이고, 뒷이야기에는 부자 갈등이라는 것이다.11 여기에서 토박이신과 떠돌이신의 관계는 송당 마을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고기를 먹는 수렵 생활자 소로소천국’[토박이신]이 대표하는 생활방식에서 ‘곡물을 먹는 농경 생활자 백주할매’[떠돌이신]이 대표하는 생활방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소로소천국·백주할매 부부와 말째 아들 사이의 관계는 생활방식의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는 권력 교체인 듯하다.

한편 세화본향당본풀이에는 송당본향당본풀이에 없는 화소들이 들어있다; 천자도가 백줏도의 외할아버지임을 드러내 백줏도의 권위를 뒷받침한다. 백줏도가 내륙을 바라보는 북쪽 해안의 조천을 통하여 제주로 들어와서 중산간 지역의 송당리까지 이동하였음을 보여준다. 말째 아들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금상이 등장하여, 말째 아들처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강자가 되지만, 말째 아들이 부모를 몰아내고 한 마을에 좌정하고 형제들을 여러 다른 마을에 좌정하도록 하는 권력을 행사한 것과는 다르게, 천자도·백줏도와 함께 세화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한다. 그리고는 육식을 하지 않는 천자도·백줏도와는 다르게 돗제를 받는다. 강정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이 본풀이는 천자도·백줏도·금상님이라는 세 신위의 본풀이가 개별적으로도 전승되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세 신이 개별신 중심의 본풀이에도 지속해서 등장하여 일정한 역할을 한다. 결국 개별신 본풀이이면서 하나로 엮여 결합형으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12

각기 다른 시기에 본풀이를 한 심방[무당]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본풀이를 노래하였을 수 있다. 그러다보면 천자도·백줏도·금상님 가운데 어느 한 신명만을 강조하여 본풀이를 노래하였을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아예 한 신명의 본풀이만을 노래한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세화 마을 내에서도 소지역들 사이의 차이가 있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신들의 이야기 즉 신화이고,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들의 행적을 보고, 경외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덕적 교훈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신화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역사적 성찰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앞서 이미 주장하였듯, 송당본향당본풀이와 세화본향당본풀이를 엮어 읽어보면, 오래 전 송당 마을에서 생활방식이 수렵에서 농경으로 바뀌어 간 역사 그리고 언젠가 세화 마을에서 목축이 생활방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간 역사를 간접 체험하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백줏도가 내륙을 바라보는 북쪽 해안의 조천을 통하여 제주로 들어와서 중산간 지역의 송당리까지 이동한 것은 무당이 본풀이를 통하여 백줏도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데 있어서 육지의 힘을 암시한 듯하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송당본향당본풀이에 새로운 화소가 덧붙여져서 세화본향당본풀이가 만들어진 듯한 내용을 보면, 중산간 지역의 송당 마을이 해안의 세화 마을보다 먼저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세화본향당본풀이 같은 신화의 미덕 가운데 또 하나는 그것이 부정확하고 부정합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먼저 굿에서 본풀이를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애초에 문자 텍스트에 의거하여 행하여지는 틀이 갖추어지기 전에 생성된 종교의례였으므로, 정확성 여부를 판단할 기준으로써의 문자 텍스트의 활용도가 지극히 낮았을 것이다. 구전되어오던 본풀이를 연구자들이 무당을 구술하게 하여 기록한 것은 1930년대에 시작된 작업이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본풀이는 부정확한 노래였다. 나아가 각기 다른 시기에 본풀이를 한 심방[무당]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본풀이를 노래하였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내용이 다른 본풀이를 노래하였을 수 있으며, 상황적 요인에 따를 필요에 의거하여 아예 본풀이 내용의 일부를 바꿔 노래한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세화 마을 내에서도 소지역들 사이의 차이가 있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무당이 한 번 노래한 풀이는 그 무당과 사승관계(師承關係)에 있는 다른 무당에게 전수되면서, 하나의 본풀이의 다양한 변이본(變移本)들이 생겨나서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세화 마을이라는 정치체 속에서는 본풀이의 부정합적인 변이본들이 부정합적이 상태에서 공존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화 마을이라는 정치체 속에서 이렇게 떠도는 부정확과 부정합을 정리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정확과 부정합의 방치는 혼란의 원인으로 인식될 수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부정확과 부정합을 정리하려는 시도가 세화 마을이라는 정치체 안에서 불거지지는 않은 듯하며, 이러한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오히려 이야기의 부정확과 부정합을 존중하였지 그것의 정리와 단일화를 꾀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부정확과 부정합은 이야기를 가변적으로 만든다. 가변적인 이야기는 변화를 설명하고 수용할 수 있다.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세화본향당본풀이는, 이미 존재하였던 송당본향당본풀이에 없던 화소를 더 붙이기도 하고 기존 내용을 변화시키기도 하면서 생성된, 별도의 이야기이다. 앞에서도 적은 바와 같이 이 이야기 전체의 결말에 해당하는 풍경은 금상이 당신으로 좌정하고 정기적으로 돗제가 행하여지는 세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이 풍경은 아직 세화 마을에 남아 있으나 얼마나 더 지속 가능할런지는 알 수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송당 마을 사람들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생활방식을 바꾼 듯하며, 세화 마을 사람들에게 돼지를 기르고 금상에게 돗제를 올리고 돼지고기를 나눠먹게 된 것은 본풀이에 담아야했을 만큼 큰 변화였다. 그리고 본풀이가 변화를 담을 수 있었던 힘은 이 이야기의 부정확함과 부정합적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정확하고 정합적으로 요약 정리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야기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이야기를 추상화(抽象化)하는 작업일 것이다. 이런 작업은 세계의 이해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인 듯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두고 그런 작업을 해야하는 까닭은 부정확하고 부정합적인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본풀이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부정확하고 부정합적인 본풀이는 옛날 한 정치체에서 일어난 큰 변화를 담아냈다. 어떤 이야기가 부정확함과 부정합적인 면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면은 그러한 이야기가 변화를 담기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증거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내 앞에 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부정확하고 부정합적인 이야기 앞에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1. [네이버 지식백과] ‘백조애기와 금상(세화본향당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2. [네이버 지식백과] ‘송당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김헌선]

  3. 돗제는 돼지를 뜻하는 제주어 ‘돗’(豚)과 제사란 의미의 ‘제’(祭)가 합쳐진 말이다.

  4. [네이버 지식백과] ‘송당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김헌선]

  5. [네이버 지식백과] ‘세화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강정식]

  6. [네이버 지식백과] ‘세화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강정식]

  7. [네이버 지식백과] ‘백조애기와 금상(세화본향당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8. [네이버 지식백과] ‘송당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김헌선]

  9. 식성 갈등(prey conflict)이라는 용어를 〈세화리당신본풀이〉 연구에 사용한 것을 다음 논문에서 볼 수 있다; 김헌선·오정아, 〈〈세화리당신본풀이〉의 식성 갈등 구조 -이달춘 구연본을 중심으로-〉, 《한국무속학》 23, 한국무속학회, 2011, pp. 31-64.

  10. [네이버 지식백과] ‘백조애기와 금상(세화본향당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1. [네이버 지식백과] ‘송당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김헌선]

  12. [네이버 지식백과] ‘세화본향당본풀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강정식]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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