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한 예의

쉽게 썩지 않는 것은 음식이든 물건이든 모두 독 될 수 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절실한 이 시대에, 우리는 공생이 아니라 도구화 타자화해 온 자연과, 경제논리와 편리를 위해 대량생산한 물건들에게 거대한 순환의 역습을 맞고 있다.

아이와 세계의 구성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아이가 있었다. 제 방의 모든 인형과 인사하면서 아침을 시작하는 아이는 고장나버린 장난감,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 닳아서 제 기능을 못하는 학용품을 소중히 간직했다. 아이는 엄마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제 곁에서 물건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기념 촬영을 해달라고 조르고, 일일이 작별인사를 했다.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인생동안이지만 자신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그 물건들에는 아이만의 추억, 이미지, 정서가 담뿍 담겨 있을 터였다. 물건을 버릴(물건과 헤어질) 때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자신의 몸 조각 일부를 떼어내는 듯 아파하는 아이에게 있어 물건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아이 주변에서 아이와 뗄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탄생과 순환

이렇듯 사람들은 사람과 자연 뿐 아니라 다양한 사물들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사물들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부터 생활하는 공간, 의상, 소품, 전자기기 등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그것들은 실제로 몸속으로 들어가 신체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기억이나 감정과 함께 하면서 정신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일부가 된다는 것은 분해되어 부품으로 쓰여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고, 때론 지배하면서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영향력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은 같지만 스스로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 자연과는 달리 사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쓰이고 버려진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처럼 순수하게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로 탄생된 사물은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가기 쉽지만 합성물질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물건들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쓰임새가 완료된 후 소각되면서도 공기 중에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자신의 고유성을 발휘한다. 쉽게 썩지 않는 것은 음식이든 물건이든 모두 독 될 수 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도드라져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공생이 아니라 도구화 타자화해 온 자연과, 경제논리와 편리를 위해 대량생산한 물건들에게 거대한 순환의 역습을 맞고 있다.

주요 산업소재의 역습

일례로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주된 소재이자 고분자 합성 폴리머인 플라스틱을 들 수 있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에서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도 이후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 양은 약 83억 톤이며 이는 코끼리 10억 마리에 해당하는 무게이다. 연간 생산량 4억톤 가운데 약 80%는 버려지고 그 가운데 1200톤 가량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현재에는 약 5조개 이상의 플라스틱 조각이 해양을 떠도는 것으로 추산되며 태평양이나 대서양 한가운데 조류가 순환하는 곳에서는 한반도 면적의 약 15배 정도 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썩는 데 400~50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은 버려진 후 분해되지 않고 미세 플라스틱으로 잘개 쪼개져서 플랑크톤과 물고기들이 섭취하고, 이는 결국 먹이사슬을 타고 사람에게 돌아온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 흡수되면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와카토비 섬에서 발견된 향유 고래 사체
@WWF-Indonesia / Kartika Sumolang
와카토비 섬에서 발견된 향유 고래 사체
@WWF-Indonesia / Kartika Sumolang

미세 플라스틱은 자체로도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키지만, 다른 독성 물질과 결합해 독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며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바다에 떠도는 미세 플라스틱은 이를 먹이와 구분할 줄 모르는 동물들에게 더 위험하다. 작년에 인도네시아에 있는 와카토비섬 해변에서 발견된 향유고래의 사체에서는 플라스틱 컵 115개, 플라스틱 병 4개, 비닐봉지 25개, 실 뭉치, 슬리퍼 2개 등 총 6㎏에 가까운 쓰레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일회용품의 천국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일회용품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용량이 연간 1억 5천만 톤에 달하며 일회용 컵은 연간 260억 개, 하루 평균 7000만개 가량이 소비되고 있다.(2015년도 기준) 한국순환자원지원유통센터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1인당 420개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는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유럽연합(EU) 주요국의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을 보면 그리스는 250개, 스페인은 120개, 독일은 70개, 아일랜드는 20개이고, 핀란드는 겨우 4개밖에 되지 않는다. 분리수거가 잘 된다 해도 특히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은 재활용이 쉽지 않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에 의하면 테이크아웃 컵은 일반 페트병과 녹는 융점이 달라서 재활용되기 힘들고,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제휴 협약을 맺을 경우를 기준으로 재활용률이 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이면

일회용품은 가장 짧은 주기로 접하는 사물 중에 하나이다. 일회용품과는 관계적 의미를 형성하고 말고 할 틈이 없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인스턴트적 관계의 경향은 일회용품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물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된다.

그린피스 선박 벨루가 II호가 채취한 물 시료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 2016년 8월 18일
Greenpeace by Fred Dott
그린피스 선박 벨루가 II호가 채취한 물 시료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 2016년 8월 18일
Greenpeace by Fred Dott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취향과 유행에 따라 바꾸어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인테리어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그로 인해 건축폐기물들이 양산되고 있다. 또한, 의류 생산은 천연 섬유 재배와 관련된 토지, 물, 농약의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 물, 대기오염과 같은 환경 문제와도 관련이 높다. 합성섬유도 마찬가지로 흔히 ‘마이크로파이버(Microfiber)’로 알려진 마이크로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제조과정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용과 세탁 중에도 환경에 버려진다. 이때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은 일부 폐로도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혀졌으며, 세계자연보호연맹은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약 35%가 합성섬유 제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260톤의 의류 폐기물이 배출되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의 통계보다 약 두 배 가량 늘어난 수치이다.

사물에 대한 예의

각종 폐기물들의 다각적인 재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선적으로 폐기물의 절대량을 줄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 그러려면 쉽게 쓰거나 사지 않고, 한 번 구입한 것을 지니면서 오래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수반된다. 텀블러나 스텐 빨대, 장바구니 같이 휴대해야 할 것이 늘어나 불편할 수도 있고, 유행에 뒤떨어지는 패션이나 소품 등을 고집한다고 촌스럽거나 완고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사소하지만 받아들이기 꺼려지는 이러한 불편함은 어떻게 극복이 될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 가기 위한 의지의 발현이나, 아니면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인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내가 포함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고,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생각하며, 인연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이러한 예의는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애니미즘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 생명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믿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너무 오래 전에 잃어버려서 있었는지조차 까마득한,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관계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노마드

혼자 또는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소소하게 실천하는,
평범하게 살지만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색깔이 분명해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투명함을 지향하는,
분자적 노마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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