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관하여①] “소통이 잘 됐다고? 그건 네 생각이고.”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의하면, 2018년 국내 100대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첫 번째 덕목은 ‘소통과 협력’이었다. 이것은 비단 기업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소통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조하고 있고,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을 항상 듣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된 소통, 좋은 소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지는 않는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앞으로 총3회에 걸쳐 ①소통은 무엇인가 ②소통에 ‘나’는 없다 ③우리가 소통을 하는 이유 순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소통이 잘 되었다 생각하는 건 누구일까?

“네~ 에코소피아 라디오 달이 빛나는 밤에. 디제이 에코디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소통’이구요. 청취자 분들 사연 받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해드릴 사연은 문래동의 별별난씨 사연인데요. 안녕하세요, 에코디님. 저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생활 3년차 직장인이에요. 주제가 소통이라니, 저희 팀장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저희 팀장님은 소통을 저엉~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세요. 심지어 소통을 주제로 출판사에서 책도 몇 권 내셨죠. 근데 일할 때 정말 속이 터진답니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해서 회의하면 꼭 저희 다른 팀원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세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저희가 1분 얘기하면 정말 10분 동안 자기 얘기 하세요. 근데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예를 들면 일정이 너무 빠듯하다던가, 표지 컨셉이 좀 이상하다던가, 그렇게 얘기하면 또 저희 얘기한 거 열배는 자기 얘기 하세요. 중간에 뭐 이상해서 좀 바꾸자고 해도 원래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계속 얘기하시고.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강압적이거나 화내거나 하지는 않으시는데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끝도 없이 계속 얘기하시니까, 결국 저희는 지쳐서 팀장님 말대로 하게 되죠. 그래서 팀원들 맨날 야근하고, 너무 힘들고, 팀장님 말대로 책 나왔는데 책은 이상하고, 그런데 자기는 좋다고 하고 수고했다고 하면서 “역시 우리는 소통이 너무 잘 돼.” 그렇게 얘기하세요. 나쁜 분은 아닌데, 그래서 뭐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정말 미치겠어요. 이 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의하면, 2018년 100대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첫 번째 덕목은 ‘소통과 협력’이었다.1 비단 기업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소통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조하고 있고,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듣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된 소통, 좋은 소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 것 같다. 당신은 소통이 잘 되었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라디오 사연의 팀장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통이 이런 거였다니!

그래서 우리(필자들)가 따져봤다. 과연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머리 아픈 사고실험까지 해가며. 우리는 좋은 것,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덮여있던 소통을 파헤쳐 보기로 했고, 파내고 파내다보니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고실험1: 주관적 판단

㉠ 내가 A에게 일을 부탁했다. A는 웃는 얼굴로 알았다고 말하며 내가 부탁한 일을 했다.
㉡ 내가 A에게 일을 부탁했다. A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웃는 얼굴로 알았다고 말하며 내가 부탁한 일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고 느낄 때 소통이 잘 되었다고 판단할 것이다. 사고실험 1에서 A는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고 표현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 ㉡ 중 어떤 상황이 ‘소통이 잘 되었다’고 판단하겠는가?

사람들은 ㉡상황에서 소통이 잘 안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들어주기 싫은 부탁을 억지로 들어줬는데 소통이 잘 됐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A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는 걸 내가 알기 힘들다는 거다. A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나에게는 ㉠과 ㉡ 모두 소통이 매우 잘 된 상황이다. ㉡상황이 벌어진 후 A가 나에게 다가와 “사실 그때 너무 하기 싫었지만 그냥 했다”고 말해주고 나서야 나는 소통이 잘 된 게 아니었다고 깨달을 수 있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A가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까 부탁했던 일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봤을 때 A가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았다”고 얘기한다면, 나는 소통이 잘 됐는지 확인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껴 더욱 소통이 잘 되었다고 착각하며 의기양양해질 것이다. 이런 문제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었을 경우,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결국 소통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매우 주관적인 판단임을 보여준다. 이제 당신은 누군가 당신의 이야기에 동의하거나 당신의 부탁을 웃는 얼굴로 들어주었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었다고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고실험2: 결과 중심적 판단

한 가지 상황을 더 보자. 만약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데 알아들은 것처럼 말한다면? 이때 소통이 잘 됐는지의 여부는 일의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거다. 못 알아들었다면 결과가 안 좋게 나올 것이고, 알아들었다면 결과가 좋게 나올 테니. 그런데 과연 그럴까…?

㉢ C에게 화요일 모임 일정을 알려줘야 한다. 나는 B에게 일정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B는 제대로 인지했고,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수로 C에게 모임 일정을 목요일이라고 전달했고 결국 C는 화요일에 나타나지 않았다.
㉣ C에게 화요일 모임 일정을 알려줘야 한다. 나는 B에게 일정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B는 화요일을 목요일로 잘못 인지했고,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C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화요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C는 모임 일정을 제대로 전달받았고 화요일에 나타났다.

이런 일이 있겠냐고 웃을 수 있겠다. 물론 한국어인 화요일과 목요일은 헷갈리기 힘들다. 하지만 다이어리에 하필 ‘T’라고만 적혀있는 경우가 많으니 헷갈릴 만도 하지 않은가… (본론으로 넘어가서) 당신은 ㉢과 ㉣ 중 ㉣상황에서 소통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결과가 잘 나왔으니까. B가 제대로 인지했는지 잘못 인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B가 나의 말을 제대로 인지했다고 내가(그리고 B 본인도)판단했고 그로 인해 결과가 좋게 나왔을 때, 우리의 소통 능력에 문제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다.

즉 ㉣의 상황에서 B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더군다나 B가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어도 “사실 그때 너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지만 다행히 내가 실수해서 제대로 된 일정을 전달한 거였다”고 고백하지 않는 이상, 나는 B와 소통을 훌륭히 해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B가 잘못 인지한 일정을 ‘실수 없이’ 전달했는데 C의 실수로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어떨까? 즉 B가 C에게 목요일이라고 잘못(B 입장에서는 ‘제대로’)전달했지만 C가 잘못 알아듣고 화요일에 나타나버렸다면? 소통이 ‘원활한’ 집단의 해피엔딩.

결국 소통이 잘 됐는지는 B, C, 나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서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낱낱이 파헤쳐 보아야 확인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단순하게 상황을 설정했지만 더 복잡하고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대화 도중 서로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노력을 하더라도 충분히 잘못 인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간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나의 의견이 관철되었고 결과가 좋으면 소통이 잘 됐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소통에 대한 평가는 결과 중심적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통 이후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별로 없다는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사고실험3: 자기만족

앞의 두 상황은 내 의견이 관철됐을 경우다. 그렇다면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때 소통이 잘 됐다고 느끼는 경우는 없을까?

㉤ 내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해서 내 의견을 포기했다. 납득이 된다.
㉥ 내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는 안 되지만 지쳐서 내 의견을 포기했다. 납득은 안 된다.
㉦ 내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되는데 대화에서 배려가 느껴진다.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내가 납득이 된다면 우리는 소통이 잘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 상대방도,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해서 내 의견을 포기한 나도 서로 소통이 잘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상황처럼 내가 겉으로만 동의하는 척을 했을 때,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소통이 잘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납득이 가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충분히 배려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은 소통이 잘 됐다는 느낌으로 직결될 확률이 높다. 소통이 잘 되었다는 것은 내 주관적 느낌, 자기만족에 크게 좌우된다.

소통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위에 세 가지 사고실험은 소통이 매우 주관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사고실험이 너무 비정상적이고 단순화시킨 사례라는 비판을 할 수 있겠으나, 우리의 목적은 소통의 본질에 조금이라도 다가가 보자는 것이었으니 양해를 바란다.) 게다가 의견 관철 혹은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경우는 배려나 경청 같은 상호적인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핵심 기준이 된다. 정말로 소통이 잘 됐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자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소통이란 건 도대체 무엇일까. 소통이 잘 됐다, 혹은 안 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되지 않는가.

  1. 100대 기업의 인재상…5년 전 도전정신에서 이제는 ‘소통·협력'(머니투데이, 2018.8.27.). 이 조사는 5년마다 실시되는데 2008년에는 창의성, 2013년에는 도전정신이 1순위였다.

소통에 관하여②에서 계속…

호찬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자.

심순

타고난 과격한 성격을 고치고 착하게 살아보고자 심순(心淳)이라는 별명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도 수시로 버럭과 반성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