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④ 우리가 먹은 밥은 다 어디로 갈까?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먹보였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부터 저의 식탐은 유명했습니다. 어리고 키도 작은 제가 엄청난 식탐을 부리는 것을 보고 부모님도 놀라실 정도였죠, 사연인즉슨, 제가 한번은 밥상에서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곧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부모님이 놀라서 왜 우냐고 묻자 저는 “내 밥 누가 다 먹었어 흐엉엉”이라고 말했다지요. 그 정도로 저는 무엇이든 게눈 감추듯 먹어대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식탐이 줄지는 않았습니다. 닥치는 대로 먹기 때문에 아내는 식이조절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채소를 먹어라, 현미밥을 먹어라, 대충 삼키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라, 하면서 잔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반찬을 먹을 때 경쟁적으로 먹다보니 마지막 하나를 꼭 제가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식탁예절을 강조하는 저의 아내가 마지막 것은 남겨두는 것이 예의라고 말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요즘은 마지막 하나를 보란 듯이 남겨주고 아내에게 “이거 먹어 맛있어”라고 한마디를 하죠. 그러면 아내는 푸하하 웃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하고, 대견하다는 듯한 표정도 짓습니다.

사실 10년 전부터 낮은 단계의 채식, 현미밥 채식, 페스코 이런 걸 하고 있지만, 사실 체중은 전혀 줄지 않고 있습니다. 덕분에 탄수화물 중독이나 주전부리 중독, 식탐의 왕 등으로 아내에게 불리고 있는 중이지요. 사실 결혼 전 아내와 두 번째 데이트를 한 곳은 용산에 있는 감자탕 집이었습니다. 저는 채식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고기를 옆으로 치워놓고 조심스레 감자를 집어 먹었지요. 너무 엄격하지도 일방적이지도 또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 채식의 모습에 아내는 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거 중에도, 결혼 후에도 저의 채식을 지켜주기 위해서 노력했지요. 육식이 전혀 없는 밥상을 차리기란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째 되는 해에 고백을 했습니다. 사실 용산에서 만난 그날이 제가 채식 결심한지 겨우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고. 아내는 “뭐얏, 그럼 나 만나고부터네”하면서 웃었지요.

다이어트에 돌입한 이후의 일상

동거 이후에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일정이 몇 개월 후로 다가오고 있었던 시기에, 저는 체형에 맞는 연미복이 없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현미밥 채식과 고정식 자전거 운동을 새벽에 한 시간 동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도 꼭두새벽 5시부터였습니다. 저는 부지런히 자전거 패달을 밟았습니다. 아내가 화면에 띄워놓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말이지요. 숨이 차고 땀이 나고 힘이 들어도 계속 했습니다. 아내 얘기로는 다이어트는 평생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너무 과도한 방식으로 급격히 살을 빼려면 나중에 요요가 와서 다시 이전 몸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새벽에 고정식 자전거를 평생 돌리겠다는 각오로 임하라고 신신당부와 엄한 훈계를 내렸습니다.

“제가 도착한 곳은 군대였습니다.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장교가 소집명령이 내려와서 다시 원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하였지요. 저는 군복을 입는 데 갑자기 모자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병장에 모이는데 저만 혼비백산 모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저의 당시 새벽에 꾸었던 꿈의 내용입니다. 이렇듯 저는 다이어트 돌입 이후 군대 가는 꿈을 계속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12Kg를 빼서 연미복을 가볍게 입게 되는 행운을 거머쥡니다. 결혼 이후에도 아내는 아침 운동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현미밥 채식을 꾸준히 실천했습니다. 군대 꿈이요? 그 이후도 몇 번 꿨는데, 뭐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는 꿈 중 하납니다.

저는 물만 먹어도 살찌는 타입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먹은 밥이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살로 간다고 말할 태세입니다. 그러나 몸의 항상성 때문에 아주 많이 먹어도 살이 그리 찌지 않고, 너무 적게 먹어도 많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오히려 적게 먹는다면, 몸에서 비상사태로 인식해서 음식이 오면 족족 지방으로 축적하려 하기 때문에 더 살이 찌게 되는 역설에 직면하게 됩니다. 마치 자연생태계가 외부환경에 맞서 내부환경에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것처럼 몸도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먹는 밥은 풍미와 향미에 대한 향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와 살과 피와 뼈와 장기 등을 재생하고 자기생산하는 데 대부분 쓰입니다. 
사진출처 : Faris Mohammed
우리가 먹는 밥은 풍미와 향미에 대한 향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와 살과 피와 뼈와 장기 등을 재생하고 자기생산하는 데 대부분 쓰입니다.
사진출처 : Faris Mohammed

“밥을 먹으면 다 어디로 가나?” 이런 질문을 하면, 흔히 살로 간다, 똥으로 간다, 영혼의 무게로 간다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곤 합니다. 정말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갈까요? 살과 똥과 기타 여러 가지를 다 답해도 우리가 삼시세끼 먹는 양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사실 우리는 밥 자체를 소비와 향유의 것으로 삼는 경향이 많습니다. 맛깔나고 화려한 음식을 먹으면 오늘도 멋진 삶을 산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미디어의 이미지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밥은 풍미와 향미에 대한 향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와 살과 피와 뼈와 장기 등을 재생하고 자기생산하는 데 대부분 쓰입니다. 즉, 대부분의 세포가 모두 바뀝니다. 그래서 창문을 닫아놔도 집안에 먼지가 많은 이유도 우리 몸의 피부각질이 떨어져 나와 많은 양의 먼지를 만듭니다. 그만큼 우리의 몸 곳곳이 모두 교체되고 있다는 좋은 현상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뚱뚱한 사람의 비애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체구가 크다보니 칼로리를 많이 섭취해야 유지가 되는데, 어떨 때는 엄청난 양의 밥을 먹어도 격하게 활동하다보면 당이 떨어지는 현상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당뇨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제 몸의 세포들이 배고프다는 의사표현을 그렇게 하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럴 때마다 쩔쩔 매고 땀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지요. 처음에는 무척 힘들어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이를 악물고 강의를 하거나, 토론회에 참여하거나,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항상 가방 속에 사탕과 초콜릿을 비상용으로 갖고 다닙니다. 다이어트는 저의 필생의 숙제이지만, 늘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시험 치는 아이의 기분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체중계는 저의 자존감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지요. 체중계의 숫자가 어제보다 살짝 낮아졌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 저는 저 자신이 그보다 더 기특할 수가 없거든요.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개똥철학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입니다. 밥상 앞에서 늘 경건해지기도 활력이 넘치기도 수선스러워지기도 셀레기도 하는 저이기 때문에 개똥철학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무척 사랑합니다. 반찬이 뭐가 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먹는다는 것 자체는 저에게 큰 사치이며 자연스러운 욕망의 시간으로 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입에 음식물을 넣은 채로 얘기하지 마라, 저의 부모님께서 자주 했던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입을 오물거리며 먹으면서 얘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웃긴 이야기가 나와서 입 안의 밥알이 사방으로 팍 튈 때 사람들의 놀라는 반응을 나름 사랑합니다. 웬 비위생적인 이야기냐 싶으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함께 먹고 대화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얘기지요.

지구의 역사 중 먹는다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박테리아가 다른 박테리아를 삼킴으로써 다른 환경의 유전정보를 습득하고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행동이었다지요. 사실 작은 세균들은 먹는다는 행위를 특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입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생물 진화의 과정에서 입과 항문이 생긴 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였다고 합니다. 사실 다른 생명들 식물, 동물, 박테리아, 벌레, 광물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먹는다는 것은 왠지 원시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릴 적 자연시간에 야단을 맞았던 이유 중 하나가 떠오릅니다. 저는 자연실습 때 새로운 물질이 등장하면 계속 맛을 보았지요. 선생님은 실험을 중단시키고, 저를 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물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지요. 그 후로도 무심결에 맛을 보는 습관을 버리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개똥철학은 이렇습니다. 저는 제철과일을 무척 사랑합니다. 맛으로 계절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수박을 먹고, 겨울에는 귤을 먹고, 가을에는 사과를 먹는 것이 계절의 맛을 체험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사과가 무척 달면 올 여름 가뭄이 꽤 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수박의 크기가 크면 장마에 비가 많이 내렸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요즘 마트나 시장에는 계절을 벗어난 과일도 눈에 띱니다. 그러나 바람과 비와 태양의 살아있는 자연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과일이나 채소는 맛에서 차이가 무척 많이 납니다. 또한 함께 동그랗게 앉아 밥을 먹는 공동체 밥상도 무척 사랑합니다. 맛과 음식을 공유하면서 마음도 함께 통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위장에 활력이 더해지는 것만 같고, 풍미와 향미를 느끼게 되는 ‘관계’라는 조미료가 부가된 것만 같습니다. 공동체를 이루고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인공조미료도 따라 올 수 없는 맛을 선물합니다. 더불어 지구와 생명, 사물 등이 음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감수성을 밥상으로부터 제일 먼저 느끼게 됩니다. 밥상은 작은 우주이며, 지구의 생명들이며, 자연의 선물이며, 미생물의 향연입니다.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위장에 활력이 더해지는 것만 같고, 풍미와 향미를 느끼게 되는 ‘관계’라는 조미료가 부가된 것만 같다. 
사진출처 : Zach Reiner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위장에 활력이 더해지는 것만 같고, 풍미와 향미를 느끼게 되는 ‘관계’라는 조미료가 부가된 것만 같다.
사진출처 : Zach Reiner

사실 저의 개똥철학만 들으면 굉장히 우아하고 미학적이며 윤리적인 사람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듭 이야기하지만, 저는 식탐이 많은 사람입니다. 형제와 친구들과 젓가락을 부딪치며 경쟁하듯 나물이며 채소를 먹는 것도,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담그기 무섭게 다른 숟가락이 오는 것도, 지도를 가르듯 열심히 생선을 분할하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 순간이 워낙 강렬하고 온갖 기하학과 수학과 미학과 윤리가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밥이 우리 자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밥상이 모든 학문과 종교와 예술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든 것은 ‘바로 나’입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동체에서 활동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공동체는 새로운 문명과 정치세력을 꿈꾸는 실험적인 공동체였습니다. 처음 제가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할 때 본능적으로 그 집단의 중심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말 잘 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눈치를 보다 나중에 기회를 보아 비판하였지요. 그런데 이럴 수가! 그 사람이 중심이 아닌 것입니다. 이번에는 나이 든 사람이 중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눈치보고 띄워주다가 또 비판을 하면서 나섰죠. 그런데 그 사람도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제 서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공동체는 모두가 주변인이었던 것입니다.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으면서 사상투쟁을 하던 저의 습성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공동체의 결과 무늬를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공동체에서 아이디어 기획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공동체의 강렬도에 반응하듯 빛나는 아이디어와 기획 등이 쉴 새 없이 나왔고, 우리는 어린 아이들라도 된 것처럼, 심지어 색다른 문명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새로운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로드맵이 지금 바로 제출된 것처럼 으쓱했지요. 공동체 관계망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능력에 대해서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결국 채택된 아이디어와 기획은 수 백 가지 중 단 몇 가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던 길에 한 선배에게 저는 뾰로뚱해져서 “그래서 뭐가 만들어졌단 말입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물었지요. 그러자 선배는 찬찬히 저를 살피며, “그 아이디어와 기획을 냈던 우리 자신, 바로 너는 만들어졌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공동체의 활동이 다른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즉, 타자생산을 위한 노동이 아닌 자기생산을 위한 활동이라고 집약적으로 말할 수 있겠지요. 저는 활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그때서야 깨달았지요. 노동은 정해진 규칙대로 자동적이고 기능적으로 일을 하면 되는 것이지만, 활동은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물론 노동을 활동처럼 해달라는 열정노동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자신, 바로 나를 만들어내는 것에 활동의 방점을 찍을 때, 무의미하고 단조롭고 남들이 시키는 것만 하는 태도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 돌아가 바쁘게 지내다 다시 그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어떤 토론회였는데, 영화 《오즈의 마법사》(1983)의 주제가 〈Over The Rainbow〉에 대한 번안가를 구성원 중 한분이 불러주셨습니다. “저기 높은 곳 어딘가에/자장가에서 한 번 들었던 곳이 있어요/저기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는/파아란 하늘이 있고,/감히 상상하는 꿈들이/실현되는 곳이에요……” 제가 공동체를 처음으로 꿈꾸었던 곳, 저의 활동을 통해 제가 만들어졌던 곳에 대한 감사함과 잊어버렸던 예전 느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바로 나’를 만들었던 것은 공동체의 오래된 꿈이었다고 느끼자 저는 어느 누군가로부터 어떤 힘과 에너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밥은 하늘이다

밥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생명을 살려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원천입니다. 그래서 “밥은 하늘이다”라고도 말할 정도지요. 밥에 대한 욕심과 식탐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딱 바로 자신만을 만들어낼 정도만 먹을 수 있다는 점은 평등한 것이 바로 밥상이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러나 지금 밥상은 위기와 위험의 시절에 직면해 있습니다. 생명을 왜곡하는 유전자조작농산물, 생명을 도구화하는 과도한 육식, 지구 곳곳에서 이동한 푸드마일리지 문제, 현재를 탕진하는 과도한 회식문화, 석유를 펑펑 써야 하는 관행농업, 기아에 허덕이는 제 3세계 민중을 외면하는 영양분 과잉의 시대, 속도사회에서의 끼니때우기 문화, 다가오는 식량위기 등등 우리의 밥상은 바야흐로 전쟁에 돌입해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제도적인 개선과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개인책임이나 개인 차원의 윤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니까요.

이런 생명위기 시대에도 해법은 아주 가까이에서 있습니다. 제 장인어른은 유기농이자 직파법으로 쌀농사를 지으십니다. 그렇게 수확한 쌀로 현미를 만들어 매년 저희에게 보내주십니다. 저희가 잠시 바빴을 때, 현미쌀이 떨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가까운 농협에서 현미쌀을 사다 먹으면 되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맛도 문제려니와 비용이며 요리며 모든 것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장인어른의 직파법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전보다 더 감사한 마음이 밥을 먹을 때마다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현미쌀이 떨어질 때 즈음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장인어른 장모님을 만나러 시골에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음식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장인어른은 분명 저희 부부를 살리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 아주 가까이에서부터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가슴 절절히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인 셈입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해 먹을지?”라는 질문은 저에게는 아주 커다란 문제, 생명의 자기생산이 갖고 있는 영성적이고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문제로만 다가옵니다. 밥은 여전히 하늘이기 때문에.

이 글은 『저성장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 단행본에도 실렸습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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