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은 없다(下)

인구감소에 대해 유난을 떠는 건 ‘경제성장’ 이외의 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단견에서 나온 호들갑일 뿐이다. 논거조차 부실한 지방소멸 지수 말고, 행복 지수, 소통 지수, 배려 지수, 평등 지수 등을 기준 삼아 생태 기본소득, 생태 공동체마을, 생태농장, 공유주택, 주민 협정제 등 지역 내 내발적 행복 요소를 발굴하고 꽃 피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과 소득 불균형 해소, 불로소득 상한제, 토지 공유화 등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지방소멸은 없다(上)에서 이어집니다.

지역소멸 지수보다 행복 지수에 집중해야

요즘은 70세가 되어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의 다른 측면이다. 수명만 느는 게 아니라 활동 기간도 함께 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나이대가 달라지고 있다. 청년 실업문제를 같이 떠올려 보자. 경제구조가 바뀌고 산업 형태가 변해서 일자리 총량은 더욱 줄어든다.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구조 변화 속도는 더 빠르다. 일자리가 주니까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게 좋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십 수 년이 넘었다.

우리 사회의 기회 편중과 소득 불균형은 성장과 발전으로 해소되지 않는 문제다. 이제 경제성장의 미신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사람이건 경제건 성장만 할 수 없다. 성장만 한다면 그건 큰 병증이다. 성조숙증이나 비만 등을 병증으로 보듯이 줄기차게 성장을 외치는 인류는 불치병에 걸렸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 성장했으면 이제 ‘성숙’으로 가야 한다.

인구감소에 대해 유난을 떠는 건 ‘경제성장’ 이외의 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단견에서 나온 호들갑일 뿐이다. 고용과 취업률 중심의 생활 안정 대책에서 이제는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과 소득 불균형 해소, 불로소득 상한제, 토지 공유화 등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인구수에 매달리기보다는 삶의 질 중심의 더 성숙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 좋겠다. 사진출처 : Fuu J

이처럼 지방소멸 논리들은 따지고 보면 매우 부실하다. 위기를 증폭해서 만드는 정책은 문제가 크다. 인구수가 삶의 질에 요긴한 변수라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다. 연령별 인구분포 역시 과장된 측면과 함께 위기를 조장하는 분석들이 많다. 직업이 사라지고 노동의 종말이 운위되는 시대에 안 맞는 얘기다.

집값 잡고, 물가 안정시키고, 사교육 없애고, 경쟁 사회 완화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논거조차 부실한 지방소멸 지수 말고, 행복 지수, 소통 지수, 배려 지수, 평등 지수 등을 만들어 보자. 귀하게 낳아서 공들여 키우면서 세계 자살률 1위 사회를 그냥 두고는 출산 장려를 하기에는 낯뜨겁다.

중앙 교부금 예산 확보와 지방 공무원 숫자 유지, 지자체의 물질적 외형 성장 추구, 산업예비군의 일정한 유지 등의 의도를 의심받는 지방소멸 얘기는 그만했으면 한다. 요즘 농민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한데, 한 발 나아가 기후 폭동과 쓰레기 몸살 대응 정책으로 ‘생태 기본소득’을 만들어 자가용 버리고 자전거 타는 사람, 가전제품 안 쓰거나 적게 쓰는 사람, 재활용과 재사용 물건만 쓰는 사람이나 그런 지자체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면 어떨까. 인구수에 매달리기보다는 삶의 질 중심의 더 성숙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 좋겠다.

생본(生本) 지역, 생본 관계라는 신개념

내가 인구정책추진위원으로 있는 전북 장수군은 2023년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지방소멸 대응기금 투자계획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에스(S)등급을 받아 올 2024년에 지방소멸 대응기금 144억 원을 받게 되었다. 이번 평가에서 장수군은 강원 태백시, 충남 부여군, 경북 의성군 등과 함께 상위 5% 안에 들며, 호남권 중 유일하게 최고 등급을 받았다.

이 돈을 어디에 쓴다고 계획서를 올렸을까? 2024년도 장수군 지방소멸 대응기금 투자계획에 따르면 청년주택 18호에 36억 원을 쓴다. 청년 농업인 5명의 스마트팜 창업지원에 올해만 25억을 쓰고 스마트팜 지원센터 건립에 32억 5천만 원을 쓴다. 올해 농군학교 50명 교육에도 3억 원을 쓴다. 남아도는 시설과 땅과 집이 부지기수인데도 새로 짓고 새로 만든다. 기후 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이것이 2만여 장수군민의 행복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다.

다른 지자체의 지방소멸 대응책들도 대동소이하다. 전국 226개 지자체의 인구 대책이 엇비슷하다.

지난달에 내가 감동으로 본 현수막이 있다. “논밭은 자연이 만든 예술이고, 농사는 자연이 준 생명이다”라는 현수막이다. 파주 헤이리마을에 걸려 있었다. 생본이라는 말도 그곳에서 유래한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 환경이 살아있는 땅에서 광물질과 미생물이 균형을 이루어 생태계를 구성한 곳에서 부글거리는 욕망을 내려놓고 일과 공부와 놀이가 직업이 아닌 생업이 되는 그런 구역을 만든다면 좋겠다.

국내에도 몇몇 있다. 농장을 치유와 교육과 체험과 생본의 바탕으로 삼는 곳이다. 기본소득제를 들이고, 결과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과정이 중시되어 건강과 기쁨과 보람이 존재 자체에서 생성되는 그런 삶이다.

전국의 지역들이 뻔한 수의 한국 젊은이를 고만고만한 유인책으로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내가 가 본 몇 군데는 그런 가치를 추구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외국에도 많다. 수십만 명의 외국인이 찾아오는 곳들이다. 거주 인구라는 개념이 생활인구로 바뀌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인구 증가의 큰 몫을 차지하는 현상들이다.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의 지역 기금으로 청년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자전거나 대중교통으로만 움직이는 주민에게 생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거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하고, 연간 온실가스 감축을 국가 목표 기준치 이상으로 잡고 실현하려는 지역들이 왜 등장하지 않을까? 그런 지역으로 가려는 생본 지향 사람들이 상당수 있으리라 본다.

70년대의 생활방식을 체현한 마을을 조성해서 전자파 없고 인공시설이 제한된 힐링 공간을 만들어도 인기를 끌 것이다. 현대인들이 겪는 고통과 질병은 자아 상실이다. 자아 분열이다. 뭐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에 파묻혀 자신을 잃어버려서이다. 생본의 삶은 참 자아를 회복한다.

자아의 상실. 신성의 상실. 이는 ‘침묵’할 줄 몰라서 그렇다. 기도의 시간을 잃었다.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욕망 부스러기들이 자아를 파편화한다. 침묵은 기도의 시간이다. 지역에 영성 교육, 치유 교육, 행복 교육, 요가 교육 기관을 설립하면 어떨까. 뻔한 대학들의 수명만 늘리는 대학 연계 농업인 학교 등은 지역에 헛바람만 채우는 풍선이라고 본다. 자연학교, 봉사학교, 죽음학교, 내려놓음 학교, 나눔학교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수가 가는 큰 길이 아니라 진리의 좁은 길을 갈 때다. 무리 지어 질주하다가 아차 내가 중요한 걸 놓쳤구나 싶을 때 돌아서야 한다. 놓친 걸 가지러 집에 돌아왔는데 정작 와서 보니 왜 돌아왔지? 뭘 안 가지고 갔더라? 하며 또 망각 상태에 빠지더라도 돌아와야 한다. 진리의 길. 인류 행복의 길. 나도 살고 지역도 살고 나라와 인류가 사는 방향을 고민할 때다. 혁신이 일어나야 할 곳은 거점도시나 지역 권역이 아니라 자기 내면이다.

최근에 방영된 이비에스(EBS)의 다큐멘터리 《인구 대기획 10부작》에서도 역력히 보인다. 초등학생 1달 교육비가 74만 원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아이 하나를 교육하는 데 1억 5천만 원에서 6억 원까지 투여된다고도 주장한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놔두고 출산 지원, 교육지원, 일자리 지원을 한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생태 공동체마을 조성공유주택과 공유/공생의 삶

인구가 과잉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인공지능과 로봇, 4차 산업 발달로 일자리도 줄어드니까 가장 바람직한 인구감소 정책은 자연 감소가 좋다. 전쟁이나 질병은 너무 큰 고통을 준다. 출산 저하로 인구가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행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프라와 복지 중심으로만 접근하는 관행은 문제가 많다. 엄청난 자연훼손이 따르고 기후 위기가 촉진된다. 공동체 중심 생활, 공유관계, 공생관계의 새로운 삶의 모델을 독거노인 등 1인 가구주에게 제공해야 한다. 나라 차원에서도 주거 비용 총량도 줄고 안전도 동시에 확보될 것이다.

농촌을 자꾸 도시와 기교하면서 서비스가 부족하고 인프라가 빈약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은 모든 사고의 출발점인 듯하다. 고질병이다. 농촌은 농촌다워야 한다. 도시화는 농촌과 자연 황폐화의 길이다. 도시(都市) 흉내가 아니라 창의적인 농시(農市)를 만들어야 한다.

생태공동체 마을을 꿈꾸는 자연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인구가 많다. 국내 여러 사례도 있다. 산청-제천-금산 간디학교. 마포 성미산, 은혜(오늘)공동체, 밝은누리 공동체. 야마기시 공동체, 없이 있는 마을. 선애빌의 사례 등. 내가 사단법인 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를 8년 하면서는 청년 농부학교에 찾아온 박사급 젊은이도 많이 봤다. 원주, 안성, 산청, 안양 등지에 사회적의료 협동조합을 만들어 건강⸱보건 문제를 함께 지키는 곳도 있고, 통합돌봄 치유농장도 늘고 있다.

허울 좋은 인구 유입 정책보다, 내발적 행복 요소를 발굴하고 꽃피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출처 : Hillary Ungson

농촌에 멀쩡한 시설들이 거미줄을 치고 있는데 청년 스마트팜 시설 조성과 청년 교육훈련과 주거 등에 백 몇 십 억 원을 쓰는 것은 무슨 계산법인지 알 수가 없다.

자립 의지로 똘똘 뭉친 자연주의자들에게 공유지를 제공해서 비용도 크게 들이지 않고 세계적인 마을을 이룬 곳들이 많다. 내가 가 본 곳들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란다. 독일의 제그공동체/하멜른 태양마을/영국 토트네스/인도 티밀주 오로빌/뉴질랜드 오클랜드 ‘어스송’/브라질 구리찌바 등. 일본의 야마토마치 사례는 노인 정책이 청년을 불러 모으게 된 재미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노인 요양 서비스가 급증하자 청년복지인력이 몰린 것이다.

시대 흐름을 읽는 혜안을 가지고 힐링, 생태 감수성, 성 인지 감수성, 공유경제, 어싱, 야생 트레이닝, 제로 웨이스트, 농부장터, 마을자치위원회 등도 사람들을 외부로의 유출을 막고 유입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인구 유입의 유혹은 멀리하는 게 좋다. 모든 지자체가 그러하니 경쟁만 부추긴다. 내발적 행복 요소를 발굴하고 꽃피우는 것이 중요하겠다. 읍면 단위 민관협치 고도화, 주민 협정제 활성화, 마을보호지구 지정, 농촌특화지구의 설정, 이장 완전 선출제 조례 제정, 면장 선출제 실시, 태양광과 축사 등 혐오시설을 지혜롭게 해결 등의 인구 정책을 만든다면 언론의 주목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창의적인 고유의 정책을 집단 논의를 통해 만들어 가는 인구정책이 수립되길 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밥값을 할 수 있는 나이가 5살쯤이었다. 그런 사회가 지금도 있다. 27살, 30살이 되도록 공부하고 유학하고 학위 따도 밥벌이 못 하는 사회. 이런 사회는 빨리 없애야 한다. 살인적인 소득 편차를 줄여야 한다. 최저임금이 있듯이 소득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소득 상한제는 미국에서 1920년 초에 도입하여 크게 성공한 정책이다.

전쟁이나 괴질, 자연재해가 아닌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소비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자연 순응적인 삶은 지역도 살리고 지구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거점 단위의 공공주택(사회주택), 시니어 코하우징 보급, 읍면 단위의 완전한 주민자치, 민관 협치의 고도화, 주민 협정제 활성화, 마을보호지구 지정 등 생태 치유 모델 마을의 조성이 시도되는 지역이 등장하면 가 살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끝)

전희식

농부. 마음치유농장 대표. 건강한 노동, 깊은 마음 챙김, 이웃과 사회에 봉사, 모든 일과 공부를 놀이 하듯.

댓글 4

  1. 안녕핟세요. 경북 영주에 살고 있는 지방사람입니다. 탈성장과 공유경제에 관심이 많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 이 사이트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용어에 대해서는 굉장히 생소한데, 그 개념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서, 많이 찾아보고 있는데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실천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1.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조합에서 탈성장 및 사회적 경제에 관한 토론회나 강좌 등의 프로그램을 몇 차례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관련된 행사를 진행할 경우 등록해주신 메일로 공지 보내드리겠습니다.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2. 여러가지 흥미로운 기사들이 있네요 공감되는 다양한 토픽들이 언제든 접근가능한 넓은 이해를 얻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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