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한 자가 잔치를 풍성하게 한 이야기 – 『반란의 도시』 를 읽고

파리와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 순위의 상위권을 언제나 차지한다. 그런데 그 도시들의 생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약탈적 도시개발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흔적을 드러내면서 그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도시에 초대받지 못하고 단지 ‘끼어들었던’ 자들의 일부가 그 도시와 자본주의에 타격을 가하면서 더 나은 도시로 가는 길을 잠깐씩 열었던 이야기도 전하여 준다.

‘미래 혁명의 주체는 도시의 프레카리아트다.’ 2012년에 출간된 『반란의 도시』에서 데이비드 하비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요약대로만 책을 읽는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 같다. 책 속에서는 도시, 자본주의, 혁명 등등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와 관점들이 담겨 있다.

한편 책을 읽을 때 제6장 〈2011년 런던, 야만적 자본주의가 도시를 강타하다〉와 제7장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월스트리트당이 복수의 여신과 만나다〉을 먼저 읽는 것이 이해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6장과 제7장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붙잡고 있어야 할 화두들을 미리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량 약탈이라는 야만

데이비드 하비 저, 『반란의 도시-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에이도스, 2014) / David Harvey, Rebel Cities ; From the Right to the City to the Urban Revolution, Verso, 2012
데이비드 하비 저, 『반란의 도시-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에이도스, 2014) / David Harvey, Rebel Cities ; From the Right to the City to the Urban Revolution, Verso, 2012

이 책의 제6장 〈2011년 런던, 야만적 자본주의가 도시를 강타하다〉는 2011년 런던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를 소재로 하였다. 데이비드 하비는 시위대를 “허무주의에 빠진 야만적 십대”[261쪽]로 규정한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기사를 인용한다. “모든 계층의 분별없는 젊은이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거리를 누비며 경찰을 향해 벽돌과 짱돌, 병을 집어던진다. 여기서는 약탈, 저기서는 방화가 일어난다. 한 전술적 표적에서 다른 표적으로 수시로 방향을 바꾼다. 경찰 당국은 아무 성과 없이 허둥지둥 뒤를 쫓아다니기에 바쁘다.”[261쪽], 이 기사에서 하비는 ‘야만’이라는 낱말에 주목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대처주의는 자본주의의 야만적 본능을 해방시켰다.(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도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로 포장했다.”[263쪽] 대처주의가 무엇인지를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인 1980년대로부터 예를 찾아 설명하는 대신, 하비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예들을 찾아 설명한다. “통신 회사와 신용 카드 회사는 기가 막혀 신비롭기까지 한 요금 고지서를 내보낸다”[263쪽]는 것이 그 예 가운데 하나다. 일상의 필수요소인 통신과 카드를 통하여 그 회사들은 저항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주기적으로 돈을 쏙쏙 뽑아가고 있다. 이 예가 보여주는 현상을 하비는 “대량 약탈의 정치경제, 백주의 강도짓을 방불케 하는 약탈적 수법의 정치경제”[263쪽]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야만이라고 본다. 또한, 하비가 보기에는, 대량 약탈을 방치하는 정치권력에게 미디어가 “고상한 도덕과 번지르르한 이성”[264쪽]이라는 옷을 때때로 입혀주고 있다. 앞서 예로 들었던 통신 요금과 신용 카드 수수료 등에 관한 미디어의 애매모호한 보도 내용을 생각해 보면 미디어가 대량 약탈을 미화하는 양상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비는 앞서 인용한 『데일리 메일』의 기사 속에서 야만이라는 낱말을 보고 1871년 파리 코뮌을 떠올렸다고 했다. 파리 코뮌이 있었던 1871년과 68혁명이 있었던 1968년 사이에 97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만 있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 1968년과 2011년 사이에도 43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71년과 2011년 사이에 1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대량 약탈 기도가 있었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함께 지어지기 시작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대량 약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데이드 하비가 이 책에서 대량 약탈의 전형으로 중시하였던 예 중의 하나는 나폴레옹 3세의 지시에 의하여 오스만이 시행하였던 파리 재개발이었다. 그것은 도심에서 봉기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인 동시에 프랑스의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등장한 신산업을 오래된 도시 파리가 수용할 수 있도록 파리를 개편 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이기도 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파리 시는 지금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것은 토지에서 선주민을 몰아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지대의 상승을 고착화시키는 데로 전개되는 대량 약탈의 전형적이 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대량 약탈들은 그 자체로써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큰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모여 들면 그 건물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 발생하고 그 인력의 피라미드에서 하층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교외의 전원주택’이 아닌 도심의 슬럼가에서 상시 대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기념비적인 건물들로 채워진 빛나는 도시는 도심 빈민과 그들이 거주하는 구역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라고 다를까? 하비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듯하다. 이 예측이 맞다면 재개발을 통한 대량 약탈은 ‘항상 성공하지만 항상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또 다른 대량 약탈의 빌미가 되어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듯하지만, 약탈의 희생자들을 도심에 모아놓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많은 정치적 변화가 도심에서 일어났지만, 이제는 더더욱, 도심과 도심 빈민이 변화의 공간과 주체로 자리매김될 수밖에 없다고, 하비는 생각한 듯하다.

자유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경쟁강제 법칙

이 책의 제7장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월스트리트당이 복수의 여신과 만나다〉에서 하비는 2011년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 movement)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는 이 운동이 화폐권력의 절대적 지배력[267쪽]을 노출시켰다고 보았다. 앞서 대량 약탈의 예로 들었던 도시 재개발은, 남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토건이다. 투자은행으로 상징되는 화폐권력과 토건은 마치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며, 미디어는 둘의 관계를 아름답게 채색하여 준다. 하비는 토건과 화폐권력이 협업하여 자본주의를 굴려왔다고 보았다. 그런 식으로 보면 ‘아크로 리버 파크’는 꿈의 거주지가 아니라 돌 덩어리인 동시에 돈 덩어리임이 드러난다. 그것은 화폐권력의 민낯을 드러내 준다. 이러한 드러남을 마주하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들에게 하비는 사적 소유권, 자유시장, 자유무역 심지어 자유와 해방[268쪽] 등 근대사회에서 신성화되다시피 하였던 개념과 가치들의 정체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이 개념과 가치들은 ‘전쟁보다는 자유로운 교역이 낫다’는 문장으로 집약하여 볼 수 있다. 부족과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약탈이 전쟁의 정체라면 교역에 의하여 부족과 결핍을 해소하는 것은 받아들일 만한 대안으로 보인다. 게다가 교역의 과정에 관세 등의 강제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달리 말해서 자유로운 교역이 이루어진다면, 부족과 결핍의 해소는 더욱 더 원활하여질 듯하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그것은 지나친 이상이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바이크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잉여가 플랫폼 기업의 이윤으로 축적된다. 사진 출처: Brett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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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하면서 바이크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잉여가 플랫폼 기업의 이윤으로 축적된다.
사진 출처: Brett Jordan

이 책의 제1장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하비는 도시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시는 본래 잉여생산물의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도시화는 언제나 일종의 계급현상이었다. 잉여가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추출되건 그것을 사용할 권한은 소수(예컨대 종교적 과두지배자나 건설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전사)의 손아귀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28쪽] 위험을 감수하면서 바이크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잉여가 플랫폼 기업의 이윤으로 축적되는 것이 하비의 설명에 걸맞는 예일 것이다. 이때 미디어가 바이크를 모는 노동자들에게 자영업자라는 말의 훈장을 달아주면 21세기 도시의 풍경은 자본주의의 작동을 가린 채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언론과 플랫폼 기업은 왜 이러한 기만술을 계속 사용하는 것일까? 앞서의 인용문에 이어서 하비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르크스가 말하듯 잉여가치(이윤)의 영속적 추구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자본가는 잉여생산물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가 도시 공간의 형성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반대의 관계도 성립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려면 도시 공간의 형성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 사이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28~29쪽] 앞서 바이크를 모는 노동자들과 플랫폼 기업을 끌어다가 도시의 속성에 대한 하비의 설명을 현재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는데, 이번에는 플랫폼 기업이 축적하는 고객 정보와 연결시켜 하비의 도시 이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장차 드론을 사용하면 상황이 달라질런지도 모르지만, 배달 영업은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서는 이윤을 남기기 어렵다. 인구 밀집지역 즉 도시에서 고객 정보를 축적하면, 플랫폼 기업에게는 그 정보가 이윤 증대의 발판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정 규모의 고객을 확보한 후 그 고객과의 굳건한 유대관계의 한계 내에서 ‘적정 규모’의 기업을 ‘내실 있게’ 유지하는 방식의 사업은 존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하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본가가 무엇을 하는지 상세하게 살펴보자. 그는 일정량의 화폐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 후 그 이상의 화폐를 챙겨(이윤을 얻어) 하루를 마친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전날 얻은 잉여 화폐를 갖고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자본가는 재투자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재투자하지 않으면 다른 자본가가 재투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자본가이기 위해서는 손에 쥔 잉여를 재투자해 더욱 많은 잉여를 생산해야 한다.”[29쪽] 하비는 자본 자체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든 자본가가 되어 계속 자본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에게 멈출 수 있는 적정 수준이란 없다는 것이다. 계속 몸집을 불리지 않으면 퇴보 정도가 아니라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프랫폼 기업이 고객 정보를 늘리고 독점하려 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비는 이러한 사정을 경쟁강제 법칙을 도구로 설명하려 한 것 같다. 이 법칙이 토대라면, 사적 소유권, 자유시장, 자유무역 심지어 자유와 해방 등 근대사회에서 신성화되다시피 하였던 개념들은 이 토대 위에서 규정되는 상부구조의 일부일 뿐이다. 자잘한 나라들 사이의 분쟁에 지쳐 자유무역을 매개로 유럽 나라들끼리라도 ‘세계정부’를 이루어 항구적 평화를 보장받고자 하였던 18세기 유럽 사람들의 꿈은 간절하며 인정할만한 것이었으나, 하비의 논리에 따른다면, 무역의 자유는 이윤 추구와 자본 축적의 자유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거기에서 한 발 빼는 것은 곧 소멸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사람을 그가 소유한 것을 가지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도 정착되고 있었다. 이는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는 인간관을 훨씬 넘어선 것이며, 사람 속에 깃든 신성(divinity) 같이 입증하기 어려운 것에 근거하여 사람의 존엄을 논하던 것에 비하면 크게 한 걸음 나간 면도 있지만, 사람을 그냥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은 아니며,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객 즉 소비자는 그가 무엇을 가졌느냐 특히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등급이 정하여질 수 있으며, 노동자 즉 생산자 또한 그가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 특히 자본가에게 돈을 얼마나 벌어다 줄 수 있느냐에 의하여 평가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사적 소유권, 자유시장, 자유무역 심지어 자유와 해방 등 근대사회에서 신성화되다시피 하였던 개념과 가치들은, 그저 지나친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고, 지식인과 미디어 등 자본의 마름들이 벌이는 말장난의 도구일 때도 있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

이 책에서 하비가 도시를 논할 때,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조건은, 지금의 도시들이 대량 약탈이 행하여지는 야만적인 곳이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쟁강제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는 경쟁강제 법칙에 가장 잘 적응한 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 누구도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 제목부터 ‘반란의 도시’이고 부제목은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에서 점령운동[the Urban Revolution]까지’라고 붙여져 있다. 하비는 철저히 자본화된 도시를 바꿀 파열구는 진작에 존재하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먼저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1967년에 출판된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 『도시에 대한 권리(Le Droit à la Ville)』에 기인한 것이다. 하비의 문제의식처럼 르페브르는 자신의 저서에서 파리를 문제 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67년에 이르기까지 파리가 사람 살만한 곳이 되지 못하였다고 단정한다. 이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르페브르는 “생성과 만남(두려움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만남)의 여지는 물론 미지의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할 여지가 열린 갈등적이고 변증법적인 도시생활” [9쪽]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에는, 오늘까지 ‘변증법적’이지 못한 파리 생활이 내일부터 무슨 수로 변증법적 도시생활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따를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르페브르나 하비가 파리의 역사를 잘못 이해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세간에는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에 파리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즉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면서 유럽의 문화 수도 역할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파리는 벨 에포크에도 모순의 도시였으며, 1967년에도 파리는 내적 모순을 가진 도시였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벨 에포크의 파리를 아릅답게 한 것은 파리로 집중되던 자본과 그 자본이 올려 세운 기념비적 건물들이 에펠탑을 둘러싸고 도열한 하드웨어이기도 하지만, 룸펜인 동시에 예술가였던 사람들의 거칠고 다양한 호흡이 파리를 채워주지 않았더라면 파리는 그저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물론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자본이 즉각적으로 상품화하는 일이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으며, 그러한 악순환의 끝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선순환의 계기를 잡지 못한 파리는, 1967년의 시점에는, 앙리 르페브르 같은 사람의 눈에 그저 그런 토건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본은 언제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강해 보이지만, 한 번도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는 못하는 것 아닐까? 오스만이 나폴레옹 3세의 구상을 실천하여 파리에서 도심 빈민의 설 자리를 없애버리려 하였으나,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파리는 금세 빈민을 필요로 하는 곳이 되어버렸고, 그때부터 벌써 자본과 빈민은 공유재를 사이에 두고 그것을 허울뿐인 공공공간으로 고착시켜 둘 것인가 아니면 공유재(commons)로 만들 것인가[138쪽] 그리고 그 공유재를 누가 더 활발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두고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싸움에서 유발된 긴장이 겉보기에 빈틈없는 자본주의의 요새 같은 도시에 돌입(L’Irruption) 가능한 틈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았다고, 르페브르나 하비는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확신에 더하여 르페브르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개념을 제안한다. 이것은 “사회적 역공간(liminal social space)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혁명의 궤도를 정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20쪽]고 하비는 설명한다. 사회적 역공간은 “사적 공간의 확대와 공공 공간의 축소과정에서 사적 공간과 공공 공간 사이의 경계가 소멸된 공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문화와 경제, 시장과 장소 등을 아우르고 결합한다” [20쪽]고 하비는 부연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 공간을 거점으로 한 자본주의와의 싸움은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앙리 르페브르는 자본주의가 견고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어떤 대안적 구상”[21쪽]도 순간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에 더하여 하비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목표로 가는 길에 있는 중간역과 같다. 설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인 것처럼 보여도 도시권에 대한 요구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22쪽] 도시권에 대한 요구뿐만 아니라 그 어떤 헤테로피아도 중간역일 뿐이라며 수세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하비는 프레카리아트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신하여 혁명을 주도할 ‘집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Bjorn Boo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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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는 프레카리아트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신하여 혁명을 주도할 ‘집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Bjorn Boonen

이 책의 본론인 제 1장 ~ 제 5장에 “자본주의의 영속적 축적 시스템 자체는 물론 이와 밀접히 결부된 착취계급과 국가권력의 구조를 전복해 다른 것으로 대체”[22쪽]할 수 있는 뚜렷한 방책이 보이지는 않는다. 서문에 보이는 헤테로피아 구축이 가장 파괴적인 것처럼 보인다. 조건은 어떠한가? 이제 공장 노동자 집단은 점차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그에 비하여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즉 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에 있는 노동자 ‘집단’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사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가 했던 방식으로 집단을 이루기도 어렵다. 하비는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신하여 혁명을 주도할 ‘집단’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흔쾌히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자본주의 민낯을 보여준다. 삐까번쩍하는 금융시스템의 겉모습을 뽐내고 있을지라도 자본주의는 결국 토건의 순환 없이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 책의 본론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량 악탈, 경쟁강제 법칙 등등 모두 토건의 순환에 수반한다. 토건에 비하면 그것들은 자본주의에 부차적이며 종속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렇다 보니, 자본주의가 가장 극단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나라로 꼽히는 대한민국에서 온갖 것이 토건과 연계되어있는 상황이, 이 책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인 동시에 구조적으로 이해된다.

또 한편, 이 책을 읽다보면, 자본가들이 강력하긴 하지만 ‘금융 시스템’ 같은 멋들어진 옷을 입은 집장사들의 마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본주의의 바탕에 깔린 논리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128쪽] 같이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허점을 가진 논리라는 느낌도 가지게 된다.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가지다 보니 헤테로피아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경쟁강제 법칙에서 벗어나는 문화를 빠른 속도로 생산해 내서 자본주의가 그것을 상품화하는 속도를 추월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자 그대로 계급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트도 아니어서 결국은 개개인 파편적 존재일 뿐인 프레카리아트들이 헤테로피아를 구축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파편적이며 원자적인 프레카리아트들이 더 창조적으로 생활하여,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속도를 추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집단도 이루지 못하는 프레카리아트가, 항구적이지도 않은 헤테로피아에서 빚어내는 미미한 창조가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미약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초대받지 못한 자가 잔치를 풍성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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