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시대의 순환공동체, 한밭레츠를 말하다 – 한밭레츠 오민우 대표 인터뷰

기후위기와 함께 탈성장시대가 본격 개막되었다. 성장이 아닌 성숙의 경제는 무엇일까? 지역화폐를 통해 정동, 돌봄, 살림을 재생시키고 순환시키고 되살림으로써 관계의 성숙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고민하게 된다. 대전지역 공동체 한밭레츠는 두루라는 화폐에, 돈의 가격이 아닌 서로의 관계가 갖고 있는 활력과 생명에너지를 담아 벌써 20년 째 활발히 유통하고 있다. 한밭레츠 오민우 대표를 만나 탈성장 시대의 생태적 지혜로서 지역통화전략을 들어보았다.

신승철 : 안녕하세요. 먼저 한밭레츠가 어떤 단체인지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오민우 : 한밭레츠는 대전에 있는 지역통화운동단체입니다. 한밭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대전의 옛지명이고, LETS는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의 약어입니다. 지역통화교환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대단히 어려운 경제용어 같이 느껴질 테지만, 간단히 말해 회원들이 지역화폐를 매개로 해서 서로간에 노동이나 물품을 교환할 수 있는 공동체경제입니다. 내가 쓰지 않고 가지고 있던 물품이나 노동력이 있다면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고, 나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물품인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그러니까 일종의 다자간 품앗이제도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아이가 커서 필요 없게 된 세발자전거나 위인전집을 내놓고, 다른 회원이 만든 수제청이나 밑반찬을 받는다거나, 혹은 컴퓨터에 능통한 회원으로부터 고장난 PC수리를 받는 식으로 말이지요. 중고나라나 되살림가게 같은 시스템들과 분명히 다른 점은, 일정 비율은 반드시 지역화폐로 거래해야 하고 지역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한다는 점이지요.

한밭레츠 오민우 대표(우)와 생태적지혜연구소 신승철 소장(좌).
한밭레츠 오민우 대표(우)와 생태적지혜연구소 신승철 소장(좌).
  • 지역화폐를 매개로 서로간에 노동이나 물품을 교환할 수 있는 공동체경제
  • 공동체적인 연대의식과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시스템

신승철 : 레츠(LETS)가 전세계적인 운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각 나라별로 달러나 유로, 엔, 원 등 현실통화가 있는데, 왜 지역통화가 필요한 것일까요?

오민우 : 1983년도에 캐나다에 대공황이 닥치는데,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일과 재화는 있지만 돈이 없어 지역경제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때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턴이 “LETS”라는 가상화폐이자 지역교환 기반의 화폐를 통해서 노동력, 일자리, 재화를 순환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상호간의 신뢰를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받은 사람이 가상화폐를 발행해 주었고 그 가상화폐를 믿는 또 다른 사람이 재화나 서비스를 내주었습니다. 현실통화가 기능정지된 상황에서 지역화폐가 작동할 수 있음이 그때 드러난 것이지요. 현실 국가화폐는, 돈을 사용할수록 중앙은행시스템에 예속되고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점점 가난해집니다. 대기업의 이윤이 중앙시스템에 집중되고 중앙과 멀어지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기 때문입니다. 현실통화의 사용은 공황과 인플레이션이라는 폭탄의 뇌관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에 반해 지역통화는 중앙통화와 달리 이윤이 한 곳으로 집중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자원, 부, 일자리가 돌게 만듭니다. 고도로 집약된 에너지가 폭발하듯 현실 통화의 중앙집중은 언제간 주기적으로 폭발하게 되지만 지역통화의 사용은 에너지의 집중이라는 현상을 막아 균등한 에너지의 순환을 촉진시킵니다. 그것은 통용되는 지역의 협소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발행하는 지역화폐의 성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루’를 현실화폐로 바꾸지 못한다는, 즉 태환 불가능하다는 점 말이지요. 실제로 어느 한 회원이 과도하게 지역화폐를 많이 모으게 되더라도 그 화폐를 다 쓰거나 새로운 이윤창출을 위한 자본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 자연스럽게 나눔이나 선물의 형태로 다시 순환이 됩니다.

신승철 : 그야말로 순환의 경제인 셈이군요. 대전 지역에 한밭레츠가 정착된 지 20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역화폐로서는 지속된 시간이 긴데, 그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군요.

한밭레츠 오민우 대표.

오민우 : 한밭레츠가 시작된 것은 1999년, 그러니까 세기말이었네요. 시민운동가이신 박용남 선생께서 외국 사례를 대전에 한번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해서 대전지역사회와 대전시민사회 그리고 운동단체에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졸업과 함께 현실통화를 벌어보고자 천안의 공장에 취직해 있는 상황이었는데, 대학시절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에게 갑자기 불려나가 레츠 창립총회에 소환되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맥만으로 소집된 처지였기 때문에 솔직히 “이게 될까?” 싶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웃음) 그 당시 꿈만 가지고 모인 50여 명의 사람들이 그 꿈을 가지고 지역통화를 발행하여 교환을 하였고 그 작은 교환들이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말고도 꿈을 꾸는 사람들이 더 생겼고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물론 중앙통화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다른 흐름을 만들었고 그 흐름 속에서 즐거웠습니다. 사람들도 우리의 모습을 보아주기 시작했습니다. 한밭레츠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망하지 않았고, 20년 동안 지역통화를 지켜왔습니다.

신승철 : 최근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기능정지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투자 대비 이득 즉 이자를 획득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지요. 자본주의는 이자 대신 지대이익을 취하는 플랫폼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한밭레츠에는 영향이 없었나요?

오민우 : 지역화폐는 아직 우리 삶의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앙통화 시스템과 경쟁하면서도, 약하고 작은 빈틈에서 서식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지역통화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역통화는 우리로 하여금 중앙의 통화 시스템 속에서 갇혀있으면서도 거기에 예속되지 않도록 해주는 일종의 숨구멍과도 같습니다.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작은 숨구멍을 통해 생명이 살아가지 않습니까? 최근 회자되고 있는 플랫폼사업처럼 그 안에서 왔다갔다 놀고 웃으며 즐기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사업자만 돈을 버는 방식이 아니라, 한밭레츠는 커먼즈(commons)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먼즈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부와 호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밭레츠가 사용하는 통화의 이름은 “두루“입니다. 현실 통화 “원”과 유사한 단위로 통용되는 두루는 회원들간의 구매나 판매 때 현금과 함께 사용됩니다. 처음에는 구매와 판매 때 세금처럼 떼는 방식을 생각했지만 거래량도 적고 너무 징벌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수수료 개념이 커먼즈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회비와 후원금이 모여 운영되고 있고, 이것이 저희만의 커먼즈, 즉 공통적인 것을 방어하기 위한 실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윤이 한곳으로 집중되지 않고 지역에서 순환되는 나눔과 선물의 에너지
  • 믿음과 신뢰의 관계망에서 작동하는 색다른 돈의 작동 양상

신승철 : 비트코인과 같은 전자화폐가 유행일 때 어땠지요? 한밭레츠도 가상화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블록체인이라는, 개인이 발권처가 되도록 암호화하는 기술이 세간에 회자되었는데, 이에 대해 한밭레츠에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오민우 : 비트코인이 파산하고 실패한 과정을 면밀히 응시했습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가상화폐를 만들겠다고 하자 각국 정부에서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국가화폐가 위기에 빠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이스북은 이미 국가보다 큰 인터넷 플랫폼이니까요. 물론 가상화폐와 한밭레츠는 형태적으로 비슷해 보입니다. 블록체인에는 상호보증시스템 즉 암호지갑이 있습니다. 두루의 경우에는 믿음이나 신뢰와 같은 정서적인 암호지갑이 작동합니다. 회원들은 서로의 믿음과 신뢰로 잘 모르는 회원이 발행하는 두루도 믿고 거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밭레츠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망에서 작동하는 색다른 돈의 작동양상입니다.

신승철 : 신용이 신뢰라는 얘기가 화폐론의 측면에서 매우 특이한 설명방식인 것 같습니다. 돈은 회계단위이자 교환수단이고 가치 저장수단입니다. 두루라는 돈의 작동방식이 궁금하군요.

오민우 : 두루는 부채입니다. 개인이 발권자이기 때문에 누구나 두루를 발행하지만, 발행하는 순간 마이너스 두루가 발생됩니다. 이는 공동체의 시작이 부채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채는 금융시스템에서의 부채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마음의 빚과도 같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되는 지역화폐의 경우에는 돈을 쓰는 사람은 발권자도 아니고 마이너스로서의 부채를 짊어지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더 많이 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현금으로 태환(兌換)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자체에서 운영되는 지역화폐와는 달리 두루는 태환이 불가능합니다. 두루는 돈과 태환이 안 되기 때문에 국지적인 공동체 자체의 약속이자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회원 탈퇴 시에는 남은 두루는 기부됩니다. 동시에 마이너스 두루는 죄다 갚아야 합니다. 즉 역태환밖에 없습니다. 죽으면 갚을 필요가 없지만, 탈퇴시에는 갚아야 한다고 해서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무시무시한 슬로건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웃음) 물론 채권추심은 절대 없습니다. 그저 공동체에 대한 빚으로써 책임감을 느끼는 마음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두루는 공동체에 수많은 빚을 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마을 축제에 참여한 한밭레츠의 지역화폐 소개 부스

신승철 : 프랑스 철학자 바타유는 잉여로써 주어지는 과잉에너지의 폭발양상으로서의 축제, 관혼상제, 파티, 여행 등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한밭레츠에는 혹시 이러한 과잉에너지가 폭발되는 축제는 없나요?

오민우 : 과잉에너지가 폭발되는 축제와 파티는 공동체마다 있기 마련입니다. 저희 한밭레츠에서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에너지와 활력을 폭발시키는 자리가 바로 품앗이 만찬입니다. 보통 음식을 준비하기 하고 요리도 하지만 포트락파티 형태로 열립니다. 음식을 나누면서 수많은 이야기구조가 발생하고 미각의 재미와 더불어 즐거움이 공동체에 유통됩니다. 품앗이 만찬이라는 얘기에 벌써 어깨가 들썩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다른 놀이로는 두루 경매가 있습니다. 릴레이로 진행되는 경매는 두루를 열심히 모은 회원들의 축제입니다. 현실 통화의 권력자들의 놀이인 경매 시스템을 두루로 작동시킬 때 우리는 전혀 다른 권력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두루가 넉넉한 자가 유리하지만 개인이 얼마든지 마이너스 두루를 발행할 수 있는 레츠에서는 누구나 큰 권력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큰 소비를 감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빚은 언제든 갚을 수 있습니다. 내놓을 재화가 없으면 봉사로 큰 두루를 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빚쟁이인 레츠 등록소가 가장 큰 손으로 넉넉히 두루를 주기 때문입니다. 등록소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연말마다 기부행진을 벌이는 두루부자 회원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승철 : 공동체에서 교육프로그램도 중요하지요. 레츠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요?

자수품앗이

오민우 : 품앗이 교실이 운영되는데, 특이한 점은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으면 선생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학생이 되는 식입니다. 보통 재능기부 형태로 작동하고 두루를 모아서 재능을 가진 선생에게 줍니다. 차품앗이, 뜨개질품앗이, 민화품앗이, 국선도품앗이 등이 작동되고 있고, 꾸준히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신승철 : 비물질재에 대한 접근이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민우 : 물품교환 뿐만 아니라 노동력 품앗이도 활발합니다. 같이 놀아주고, 돌보고, 배움을 주고받는 품앗이 등 비물질재로 품앗이는 확장되고 있지요. 지난번에 천하제일 두루쓰기 경진대회라는 행사를 했는데, 두 팀으로 나누어서 지역화폐 거래의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브레인스토밍을 했습니다. 두루 사용에 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했던 거 하지 않았던 거, 생각했던 거, 상상했던 거 모두 나왔습니다. 같이 영화보러 가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재능교환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죠. 우승팀에게는 그것을 구현할 두루가 주어졌습니다. 저희들은 상상한 것이 바로 현실인 셈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희한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고양이 산책을 시켜주자는 거래에 한우로 고양이 간식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견, 그리고 한우로 만든 육포라면 나도 만들어 달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거래가 거래를 만들고 여러 거래가 사람들을 묶어 주는 레츠의 이상향을 잘 구현한 팀이 결국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신승철 : 두루는 어떤 돈이길래 그런 상상력이 발동하지요?

오민우 : 페미니즘 슬로건 중에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두루도 마찬가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은 중앙통화를 매개로 한 소비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중력에 묶여 있는 강압적인 예속입니다. 두루는 그 연결과는 다른, 그러니까 일종의 중심이 없는 연결입니다. 인드라 그물의 물방울 들이 서로를 비추듯 옆에 있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마주보는 연결입니다. 두루는 착취하지 않고 약탈하지 않는 돈입니다. 돈을 매개로 한 소비가 아니라, 관계 중심의 매개입니다. 두루는 착취하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게 해주고, 예속되지 않고도 소속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우리의 시스템도 확장을 통해 비대화 된다면 현실사회와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앙통화와 다른 흐름을 만들었듯이, 레츠 시스템이 무거워진다면 다시 돌려낼 수 있습니다. 모래성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 즐거운 일인 것처럼, 작은 숨구멍과 같은 미세한 틈에서 자라는 이끼나 버섯이 짧은 생명을 여러 번 반복하며 멀리 퍼져가듯이 레츠는 계속 새로워질 것일라 생각합니다.

천하제일 두루쓰기 경진대회
  • 두루는 착취하거나 약탈하지 않는 돈,
    두루의 유통은 돈을 매개로 한 소비가 아니라, 관계 중심의 매개

신승철 : 흔히들 공동체에 대해 어떤 막연한 기대감과 그 때문에 만들어진 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고정관념이 있지요. 공동체는 늘 행복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것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공동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요. 한밭레츠에서도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을 지탱해온 힘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오민우 : 한참을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네요. 내부적으로 겪었던 많은 문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요, 그동안 명확한 비전을 묻는 날카로운 질문들, 의문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쉽게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냥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목표가 분명한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크게 흥하거나 사라지거나 했지만, 우리는 망하지도 크게 흥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게 우리가 가진 딜레마이지만, 그래서 쉽게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마을이라는 게.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신승철 : 확실한 목표나 비전을 바라보며 달리기보다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듯합니다. 우리 삶이 곧 마을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적이군요.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시대, 생태계 위기 시대에 두루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오민우 : 성장시대에는 모두 부유해지기 위해서 달려갔다면, 탈성장 시대는 더불어 가난해지기 위해서 걸어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장의 과실을 향유하던 시기가 지나고 탈성장 시대는 나눔과 연대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두루는 더 갖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축장의 욕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 약한 사람, 소수자를 관계를 통해서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두루는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누고 돕고 내놓고 내려놓는 향연을 위한 촉매제입니다. 레츠는 즐거운 실험입니다. 즐겁게 재미있게 자신이 가진 것은 사람들에게 내놓습니다. 그것은 향연, 축제, 파티가 어울리는 우리의 작은 실험입니다.

신승철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역화폐는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점을 알려주는군요. 더불어 탈성장 시대에 어떻게 커뮤니티의 판을 깔지에 대한 아이디어와 지혜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너와 나, 우리 사이에서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가 지역화폐를 작동시키는 원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한밭레츠가 공동체운동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