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전태일

‘전태일과 플랫폼노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제안받고 괴로웠습니다. 전태일이 플랫폼 노동자라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상상하며 글을 써보았으나 전태일의 삶의 궤적을 조금도 담지 못했다는 실패감이 듭니다. 부족하지만, 플랫폼 노동자가 느끼는 소외감과 플랫폼 노동이 사람에게 주는 감정을 픽션의 형식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대학에 합격해 고향을 떠나올 때만 해도, 태일에게는 설레는 기분 같은 것이 존재했다. 왠지 모를 낯설음과 기대감에 속아 어영부영 몇 학기가 흘러갔다. 학생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만만치 않은 월세 비용과 등록금, 생활비를 생각하면, 맘 놓고 학업에만 열중할 수만은 없었다.

하루는 일찍 집으로 들어와서 잠을 자다가 집에서 걸려온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태일은 주섬주섬 책상 한 구석에 있는 서류를 꺼내 수화기 너머로 서류에 적혀있는 글씨를 성의 없게 읽어준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25길이요…” 도로명 주소가 아직은 잘 외워지지 않는 것 같다.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쳐다봤다. 얼마 전 무심결에 가입한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앱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눈에 거슬린다. 인터넷에서 본 뚜벅이 배달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용돈도 벌 겸 시작해 본 일이었다. 자전거는 고향 집에 있는지 없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고, 오토바이는 무서워서 차마 엄두도 못냈다. 취미 삼아 시작해본 일이라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난 주에는 안전교육 이수비용 2만원을 추가로 받았지만, 이번 주부터는 뛰는 만큼만 돈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라고 하지만 누구랑 일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동대문 청계천 전태일 열사 동상 앞을 지나는 배달오토바이들. (2014.11.1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라고 하지만 누구랑 일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동대문 청계천 전태일 열사 동상 앞을 지나는 배달오토바이들. (2014.11.1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주문이 몰리는 시간은 배달비가 올라갔다. 심지어 지역마다 배달비도 달랐다. 배달비가 비싼 지역으로 이사갈 걸, 속으로 괜한 생각을 해본다. 꼭 게임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 번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콜을 받지 못했다. 그 뒤로 콜이 줄어드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라고 하지만 누구랑 일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배달음식을 받으러 가게에 가기까지는 어떤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앱을 온라인 상태로 해둔 지 5분이 지나지 않아서 첫 콜이 들어왔다. 추운 날이지만 옷을 껴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오래된 핸드폰은 추운 날이 되면 배터리가 금방 떨어진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보고 다른 손으로는 배달음식을 들고 여유 있게 걸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추운 날은 다음 콜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쉴 곳도 마땅치 않다. 어제는 배달을 마치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했었다. 한 번은 아파트 지역에 배달을 갔는데, 담벼락이 막혀있어서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담을 넘었다.

주문량이 많은 시간에는 가게 주인도 불친절 하다. 인사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물건을 가져가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조금 늦으셨네요” 라는 말에 몸 어딘가가 불편해져온다. 주문번호를 확인하고 “적혀있는 거 맞으면 가져가세요” 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골탕을 먹일까라는 생각도 잠시뿐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인사를 남기며 태일은 얼른 가게를 나선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콜이 바로 들어오는 편이었고, 배달비도 높게 쳐 주었다. 4건을 하고 21,150원을 벌었다. 2만원을 넘게 벌어서일까? 아니면 이제 저녁시간이 지나서일까? 더 이상 콜이 잡히지 않는다. 날도 춥고 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앱을 끄고 집으로 향한다. 높은 배달비가 뜰 때 열심히 배달을 하고, 계속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이 세계에서 마저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용돈벌이로 배달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길거리에 안보이던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의점 벤치나 식당가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2-3개 들고 다니는 것도 봤다. 태일은 문득 사람들이 못 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같은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데 태일이 하는 일은 핸드폰 속 지도에만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은 쿠팡이츠를 알지만 그 속에서 태일은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은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음식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통해 건네받는다. 그 사람 역시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지도 속에, 핸드폰 속에서 살아간다. 태일의 머릿속에 묘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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