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르넬로 시리즈] ⑨ 무엇이 리토르넬로에 맞는 음악일까?

유치하고 평범한 리토르넬로에서 코스모스의 소악절을 창조해 음악의 최종 목적으로의 탈영토화된 리토르넬로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코스모스로 풀어 놓은 리코르넬로의 과정을 살펴본다. 이러한 리토르넬로를 코스모스로 풀어 놓기 위해서는 음악가의 아이-되기, 아이의 코스모스적인 것-되기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지난 번 연재에서는 근대 서양음악을 리토르넬로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모더니즘 시대의 음악에 대하여 훑어본 것입니다. 종래에는 이 시대적 구분을 음악의 진화과정이나 단절로서 바라보는 것이 보통의 시각이었는데요. 들뢰즈와 가타리는, 특정 시대의 특징들은 모두 이전 시대에 있던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근대의 코스모스의 힘들은 고전주의의 카오스의 힘과 낭만주의의 대지의 힘으로 항상 있어왔던 것이고, 근대 분자적인 것들은 탈영토화와 탈코드화의 질료에서 이미 나타난 바가 있다는 것이지요. 단지 지각의 조건들이 달랐을 뿐이고 숨겨진 것이 드러나려면 새로운 조건들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귀에 주는 특권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토르넬로가 유독 음과 관련된 이유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합니다. 리토르넬로가 동작, 색채, 시각 등 보다 귀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솔직히 이는 객관적인 분석을 위한 것이어서 이유를 명확하게 들기가 쉽지는 않지만, 평상시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귀의 특권이 현상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긴 합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출근시간에 차 안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간혹 가능하다면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그림을 예로 들어 볼까요? 아침에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고, 출근시간에 그림책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그림을 보며, 간혹 일을 하면서 컴퓨터 바탕화면을 보면서 일을 하진 않는다는 건 모두들 수긍할 상황이긴 합니다. 어찌 보면 귀에 대한 것은 우리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아마 원시시대에 인간이 약한 존재일 때) 다른 기관보다 앞서 있는 DNA제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음과 색채

물론 들뢰즈와 가타리는 음과 색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합니다. “음은 탈영토화 될수록 특수성을 획득해 자율적인 것이 되고 색채는 탈영토화 될수록 용해되어 다른 성분에 인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죠. 음의 탈영토화는 예를 들면 전과 조금 다른 선율, 화성 그리고 리듬에 의해 전과 다른 환경을 성립하게 되어 주제의 변형이나 악장의 전환 등 특수한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색채는 단순히 색과 색의 합침을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화가는 체세포에서 생식 질로 향하고 음악가는 생식 질에서 체세포로 향한다고 합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화가는 마치 식물과 같이 줄기와 이파리 등을 키워 나가 마침내 열매를 맺는 것 같이 그림을 그린다면, 음악가는 선율, 화성, 그리고 리듬의 어머니로부터 각 기관들을 그려 나간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글라스 하모니카, 프리즘

결국 ‘리토르넬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들뢰즈와 가타리는 명확하게 답을 합니다. ‘글라스 하모니카이고 프리즘이다’라고 말이죠. 명확하게 답을 했건만 더 모호한 답이 되어버린 건 저만의 착각이 아니길 빌어볼 뿐입니다. 글라스 하모니카는 아래 예에서와 같이 물이 들어 있는 유리컵에 다채로운 파동을 일으켜 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으로 손가락을 이용해 소리를 냄으로써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악기들에 비해 다소 인간적(?)이고 신비로운 소리를 냅니다.

“Dance of the Sugar Plum Fairy” on the Glass Armonica

아마 저자들은 유리로 만들어진 글라스 하모니카, 프리즘을 통해 소리와 빛의 분리, 투영의 예를 들면서 시간과 공간의 결정체로서의 리토르넬로를 보다 명확히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어릴 적 유리잔에 물을 채워 두고 손가락으로 잔 입구를 빙글빙글 돌릴 때 나는 소리의 그 강렬하면서도 순식간에 우리 주위를 감싸는 부드럽고 묘한 소리의 기운들이 만들어내는 보호막과 같이 말입니다. 아마 그 안에선 나름의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리토르넬로가 작동하고 있었을 겁니다.

뱅퇴이유 소악절

시간을 만들어내는 리토르넬로의 한 예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시금 뱅퇴이유의 소악절 (소나타)을 거론합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언급된 뱅퇴이유의 소악절에 대한 묘사는 스완의 사랑, 오데트라는 인물, 그리고 불로뉴 숲이라는 풍경에 결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음악 안의 리토르넬로는 시간이 선험적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리토르넬로가 시간의 선험적 형상으로 매번 다른 시간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아마 이 소악절 안의 리토르넬로가 각 인물, 풍경의 플래카드로 작용하며 이 소설의 주된 소재인 ‘시간’을 이끄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작가가 음악에 대한 지식과 글을 쓰는 능력이 뛰어 났으면 실제 있지도 않는 음악이 마치 실재하여 소설 장면과 결부되는 것처럼 회자될까요? 그래서인지 이 뱅퇴이유 소악절의 실제 작품을 찾는 노력이 계속 있어 왔나 봅니다.

그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것이다’라고 추정한 세자르 프랭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 장조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소 특이한 소나타 형식(보통 소나타는 3악장)으로 1악장의 주제 선율이 각 악장마다 모습을 달리하여 계속 등장함으로써 멋진 리토르넬로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을 순환 형식이라고 하는데요. 4악장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로 이끌고 뒤따라가는 단순한 대위법의 선율적 풍경이 자연스럽고 멋집니다. 반복되는 리토르넬로가 정말 시간을 만들어내는지 감상해 보시죠.

Clara-Jumi Kang: Franck, Violin Sonata in A Major

벨라 바르톡

들뢰즈와 가타리는 음악에 있어 코스모스적 리토르넬로로의 이행을 바르톡을 통하여 보려 합니다.

브를레의 말을 빌려 자율적이고 음계상 영토적이며, 민중적인 선율 들에서 출발하여 그 선율 들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반음계 법을 구축하고, 나아가 힘들의 되기를 가능케할 테마들을 창조하려는 리토르넬로의 이상적인 구현을 말이죠. 벨라 바르톡 (1881 – 1945)은 헝가리 출신으로 민족주의적인 음악과 근대적인 음악의 다양성에 공헌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같이 시골마을을 돌며 구전으로 전해오는 민속적인 노래를 찾아 민속음악을 클래식음악에 접목시키려 하였던 작곡가로도 유명합니다. 여기에서 형성된 것이 헝가리언 스타일, 집시 음악입니다. 집시 음악의 음계는 ‘도, 레b, 미, 파, 솔, 라b, 시’ 로 보통 이루어져 있으며, ‘레’에 반음이 내려가 있는 것이 집시스타일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음계상 영토적이며, 민중적인 선율들에서 출발하는 바르톡의 랩소디를 들어보겠습니다.

Bartók: Rhapsody for Piano and Orchestra, (Op. 1) Sz. 27 (1904)

바르톡은 드뷔시로부터 영향 받은 근대적인 음악을 민족주의 음악에 접목합니다. 평범하고 영토적인 헝가리언의 리토르넬로에서 근대적인 음악 기법을 접목하여 코스모스로 나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아래 곡은 바르톡이 그간 수집한 구전 민속 노래의 관용구에 근대적인 음악적 실험을 거친 최초의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곡입니다.

Bela Bartok – Bagatelles for Piano, Sz. 38, BB 50 (Op. 6) (1908)

위의 예에서 바르톡은 어떠한 실제 민속음악을 사용하진 않았다 합니다. 하지만 간단한 조작에 의하여 바르톡은 헝가리언 민속음악과 연관시켰습니다. 바르톡이 출판한 책에서는 민속 구전 음악과 현대음악사이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도식을 아래와 같이 3단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 작곡가는 구전 가요를 변형 없이 사용하거나 약간의 변형을 할 수 있다.
  • 실제 구전 가요를 사용하는 대신, 그 자신만의 모방품을 만들어야 한다.
  • 구전 가요의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스타일의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작곡가는 구전 가요의 관용구를 완전히 흡수한 상태여야 한다.

아래의 예는 바르톡이 작은 아들의 피아노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교본인 마이크로 코스모스 (Mikro Kosmos)중 하나의 곡입니다. 총 6권으로 153곡의 소곡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곡 관련 대학 과정에서 근대적인 음악 기법을 소개할 때 나오는 대표적인 내용일 겁니다. 앞에서 말했던 간단한 조작은 아마 다음의 작곡 기법일 거라 생각되는데요. 예를 들어 선율들을 거꾸로 뒤집거나, 반대로 진행시키고, 반음계를 이용하여 불협화음을 생성시키는 등 마치 아이-되기처럼 천연덕스럽게 아이들이 음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합니다. 작은 코스모스 안에서 말이죠.

Béla Bartók Piano MikrokosmosVolumen 3. 72. Dragons Dance. Partitura

다음 곡은 그의 음악적 특징인 다양성과 민속적인 성격을 가장 잘 가지고 있는 ‘현악 4중주’입니다. 헝가리 민속음악의 관용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용하고 있지 않을 정도로 반음계적인 요소와 간단한 조작들을 통한 다양한 힘들의 주제 (테마)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작은 코스모스에서 광활한 코스모스로 열려있는 모습입니다.

Béla Bartók: String Quartets

무엇이 리토르넬로에 맞는 음악일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무엇이 리토르넬로에 맞는 음악일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유치하고 평범한 리토르넬로에서 코스모스의 소악절을 창조해 음악의 최종 목적으로의 탈영토화된 리토르넬로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코스모스로 풀어 놓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코스모스로 풀어 놓는 것은 음악가의 아이-되기, 아이의 코스모스적인 것-되기를 통해 가능한 것”이라 했습니다. 앞서 보았던 바르톡의 예에서와 같이 구전으로 내려오던 민속음악에서 시작한 리토르넬로는 아이-되기, 간단한 조작 등을 통하여 코스모스로 풀어 놓아졌고 광활한 코스모스로 열려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각 단계에서 실패할 수 있는 수많은 위험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적인 힘은 이미 재료 속에, 소박한 리토르넬로 속에, 소규모 조작 속에 있음을 저자들은 강조합니다.

그저 우리는 강한 힘이 있는지 확신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선과 운동들을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당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호기심에서였습니다. 들뢰즈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중 「1837년 – 리토르넬로」 편에 대한 저의 궁금증이었고 ‘과연 어떠한 음악이 좋은 음악일까’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리토르넬로라는 개념을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처음 접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거칠지만 나름의 이해를 통하여 음악과 관련된 부분으로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문이 과도하게 어려워지면서 쉽게 이해하려는 노력들은 사라지고 따라가기에 바쁜 글을 쓰고 말았군요. 저 나름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직접적으로 만든 소리들은 유튜브로 대체 되었고요. 하지만 ‘어떤 음악이 진정한 코스모스 적이며 생태적인 그리고 민중과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일까?’ 라는 화두는 이 리토르넬로라는 개념을 통하여 저에게 크고 중요한 일상적인 고민거리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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