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⑦ 마을은 봄!

비조마을에 봄이 왔습니다.

농사가 시작되는 봄

2021. 3. 19. 밤만디에서
3. 19. 밤만디에서

며칠 전 밤만디에서 보니 아래쪽 논에 트랙터가 ‘위~잉~척!’ ‘기~잉~척!’하며 왔다갔다 합니다. 마을어르신께서 논을 갈고 계셨습니다. 농사 준비를 벌써 하시나 싶어 날짜를 꼽아보니, 매년 춘분 무렵이 되면 조용하던 마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던 듯합니다. 절기상으로는 4월초 청명이 되어야 가래질을 한다지만, 남쪽은 봄이 빨리 오니 농사도 빨리 시작합니다.

하지에 캐는 감자는 벌써 심었고 텃밭에는 상추, 치커리 같은 채소씨를 뿌립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그 옆에 다시 씨를 뿌려 장마 전까지 먹습니다. 처음에 텃밭농사를 할 때는 파종시기가 언제인지 씨앗포장지 뒷면을 자세히 읽어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앞집 계촌 할머니가 씨 뿌리고 모종 심을 때 따라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어느 날 밭보러(할머니 표현) 가시는 할머니께, 상추는 뿌렸는데 들깨는 언제 뿌리는지 물었더니 ‘산에서 소쩍새가 소쩍~ 소쩍~하고 부쩍 시끄럽게 울 때’라고 알려주셨답니다.

들깨 농사를 많이 짓는 본동할머니는 3월 중순이 되면 깨 뿌릴 밭을 갑니다. 바람이 아직 차가운데 농사꾼은 때가 되면 밭을 가는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며 ‘해도 해도 표가 안 나는 일을 계속 해야 되나’ 고민이 될 때였는데, 할머니처럼 때가 되면 묵묵히 밭을 갈 듯이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밭에서 일하시는 본동 할머니. (좌) 2017. 3. 15. (우) 2018. 3. 14.
깨밭에서 일하시는 본동 할머니. (좌) 2017. 3. 15. (우) 2018. 3. 14.

삼 삼는 이야기

봄농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예전에는 마을에서 삼을 삼았다며 할머니들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 많아 외국어같이 들렸던 이야기 같이 들어보실까요? 판소리 사설처럼 읽어보세요. 초봄에 씨를 뿌려 여름에 말리고 겨우내 허벅지에 피가 나도록 비벼 삼았다는 내용입니다. 2016년 마을이야기책(울주군 마을공동체만들기사업)에 실렸습니다.


삼씨는 봄에 뿌리지.
드물게 흐치면 안 되고 조물게 흐치야 되고 초봄에 흐튼데이.
참꽃 피락마락할 때. 모 숨굴 때 되면은 다 되지. 키는 사람보다 크지.
삼으는 복판에 꺼는 하고, 가세 씨할라고 주우욱 놔노면 그게 열씨라 카거든.
삼씨라 안 카고.
온 밭에 다 숨구코 내년에 종자할 꺼를 여 가세 드문드문 놔두면 그기 벌어가 종자 안 하나. 오새 들깨맨크로. 바로 대마초라.
… (중략)…
재를 였고 풀 끓여가 베감는 도토마리까 감아가 베틀에 얹어가 짜지.
겨우내 삼았어.
말라 논 거를 물에 담다가 방에서 삼아가, 여 하도 문띠가 살티 다 벗어졌다.
구덕살시 앉도록 피가 나도록 여 비비가 삼어가, 겨우내 일 아이가.
여름에 째가 말라 놨다가 겨울게 내 안 삼나.
삼어 가 봄에 잣는기라. 그거까 옷 해입지.
봄에 산에 일꾼들 풀내려올 때 도토마리 해갖고 내 짠다.
(구술 : 계촌 할머니 정차분님, 도호 할머니 故정태옥님, 본동 할머니 한윤오님)


해마다 다른 봄, 우리 모두 봄

이번 만화리 통신은 만화리의 풍경을 전하려 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다른 모습은 “봄은 봄대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좋고…” 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몇 년 동안 봄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그해 유독 눈에 들어왔던 것들이 있습니다. 며칠 전 지인이 ‘나만 봄 하려고 했는데 우리 모두 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다른 만화리의 봄을 같이 봐주세요. 그럼 우리 모두 봄!

(좌) 2017. 4. 13 민들레, 제비꽃 (비조마을 골목길) / (우) 2018. 3. 22. 봄눈 (밤만디)
(좌) 2015. 3. 23. 치산서원 매화 (만화리 옻밭마을) / (우) 2016. 4. 8. 담쟁이 (비조마을 지우네 담장)
(좌) 2015. 3. 23. 치산서원 매화 (만화리 옻밭마을) / (우) 2016. 4. 8. 담쟁이 (비조마을 지우네 담장)
(좌) 2017. 4. 13 민들레, 제비꽃 (비조마을 골목길) / (우) 2018. 3. 22. 봄눈 (밤만디)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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