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디학교 일지] ③ 폭력과 마주하기

제천간디학교 공동체에서 비폭력은 중요한 가치이자 약속이다. 하지만 폭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폭력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문제 해결을 위한 관계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가이지 않을까.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나는 소리가 있다. 학교에 처음 온 날이었다. 저녁 청소를 마치고 빗자루를 챙겨 돌아온 방문 너머로 선명히 들렸던 소리. 같은 방을 썼던 선배의 말소리. “나도 널 싫어하고 싶지 않아. 근데 네가 그럴 수 없게 하잖아. 자꾸.” 이어서 신체가 여러 번 부딪히며 나는 소리. 방문이 열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오는 사람. 방문 앞에 멍하니 서 있던 나를 쳐다보지 않고 서둘러 지나간다.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붉었다.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불리고 싶던 내게 먼저 인사하는 선배가 있었다. “안녕”하고 말하며 주먹으로 팔을 때리곤 했다. 아프다. “아파? 안 웃어?” 나는 아팠고 웃었다. 나는 아팠지만, 거짓으로 웃지는 않았다. 그것을 친해짐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봤다. 어느 날 밤 “선배들이 너 오래”라는 말을 듣고 찾아간 방에서 친구는 맞고 있었고, 곧이어 나도 조금 맞았고 아팠다. 폭력은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말하지 못했기에’ 가해졌다. ‘그러고도 남자냐’라는 남성성의 논리가 폭력의 이유였다. 나는 아팠고 무서웠지만 뿌듯했다. 폭력을 견뎌냄이 그들로부터 남성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봤다. 참 아이러니하다.

폭력과 어떻게 마주할까

이곳 제천간디학교에서 비폭력은 중요한 가치였고 약속이었다. 매년 초에 비폭력 서약식이 열려 함께 비폭력을 약속했으며 용기 내어 폭력의 기억을 이야기했고 서로 안아주며 끝이 났다. 학생들로 구성된 평화정착위원회는 비폭력과 평화를 향한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나는 남자기숙사에서 폭력과 마주쳤다. 어떠한 관계에는 권력의 차이가 있었고, 권력의 우위는 선배, 남성, 그중에서도 남성다운 남성에게 있었다. 권력에 차이가 기숙사라는 공간 안에 놓였을 때, 폭력이나 심부름이 이뤄졌다. 입학하고 처음 열린 비폭력 서약식에서 나는 동기들과 마이클 잭슨의 노래 ‘힐 더 월드’를 불렀다. 영어 가사를 일부는 한국어로 바꾸고, 일부는 소리 나는 대로 적어서 틈틈이 외웠다.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내가 부르는 가사말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던 것처럼, 그가 왜 방문 너머에서 얼굴이 붉어질 만큼 맞았는지, 작은 방에서 나랑 친구가 왜 맞았는지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했다.

Make a little space, make a better space

작은 공간을 만들어요,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요 (마이클 잭슨 ‘힐 더 월드’ 중)

공동체의 문제는 대부분 관계와 붙어 있다. 폭력 문제, 규칙을 어기는 문제, 도난이 일어나는 문제, 실내화를 바깥에 신고 다니는 문제, 고양이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 등등 관계와 떨어져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사진출처 : djedj

제천간디학교는 작았다. 학교와 기숙사는 작았고, 학생의 수도 작았다. 같은 사람을 매일 봐야 했고 그렇기에 폭력을 당하거나, 마주친다 해도 말하기를 관두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어쩌면 관계 맺기의 과정이라는 믿음도 있었기에.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기숙사는 불안했고 무서웠다. 이미 작은 이 공간을, 어떻게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침 청소를 하고, 교실에 하나둘씩 모였으나 선생님은 없었다. 아침 교사 회의가 길어지고 있다. “얘들아 스탑이래.” 스탑 회의는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모두 스탑(stop)하고 진행되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들어간 강당은 무거움 속에 웅성웅성. 칠판 앞에 앉은 진행자의 얼굴은 긴장되어 보인다. 지난날 일어났던 폭력 사건이 전체 구성원에게 공유되었고, 모두에게 질문이 던져졌다. ‘우리는 폭력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할까?’ 자리는 어렵고 무거웠다. 나는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내려앉은 공기 아래 눌려 있었다.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가 오갔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폭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떠한 관계들이 어떠한 공간과 시간, 분위기 속에 있음으로써 폭력이 발생했는지, 폭력 ‘이후’의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스탑 회의 이후에 공동체 내 폭력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졌고 모두에게 공유되었다.

학교와 기숙사에서는 그룹별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대물림 되는 폭력, 위계질서 문화에 대한 경험과 문제의식이 모아졌다. 동시에 기숙사에서 중·고등 공간 분리가 이루어졌다. 생활공간을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중등부(1~3학년)와 고등부(4~6학년)가 분리된 삶을 시작한 것은 기숙사 내의 위계 문화와 폭력을 물리적으로 정지시켜 놓기 위함이었다. 방에서, 화장실에서, 샤워실에서 눈치 보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고슴도치 우화

기숙사 중·고 분리 후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었다면, 중등부 학생과 고등부 학생들이 점차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는 것이다. 같이 지내지 않으니, 서로에 대한 관심과 대화는 줄어들었고, 서로의 상황에 대한 타진이나 개입은 필요하지 않았다. 매주 기숙사 회의 시간마다 청소 상태, 생활 규칙, 건의 사항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모두가 관계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2층에서 청소가 잘 안되거나, 생활관 퇴소(기숙사에서 학교로 가는 것을 말함)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1층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서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듦과 함께 위계질서 문화가 점차 사라지자 중·고 생활공간 분리는 종료되었다.

어느새 고등부 학년이 된 나는 나의 방이 아닌 복도 끝 공부방에서 혼자 자곤 하다가 나중에는 기숙사를 떠나 근처 가정집 방을 빌려 생활하였다. 기숙사 생활이 불편하고 답답했기 때문이었는데, 혼자만의 공간 없이 부대껴 사는 것에 지치기도 했으나, 더불어 살기 위해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랐던 문제가 컸다. 같이 살기 위해 후배에게 하는 말들이 권위에 기대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바라본 선배들의 모습이 나와 겹쳐 보이지 않을까 싶어 불편함과 답답함을 속에 누르고 거리를 두기로 하였다. 그 때문에 가까운 관계도 이뤄질 수 없었다. 생활공간 분리 이후 오히려 고등부와 중등부 사이에 벽이 더욱 두꺼워진 듯했다. 학년·연령에 따른 생활공간 분리는 더 나은 공동체,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을까? 공간 분리를 통해서 피라미드와 닮은, 위계와 권위의 관계를 벗어났지만, 이후에는 서로 더 무관심하고 경직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선·후배가 서로 비슷한 높이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방음벽이 설치된 방들이 나열된 복도와 닮았다. 아이러니하다.

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은 어려운 과정이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경우에 따라 가해자와의 분리도 필요하다. 동시에 폭력은 가해자의 문제를 넘어서 공동체의 관계와 분위기, 언행,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고민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공동체 내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조정해 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함께 사는 우리는 많은 논의를 했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관계망을 다시 조정하여 서로 다른 입장과 요구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엔 아쉬움이 남았다. 선·후배라는 관계, 나이와 학년으로서 만들어지고 그에 따른 경험의 차이와 앎의 차이라는 객관적 법칙으로서 만들어지고(또한 남자 기숙사에서 남성성 규범으로서 만들어지는) 이 관계를 그대로 둔 채 서로가 함께 살아가면서 가지는 상이한 경험, 바람이 소통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작은 공간

공동체의 문제는 대부분 관계와 붙어 있다. 폭력 문제, 규칙을 어기는 문제, 도난이 일어나는 문제, 실내화를 바깥에 신고 다니는 문제, 고양이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 등등 관계와 떨어져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한다. 문제 해결 역시 관계와 떨어질 수 없다. 매주 학생, 교사 모두가 모인 가족회의에서 공동체 안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데 회의에서 주로 발언하는 것은 고등부 선배들 혹은 교사들이었다(내가 2학년이 끝나갈 즈음까지 가족회의에서 발언한 횟수는 머릿속으로 다 셀 수 있는 정도였다).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가족회의였으나 나와 동기들, 후배들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 많은 소통이 이뤄지기 위해 중·고등을 나누어 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작은 소그룹에서 의견을 나누고 모두 공유하는 방법도 사용했으나 결국 모두가 모인 자리의 모습이 달라지기는 어려웠다. 선배, 후배, 교사, 학생이라는 위치와 상황에 놓인 채 할 수 있는 정도로 같은 층에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것들(나이 등의 규범들,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것들, 굳어지는 역할들)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대화와 관계가 생겨나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마이클 잭슨이 ‘작은 공간을 만들자’고 노래했던 의미와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지 끝.

이재형

안녕하세요. 이재형입니다. 된장찌개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 밥은 두 그릇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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