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디학교 일지] ④ 고양이 ‘삼식이’와의 대화

‘더불어 행복한 사람’,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사람’이라는 교육철학. 눈으로는 쉽게 읽어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2주에 걸쳐 진행된 삼식이에 대한 회의에서, 나는 삼식이와 대화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 대화할 수 없다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삼식이와의 대화

기자 : 삼식 안녕하세요. 나는 일상다반사(교내 소식지 기자단) 글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삼식 : 미야옹

기자 :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삼식 : 하루? 시간에 대한 그러한 관념은 당신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루’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아침을 열고 밤을 닫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요. 아무것도 열고, 닫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여는 것은 빨간 뚜껑입니다. 그마저도 지금은 열지 않지만요.

기자 : 빨간 뚜껑? 식당 옆에 있는 잔반통을 말하는 건가요? 그 뚜껑을 어떻게 열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삼식 : 나는 몸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지요.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테죠.

기자 : 삼식은 평소 어디에 있나요? 보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구요.

삼식 :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기자 : 그곳이 어디인가요?

삼식 : 어디라고 할 수 있나요? 그곳에 있는 겁니다. 축축하지만 않으면요.

식당 옆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빨간 뚜껑의 음식물쓰레기통 근처를 배회하는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볼 수 있다. 비교적 덩치가 큰 고양이 2마리와 나이가 어린 듯 보이는 나머지 고양이, 비슷한 색과 무늬를 가진 고양이들은 가족인 걸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게 덩치 큰 고양이들인 걸 보면 그들이 부모이거나 이모삼촌일 수도 있겠다. 대부분은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에 떨어진 음식을 챙기는데, 개중에는 빨간 뚜껑을 열 수 있는 기술자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학교 주변을 서성이는 고양이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분리수거장에 애써 묶어놓은 비닐봉투를 찢어 헤치고 가버려서 청소거리를 두 배로 만드니 말이다. 몰래 먹은 라면 봉지가 밖으로 삐져나와 누가 보기라도 하면 그건 더 큰 일이다. 지금도 마른 땀이 흐른다. 가끔은 학교로 조용히 들어와 이곳저곳 돌아다니곤 하는데, 어딘가 꼬리꼬리한 냄새가 풍기면 영락없이 고양이들이 볼일을 본 흔적이 발견된다. 매일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들은 꾀죄죄하고 귀엽지가 않다. 아마 이 고양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주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그들을 몰아내는 식당쌤들이 유일할 거다.

라이징스타 김삼식

입구 앞에 사람들이 꽤나 모여 있다. 쭈그려 앉은 사람들의 틈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벌써 누가 깔아줬는지 담요 위에서 태평하게 누워있다. “삼식아~” “삼식이 귀엽다” “삼식아 어디가~”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 삼식은 학교 주위를 떠돌던 고양이들과는 달랐다.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매섭고 음침한 눈빛이 아니었고, 겉모습은 꾀죄죄하기는커녕 삼색의 털이 단연 돋보였다.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대담히 즐기는 듯했으며, 고양이들의 질투를 받는 것인지 대부분 혼자였는데, 그로 인한 약간의 동정심이 그의 스타성에 한몫을 했다. 삼색의 털을 가져서 ‘삼식이’, 가장 열심히 돌봐준 친구(팬클럽 회장 격)의 성씨인 ‘김’을 붙여 ‘김삼식’. 그는 떠오르는 별이었다.

라이징스타 김삼식. 출처 : 제천간디학교 페이스북
라이징스타 김삼식. 출처 : 제천간디학교 페이스북

곧이어 삼식의 담요는 학교 뒷문 쪽으로 옮겨 갔다. 앞문에 비해 오가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낮에는 그늘이 생겨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자리이다. 뒷문 옆에는 양치실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양치를 하면서 삼식을 바라보았고 뒷문을 지나 고등부 교실에 갈 때는 삼식의 털을 쓰다듬느라 수업에 늦기도 하였다. 삼식은 어느새 학교의 일부가 되었다. ‘저기’ 고양이들이 아니라, “우리 삼식이다!” 사람들은 삼식이가 뒷문이 아닌 다른 곳에 있거나 고양이 무리 사이에 있어도 곧잘 알아보았다. 식구란 무엇인가, 끼니를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삼식이의 밥을 챙김으로써 그를 식구로 맞았다. 행방이 묘연하던 삼식이가 점심시간에 맞추어 담요 위에 앉는다. 우리는 밥과 물을 주었고 먹는 모습을 끈질기게 바라본다. 꼬드득 꼬드득 소리 내며 식사를 마친 삼식이가 오후의 볕 아래에서 잠을 잔다. 조심히 삼식이 옆에 앉아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삼식이와 함께하는 따스한 오후다.

삼식이와의 대화

기자 : 삼식, 최근에 당신이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삼식 : 감자라뇨? 맛있겠군요. 하지만 뜨거운 것은 싫습니다. 입 안에 넣으면 곧바로 뱉게 되지만 식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도 금방 이골이 나니 말입니다.

기자 : 바로 그것입니다. 삼식은 사람들에게 감자가 된 상황입니다. 먹어야 하나 뱉어야 하나 말입니다.

삼식 : 뭐요? 나를 먹겠다는 것입니까? 살을 찌우려 담요를 깔고 밥을 준 것입니까?

기자 : 아니요. 아닙니다. 진정해요 삼식. 사람들은 삼식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식은 듯해도 그 속은 어떨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니 말이죠.

삼식 : 나에 대해 뭐라 말하든, 별 관심이 가지는 않습니다. 내 관심은 변화에 있습니다. 흙과 잎의 색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늘의 색깔부터 아주 작은 벌레들의 모습까지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자 : 그렇습니다. 삼식,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겨울이 왔다. 밤은 더 어둡고 조용해졌다. 추위를 뚫고 기숙사에 도착하면, 우선 깔아놓은 이불 밑에 발을 후다닥 집어넣는다. 노곤해져서 깜빡 잠에 들었다가 웅크린 몸을 펴 청소를 하고 곧 다시 잠에 든다. 적응하기 힘든 추위에 잠을 깨니 아침이다. 방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아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간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 밭들, 지붕들 위로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우와아 눈 엄청 왔네.” 머리를 감기 위해 냉골 같은 샤워실 앞 복도에 줄을 선다. 몸을 벌벌 떨며 마음을 다스린다. “2주만 견디자, 2주만… 곧 방학이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가족회의에 안건 하나가 올라왔다. 그 주인공은 삼식이였다. 화이트보드에 ‘삼식이’ 세 글자가 쓰인다. “과연 우리가 삼식이한테 좋은 일을 한 것일까요?” 삼식이는 들과 산, 길과 구멍을 다니며 살아오던 고양이였다.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졌을지, 분리수거장의 쓰레기들을 헤집어놓았을지, 산에서 사냥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삼식이는 ‘그곳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런 삼식이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자리를 만들어주고 밥을 주었던 우리는 이제 곧 각자의 집으로 간다. 두 달의 방학 동안 학교에는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삼식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줄 사람도 없다. “삼식이는 야생성을 잃었을 겁니다. 혼자 자급하여 살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는 삼식이가 살아가는 방식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삼식이가 좋았기 때문에, 배불리 먹고 편하게 살기 바랐기 때문이다.

삼식이는 예전에 살아가던 대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게 아닐까요? 알아서 잘 살 수도 있는데요.” 그 말에 다들 위안을 얻는 것 같다.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학교 주변에 거주하는 쌤이 겨울이 지나면 죽어있는 고양이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마음은 전보다 더 무거워진다. 겨울에는 더 춥고, 더 배고플텐데…

우리는 삼식이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일까? 우리의 욕심이 그의 자연스러운 삶을 해친 것일까?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봐야 뭐합니까?” 그렇다. 아무도 삼식이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다고 느꼈다. 삼식이 없는 삼식이 논의는 하루에 다 끝나지 않고 한 주 더 이어졌다.

비인간 생명과 관계 맺기

‘더불어 행복한 사람’,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사람’이라는 학교의 교육철학. 눈으로는 쉽게 읽어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2주에 걸쳐 진행된 삼식이 회의에서, 나는 삼식이와 대화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 삼식이의 생각을 듣는다면 이렇게 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의 입장을 알 수 있을 텐데. 삼식이와 더불어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 대화할 수 없다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길었던 회의는 끝이 났다. ‘우리는 책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채로 삼식이의 삶에 관여했고, 삼식이의 상황은 곤란해졌고, 때문에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자원을 한 사람들이 겨우내 시간을 정해 학교에 와서 삼식이의 밥을 챙겨주기로 하였고, 겨울이 지나고 학교에 다시 오면 더 이상 삼식이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기로 했다. 삼식이를 쓰다듬거나 담요를 깔아주거나 밥을 주는 일 전부 하지 않기로 했다. 삼식이를 애정 담아 돌보던 친구는 더 이상 삼식이를 무릎에 앉히고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걸, 밥 먹는 모습을 끈질기게 바라볼 수 없다는 걸 많이 아쉬워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와 다른 것 사이의 접촉이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삼식이를 쓰다듬고 이름을 부르고 밥 먹는 걸 지켜보며 이뤄진 삼식이와의 접촉은, 기분 좋은 접촉이었다. 반면에 어렵고 지난했던 접촉이 있다. 2주에 걸친 긴 회의 속에서 삼식이의 입장을 떠올려보던 과정, 우리의 행동을 나 자신에서 조금 멀어진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과정, 인간으로서 나의 위치를 객관화하는 과정, 삼식이의 삶과 나의 삶이 다름을 알아차리고자 했던 과정, 그를 타자로서 사유했음을 돌아보는 과정이 그렇다. 이 접촉은, 우리가 스스로를 떠나 이행하게 한다. 결국 삼식이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익숙했던 나를 떠나 생각하게 한다. 때문에 어렵고, 머리가 아프고, 불편하고, 슬슬 지겹다. 떠나기 전까지 삼식이를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방학이 되어 집으로 가니 삼식이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나 보다.

삼식이가 낳은 새끼들. 출처 : 제천간디학교 페이스북
삼식이가 낳은 새끼들. 출처 : 제천간디학교 페이스북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학교에 다행히도 삼식이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을 품고서,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초여름이 되었을 때, 삼식이가 새끼를 낳았다. 삼식이 아가들은 작고 귀엽다.

비슷한 시기에 식당 쪽 복도 벽에 전지 하나가 붙었다. 무슨 전지인가 보니 채식급식을 신청하는 전지였다. 페스코, 락토-오보, 비건 등 유형에 따라 신청하면 신청자 수에 맞는 채식 메뉴가 준비되었다.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비인간 생명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들여다보려 한다. 함께 살기 위해서 그들다운 모습을 존중하려 한다. 그로써 자신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며 지내기로 한다.

기자 : 삼식, 겨울 동안 잘 지냈나요?

삼식 : 미야옹

기자 : 아! 새끼를 낳은 것 축하합니다.

삼식 : 므야옹

지나가던 친구 : 야 뭐해! 삼식이 안 건들기로 했잖아!

*다음 편에서...

이재형

안녕하세요. 이재형입니다. 된장찌개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 밥은 두 그릇을 먹습니다.

댓글 1

  1. 삼식이와의 관계를 결국 생명들로서의 관계로 올라서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에서 물러서는 과정이라 읽히기도 합니다. 과정이 참 좋습니다. 글 잘 읽고 있고 재미있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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