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⑥ 같이 아프고, 함께 지켜야지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딸 새미는 고단한 엄마, ‘숲정이’를 위로하고 ‘엄마’를 바라본다. 이것은 주고받는 “마주보기 이야기 글”이다. 숲정이와 새미는 월정리 해녀를 바라본다.

월정리 해녀의 바당, 생명의 바다를 살리자!

오구구, 어여쁜 내 아가! 나의 새미, 내일이 생일이구나. 너는 따스한 바람이 되어 엄에게로 오신 생명님이시란다. 너도 알다시피 언니가 쌍둥이였지만 한 분을 유산하고 언니 홀로 힘겹게 모셨단다. 너의 존재는 조금은 우울한 엄마에게 새로운 빛이었단다. 너는 작고 단단한 대추알 같이 매끈하게 태어났지. 엄마의 용이1를 대빵 사랑해. 네가 가족들이 준비해 주는 생일선물을 고를 겨를도 없이 오늘도 남해로 일 나가 있다라는 소식이 기특하고 또 아릿하네. 그래도 지난 오월 끝 며칠 여유를 만들어 제주, 엄마 품을 다녀간 그 순간이 꿀 같았단다.

바다의 아이, 나의 새미야! 바다를 사랑하는 나의 새미! 해녀의 삶에 특별하게 관심 있는 새미는 법환 해녀학교 최연소 졸업생이기도 하지. 너의 바다가 하수종말처리장 증설로 죽어간다는 소식에 제주바당2을 찾은 너. 친애하는 월정리 해녀님들의 고통을 공감하기 위해 함께 아스팔트 위에 앉은 너. 멋지다. 새미야!

사진제공 : 솔빈
사진제공 : 솔빈

제주 동쪽 바당으로 동부하수종말처리장이 2007년 6,000t 규모로 가동을 시작하여 2014년 12,000t, 두배로 증설해 현재 운용 중이란다. 1차 증설 때, 제주도정은 추가 증설을 절대 없다고 단단히 약속하였다네. 그러나 2017년 24,000t으로 증설을 계획하자 그때부터 월정리 마을 괸당3들은 거칠게 반대하고 있단다. 2019년 섬으로 온 엄마도 제2공항 반대, 비자림로 도로공사 반대로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이나 피켓팅을 할 때, 월정리 주민분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와서 하수종말처리장 증설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단다. 그때는 월정리 해녀들뿐만 아니라 월정리 사람들은 모두 마을공동체, 괸당으로서 증설 반대 운동을 뜨겁게 함께 하고 있었단다. 올해, 2023년 4월, 전후로 공사를 강행하며 월정리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 한것 같더구나. 자본이 분열을 주도했겠지. 행정은 자본에 힘을 실어 공사방해 금지 가처분 소송을 인용하며 시위 하루마다 100만원의 벌금을 부가해 공포를 조장하였단다. 해녀들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비닐을 덮고 밤을 새우며 오영훈 도지사 면담을 요구하기까지 하였단다. 월정리 마을을 갈라치기한 악랄하고 매정한 자본의 의중이었을까. 한때 한마음으로 같이 공사 저지를 위해 하수종말처리장 길목에 놓아둔 마을회 소유 컨테이너를 마을이 가져가 버렸다 하더구나. 마을 유지 남자들은 맨몸으로 길목을 지키고 앉은 해녀들을 찾아와 위협하는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단다. 다정했던 이웃사촌들이 원수가 되어 가는 과정이지. 슬픔이다. 얼마나 슬픈 일이니?

기억나니? 어느 해, 언니랑 너, 아빠 엄마랑 월정리에 있는 진빌레 밭담길을 걸을 때, 동부하수종말 처리장 입구에 월정리 주민들 남녀노소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왁자지껄 했었던 풍경을 기억하니? 흥겨운 마을 잔치 같았잖아. 경운기며 트랙터를 세워 출입을 꽁꽁 봉쇄하였지. 해안가 쪽으로 있는 밭담 테마파크에도 대형 농기계들이 세워져 있어서 굳센 반대 결의를 엿볼 수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쪼개어져 서로가 아픔이구나. 도대체 왜? 누가? 무엇을 위해? 뻔한 아픔과 뻔한 까닭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반복해야 할까.

엄마는 현장의 소식을 가깝게 들으며 견뎌 낼 힘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도 바다가 깨어져 아프다 아우성이라니 한 번은 들러야겠다며 나선 걸음에 ‘단체방에 초대합니다,’ 조천 여성농민회 회원분의 말간 눈동자에 대답도 못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운명을 만났단다. 공사 차량이 들어와서 해녀가 H빔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진도 보았단다. 트럭 위 포크레인을 내리는 것에 대항하며 버티고 앉았다가 손목이 비틀리며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해녀를 보았단다. 엄마의 눈물은 씨앗을 말리지 못하고 풍성하게 자라나서 가슴이 스펀지가 되었단다. 어느 수요일 엄마는 하수종말처리장을 막아 놓은 귤빛의 해녀 테왁 위에 앉았는데 왼쪽 해안가 상공 위로 계속 떠 있는 드론을 보았단다. ‘자본은 꾸준히 우리를 감시하고 있구나’ 의심에 소름이 돋았지. 어쩔 수 없는 ‘공감의 병’으로 월정리를 다시 찾았지만 엄마는 손등이 붓고 어깨며, 허리가 뻐근, 설거지도 도울 수 없는 엄마의 몸을 보았단다. ‘우리들’에게 기대어 살아보자 판단하고 엄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반대 소식방을 나왔단다. 상처받을 용기가 백배인 동무들에게 기대어 엄마는 숨을 쉬며 몸을 보살펴 볼 생각이다.

제주 바당가 아이들은 ‘우무 방학’이란 것이 있었다네. 해녀 엄마들이 바당에서 우뭇가사리가 한창 수확철인 오월에 학교는 우무 방학을 하였다더구나. 그만큼 바당이 풍요로웠단 증거지. 여전히 월정리 옆, 김녕이나 행원리 바당에서는 오월이면 우뭇가사리가 한창이지만 월정리는 우무를 잃은 지 오래라고 하더구나. 바당물에 자유로운 우뭇가사리가 담수물의 지나친 투여로 견뎌낼 수가 없었겠지. 월정리 바당은 우뭇가사리 뿐이겠니? 오분자기며 소라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더구나. 해녀들은 생업을 잃었지. 파도를 즐기는 서핑 사람 생명님들이 늘 계시지만 썩는 냄새가 월정리 바당을 연하게 늘 맴돌고 있더구나. 바당은 생명을 잃어 가고 있어.

‘제주 해녀’는 2017년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단다. 월정리 해녀는 해녀가 아니고, 하수종말처리장 반대에 길목을 막아선 해녀의 생존권은 해녀 문화가 아닐까? 동부하수종말처리장은 용천동굴4, 당처물동굴5 주변이란다. 그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서 보존 가치가 지구적으로 중요하여 판단하며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곳이지. 얼마 전 쏟아진 비로 밭담테마파크 화장실 앞 블록이 내려앉아 싱크홀이 생겼단다. 제주 동쪽은 바다로 흐르는 하천이 없어. 땅 밑으로 물이 빠져서 흘러 간다란 말씀이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지역 밑으로는 블랙홀 같은 숨골이 없을까? 용암동굴이 지나가지는 않을까? 진짜는 무엇인지 해녀들이 요구하는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해야 하지 않겠니?6

요즘 제주는 마농7 수확으로 동쪽 들판이 바쁘단다. 월정리 해녀 농부님들은 일요일이란 기회로 마농밭으로 드디어 가셔서 급하게 밭일하고 계실 때, 엄마는 하수종말처리장 앞을 잠시 지켰단다. 월정리가 고향이라는 남자 어른 분이 오셔서 커피 한 잔 달라하시고는 월정리 사람도 아닌데 이곳에 왜 있느냐며 ‘잘못이다’ 하시는 거라. 엄마는 빡쳤지. ‘월정리 바당은 월정리만의 바당이 아닙니다. 월정리가 고향이시라면 월정리 해녀분들의 밭으로 지금 가셔서 마농수확을 거들어 주세요.’라며 대꾸했단다. 월정리 바다가 어떻게 지역의 갈등이나 문제로만 축소할 수 있겠니? 제주 섬이 사람의 무게를 견딜 수 없고, 제주의 바당이 그 무게를 지탱하기 버거워 생명이 지속가능한 생존을 할 수 없다 절규하고 있잖니? 사람의 쓰레기 문제인 하수종말처리장 증설도 고통이고 시설 분산도 엄마는 정답이 아닌 것 같아. 엄마가 먼저 죽어서 사람 수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일까? 사람 개개인의 자연적인 가치를 일상화하고 소비를 줄이고 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하지 않겠니? 절실하게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간을 졸이며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를 엄마는 기다린단다. 변화는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여야 생존이란다. 기적이 현실이 될까?

어둡고 갑갑한 오늘이라도 생명은 참 아름답단다. 특히, 어미에게 장밋빛 오월의 끝날, 찬란한 생명으로 오신 새미님! 솔빈아, 너의 세상은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엄마에게 언제나 달콤새콤한 아기님! 끝없이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서 해녀들은 뭘까.

해녀들에게 이 세상은 뭘까. 해녀들이 부르는 노동요엔 ‘혼백상자 등에다 지곡 칠성판을 지고, 저승길을 왓다갓’이란 구절이 있어. 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자식 먹여 살린다는 뜻이지. 숨을 참고 바다에 들어가 물질하면 저승에 한걸음 다가서. 테왁에 기대 숨비소리를 내는 건 이승으로 빨리 뛰어가기 위함이지. 숨을 참아야만 살아지는 게 해녀의 삶이더라고.

월정 해녀 윤영옥 발언 글.  사진제공 : 솔빈
월정 해녀 윤영옥 발언 글. 사진제공 : 솔빈

40년 동안 월정리에서 물질한 윤영옥 해녀가 이렇게 말했어. “여러분 불법 동부하수처리장 공사를 막아주십시오. 용천 동굴 세계 유산을 지켜주십시오. 우리 월정 해녀들을 지켜주십시오. 제주도정이 업체를 앞세워 해녀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해녀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경찰 조사를 받고 왔습니다. 힘 있는 제주 도정을 해녀들이 어떻게 상대하겠습니까. 5년간 월정 해녀들은 아스팔트에 컨테이너에 자면서 동부 하수 처리장 공사를 온몸으로 막아 왔습니다. 업체를 앞세운 제주도정의 위협을 막아주시겠습니까? 세계 유산 용천동굴과 해녀들을 지켜주시겠습니까? 꼭 지켜주십시오. 지켜주십시오!” 삼춘은 전날 경찰 조사받을 때 떨리고 무서워 제대로 말 못한 억울함에 잠도 못 주무셨대. 그래서 똑똑히 한자 한자 써내려 간 글을 우리에게 읽어줬지.

삼춘의 음성이 한 달이 지난 지금 아직도 생생해. 지켜달라는 말이 심장에 박혔어. 왜 이렇게 해녀 삶엔 지켜내야 하는 게 많은 거야. 지키려고 애써 힘주지 않아도, 아스팔트 찬 바닥에 몸을 누이지 않아도, 그들이 그동안 지켜왔던 그것들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내버려둘 순 없는 걸까.

해녀들은 하수처리장이 들어선 후 죽어가는 바다를 목격했어. 그래서 증언하고 있지. 딱딱해야할 바닷 속 돌이 푸석푸석해져 소라 속이 비어 벌러덩 배를 까뒤집고 있다잖아. 해초들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잖아. 그런 곳에 해녀들이 온몸과 영혼을 담글 수 있을까. 그들은 아름다웠던 바다를 생생하게 기억해. 그 죄로 잃어가는 아픔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건 말도 안돼. 같이 아프고 함께 지켜야지.

이 세상에서 해녀들은 뭘까. 왜 오늘도 해녀는 삶을 지키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걸까. 숨 참아만 살아지는 팔자가 기고해서일까. 월정리 해녀들은 해녀 항일 운동의 정신을 받들어 반대하고 있데. 투쟁하고 지켜내야 하는 삶. 그 삶의 절실함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어. 이제라도 같이 아프고 함께 지켜야지.


  1. 태몽이 용의 얼굴을 한 날개 달린 백마여서 태명이 ‘용이’.

  2. 바다의 제주어.

  3. 괸당 문화는 제주의 지역 공동체 문화이다.

  4. 천연기념물 제466호

  5. 천연기념물 제384호

  6.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로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 당시, 하수처리장이 있는 용천동굴 하류 구간은 누락되었다.

  7. 마늘의 제주어

숲정이

우리 동네를 낮게 아우르는 숲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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