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00호 특집] 편집위pick #탈성장

기후위기 해법의 어려움은 온실가스 배출과 경제성장이 동조화되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속가능 성장, 그린뉴딜 등은 탄소배출을 줄이면서도 세계경제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탈탄소로의 산업전환의 과정 자체를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그레타 툰베리의 최근작 『기후책』을 비롯한 다양한 보고서들은 탈성장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장의 한계》 50주년 보고서인 『모두를 위한 지구』의 소제목이 ‘인류 생존을 위한 가이드’이다. 인류는 전환이냐 생존이냐의 선택 앞에 놓여 있으며 여기서 전환의 방향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탈성장이다. 탈성장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의 오래된 주제였고 탈/성/장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양한 주장에 전제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이래 탈성장에 관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성장주의 담론은 개인적으로 성공주의, 승리주의, 처세술, 자기계발 담론으로 현현하여 왔다. 성장주의는 경쟁, 효율성, 속도를 특징으로 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식이 아니라 성공한 개인이라는 피라미드 상단의 화려한 삶에 대한 선망과 목적의식으로 무장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총동원령이 떨어진 전장에 선 병사와 같은 심정으로 삶을 살게 만들었다. 전쟁 같은 삶, 전쟁 같은 노동, 전쟁 같은 사랑이 있었다. 성장의 논리는 분배의 논리와 한 쌍을 이루며, 파이가 커져야 나눌 수 있는 몫이 커진다는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그러나 양극화와 사회불평등 문제는 결코 성장주의를 통해서 풀 수 없으며, 파이의 크기를 키워서 나누자는 주장은 매우 위선적인 논리임이 드러났다. 이와 반대로 탈성장 담론은, 피라미드 하단으로 향할 때 우리가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전망으로 향한다. (중략)

예민하고 섬세하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관된 지향성을 가져나가야 할 것이다. 이 자체가 바로 혁명적 상황이다. 거대한 문제 상황 앞에 여러 가지 지도를 그리며 대응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혁명이기 때문이다. 탈성장이라는 거대한 문제 상황 또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따라 수동적이고 비루한 일상의 연속이 될지, 새로운 삶의 양식의 놀라운 창안이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 앞에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탈성장 전환사회로 향하는 색다른 혁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의 말처럼, 그 혁명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한 혁명, 도처에 있는 혁명일 것이다. 그래서 혁명을 하자는 얘기다.

탈성장 담론, 이제 시작이다! 전환사회를 향한 정면대응을 기대하며 by 故신승철 2019년 5월 10일


자본주의의 대체 또는 극복이 총파업과 봉기 같은 한두 번의 이벤트로 가능한 게 아니며, 자본주의의 폐절 이후 비로소 생태사회나 경제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더욱 적극적인 모색과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다. 탈성장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아닌’, 그리고 장기적이고 항상적인 기후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사회의 형태와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탈성장을 전제로 하는 것은 (국가 수준의) 참여적 계획경제와 (개인과 집단/지역 수준의) 자립과 살림의 확대, 그리고 관계와 과정으로서 연대와 민주주의 심화라는 수단들과 앞뒷면을 이룬다. 정의로운 전환 역시 이 전체 과정의 원칙이자 하나의 모듈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정의로운 전환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프로그램이고 아이디어이지만, 그 자체로 올바르고 퇴행 없는 변혁을 보장하는 개념은 아니며, 정의로운 전환이 모종의 변혁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필요하거나 해악적인 개념으로 재단할 일은 더욱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탈성장 모듈 접근 by 김현우 2021년 8월 10일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만들어 모두를 “가난한 중독자”로 만든다(라트슈, 2015:121). 경쟁적이고 탐욕적인 사회는 절대적 패자와 상대적 패자가 양산할 뿐 아니라 다른 존재의 고통을 회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근대적 질서의 틀 바깥으로 밀려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다. 그리고 모두는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 속에서 벼랑 끝에 내몰려있으면서도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교육은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는 노오오오오력을 하기를 강요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누구도 쓰레기가 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할 수도 있다.

교육은 모두의 좋은 삶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현재의 사회구조에 대해 질문하고 대안을 상상하며 그것을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서 실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 탈성장이 있다. 탈성장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로서 파괴와 단절, 소외 등의 문제가 성장이라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이데올로기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전제하고 그와 같은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현재 삶의 문제에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공교육이 담당해야할 몫이며, 그런 점에서 탈성장은 교육의 원리이자 방향이다.

학교에서 탈성장을 가르칠 수 있을까? by 남미자 2021년 6월 10일


탈성장의 2개 전선은 (1) 물질사용량, 시장 거래량의 증대를 누르는 것, (2) 경제 성장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관계와 제도를 짓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존감을 지킨 채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고, 우정과 사랑과 건강을 경험해야 하며, 돌봄 받을 수 있고 돌볼 수 있으며 여가생활과 자연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탈성장의 포부이다. 이를 실천하는 개인의 노력이 미약해 보인다면 이는 사람의 능력과 의지를 빚어내는 사회문화 시스템의 힘을 간과한 것이다. 공유의 가치를 되찾고 관계를 재발명하기 위한 경로로써 협동적 필수재의 공급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삶의 형태로 제안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실천적 행동을 권유하고 있다. (1) 이 책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토론한다. (2) 협동적 생활, 생산, 소비 영역에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다. (3) 탄소 발자국와 물질 발자국 감축을 위해 나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킨다. (4) 같은 의지를 가진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5) 노동조합이나 기후위기 행동에 동참하고 연대한다.

기후 위기에 맞서는 적극적인 제안 – 『디그로쓰읽기 by 주호 2021년 12월 25일


『성장 이후의 삶』이 제안하는 것들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져 물어도 상관없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있어 본 적이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 구체적 실천은 소비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소비의 변화가 성장의 신화를 종료시킬 수 있는 시작버튼이기 때문이다. 이전 정통 좌파들이 소비라는 행위를 단순히 자본에 포섭된 개별자들의 무의미한 행위로 폄하한 것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시대는 분명 바뀌었다. 전통적 노사대립의 전선은 지금 널려있는 많은 환경‧생태 문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임금 올려주면 멸종이 멈춰지는가. 전통적 의미의 노동조합은 종종 반환경생태적 노선으로 기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유한 계급들이 더 친환경적인 경우도 있다. 이런 전통적 대립 구도로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소비는 좀 다르다. 소비에 방점을 두면, 실천의 주체가 소비자가 된다. 소비의 선택 혹은 중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에 속한다. 소비자, 시민, 노동자, 여성, 소수자 등등 어려 겹의 능동적 주체로 복잡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따로 사회적 정체성을 강제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소비의 축소와 중지를 요구한다. 그런데 그것은 금욕적 절제가 아니다.

성장과 소비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아서 – 『성장 이후의 삶을 읽고 by 김영진 2021년 12월 25일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성장주의의 허상에서 깨어나고 지금의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풍요의 이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와 함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존재들과 연결된 생명의 그물코를 몸과 마음으로 느꼈으면 합니다. 다양한 생명의 온갖 빛, 색깔과 향기를 맛보면 어떨까요? 지구의 생명들은 내 존재 밖에 있는 객체들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주체이자 동반자입니다. 나의 숨이며 나의 몸입니다. 지구가 태어난 46억 년 전 그때부터 돌과 흙을 포함한 크고 작은 생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진화(供進化)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인류도 사회, 문화적 여러 체제와 다른 이들의 돌봄에 의해 생존해 왔습니다. 인간이 생명의 그물망에서 스스로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던 동안에도, 지구의 생명들은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입니다. (중략)

‘꿈꾸기, 네트워크 만들기, 진실 말하기, 배우기, 사랑하기’입니다. 처음엔 저도 역시 “이런 연약한 도구들도 과연 성장주의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사랑하기’가 거기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기’가 약해 보이는 도구이긴 해도 또 그만큼 놀라운 힘을 가진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사랑하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 되어 보기 by 이나경 2022년 3월 11일


대부분의 국가에서 벌어진 경제성장은 자본주의 작동방식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생태계서비스)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 기반한 교류(예, 가족돌봄)를 경제체계에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생태적 불균형과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였다. 생태적 불균형은 지금의 기후위기를 동반한다. 제이슨 히켈은 인류세가 인간의 행위와 문화가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지금의 자본주의 성장시스템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도넛경제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기반, 즉 기본적인 좋은 삶에 대한 기준 역시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성장 방식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상상력 없이 유엔 등을 통해 개도국에 이식된 현대 자본주의 산업국가 모델로 인해 오염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러한 자본주의 확산과 세계화는 선진국의 문제였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마저도 개도국으로 광범위하게 퍼트리는 계기가 되어 기후정의 문제를 왜곡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지금 우리가 탈성장을 이야기하는 이유 by 박숙현 2022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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