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비건] ⑥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느타리버섯(전편)

채식하면서 만난 어느 느타리버섯에 감동해서 그 느타리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글로 써 봤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느타리버섯을 떠올려 보자.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급식이나 도시락 속 반찬으로, 친구가 만들어준 요리에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느타리버섯은 우리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친숙한 버섯이다. 이렇게 흔한 느타리버섯 중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느타리버섯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번 글에선 채식하면서 만난 한 느타리버섯과의 은은하면서 강렬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채식 초기, 더욱 점수가 높은 소비(무턱대고 비건 1 참조)를 위해 생활재의 구입처를 이곳저곳 알아보던 와중 은평구에 있는 두레생협을 알게 됐다.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된 뒤 21년 9월 18일에 처음으로 느타리버섯을 사 먹었는데 그 맛에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먹어봤던 느타리버섯 중에 가장 맛이 좋아서 느타리에 관한 기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기존에 먹었던 느타리는 이상한 향수 냄새가 강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생협의 느타리는 냄새가 없고 식감이 좀 더 탱글탱글했다. 소금만 뿌려 구워 먹어도 맛있고, 국이나 찌개에도 넣어 먹고, 간장에 볶아먹고, 파스타에 넣어 먹는 등 내 채식 생활의 다양성을 지켜주는 참 고마운 느타리버섯이었다. 계속 그 느타리를 즐겨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평에 사는 최동군 씨가 느타리의 생산자라는 사실도 외우게 되었다. 채식 이후 이렇게 외워진 생산자의 이름이 몇 있고 이는 내 채식 생활의 자랑거리이다. 도시에 사는 청년 중 내가 먹는 음식의 생산자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후 총 21번 그 느타리버섯을 사 먹었다.

북한산 둘레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버섯. 사진제공 : 탈렌트
북한산 둘레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버섯.
사진제공 : 탈렌트

22년 6월 3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생협에 들러 장을 보는데 최동군 씨의 느타리버섯이 다른 생산자의 버섯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직원분께 여쭤보니 이젠 그 버섯이 더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던 버섯이 갑자기 없어지니 어리둥절했다. 어쩔 수 없이 대체된 버섯을 사서 집에 돌아와 먹어보니 당연히 맛이 달랐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하던가. 그동안 내 채식 생활의 한 기둥이었고 채식 초기에 긍정적인 경험을 선사해준 고마운 버섯이었기 때문에 이 버섯에 관해 더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아가 생산자를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몇 개월 후 느타리버섯을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정보를 알아보려 은평두레생협의 점장님을 만나 버섯의 행방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난 왜 느타리버섯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지 여쭸고 점장님은 물품 발주는 다른 사람이 해서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하셨다. 방어적으로 말씀하시길래 어리둥절했는데 매장을 나오며 생각해 보니 점장님 입장에선 내가 이전의 느타리를 다시 들여와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서 그러셨을 것 같았다. 하긴 생산자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면 나였어도 그 내용을 쉽게 상상하진 못할 것 같다. 질문을 잘못 드린 것 같아 아쉬웠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양평에 가서 최동군씨의 느타리버섯을 찾아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친구와 양평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던 중 시간이 남아 느타리버섯에 관해 이모저모 알아봤다. 도서관에 가서 버섯 관련 도감과 버섯학에 관해 훑어보기도 하고 북한산에 운동하러 가서 야생에서 나는 버섯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르타리에서 받은 버섯. 사진제공 : 탈렌트
르타리에서 받은 버섯. 사진제공 : 탈렌트

그러던 중 내 아이디어를 들은 친구가 성수에 있는 ‘LETARI(르타리)’라는 카페를 추천했다. 건물 지하에서 버섯을 키우고 1층 카페에선 직접 키운 버섯으로 만든 요리와 음료를 판다고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동네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가게 설명도 좋았다. 호기심에 시간을 내서 방문했다. 메뉴판에 요리가 없어 사장님께 여쭤보니 안타깝게도 8월 이후로는 음료 중심으로 운영한다고 하셨다. 차를 마시며 글도 쓰고 공간 구경도 하다가 식기를 반납하면서 직원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난 지하 공간은 이제 버섯 농사를 하지 않느냐고 여쭸고 직원분은 농사는 여전히 하고 있으며 판매는 마르쉐에서 가공품 위주로 한다고 하셨다. 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느타리버섯이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쓰는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찾아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직원분께서 감사하게도 산느타리, 황금맛송이, 그리고 들었는데 이름을 까먹은 버섯 총 세 가지의 버섯을 선물로 주셨다. 괜히 말씀드려서 얻어먹은 것 같아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매장에서 나와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최근에 친구들과 만든 탁주를 르타리에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무언가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마음이 따듯해졌다. 이렇듯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관계 안에서 조금만 마음을 열면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만족이 있다. 그런데 그 만족을 소비로 채우려다 보면 소비에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집인 이 별도 파괴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포함한 주변 모두를 착취해도 관계로만 가능한 마음의 풍족은 얻을 수 없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병은 소비 지향적 삶이 가장 멋진 삶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적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버섯에 소금만 뿌려서 기름에 구워 먹었는데 또 놀라버리고 말았다! 다시 인식이 뒤바뀌는 경험! 난 버섯의 ‘버’ 자도 모르고 있었구나. 사실 채식을 시작한 지 2년이 됐는데 매일 먹던 것만 먹다 보니 음식의 맛에 연연하지 않고 또 어느 정도는 맛에 체념하고 있었던 요즘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날아갈 만큼 엄청나게 맛있었다! 버섯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다니. 먹는 내내 음~ 소리가 절로 나왔고 요리에 관한 아이디어도 샘솟았다. 따듯한 나눔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버섯에 얽혀있어서 이런 맛을 내는 것일까? 최동군 씨가 키운 느타리버섯을 찾으러 떠나는 앞으로의 여행도 기대된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김이중

존재 방식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치 지렁이의 완벽함을 닮아 지렁이 인간이 되어 지렁이 말을 구사하고픈 게으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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