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인구가 아니야! 일과 놀이와 집이야!

지방이 소멸되는 원인은 단지 인구감소에만 있지 않다. 농촌과 지방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아야만 문제가 풀릴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창조적 발명과 상상이 필요한 때이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애써 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데 정작 문제가 안 풀릴 때가 있다. 문제의 근원(根源)이 되는 깊은 욕망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언론이 난리가 난 듯 소란을 떨며 내놓는 인구감소 대책들은 잠결에 남의 다리를 긁고 있는 꼴이다. 지방소멸 문제도 여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장장 17년간 저출산, 고령화 대책에 380조원을 쓰고도 0.78이라는 출산율을 기록했다면 한 번 쯤은 문제를 딛고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질문해보자. “인구감소가 문제일까?”, “왜 사람들은 인구감소가 문제라고 생각할까?” 인구감소가 위기라고 하는 분들은 인구감소로 노동인구가 줄면 생산력이 따라 줄고 경제성장이 둔화해 연금 문제와 인플레이션, 부동산 등 경제에 안 좋은 여러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정부와 언론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노동인구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일자리 위기를 걱정한다. 생산량이 아니라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시 질문해보자. “정말 인구감소가 문제일까?” 성장 신화를 버리지 못하는 정부와 기업이 인구감소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성장과 이윤을 뽑아내는 소비시장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벌써 국내시장도 유아 관련 산업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경제 뒤편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는 약 100여 동안의 소비와 생산의 절제하지 못한 성장으로 요동치고 있다. 시장 감축 없이 인류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한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실험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일과 놀이가, 놀이와 관계가, 자연과 일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 gerlex

지금은 파괴적 창조와 같은 창조적 인구감소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생산, 기술, 기후, 불평등, 시장 등의 달라진 생활 경향으로 보면 문제는 인구감소가 아니다. 지방정부도 늦지 않게 사회기후 경향에 맞춰 지역을 발명해야 한다. 그 실마리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사람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여기에 있다.

세대별로 다르겠지만 최근 조사에서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가지 않는 이유를 일과 놀이, 관계 등으로 꼽았다. 역으로 수도권에서 살기 어려운 이유는 집과 높은 생활비, 자연환경 등이었다.

엄청난 예산과 긴 시간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짚어 그 부위에 빠르게 침을 꽂는 도시침술(Urban Acupuncture)이면 된다. 100여 년 전 만들어진 매뉴얼에 따를 게 아니라 전환적 상상과 실험이 필요하다. 대기업유치나, 도로 건설, 회관 건축, 전문가용역 등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는 기대를 한다면 도루묵이다. 380조 원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주민들이 원하는 ‘일’과 ‘놀이’, ‘관계’, ‘집’, ‘자연’ 등을 핵심 단어로 지역마다 상상과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례들도 있다.

(1) 지역 정체성과 주민 자발성을 기초로 한 지역경제_내발적발전모델

(2) 개개인이 하고 싶은 다양한 일로 살아가는 생업

(3) 농민, 예술가, 청년 등의 지역(활동별) 기본소득

(4) 생태적 생활 욕구에 따라 작은 농사와 자신의 일을 병행하는 반농X
(5) 일본 아와지섬에서 일의 형태 연구섬을 만들어 지금까지 없었던 여러 가지 일을 디자인한 경험
(6)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초대해 집과 텃밭, 작업실, 기본소득 등을 제공하는 실험을 연구 중인 국내 지자체
(7) 전남 화순군이 부영주택과 협력해 올 상반기부터 청년 및 신혼부부 1만원 주택실험

(8) 관광의 종말을 선언하고 여행객을 일시적 주민으로 만드는 원더풀 코펜하겐

한 가지 덧붙인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험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일과 놀이가, 놀이와 관계가, 자연과 일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이라면 인구감소 대응이 한 부서의 일로 그칠 게 아니라 창조적 인구감소를 정책 주제로 모든 행정이 통합적으로 기획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농촌(지방)으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한 농촌(지방)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농촌(지방)에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방식과 양식을 발명해야 한다. 자연과 가깝게 지내며, 다양한 일로 경제활동을 하고, 지역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하는 농촌(지방)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해도 좋다. 젊은이들이 쓰는 ‘농며들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의 취향과 경향을 반영해 새로운 농촌(지방) 생활양식을 만들어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래서 ‘농촌(지방)의 발명’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지방소멸 문제에 적중(的中)하는 실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지역형 일의 형태연구소’와 ‘생태워크숍센터’, ‘숲속 예술인 주택과 작업장’, ‘산나물요리학교’, ‘빈집 은행’을 세우거나, ‘생태 기본소득’과 ‘지역 내발적경제 청년(중장년)인턴십’을 제공하는 등 다양하고 신기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매일 벌어졌으면 좋겠다.

이 실험으로 지역이 즐거워지면 다 된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다.

이 글은 (사)밝은마을이 전북 진안에서 주최한 ‘지방소멸 대응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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