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인 마을, 느낌표인 주민(上)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가 팬데믹의 모순 아래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실을 진단하고, 성장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실천 사례들을 살펴보고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아직도 이웃이 어렵다.

두어 달은 옆집과 신경전을 벌인 것 같다. 옆집 다세대 주택에 젊은 부부(로 추정되는 가구)가 들어오면서 그 일은 시작되었다. 우리 집은 대문이 없고 집 왼편으로 현관이 있을 뿐이다. 오른쪽으로 화단(이었을) 긴 자리가 있고 담장은 없는 구조라서, 상대적으로 담벼락과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골목길 사이에 여유 공간이 없어서 쓰레기봉투를 적치하기 어려운 옆집은 자연스럽게 그 집 대문 바로 옆인, 우리 집의 화단 자리에 쓰레기봉투를 내놓았다.

거기까진 별로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 집 대문 옆으로 놓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세들어 살면서 무슨 우리집이라고 공간 침범에 대해 날카롭게 각을 세울 이유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전과는 다르게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 분리수거 봉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데 있었다. 우리 사는 골목이 큰길과 면한 넓은 골목이라면 흔히 보는 풍경대로 리어커나 손수레를 끌고 재활용품을 모으시는 노인들이 쉽게 오가면서 쓸만한 재활용품을 금방 수거해갔으리라. 그런 환경에서 살 때는 나도 분리수거 봉투의 필요성을 잘 모르고 지냈었다.

그러나 이 골목은 큰길에서는 약간 벗어난 안쪽 골목인데다가, 늘 주차되어 있는 차량도 많고 오르막길이라 접근성이 좋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환경미화원들이 수거하기 전까지는 거의 손을 대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지만, 적절한 분리배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쓰레기는 공무원들이 수거하지 않는다. 내놓은 재활용품들은 순식간에 너절한 폐기물 더미가 되어가고 오가는 사람들이 그 위에 쓰레기를 던졌다. 거기에 비라도 내리면 그 참상이란.

어느 순간 참기 어려워진 나는 ‘우리 집 영역’ 안으로 들어온 쓰레기들을 ‘옆집 영역’으로 슬쩍슬쩍 밀어냈다. 마치 국민학교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시절 책상에 금을 긋고 옆자리 녀석의 공책이며 교과서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했던 시절처럼. 정말 그만큼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옆집은 전혀 눈치를 보지 않았다. 내가 밀어낸 쓰레기를 다시 되밀어 놓거나, 누군가(아마도 참다 못한 옆옆집의 할머님이라고 생각한다) 정리를 한 건지, 환경미화원들이 가져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쓰레기들이 없어질 때까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반격의 시작

재활용품들은 순식간에 너절한 폐기물더미가 되어가고 오가는 사람들이 그 위에 쓰레기를 던졌다. 
사진 출처 : Gaurav Dhwaj Khadka
재활용품들은 순식간에 너절한 폐기물더미가 되어가고 오가는 사람들이 그 위에 쓰레기를 던졌다.
사진 출처 : Gaurav Dhwaj Khadka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 나는 옆집 담장 안으로 정중하게 요청사항을 작성해서 밀어넣었다. 분리수거 봉투를 사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쓰레기 무단투기에 대한 과태료를 언급해서인지, 잠시 동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정말 잠시였지만.

옆집과 우리집 영역의 경계를 표시하던 화분과 에어컨 실외기는 점점 처음의 자리보다 왼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옆집과 우리집의 사이에는 쓰레기봉투와 쇼핑백이나 과자 상자 같은 데다 함부로 던져넣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분리수거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재활용품들은 수거가 느렸고, 비를 맞아 엉망이 된 종이더미들을 옆집 영역으로, 이번에는 별로 정중하지 못하게 돌려놓은 다음 다시 그 쓰레기들이 고스란히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사실 그때까지 구청에 무단투기 신고를 한다거나 ‘CCTV 작동 중!’ 같은 살벌한 경고문을 붙이지 않은 데는 내가 마을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작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상했더라도, 옆집 사람들이 말이 안 통하는 ‘빌런’이더라도 공격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어떻게 내 자신 공동체활동가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러나 “적절한 분리배출 방법만 지켜준다면 공간을 공유할 의사가 있다”는 내 두 번째 요청문이 거절당한 데 대한 분노는 컸다.

나는 마트에 가서 실외용 빗자루 세트를 샀고, 어느 주말 아침 우리 집 화단과 골목을 깨끗이 쓸어냈다. 물론 옆집에서 시작하여 우리집 앞에 쌓여 있던 쓰레기들도, 깨끗하게 옆집 담벼락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생겨낸 빈 공간에, 그러니까 내가 이제껏 허용했기에 옆집이 쓰레기를 적치할 수 있었던 그 공간을, 왼쪽으로 밀려났던 에어컨 실외기며 화분과 음식물 쓰레기통, 여하튼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다 끌어내어 완전히 채워 버렸다. 옆집 부부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른 아침에 그 일들을 마친 다음, 나는 문을 닫고 들어와 손을 씻었다. 그러나 빌라도가 그러했듯이, 나는 결코 마음이 개운하지는 못했다.

과연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까?

*다음 (下)편에 계속됩니다.

주호

황선영 또는 글 쓰는 주호. 세기말 천리안 통신 활동에서 走狐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을자치와 도시재생활동가. 공유경제와 공유밥상을 추구하는 공동체주의자. 성북동에서 곰과 강아지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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