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는 법 – 『나의 작은 철학』을 읽고

『나의 작은 철학』의 저자는 윤리, 정치,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개념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함께 깊고 폭 넓은 사유를 보여주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특히 공존과 연대의 가치에 대해 강조한다.

장춘익 저 『나의 작은 철학』(곰출판, 2023)

우리는 일상에서 자기 생각과 판단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믿는다. 즉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고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우리의 상상력은 자유롭다는 생각 자체가 하나의 오래된 상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상상력의 가장 중요한 토대는 적극적으로 무엇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다. ‘달리 보이는’ 것에 머무는 능력이다. 달리 보이는 것에 머물 수 있어야 ‘달리 생각하기’가 시작된다고 지적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철학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본다.

저자는 윤리, 정치,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개념에 대해 냉철한 분석과 함께 깊고 폭넓은 사유를 보여주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특히 공존과 연대의 가치에 대해 강조한다. 연대와 공존을 위해서는 삶에서의 ‘성숙함’이 요구되는데, 저자는 성숙함이라는 개념을 사회성원으로서 적절히 판단하고 처신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라 정의하면서도 추가적인 사항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타인의 노고를 인정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몫을 부담하고자 하는 태도다. 사회적 용어로 말하면, 사회적 협동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음을 인식하고, 사회적 협동으로부터 이익만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부담을 지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사회적 삶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성숙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한 현대인들은 과연 저자가 말한 성숙함에 도달했을까?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유라는 것은 편하고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유란 다른 생각, 새로운 경험, 낯선 스타일의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으로, 창조성이란 대부분 모순되는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이런 경험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유를 통한 창조성이란 바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정치적 행위의 목표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따를 규칙들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적 행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것에는 ‘상품경제’가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상품경제 안전성의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바로 패배를 자기의 책임으로 돌리게 하는 데 있으며, 민주주의의 안전성도 바로 패자가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신 잉여 인간’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경쟁은 새로운 잉여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경주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 잉여 인간은 기존 계급과는 다르다. 프롤레타리아도 부르주아도 아니다. 고용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수입이 없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와 비슷하지만, 교육 과정에서의 투자가 암시하듯이 크고 작은 후원자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신 잉여 인간에게 저항이란 어떤 것일까? 현재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으로는 ‘자기 복제의 포기’ 같은 것이다. 자식을 낳지 않거나 혹은 최소화한다는 말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우연성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러한 우연성에 잘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로 성숙함이 아닐까? 우리에게 성숙함이 필요한 것은 복잡해지는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타인과의 공존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을 제공해 주는 앎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낙지(樂知) 인생’이라는 시에서 ‘낙지(樂知)공동체’에 대한 꿈을 토로하고 있다. 앎이 그저 지적 향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앎이 삶이 되는 것, 또한 앎을 혼자가 아니라 연대를 통해 이루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꿈꾸어야 하는 ‘낙지 공동체’가 아닐까? 이러한 공동체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