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⑮ 단 한 번뿐인 실존의 시간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고양이 대심이 집을 나가다

“연구실에 대심이가 안 보여!” 아내와 저는 다급하게 차를 몰고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연구실에 CCTV를 달아놓고 퇴근 후 집에 가서도 고양이들이 잘 있는지 지켜보곤 하는데, 그날따라 대심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을 조마조마하면서 연구실에 도착해보니, 그곳에서 기거하던 연구원들도 망연자실 대심이의 실종을 알렸습니다. 아마 어젯밤 택배가 오갈 때 열린 문으로 슬쩍 나간 것 같다고 말이지요. 저희는 아주 절박하고 애달프게 연구실 주변 골목을 샅샅이 뒤지며, 대심이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대심이는 연구실이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당산동 주변에서 살던 길냥이였습니다. 마당에 사료를 먹으러 오던 단골손님이었는데, 그만 정이 들어 버렸지요. 나중에는 아예 연구실 문 앞에 둥지를 틀고 저희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보냈던 고양이였습니다. 대심이를 들이게 할 요량으로 우유로 유인해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실내로 들어온 대심이는 하필이면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의 책상 밑으로 가서, 그녀의 발을 깔고 누워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아내는 발등 위에 대심이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작은 생명의 숨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에 감동해서 대심이를 연구실 안으로 들였습니다. 아내에게는 첫 고양이였지요. 그런 이후부터 대심이는 언제 길냥이였던 시절이 있었냐 싶게 저희 연구실의 터줏대감이 되었지요.

대심이는 세미나 하는 자리에도, 책을 읽는 자리에도, 글을 쓰는 자리에도 꼭 옆에 앉아 있거나 곁에서 잠을 자곤 했다. 사진제공 : 철학공방 별난

그런 일이 있은 지 4년이 지난 오늘, 대심이가 돌연 연구실을 나가버렸고 저희는 문래동 골목골목을 헤매고 돌아다니고 대심이를 애타게 찾게 된 것입니다. 시간은 두 시간, 네 시간, 여섯 시간 자꾸 흘러갔습니다. 고양이 탐정을 부를까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영영 대심이를 못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요. 골목을 헤매고 있던 아내를 만나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이미 실내생활에 익숙해진 대심이가 황량한 바깥 생활에 얼마나 고생을 하게 될지 두려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심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지요. 주변 사람들이 대심이와 닮았다고 연락을 해 와서 달려가 보면 닮았지만 아주 다른 길냥이가 발견되기 일쑤였습니다. 대심이, 대심이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대심이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무더위와 피로감 때문에 다시 연구실에 모였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 해서 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대심이는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며 석양이나 일출 때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래서 초저녁에 다시 출동을 했지요. 아내는 “대심아, 대심아”하면서 골목을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연구실 건물 바로 앞 골목에 기대어 세워둔 리어카 뒤에서 고양이의 절규에 가까운 애타는 대답이 들리는 겁니다. “냐옹, 냐옹, 냐옹” 그것도 근처 다방에서 일하는 분이 먼저 듣고 저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다같이 한마음으로 낡은 리어카에 쌓여 있는 목재며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심이가 까맣게 검뎅을 묻힌 채 겁에 질려서 뛰어나왔습니다. 우리는 대심이를 붙잡았고, 그제서야 환희와 경탄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일이 바로 몇 년 전 일인데도 바로 어제 일만 같군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아이를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아내에게 ‘꽁꽁이’라는 아이 이름을 붙여주고, 이따금 아내가 자고 있을 때 그 아이의 미소를 상상해봅니다. 이따금 아내가 아이 목소리로 변조해서 얘기를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하고 싶다는 것은 대부분 들어주게 됩니다. 상대방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안다는 것은 소중하고, 아주 소중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본 적이 없고, 평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내가 갖고 있는 삶의 깊이와 잠재성을 끊임없이 발견하면서, 그 속에서 생명의 위대함과 경외를 느끼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아내를 뻔하게 보거나 일정한 모습으로 단정지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내의 색다른 면모와 마음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 저에게는 일상입니다. 이따금 아내의 인내력의 한계를 알기 위해서 시키는 일을 안 하고 딴청 피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장난이고, 되도록 아내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살림을 같이 하는 편입니다. 심지어 아내에게 한 번도 화나 짜증을 낸 적이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딱 한번 짜증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결혼식을 올리기 바로 며칠 전의 일입니다. 워낙 세상물정에 어두운 신랑과 결혼을 하는 터라 아내는 매일매일 결혼예복 맞추랴, 주례신부님과 면접하랴, 천주교에서 주최하는 교육받으랴, 예식에 쓰일 꽃이며, 사진이며, 신혼여행지를 알아보느라 무척 바빴습니다. 저는 약간 멍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짜준 스케줄을 소화하는 데도 힘에 부쳤지요.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온종일 드레스샵을 돌다가 오후 늦게 성당에 본당 신부님과 혼인면담을 하러 가던 길에 저는 아내에게 “일정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하면서 토라져서 짜증을 낸 것입니다. 맹세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 제우스만이 불벼락을 내리꽂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내는 저를 열중 쉬어, 차렷을 몇 번 시키듯이 야단을 쳤고, 저는 조용히 반성의 의자에 앉았지요. 그리고 저는 그때 이후로 10년 동안 짜증 한번 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짜증을 한 번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내의 야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이를 발견하고, 늘 그리워하고, 도와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단 한 사람, 그 유일무이성을 늘 느끼고 살았지요. 아내는 이따금 말합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아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도 막막해지곤 했습니다. 서로에게 기대고 살아가는 저희들 중 하나가 아프다는 것은 우리가 기댈 곳, 마음과 몸의 의지할 곳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웃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쉬고, 함께 대화하는 그 시간들 순간순간이 항상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나이가 많이 먹어버렸는지, 제 친구들과 선생님들 중 이미 떠나가 버린 분들도 있습니다. 무지개다리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이 순간순간의 시간이 절박하고 소중하고 가슴에 깊게 와닿습니다.

단 한번뿐인 실존의 시간

“난 이번 생에서는 틀렸어” 이런 얘기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여기 살아가고 있는 이번 생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좌우명이지요. 가난하더라도, 실패가 많더라도, 기회가 적더라도 하나하나 삶과 일상과 일을 만들어보자는 다짐을 하며 살고 있지요. 제가 그런 생각을 품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는 이유는, 제가 갖고 있는 삶과 시간의 유한성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날 때 더욱더 그렇습니다. 삶의 시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몇 십 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열심히 무언가를 함으로써 유한한 시간 동안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득 여부와도 무관하기 때문에, 돈을 받든 안받든 토론회나 세미나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것이 유한한 실존이 던지는 몸부림이며 춤사위와도 같은 생명의 몸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샤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다지요. 본질로서의 “~은 ~이다”라고 단정내리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살아가고, 살아갈 의지와 삶의 현장을 만들어내고, 삶의 영토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늘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 삶의 시간 즉 실존의 문제지요. 제가 고등학교 때 샤르트르를 좋아했던 이유는, 세상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삶이 겪어야 할 무망함과 덧없음, 허무를 이겨내는 것이 현실참여이자 실존의 참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주제에 저는 제법 철학을 깊게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입시에 지친 고등학생들 틈에서 철학적 사색과 삶의 위대함에 대해서 설파를 하고 다녔지요. 그래서 저를 교주나 종교에 빠진 사람과도 같다고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きたのたけし)는 일본 주간지 『슈칸포스트』(2011.4)​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지진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명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여러 사람의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어야 했던 각각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 하나의 대륙에 필적할 지위를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죽어간 304명의 사망자의 의미는, 304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한 304개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들 한 명 한 명은 영화 수 십 편으로도 부족할 만한 사연과 스토리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철학자 쥘 들뢰즈도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의 소멸과도 같다”라는 말을 남겼지요.

여기서 한 사람의 삶과 실존의 의미를 누구도 침해될 수 없고 가장 존엄한 권리로 여길 필요가 생깁니다. 그것은 인간만의 삶과 실존만이 아니라, 신체와 삶을 갖고 있는 모든 존재, 즉 동물, 식물, 벌레, 미생물, 자연 등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생명권 시대의 개막이 바로 이런 점에서 도래한 셈이지요. 생명권 시대의 개막은 통속적인 문명의 비루하고 똑딱거리는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삶과 생명의 창조발화의 시간, 즉 실존의 시간을 재건할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한 순간의 찰나가 우주적 시간에서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순간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권은 단조로운 일상을 구성하는 자본주의 문명을 종식시키고, 모든 찰나마다 경탄과 경외, 행복이 찾아올 수 있는 시간의 수평선을 그릴 것입니다. 그것을 들뢰즈는 차이나는 반복의 시간, 그래서 후렴구의 화음으로 가득찬 시간으로도 묘사했지요. 결국 생명권 시대의 개막은 우리의 삶의 의미와 실존적인 차원을 재건하고 부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유한성을 문득 깨달았을 때

박사과정 동안 학부 때 함께 했던 학생회관 동아리실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동아리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학교 담벼락 너머 건물에서 S선배가 잡지를 만들고 있었지요. 벚꽃이 남산을 덮고 있었던 어느 날 그분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함께 벚꽃구경 가자고 말이지요. S선배는 남산을 흰빛으로 물들인 벚꽃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남산 길을 저녁까지 헤매고 돌아다녔지요. 술 한 잔 마시면 좋았겠지만, 선배는 마감 때문에 다시 잡지사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아쉽게 헤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난 가을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S선배가 많이 아프다고, 말기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걱정이 많이 돼서 용기를 내서 전화해 봤습니다. S선배는 웃으면서 많이 아프니 한번 병실에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몰라서 찾아가는 것을 계속 주저했습니다. 한 번은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만남이 불과 몇 달 전인데, 돌연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저를 주저하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며칠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그 선배가 돌아가셨다고, 저는 조용히 울었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 S선배의 친구들, 더 정확히 말하면 제 누님과 돌아가신 S선배의 남자친구, 그리고 S선배가 친동생처럼 아끼던 후배가 만나서 술을 마시는데 나오라며 저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저는 낡은 양복을 차려입고 그 자리에 나갔습니다. 다들 취해 있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 S선배가 친동생처럼 아끼던 후배가 바로 지금의 저의 아내입니다. 아내는 초저녁잠이 많아서 그날 술자리에서 연신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많이 취해 있었고, 그날 제가 아내를 집에 데려다 주었지요. 돌아가신 S선배의 후배이기 때문에 더 좋은 감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찍 출근해야 하니 모닝콜 해달라는 아내의 한 마디에 그날 저는 잠을 안 자고 새벽을 꼴딱 새고 나서 전화를 스무 통을 했습니다. 아내는 웬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겠지요.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 날, 돌아가신 선배의 남자친구이신 형님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막 허락도 없이 만나더니, 결혼 해부렀어, 도둑놈”이라고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술회를 하셨지요. 그리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바람 피면 내가 직접 야삽으로 묻어버릴랑게!”라고 호통치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 순간의 찰나가 우주적 시간에서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순간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
사진출처 : StockSnap

그리고 그 S선배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다시 그 멤버들이 모여서 S선배가 좋아하는 매운 닭발, 소주, 담배 등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먹고 마시고 대화했습니다. 사실 그 S선배는 저에게는 아주 잠깐 동안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아내와는 추억들이 많아서 아내가 늘 S선배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때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남산에서 아이처럼 웃던 S선배를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많이 남기고 홀연히 떠나가나 봅니다. 저와 아내는 긴 시간 동안 S선배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끈은 점점 스토리를 만들고, 실존을 만들고, 최선을 다하는 찰나의 순간들을 만드는 두터운 끈이 되고 동아줄이 되고 인연이 되었지요.

생명평화의 시간, 실존의 작동에 주목하자!

하이데거는 “될 대로 살지, 뭐”라는 속인(Das Man)의 삶을 벗어나 현존재(dasein)라는 끝과 유한성을 깨닫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했다지요. 그래서 흔히 ‘내려놓지 못한 사람’과 ‘내려놓은 사람’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려놓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실존에 대한 응시와 자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고 프랑스 심리치료사 펠릭스 가타리는 말합니다. 즉, 실존을 깨닫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자각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작동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존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려놓은 사람들이 나서서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가진 우리 중 어느 누군가를 만드는 주체성 생산의 밑거름이자 판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존의 작동은 판짜는 사람, 공동체를 재건하는 사람, 주체성 생산을 도모하는 사람으로 더 전진배치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실존의 참의미에서 머물던 실존주의적인 맥락을 이제야 넘어서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스마트폰의 글씨가 안 보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의지 부족, 노력 부족, 책임 부족으로 여기고 샤워를 열댓 번 하고 책과 대면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은, 그것이 의지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노안이 와서 그런 것이라는 점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도 어쩌면 한때의 열정이지 않나 하는 무망한 느낌도 들었지요. 그러나 이제 저는 약간의 배치의 변화를 가하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공부를 시키고, 책을 읽히고, 토론을 유도하는 사람으로 저를 재배치한 것이지요. 그래서 책을 쓰자며 사람들을 모아서 책을 쓰게 만들고 수정과 첨삭,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혼자서 책을 쓰고 읽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한 일입니다.

지금 연구실 한구석에 대심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품도 거하게 하고, 밥을 게걸스럽게 먹고, 한번 힘줘서 똥도 푸지게 싸는 대심이의 일상이 저에게는 행복한 삶의 척도입니다. 대심이는 세미나하는 자리에도, 책을 읽는 자리에도, 글을 쓰는 자리에도 꼭 옆에 앉아 있거나 곁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아내는 “대심이에게 심부름 시켜도 잘 할 것 같아”라도 말하기도 하지요. 생명평화의 세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낮잠을 푹 자고 있는 대심이에게 이 무더운 여름 오후가 생명평화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의 삶과 실존의 영원성은 생명과 자연과 함께 하고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순간과 합일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고, 쓰고, 읽고, 듣고 하는 모든 일을 생명과 자연의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심이 옆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대심이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저에게 넌지시 말하고 있는 생명평화의 약속에 대해서 귀 기울이게 됩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댓글 1

  1. 글속에… 모습이, 목소리가 들리는 신비… 글속에서ㄴ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계시니 그러하겠죠… 그래서 글쓰라, 글 써라 하신건지도… 어린시절부터 내내 글쓰기란 동사안에 살아왔어도, 가능한 글쓰기와 무관하게 거리두며 살던 자에게, 새로운 동기가 되어주셨는데… 그 이유를 이제사 여기에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되네요… 산자와 되돌아 간 자의 경계엔 살아있을때 살던 이야기가 남겨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구절구절 구비마다 제멋대로 흐르는 눈물은 어쩔수가 없네요… 사별만이 갖는 그리움의 방식이겠지만, 그럼에도 절망적인 시대의 아픔속에 큰 위로가 되어주시는 선생님의 글이 남아 이런 신세풀이도 하게되네요… 고맙습니다, 이제 산 이들의 일은 산 이들에게 맡겨두시고, 그저 평안히 평화롭기만을… 기도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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