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문명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연극의 서사구조를 중심으로 ④

생명과 자연의 한계는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새로운 전환사회를 맞이하여 탈성장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전환의 시계는 임박했다. 여기서 연극인들은 새로운 주체성,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내용은 공동체, 농적 가치, 소수자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 등과 같이 탈성장 시대를 살아갈 주체성에 대해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닐까? 연극이라는 한판의 난장이 새로운 시대를 맛보는 시간이 되면 어떨까?

5. 전환의 이야기구조의 구체적 양상

1) 둘레환경의 변화 : 산업재편과 농업의 위기

문명의 전환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파국적인 상황의 도래 역시도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그중 하나가 일자리, 소득, 식량 등의 위기의 상황이 그것일 것이다. 성장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둘레환경은 인간이 통제 가능한 수준에 있었던 자연과 생명이며, 외부효과에 따라 폐기물 등을 마음껏 버려도 되고, 무한한 자원 채굴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이제 전환의 이야기구조는 명백히 벌어지고 있는 생명과 자연의 한계와 우리 주변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둘레환경의 변화를 말하는 것에 있다. 특히 연극인들은 이러한 둘레환경의 변화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이에 대응하는 이야기구조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편만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구조의 설립이 필요하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이행을 앞두고 수많은 엔진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근미래에 찾아올 것이다. 그러한 녹색구조조정은 사실상 국제무역에서 강제되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노동자들의 전환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성찰과 전망에 대한 이야기구조가 필요하다. IMF 사태 당시 자활이라는 시스템은 개인으로 분해되어 우울, 전망상실, 자살의 위기로 치달아 갔다. 어떻게 하면 녹색전환의 핵심인 정의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그것의 이야기구조는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구조 설립에 대해서 노동조합 자체도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극적 상황에 대한 극적인 반전으로서의 연극인들의 이야기구조가 이에 앞서 말하는 상황도 필요하다.

동시에 농업의 위기와 농촌의 붕괴는 식량위기 상황에 탄력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다. 이에 대한 전환의 시나리오는 농 가치 중심의 문명의 전환이라는 이야기구조가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현실화에 이르는 이행기의 전략으로서의 이야기구조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실제로 유럽의 농업기반이나 생태공동체기반이 68혁명 시기동안의 히피라 불리웠던 욕망해방의 탈주로에 따라 설립되었던 과정은 이야기구조의 설립의 필요성을 알려준다. 어떻게 거대한 전환의 탈주로를 생명과 자연을 향해 안으로 되말리는 역행(involution)적 과정으로 만들 것인가의 지점에서 이야기구조의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사물, 생명, 기계, 자연과의 관계 맺기의 변화 : 혼종적 주체성 양상

영화나 연극을 비롯한 예술은 언제나 한발 앞서 사회의 변화를 노래한다. 문명의 전환 앞에서 탈성장이라는 앞서가는 이야기를 연극 속에서 보고 싶다. 
사진출처 : bswise
영화나 연극을 비롯한 예술은 언제나 한발 앞서 사회의 변화를 노래한다. 문명의 전환 앞에서 탈성장이라는 앞서가는 이야기를 연극 속에서 보고 싶다.
사진출처 : bswise

사물, 생명, 기계, 자연과의 상호의존성에 입각한 관계 맺기의 차원은 최근 포스트 휴먼 등의 담론에 따라 규명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중심주의에서 인간과 관계 맺는 생명과 자연의 관여성 차원으로의 이행은 시작되었다. 근대문명의 비판으로서의 인간중심주의가 비판 받는다 하더라도 양육자이자 살림꾼인 인간의 역할을 축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혼종적 주체성 양상으로서의 인간은 생명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더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자원으로 간주하고 대상으로 간주하는 기존 문명의 방식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을 하나의 주체성으로 연루시키고 참여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사물, 생명, 기계, 자연과의 혼재면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구조에 대한 접근은 도나 해러웨이 등의 작업에서도 보이듯이 색다른 이야기구조와 예술작품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전환사회에서는 주인공담론으로 이루어진 책임주체와 자아(ego)에 대해서 기각시키며, 보다 확장적이고 포용적인 주체성의 전모를 드러낸다. 이 시점에서 생명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제출될 수 있으며, 연극의 테마설정이나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비인간주체성을 끊임없이 참여시키고, 이에 대한 이야기구조의 확장성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저 객체나 대상으로 존재하는 비인간주체가 아니라 공동제작, 공동생산의 주체성으로 간주하는 과정은 자연과 생명의 심원한 깊이와 잠재성을 깨닫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산(共産)의 과정일 수 있다. 연극은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주체성도 함께 득실거리고 우글거리고 웅성거리는 하나의 전환의 판을 설립하는 과정일 수 있다.

3) 생활양식에서의 변화 : 대응과 적응의 양식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던 성장주의적 삶의 방식, 다시 말해서 성공주의, 승리주의, 자기계발, 속도, 효율성, 경쟁 등의 통속적 문명의 삶의 양식의 재편이 필요하다. 이는 능동적 전환에 있어서는 느림과 여백, 삶과 실존의 재발견을 통해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수동적 전환에 있어서는 패배주의적인 마인드나 우울, 감쇄, 후퇴 등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구조를 바꾸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근대의 주인공담론이 갖고 있는 주체-대상의 이분법을 허물고 대상으로 간주했던 자연과 생명의 객체지향적인 마인드로 역행(involution)해야 한다. 여기서 역행은 ‘안으로 되 말리는’ 것으로 자연과 생명을 향해서 되감기는 방식의 객체지향의 삶의 방식, 즉 농(農)가치의 부활을 의미한다.

가족주의적인 습속에서 벗어나 대안적 친척을 동물, 식물, 사물, 기계, 미생물과 함께 구상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안으로 되 말리는 과정은 더욱 혁명(revolution)과 같이 밖으로 파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환과 재-진입의 속도를 높이면서 생활양식의 궤도를 탈성장으로 연착륙시킬 것이다. 통속적인 생활양식으로서의 TV, 육식, 자동차, 아파트, 마트, 일회용품 등의 가시적인 분야에서의 변화 역시도 수반될 것이지만, 보이지 않게 삶의 지향성을 바꾸는 것이 우선적일 것이다. 전환사회는 완벽한 다른 생각, 다른 생활양식을 창안할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사용할 만큼 바쁘고 활력 있는 삶 속에서 전환사회의 가능성의 창이 열린다. 자동적이고 편리한 방식, 찰나의 단기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저편으로 사라지고 생명과 자연을 돌보는 무수한 활력을 발견하기 위한 증후적인 이야기구조 설립이 가능하다.

연극성은 통속적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안과 발견을 통한 이야기구조의 설립과 극적 반전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완벽히 다른 생각, 다른 삶, 다른 신체의 가능성에 대해서 몰두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의 모델을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델들을 넘나들며 탄력성을 추구하는 이야기구조여야 할 것이다. 완전히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낙관과 전망 속에서 극적 형태를 추출하고 창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다는 색다른 열망과 욕망의 과정적이고 진행형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연극에서 가능하다.

4) 시공간의 변화 : 사회적 응집도와 로컬 민감성

현존 문명은 미래에 대한 투자나 미래세대의 삶이나 가치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고 단기투기성 자본인 부동산 이득에 심취해 있다. 다시 말해 이자(interest)에서 지대(rent)로 이행해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전망을 상실하고 찰나의 삶에만 몰두하는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조효제님의 『탄소사회의 종말』(2021, 21세기북스)에 따르면, 사회적 응집도 다시 말해서 공동체적 관계망에서의 유대감이 더욱 높아져야 사실상 미래세대의 시간이 개방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개인으로 분해된 삶에 있어서는 미래세대의 삶과 시간이 개방될 수 없으며, 눈앞의 이익과 같은 단기적인 시간대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전환사회의 이야기구조가 갖는 시간의 양상이다.

전환사회의 이야기구조가 갖는 공간의 양상.
전환사회의 이야기구조가 갖는 공간의 양상.

동시에 국지적인 것의 깊이와 잠재성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전지구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는 공간적인 영역 역시도 제기될 수 있다. 우애와 환대가 호환 가능하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있다. 다시 말해 로컬민감성 자체가 문턱 있는 유토피아의 정당화논리가 아닌가하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소수자에 대한 사랑은 자신과 거리가 먼 기후난민과 제 3세계 민중에 대한 사랑의 초석일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이 전환사회의 이야기구조가 갖는 공간의 양상이다.

결국 시공간의 구도에서 본 전환사회의 전망은 공동체의 설립이라는 이야기구조에 기반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개인주의 시대에 연극의 무대와 판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로서의 공동체성을 고무하고, 동시에 현장에서의 공동체 즉 보이는 공동체로서 작동할 필요성이 이다.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한 판의 난장을 벌였다는 뿌듯함과 해방감이 느껴지는 장이어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과 가장 거리가 먼 존재에 대한 사랑의 가능성이 열리고 미래세대의 시간이 열릴 것이다.

6. 나오며 : 극적인 전환의 이야기구조에서의 새로운 상상력

전환의 이야기구조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테제 즉,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자본과 권력이 작동하기 때문에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공동선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지점에 대한 비판적이고 뾰족한 문제제기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권력과 자본은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봉건적 잔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가속화함으로써 자본주의문명의 한계 지점을 돌파하는 방향에서의 탈성장의 상상력이 작동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해결에는 물론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 역시도 필요하지만, 국가주의적인 해결방안에 앞서 자치와 자율의 행위양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의 한 판은 탈성장의 상상력을 모으고 도모하고 문제제기하는 장이어야 할 것이다.

현존 문명은 사회를 미리 주어진 전제조건으로 보면서 공통감각(Commons Sense)이나 상식 속에서 사회는 자동적으로 생기게 되어 있다는 근대의 헤겔과 같은 동일성의 철학자들의 영향력 하에 있다. 이런 생각은 모순, 대립, 갈등이 사회의 성숙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그러나 수단, 예멘, 미얀마, 시리아 등 죽은 국가, 죽은 도시가 즐비하게 출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사회구성적이고 인류재건적인 실천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를 재건하고 구성하는 이야기구조를 연극 자체에서 만들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모순과 대립의 아이러니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꿋꿋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판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분명히 우리 사회가 제 3세계가 아니라, 1세계임을 분명히 하면서 기존 제 3세계 모델에 입각한 이야기구조나 민족주의 등을 벗어나, 1세계 하에서의 탈성장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구조의 설립이 필요하다.

87년 체제라는 성장주의에 기반한 헌법에 기초한 현존 문명의 제도와 시스템과 달리, 새로운 제헌적 과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탈성장 헌법 질서를 만드는 수준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큰 틀에 입각해서 전혀 다른 삶, 전혀 다른 제도와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지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 이르러야 사회구성적이고 인류재건적인 상상력과 이야기구조가 헌법적인 수준에서의 논의를 생산하는 차원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극적인 반전은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 연극인들의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발자국 앞서가고, 책략에서 앞서고, 흐름에서 앞서는 새로운 트랜드로 향하는 것, 다시 말해 탈성장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앞서가는 것이 연극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전환의 시대의 이야기를 만드는 연극의 재등장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당장-여기에서 전환이 가능하며,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극적 반전처럼 전환이 밤손님처럼 찾아올 것이라는 점을 응시하면서 밤손님보다 낮손님이 되게끔 만드는 이야기구조의 설립에 연극인들의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마침

이 글은 2022년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밀양 대한민국 연극 아카데미 설립을 위한 다원 포럼》에 발표 수록된 글입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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