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게티, 횡단의 음악』 을 읽고 ③ – 폴리포니, 리좀의 방식으로 지도그리기하다

정지된 음악을 넘어 다양한 접속과 분기들을 통하여 리게티는 자체적인 지도 그리기를 시도합니다. 보통의 예술가들은 특히 음악가들은 자신의 구조를 세우는 작업이 평생의 작업이라 여겨지지만 리게티는 다양한 음악적 장르와의 접속과 횡단을 통하여 나무구조의 수직적인 체계가 아닌 수평적인 리좀의 지도 그리기를 진행합니다.

이희경 저, 『리게티, 횡단의 음악』(예솔, 2004)

지난 회까지의 글들을 요약해보면 서양 현대음악의 음렬주의 소개와 음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나온 리게티 특유의 ‘정지된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정지된 음악을 넘어 다양한 접속과 분기들을 통하여 리게티 자체적인 지도 그리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보통의 예술가들은 특히 음악가들은 자신의 구조를 세우는 작업이 평생의 작업이라 여겨지지만 리게티는 다양한 음악적 장르와의 접속과 횡단을 통하여 나무구조의 수직적인 체계가 아닌 수평적인 리좀의 지도 그리기를 진행합니다. 이 진행과정을 잠시나마 살펴보며 『리게티, 횡단의 음악』(이희경 저)의 글을 마칠까 합니다.

70년대의 모색과 접속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정지된 음악에 대한 리게티의 사색은 70년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이후의 예술적 위기 상황에서 정체된 시기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리게티는 새로운 음악 양식 형성에 영향을 준 음악과 개념과의 접속을 시도합니다. 그 새로움은 콘론 낸캐로우(Conlon Nancarrow)의 자동피아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폴리포니 음악 그리고 프랙탈 기하학과 카오스이론 등입니다.

우선, 새로운 접속에 앞서 이 접속과 관련된 리게티의 오랜 문제의식을 나타내는 작품들을 감상해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오랜 문제의식은 다성음악(여러 성부, 멜로디 라인)이며, 특히 그 안에서의 상이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리듬에 대한 고민입니다.

리듬은 등질적인 시간-공간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블록들과 겹쳐가면서 작용한다…

리듬은 결코 리듬화된 것과 동일한 판에 있을 수 없다.

즉, 행위는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나지만 리듬은 두 가지(이상) 환경 사이에서 비롯된다.

– 『천개의 고원』 「11. 1837년-리토르넬로에 대해」 중

György Ligeti – Poème symphonique(교향시) -1962년. 출처 : [YouTube_Luca Bertini] 〈Poème Symphonique For 100 Metronomes〉

György Ligeti – Three Pieces for Two Pianos [1/3] -70년대. 출처 : [YouTube_Thomas Ligre] 〈György Ligeti – Three Pieces for Two Pianos [1/3]〉

콘론 낸캐로우의 자동 피아노

우선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는 리게티에게는 그동안 고민이 지속되었던 폴리리듬(동시에 연주되는 복수리듬), 폴리미터(동시에 진행되는 복수의 박자- 예. 3/4박자와 4/4박자 동시 진행)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자동피아노란 오르골을 상상하시면 쉬운데요, 원통 형태의 종이 두루마리가 돌아가며 구멍이 뚫린 빈 공간을 인식하여 그 빈 공간 동안 해당 음을 자동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라고 합니다.

Nancarrow, Study #37 for Player Piano – 12성부. 출처 : [YouTube_Jürgen Hocker] 〈Conlon Nancarrow, Study for Player Piano No. 37〉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의 특이점은 비주기적인 리듬 패턴의 다양한 분절방식 및 그 폴리포니(다선율)적 구조의 엄청난 복잡성에 있습니다. 인간이 낼 수 없는 빠른 리듬과 다수의 리듬패턴의 엇갈림을 본 리게티는 초기 그의 정지된 음악에서 보여주었던 무한대와 같은 수많은 미세한 떨림의 반복적 음향덩어리로부터 탈피하여 몇 개의 선율로 축소, 복수의 리듬과 박자의 패턴들을 분화시킵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폴리포니 음악

위의 리듬과 선율의 복잡한 폴리포니를 구조화하는 방식을 리게티는 서남 아프리카의 폴리포니 음악에서 찾습니다. 아래 아프리카 전통악기인 아카딘다(아마딘다) 연주 예시를 보면 여러 명이 동시에 다른 리듬들을 연주할 때 각자의 리듬은 사라지고 동시에 합쳐져 들리는 리듬(이를 환영적 리듬이라고 합니다)이 발생합니다. 리게티는 오래 전부터 이런 폴리리듬을 구현해 왔으며 아프리카 리듬과 접속하며 다성리듬의 새로운 구조화 방법을 생성시킵니다.

아카딘다 연주 예시. 출처 : [YouTube_Jarmila Vlčková] 〈Amadinda Uganda〉

그리고, 리게티는 피아노연습곡 1집을 통하여 위의 폴리리듬, 폴리미터 등의 다성음악에 대한 고민을 시도해봅니다.

György Ligeti – Études for Piano(Book 1), No. 6 [6/6]. 출처 : [YouTube_Thomas Ligre] 〈György Ligeti – Études for Piano (Book 1), No. 6 [6/6]〉

폴리리듬과 폴리미터에 대한 특이점은 앞서 언급한 1968년 리게티의 작품 Continuum에서 유사한 형태가 발견됩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리게티 특유의 빠른 속도의 음들의 나열과 개개음들이 아닌 연속체로서의 선율들 그리고 여러 리듬들이 동시에 만나 어울리며 환영적 리듬을 만들고 있습니다.

György Ligeti – Continuum. 출처 : [YouTube_LineC3Percussion] 〈György Ligeti – Continuum〉

음악에 고유한 음악적 내용은… 차츰 분자되기를 향해 나아가며,

드디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하고 지각 불가능한 것을 나타나게 하는

일종의 우주적인 찰랑거림 소리 속으로 나아간다

– 『천개의 고원』 「10. 1730년_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 중

드디어 리게티는 피아노 협주곡을 내놓으면서 70년대의 오랜 침묵을 깨고 본격적인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는 그동안의 콘론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폴리포니 음악과의 접속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구조를 바탕으로 협주곡을 선보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이고 있는 다성적인 리듬과 박자, 그로 인한 환영적 리듬은 특이점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소 난해하다는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의 리게티의 고민과 접속과정을 생각하며 피아노 협주곡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 접속의 결과를 발견하게 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V (1985-1988). 출처 : [YouTube_Aurora’s Archives]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1985-1988, audio+score)〉

폴리리듬과 다차원적 폴리포니 피아노협주곡을 중심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조금 더 알아보며 구체적인 적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1악장에서는 12/8박자와 4/4박자의 두 가지 박자 형태(폴리미터) 위에  각기 다른 반복되는 리듬을 얹혀서 약간씩 비켜가며 맞물림으로써 복잡한 어긋남을 일으킵니다.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I (1985-1988). 출처 : [YouTube_Aurora’s Archives]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1985-1988, audio+score)〉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III (1985-1988). 출처 : [YouTube_Aurora’s Archives]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1985-1988, audio+score)〉

피아노 협주곡 4악장에서는 폴리미터 위에 16분음표와 셋잇단음표 8분음표를 배합하여 카오스적인 성부망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손벽을 칠 때 ‘(땃따 땃따 땃따따 땃따따 땃따따)와 (땃따 땃따따 땃따따 땃따따)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숫자로 나타내면 (2+2+3+3+3)+(2+3+3+3)=24박 이런 리듬을 가집니다. 여기서 16분음표는 ‘땃따’이며 셋잇단음표는 ‘땃따따’로 나타낼 수 있으며 ‘땃’은 강조입니다.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IV (1985-1988). 출처 : [YouTube_Aurora’s Archives] 〈György Ligeti – Piano Concerto (1985-1988, audio+score)〉

각 성부에서 다른 리듬이 진행되면서 리듬적으로는 다차원적 폴리포니(다성음악)가 진행됩니다. 이는 60년대부터 시작된 음향 깊이에 대한 사고로 공간 깊이에 대한 청각적 환영을 불러 일으킵니다. 즉, 개별 성부들이 이질적이고 구분된 독립적인 선율, 리듬, 상이한 리듬을 형성하며 이는 무질서의 질서, 카오스모스 음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리듬적 복잡성, 복잡한 폴리포니 성부망으로 리게티 후기작품의 대표적 직조방식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앞으로, 카오스이론

카오스와 리듬의 공통점은 ‘둘-사이’ 즉, 두 가지 환경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로부터 ‘카오스-리듬’ 혹은 ‘카오스모스(Chaosmos)’가 나온다.

– 『천개의 고원』 「11. 1837년 – 리토르넬로에 대하여」 중

가타리와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카오스모스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오스는 환경을 침범하고 그 싸움이 바로 리듬이라고. 이는 마치 밤과 아침 사이와 같이 둘 사이에서 카오스는 리듬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을 리게티도 생각했던 걸까요? 피아노 연습곡 1번 무질서의 형상화방식을 보면 한 개의 8분음표 삭제의 사소한 차이가 나중에 혼돈을 일으키며, 아는 카오스이론의 나비효과와도 같습니다. 사소한 차이로 인하여 무질서를 만들고 이는 곧 리듬을 생성합니다. 아래 피어노연습곡 제1번에서는 다섯 번째 마디에서부터 엇갈림이 시작됩니다.

György Ligeti – Études for Piano (Book 1), No. 1 [1/6]. 출처 : [YouTube_Thomas Ligre] 〈György Ligeti – Études for Piano (Book 1), No. 1 [1/6]〉

음악의 지도 그리기

리좀은 사본이 아니라 지도이다. 지도를 만들어라…

지도는 장들의 연결접속에 공헌하고, 기관없는 신체들의 봉쇄-해제에 공헌하며,

그것들을 고른판 위로 최대한 열어놓는 데 공헌한다.

지도는 열려 있다.

지도는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접속될 수 있다

– 『천개의 고원』 「서론 : 리좀」 중

후기 리게티의 음악 여정은 70년대의 정체기에서 외부와 접속하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분기되어 감이 특징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일상이 정체되어 있을 때 다른 차원의 흐름과 접속을 하여 새로운 생성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생성은 또 다른 접속의 시작점이 됩니다. 이는 점과 점, 선과 선 사이의 사선과 사선 사이를 지나가는 지도를 그리는 과정일 겁니다.

리게티 역시 이런 여정을 보여줍니다. 자동 피아노의 특이점 수용과 아프리카 리듬과의 접속 그리고 철학적인 이론과 재즈까지 많은 차원으로의 접속으로 70년대의 모색의 시간을 딛고 일어납니다. 이는 정지된 음악에서 다른 차원의 접속을 통하여 각 기관을 생성시키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무체제의 완성된 수직구도가 아닌 리좀의 수평과 횡단의 지도 그리기로 나아간 겁니다. 저자가 이 책 제목을 횡단의 음악이라고 한 것도 역시 이런 이유에서 일 거라 생각합니다.

자, 이제 현대음악가 리게티에 대한 책 『리게티, 횡단의 음악』(이희경 저)에 대한 어려운 글을 마치려 합니다. 여기서 리게티가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 같군요. 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다른 차원에 접속을 통한 횡단을 하며 나만의 지도 그리기를 하고 있는지요? 〈끝〉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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