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르넬로 시리즈] ⑦ 고전주의, 낭만주의

고전주의란 형상-질료 또는 형식-실체의 관계이며, 낭만주의는 대지-영토와의 관계이다. 낭만주의에 가장 결여된 것은 민중으로 개체화된 민중을 찾기 위하여 바그너와 베르디의 오페라를 비교하여 보다 민중에 호소하는 예를 알아보는 한편, 당시 군중 집단의 가분성을 통한 민중의 개체화를 위한 변형태로서의 악기 편성을 베를리오즈 음악을 통하여 알아본다.

[표지사진] 조각, 회화, 건축 등의 분야에서 고전주의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 천장화 《천지창조》 中 〈아담의 창조〉 부분. 출처 : italianrenaissance.org


지금까지 우리는 코드화된 환경에서 영토화된 배치물에 도달하였습니다. 카오스의 힘에서 출발한 환경이 코드화와 코드변환을 거치면서, 대지의 힘이 배치물로 모이게 되고 영토적 배치물과 동시에 상호적 배치물이 생성, 탈영토화의 배치물이 코스모스의 힘들에 이르는 것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회까지는 배치물 안에서의 고름의 문제와 탈영역화 과정에서의 기계의 작동 등 미시적인 접근을 하였다면, 이제는 좀 거시적인 접근으로 나아갑니다. 이번 글에서는 음악사적으로 나타났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지금까지 알아봤던 개념에 적용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대지로부터 날아오르기 위해 있는 힘을 급격히 사용하고…

중력을 이겨낸 원심력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 진정 대지로부터 춤춰 오르는 것이다”

“… 우리는 부분을 찾아냈지만 전체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아직도 궁극적인 힘이 결핍되어 있다.

민중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파울 클레 (Paul Klee)

예술가들은 무한한 실체인 자연을 포착하기 위하여 대지의 경계에서 내재적 운동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품에 코스모스의 힘들을 주입시키려 합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순수하고 아이의 장난과 같은 수단이 필요함과 동시에 민중의 힘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결여된 민중의 힘들을 음악사적으로 찾기 위하여 고전주의로부터 시작합니다.

고전주의란 형상-질료 또는 형식–실체의 관계라고 합니다. 카오스에서 질료에 형식을 부여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이를 위하여 고전주의 예술가들은 실체를 낳기 위해 형식을, 환경을 낳기 위해 코드를 부과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카오스에서 질서를 창조한 신의 모습을 구현하려고 한 것입니다. 고전주의와 그 이전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음악가인 바흐와 모차르트의 곡을 들어 보시면서 카오스에서 질서를 찾는 과정을 잠시 느끼겠습니다.

바흐 토카타와 푸가 D 단조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바로크 음악은 기본적으로 교회음악으로 신의 소리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바흐는 그동안 교회에서 사용되어 온 모달(Modal) 음악을 현재의 조성 음악으로 들어서게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단조, 장조 등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조성 음악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선악과와 같은 이벤트 이후의 환경을 만든 것과 같이 말이죠. 이렇듯 바로크 시대, 고전주의 시대는 신이 창조한 세계의 질서를 음악 안에서 형식과 실체라는 관계 속에서 찾으려는 노력의 연속이었고, 이것은 결국 고전주의에서 소나타 형식이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소나타 형식이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한 악장 안에서의 음 구성과 각 악장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고전주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형식 안에서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 현악4중주가 만들어졌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고전주의 안에 바로크가 들끓는다고 이야기하였는데, 이는 바로크와 고전주의가 기본적으로 음악의 실제 질료에서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있어, 두 시대를 나누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낭만주의로 넘어가겠습니다. 낭만주의는 대지-영토와의 관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전면에 나서는 과정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영토를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는 조물주의 지위를 포기하고 더 이상 카오스와 대결하는 것이 아닌 대지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다지고 자신의 토대 위에서 신에게 도전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천지창조가 아닌 인간의 영역을 구축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걸쳐 있는 음악가로 평가 받습니다. 신의 형식과 실체의 음악에서 인간의 대지와 영토의 관계로 빠져 나오는 베토벤의 작품을 감상하시죠.

https://youtu.be/cOj0qIRpA-E?t=2232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4악장

위의 작품을 들으시면서 ‘영웅’을 느끼셨나요? 위 작품은 실제로 당시 나폴레옹을 칭송하기 위한 작품으로 알려졌는데요. 베토벤은 이후 표제 음악 (특정한 이야기나 사상을 표현한 음악으로 보통 제목이 있다)의 시초가 됩니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없었던 사람의 목소리도 베토벤의 교향곡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교향곡 9번) 이제 더 이상 음악을 위한 음악인 절대 음악, 즉 바로크, 고전주의 음악에서처럼 형식과 실체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인간의 사상을 담을 수 있는 음악으로 발전합니다.

이제 대지 위에 자신의 영역을 만드는 낭만주의 시대 음악은 대지와 영토 간 엇갈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낭만주의 시대 음악의 리토르넬로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의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닌 대지 위에 영토적 배치물을 그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 음악들은 리토르넬로를 다지고 충돌하고 리토르넬로를 부추겨 불협화음을 내도록 작용하기도 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예로 들었던 《대지의 노래》에는 선율적 모티프의 새의 노래와 리듬적 모티프인 대지의 호흡이 서로 속삭입니다.

https://youtu.be/idRevTkIPts
말러의 대지의 노래

낭만주의의 근본적인 혁신은 형식에 대응하는 실체가 없고, 코드에 대응하는 환경도 없으며, 형식의 범위 내에서 코드에 의해 질서를 부여 받은 카오스 상태의 질료도 없는 것입니다. 즉, 대지 위 표층에서 성립과 해체를 반복하는 배치물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카오스적 질료에 형식을 부여하거나 코드화된 환경이 아닌 대지의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연속적 진행 상태에 있는 대규모 형식이며, 질료 또한 형식 속에 묶어야 할 카오스가 아니라 연속적 변주 중에 있는 운동 상태의 질료가 된 것입니다. 즉 영역화와 탈영역화의 과정에 있는 운동 상태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낭만주의에서 가장 결여된 것은 민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음악과 갑자기 연결되는 것이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치, ‘형이 거기서 왜 나와?’ 라는 재미있는 밈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왜 갑자기 음악과 민중의 연결이 나왔을까요? 결국은 음악과 그 안의 리토르넬로 또한 결국 민중에 귀결된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술을 위한 예술,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닌 낭만주의 시대에서 사람을 위한, 민중을 위한 음악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까요? 또는 음악적 성질상, 다른 예술과 비교하여, 민중이라는 개념에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영토화, 영역화의 과정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언급한 ‘대지 위에 끊임없이 흩어졌다가 다시 결집하고, 요구하고 나섰다가 분한 눈물을 삼키며, 공격에 나섰다가 다시 반격당하는 유목민’을 표현하기 위하여 음악과 민중의 개념을 연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낭만주의에서 관현악 기악 편성은 고전주의에 비해 확장되고 변형되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에서는 완벽히 고정된 관현악, 기악 편성이었다면, 왜냐하면 그 시대가 그 고정된 악기들의 편성을 찾는 시대였음으로, 낭만주의 시대에는 그 악곡에 따라, 필요에 따라 고정된 것이 아닌 변형된 형태의 악기 편성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 시대 이전에는 없었지만 현재는 당연시 사용하고 있는 트롬본을 사용한다든가 악기의 개수를 큰 폭으로 늘린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낭만주의 시대 음악에 있어 대지의 힘은 하나-전체로 역량의 집단화를 만들어내 보편성에 고유한 관계들을 만들고, 민중의 힘은 하나-군중으로 집단의 개체화를 초래해 집단 내 상호관계들을 만듭니다. 민중의 개체화와 상호간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분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낭만주의 시대 악기 편성에 있어 두 가지 사고방식은 대지의 힘들에 호소하는가 아니면 민중에 호소하는가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바그너를 전체의 하나, 대지의 힘들에 호소하는 음악가로, 베르디를 군중의 하나, 개체화된 민중의 소리를 찾는 음악가로 말하였습니다. 바그너가 대지의 힘들에 호소하는 음악가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의 궁극적인 음악 형태인 악극의 모티프가 중세시대나 그리스 시대의 전설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낭만주의에 있어 대지–영토 관계를 잘 말해주는 ‘그리스는 대지요, 독일은 영토이다’에서처럼 고대의 주제를 모티프로 한 바그너의 작품들은 음악적으로 엄청나게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민중을 묘사한 것이 아닌 대지를 향한 음악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드뷔시는 ‘바그너는 민중을 만들 수 없다’라고까지 말했다는군요.

이탈리아의 베르디는 동시대 바그너에 필적한 경쟁자였습니다. 하지만 베르디 오페라는 바그너의 오페라와는 상반된 오페라를 펼칩니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바그너가 오페라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 중 하나라고 여겼다면, 베르디는 성악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목소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하였듯이 바그너는 고대 신화를 음악극으로 만들면서 보편성의 진중한 음악을 만들었다면 베르디는 옛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으나 그 안의 인간 자체의 표현을 극대화하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바그너: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Vorspiel und Liebestod
베르디: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

낭만주의 시대의 악기 편성에 대한 소리 관계가 중시됨에 따라 전체의 보편성을 향한 대지의 외침이 아니라, 군중의 가분성, 즉 민중은 개체화되어야 하며 음악은 개체군의 외침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한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를리오즈는 악기 편성에 관한한 개체군의 외침을 찾으려고 했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관현악 편성에 있어 필요에 따라 획기적으로 규모를 늘렸으며 심지어 현악기 파트에서도 세부적인 화성을 만듦으로써 악기 편성과 소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크나큰 발전에 기여한 작곡가였습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중 5악장

다음 글에서는 근대로 넘어갑니다.

※ 다음편에 계속…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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