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르넬로 시리즈] ⑥ 고르고 다진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고름이란 영역 안에서의 배치를 동시에 성립시키는 방식이며, 각기 다른 배치물이 이행과 중계 성분에 따라 성립하는 방식과도 관련된 것이라 합니다. 즉, 고름은 질적으로 다른 배치물들이 어떻게 함께 성립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리토르넬로의 탈영역화의 성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연재에서 제기된 리토르넬로의 자기영역 안에서의 내부배치물에 대하여 좀 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내부배치물 안에서 고름(consistence)의 문제와 고름의 성질인 다짐이론, 그리고 이 고름과 함께 탈영역화 과정에서 고름을 규정하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연재는 다소 구체적인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들어가기 전에 멋진 아카펠라 곡에 빠졌다 가보겠습니다.

[아카펠라] 디즈니 메들리(Disney Medley) cover by 보이스밴드 엑시트(feat.이희주)

고름이란 영역 안에서의 배치를 동시에 성립시키는 방식이며, 각기 다른 배치물이 이행과 중계 성분에 따라 성립하는 방식과도 관련된 것이라 합니다. 즉, 고름은 질적으로 다른 배치물들이 어떻게 함께 성립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리토르넬로처럼 탈영역화의 성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리토르넬로의 탈영역화가 ‘어떻게’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함께 성립하는 이유에 대하여는 중앙집권화되고 위계화, 선형화의 특징인 나무형 모델이 가장 쉬운 답일 수 있으나,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적 방식을 제안합니다. 리좀적 방식은 중추신경계에서 시-공간적 형태가 코드화된 연쇄를 일으키는 선형적인 나무형 모델을 거부하고, 상위중추에 의한 반사운동보다는 오히려 중추들 사이에, 세포군들 또는 분자군들 사이에 상호 연계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 다짐이론입니다. 생명은 중추로부터 외부가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또는 퍼지집합이나 이산집합으로부터 집합의 다짐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짐의 의미는 삽입, 간격, 겹침-분절입니다.

위에서 들으셨던 아카펠라를 고름의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곡은 디즈니 주제곡의 메들리 곡입니다. 서로 다른 곡들을 이어 놓은 것이죠. 리토르넬로의 관점에서는 이 아카펠라 그룹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유명한 곡들을 엮어 놓음으로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향수를 나타내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곡은 나름의 특징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마치 하나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이를 위하여 이 그룹은 베이스, 퍼커션, 바리톤, 테너, 소프라노 등 정해진 목소리의 영역 안에서 곡들을 부름으로써 기본적인 고름의 영역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질료인 많은 곡들을 삽입하고 리듬의 간격을 조정하였으며, 곡 전환시 공통된 리듬이나 음들을 겹치거나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노래들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느곡이 먼저인지 상관없이 각각 사이사이곡들 간의 관계로 이루어진 곡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 예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예를 듭니다. 나무-기둥 같은 나무형 모델에서 벗어난 철근의 특정한 리듬(조밀하거나 퍼져있거나)과 콘크리트의 합성물의 다질성 등에서 말이죠.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 「범 내려온다」

요즘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퓨전국악밴드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는 이질적인 표현의 질료들이 다져지고 고름을 획득하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전통 판소리의 하나인 수궁가 중 호랑이가 내려오는 대목을 노래한 전통 판소리와 선율악기를 배제한 채 베이스와 퍼커션만으로 이루어진 서양악기인 리듬섹션, 그리고 현대 무용의 다질적인 것들이 만나 춤과 리듬의 삽입, 리듬의 분절과 간격을 조정하여 전통 판소리에서 더 나아가 퓨전국악의 창조를 일으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예로 든 오페라의 새, 스케노포이에테스가 부르는 자기 종의 고유한 음과 다른 종의 음, 그리고 나뭇잎의 색깔과 목덜미의 색깔에 의한 고른 응고체를 보는 듯합니다.

여기서 제기된 하위차원의 노래(sub-song, 다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지표와 플래카드 수준) 와 완전한 노래(full song, 여기서 지표와 플래카드는 스타일 혹은 모티프가 됨)의 개념에서 보았을 때는 각기 다른 질료들(판소리, 리듬, 춤)이 합쳐지기 전에는 판소리, 리듬악기, 춤 등 각각의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가(하위차원의 노래) 공존과 이행이 진행되면서 미지의 음이나 리듬 그리고 춤 동작에 있어 돌발적인 동작 등을 제거, 표현의 질료를 더 세련되고 풍부한 것으로 바꾸어 고름의 정도를 높였습니다. 이 노래에서는 기본적인 판소리와의 협연을 위하여 피아노 등 화성악기를 배제하고 반주를 퍼커션, 베이스와 같은 리듬악기만을 사용하여 전통 판소리와 현대적 춤과의 공존을 다짐으로써 고름 정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이런 고름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강렬한 힘을 획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럼 고름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탈영역화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지난 번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새로운 배치물은 상호배치물, 즉 양의성을 가지고 있는 배치물로, 배치물은 탈영역화로 나아가기위한 상호배치물로 동시에 이행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영역은 이미 영역 자체를 초월하는 무엇이가를 풀어놓게 되며 우리는 끊임없이 이 ‘순간’으로 되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끊임없는 탈영역화, 재영역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마침, 그럴 때 반드시 하나의 기계에 시동이 걸립니다.

기계란 탈영역화 과정에 있는 배치물에 삽입되어 배치의 변화와 변이를 그려내는 첨점들의 집합이라 부릅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이는 결코 상상적이거나 상징적이지 않으며 현실적인 가치를 가지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는 언제나 하나의 배치물이거나 영역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특이한 열쇠라는 것이죠. 즉, 표현의 질료가 출현하고 배치가 성립되는 시점부터 탈영역화에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기계라는 개념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에게는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마치 전자통신학 개론에 나오는 개념인 통신 신호에서 여러 가지 명령 데이터를 싣고 가다 도착지에 이름과 동시에 실행되는 과정 같기도 하고, 단순하게 보면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에서처럼 지구에 도착한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범블비가 로봇으로 변하는 애니메이션 같기도 합니다. 지난번 연재에서 사용하였던 예를 다시 들 수밖에 없군요.

“배치물의 구성요인 대부분의 코드가 탈영역화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연재에서 말씀드린 도미넌트 코드뿐만이 아닌 BTS의 노래 ‘다이너마이트’에 사용된 모든 코드들은 다른 영역으로 갈 수 있는 요인들이죠. 음악적으로 보면, ‘다이너마이트’의 첫 번째 코드는 Am인데 이 역시 스스로 C 코드를 대체할 수 있으며, 다른 코드들도 마찬가지이고, Dm 코드는 G 코드로 가지 않고 Db으로도 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설명하긴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음악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G코드는 지난번 연재에서 예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새로운 배치물은 상호배치물, 즉, 양의성을 가지고 있는 배치물로 내부배치물은 상호배치물로 동시에 이행합니다.”

다음 번에는 기계의 개념을 조금 더 알아보고, 고름의 또 다른 측면인 분자적인 것과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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