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르넬로 시리즈] ⑧ 근대음악의 재료, 힘 그리고 단순함에 대하여

근대의 시간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코스모스적인 것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리토르넬로의 내부배치물은 더 이상 카오스에 맞서지도, 대지와 민중의 힘들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코스모스의 힘들을 향해 열립니다. 근대의 시대는 재료–힘들의 직접적 관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코스모스의 힘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난 번 연재에서는 음악사적으로 나타났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지금까지 알아봤던 개념들에 적용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낭만주의 이후의 근대(modern)의 시간으로 갑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시대를 코스모스적인 것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리토르넬로의 내부배치물은 코스모스의 힘들을 향해 열리고, 고전주의 시대에서처럼 카오스에 맞서지도, 낭만주의시대처럼 대지와 민중의 힘들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근대의 시대는 질료–형상 관계(고전주의)나 형상과 질료의 연속적 변주 관계(낭만주의)가 아닌 재료–힘들의 직접적 관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재료란 분자화된 질료로 이 분자화된 질료는 힘들이 필요합니다. 코스모스의 다른 차원의 힘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Art does not reproduce the visible, rather, it makes visible.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

파울 클레(Paul Klee), <현대 미술을 찾아서>

근대에서는 아시는 것과 같이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형화된 예술들을 뒤집고 다르게 해석하려는 노력들 말이죠. 들뢰즈와 가타리는 회화에서 밀레의 예를 듭니다.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성물이나 감자자루 같은 것이 아닌 그것의 정확한 중량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물 내부 구조의 부피와 깊이에 집중한 세잔느까지 이야기합니다.

회화에서 모던의 시대(모더니즘이라 부르겠습니다)가 사물의 실제 형상만을 반영하는 회화기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면 음악에서도 그 당시 유행했던 미술에서의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회화에서 모더니즘이 실제 사물 형상의 반영에 대한 반감이었다면, 음악에서는 낭만주의 음악을 완성한 바그너의 종합예술음악(Total artwork)의 반감이었습니다. 보통 음악에서 모더니즘의 시대는 1890~1930년 정도의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 시대는 프로이드가 모더니스트들에게 주었던 많은 양의 자의식과 무의식의 표현이 영향을 끼쳤고, 토마스 에디슨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레코딩 기술과 전자악기의 출현이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근대음악에서 재료인 분자화된 질료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코스모스의 힘 들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근대 이전의 서양음악들은 비록 고전주의가 형식에 치우쳤다고는 하지만 낭만주의 자체도 고전주의의 유산을 파괴할 정도의 변화는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천상에서 대지로 내려온 정도였지요. 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 근본적인 형식과 표현 질료가 상당히 변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뷔시의 인상주의(Impressionism)

Claude Debussy. 
출처 : 뉴욕공립도서관 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items/510d47dd-c3df-a3d9-e040-e00a18064a99
Claude Debussy.
사진 출처 : 뉴욕공립도서관

다들 아시겠지만 드뷔시는 프랑스에서 에릭 싸티(Erik Satie, 1866-1925)와 함께 모던 음악을 시작한 음악가입니다. 드뷔시는 당시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기도 한 걸로 보입니다. 드뷔시가 보통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말하는 것도 이런 것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인상주의란, 어떤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을 말합니다. 순간적인 장면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후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세잔느(Paul Cezanne, 1839-1906)의 말은, 근대의 예술이 재료들을 분자화시키고 내부 힘들에 집중하였다는 단면을 잘 나타냅니다.

“자연의 모든 것은 구와 원추 그리고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 단순한 도형들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잔느

이러한 질료들에 대한 분자화는 피카소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피카소는 자연을 육면체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였죠. 그리고 더 단순화시킨 작가는 몬드리안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면, 선, 점까지 나아갔습니다. 다시 드뷔시로 돌아와서, 이러한 인상파적인 표현을 위하여 드뷔시 또한 음악의 재료를 분자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동안 사용되어 왔던 조성 음악의 형식, 즉 하나의 조(Key), ‘도’ 를 중심으로 몇 가지의 모티프 안에서 움직였던 것으로는 순간순간의 인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답답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드뷔시는 많은 조 옮김과 조의 파괴, 그리고 중세 교회음악에서 많이 사용하였던 모드 사용(색채감이 뛰어나다)으로 순간순간의 분위기를 연출하여야 했으며, 선율, 멜로디 또한 중심 주제를 전체 악곡에서 발전시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음색’이 중심이 되는 작곡기법을 이루었습니다. 이 ‘음색’은 다양한 힘, 에너지를 원천으로 합니다. 마치 우주의 행성들처럼 각자의 색깔과 주기가 있듯이 말이죠. 드뷔시의 대표적인 곡인 ‘달빛’을 들어 보실 텐데요. 조성음악만이 아닌 다양한 화성으로 자유로워진 음들과 색깔이 순간순간 코스모스의 힘을 느끼게 하는지 감상해 보겠습니다. 달과 함께 말이죠.

Debussy: Clair de Lune

쇤베르크의 표현주의(Expressionism)

근대 음악을 연 음악가가 프랑스에서는 드뷔시가 있었다면 독일권에서는 쇤베르크가 있었습니다.

쇤베르크는 표현주의 음악가라고 칭해지는데요. 쇤베르크는 드뷔시가 조성을 일시적으로 파괴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아예 무 조성 음악을 펼칩니다. 더욱 더 음악의 질료를 분자화시키고 서양음악의 모든 음(하나의 옥타브에서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의 숫자는 12개임)을 주인공으로 만듭니다. 소위 12 음계 기법이라고 알려진 애토널(Atonal, 무조[無調]의, 조성의 반대)작곡기법으로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요. 사실 쇤베르크 자신은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애토널(Atonal)보다는 모든 ‘도’를 담고 있다는 판토널(범조[汎調]의, Pantonal)이라 불리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Gazes” painted by Schoenberg in 1910
쇤베르크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이 그림은 자화상이다. 출처: https://blog.blo.org/hubfs/p8-9_conklin1_Schoenberg%20redgaze.jpg
“Gazes” painted by Schoenberg in 1910
쇤베르크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이 그림은 자화상이다.
사진 출처: blog.blo.org

이제 모든 음은 분자화되어 동등한 지위를 확보합니다, 즉 중심 ‘도’로부터 종속되었던 ‘도’ 이외의 음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던 익숙한 조성 음악, 즉 중심 ‘도’에서 시작하여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달아오른 긴장감이 마지막에서 원래의 ‘도’로 끝나며 긴장이 해결되는 조성 음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선율에 있어 다음에 나올 법한 음들만을 일부러 피하는 듯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익숙했던 음악 기억의 측면에서는 불협화음이지만 모든 음들이 동등한 상황에서는 그건 화음으로 작용 할 겁니다. 어쩌면 쇤베르크의 목적은 정말 그가 말했듯이 “불협화음의 해방” 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더욱 자유로워진 리듬과 강도는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힘들을 찾아갑니다. 코스모스로의 완전히 열린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쇤베르크의 12 음계 기법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달에 홀린 피에로”를 감상하시면서 충분히 코스모스로 열려있는지 느껴보기로 하겠습니다.

Schoenberg: Pierrot lunair – Chicago Symphony Orchestra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을 상상할 순 없기 때문에
음악을 듣기 전에는 누구도 올바른 예상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예술가가 표현할 수 있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얻을 기회가 생긴 겁니다”
“사람들이 음악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라는 답으로 쇤베르크가 한 말

Joseph Auner, A Schoenberg Reader: Documents of a Life(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3)

이제 예전의 형상이나 질료, 모티프는 힘과 밀도 그리고 강도 등이 핵심이 되었고 대지는 평형을 잃고 인력 또는 중력의 순수한 질료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료와 힘의 관계에서 무음이고 비가시적이며 사유가 불가능한 힘들을 포획하려면 어떻게 재료를 다지고 고름을 부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배치물 밖으로 나아가 포획하여야 할 힘들이 코스모스적으로 변하는 판 위로 발을 들여 놓게 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신시사이저를 예로 듭니다. 그것은 잡다한 것들을 재료 속에서 하나로 묶으며, 고름을 조작함으로써 선험적 종합 판단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신시사이저의 전신격인 테레민이라는 재미있는 전자 악기를 한번 보시죠.

Léon Theremin demonstrates the Thereminvox (1954)

신시사이저(전자음악)를 서양 클래식음악에 접목시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음악가는 에드가 바레즈(Edgard Varese, 1883-1965)입니다. 그의 목표는 “소리의 자유”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소리를 찾아 부단히 소리와 악기에 대한 실험을 하였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바레즈의 실험 정신의 영향으로 쇤베르크의 12계음 기법인 판토널(Pantonal)을 넘어 마이크로 토널(Microtonal) 음계를 연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이크로 토널이란 쇤베르크에 의해 개발된 12음계에서 더 나아가(마치 피카소에서 더 나아간 몬드리안을 연상케 합니다) 그 음계 사이(피아노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를 세부적으로 나눈 음계입니다. 사실 이 피아노 건반으로 누를 수 없는 마이크로 토널은 우리나라 판소리에서는 자주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음악의 재료가 이제 분자화된 질료가 아닌 원자화된 질료로까지 나아가는 것 같군요.

아무튼 바레즈는 1958년 본격적으로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작품을 브뤼셀 세계박람회에 6개월간 시연하며 전 세계에 전자음악의 영향력을 떨칩니다. 아래 예는 바레즈가 당시 시연했던 “전자시(Poeme Electronique)”입니다. 바레즈는 신시사이저가 고도의 복잡성을 띄려면, 즉 코스모스적 분배를 만들려면, 운동 상태에 놓인 간소한 형상 그리고 그 자체로 유동하고 있는 판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이 곡은 절제된 리듬의 운동상태에 있는 판 위에 신시사이저의 간소한 음의 움직임이 고도의 복잡성을 만들었습니다. 간소함, 단순함이 코스모스를 연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주로 날아가 버립니다.

Varese: Poeme Electronique

간소함은 곧 질료의 탈영토화, 재료의 분자화, 힘들의 코스모스화가 공통 성립요소라고 합니다.

음이 여행하려면 매우 순수한 단순한 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음들의 동작, 고름, 포획, 추출 행위에 따라 조작해 나가면 잡다한 것의 종합은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조잡한 재료가 아닌 단순화하고 창조적으로 제한되고 선별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시사이저의 음들은 최초 하나의 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하나의 음을 탈영역화 시키는 것이지요. 가장 쉬운 예는 같은 음들을 겹치는 것(Unison)입니다. 원하는 만큼 겹치는 숫자를 늘리기도 하구요. 그리고 각각 음들을 미세하게 음이 맞지 않도록 조정(Detune)합니다. 아니면 음의 주파수 파형을 조금씩 바꿔주는 작업(Modulation)도 가능할 겁니다. 그러면 놀라운 전자 음원을 얻을 수 있죠. 이렇듯 단순한 음 하나로 다짐과 고름의 작업을 거쳐 강력한 음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현실적인 세계에서 예술가에 대한 상과 조언을 이어줍니다. 코스모스적인 장인이 근대적인 형상이며, 조물주가 아닌 장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코스모스적으로 되고 모든 환경 밖으로 벗어나 지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장인은 곧 전문가라고 생각되는데요. 이 전문가의 창조 행위는 국지적으로 진행되고 도처에서 다짐을 구하고 분자적인 것에서 불확정적인 코스모스로 나가는 것이 창조 행위 본래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국지적인 것은 분자화의 의미로, 도처에서 다짐을 구하는 것은 단순함으로, 불확정적인 코스모스는 다른 차원의 힘이라 한다면, 분자화되고 단순한 것들의 여러 어우러짐이 바로 강력한 코스모스와 민중의 벡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연재가 아마 이 연재의 마지막 연재라 생각되는군요. 다음 번에는 그동안의 리토르넬로를 정리하며 끝을 내볼까 합니다.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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