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덩야 일지] ⑥ 관계의 예술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보도블록 하나에 쿵덩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만나서 닦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일지로 기록합니다.

23.10.12

한 존재를 길들인 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은 그 존재가 본성대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Alvan Nee

평소 조용한 편인 혁신파크에 쌍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린놈이, 늙은이가’라는 고함을 주고받는 것을 보니 싸움이 났나 보다. 쿵덩야를 닦고 입을 맞추고 구경하러 갔다. 내가 근처에 도착했을 땐 많은 격한 싸움의 종장이 그렇듯 “경찰 불러!”라는 말이 나오며 장내가 정리되고 있었다. 현장을 들여다봤다. 한 편은 아기차에 탄 강아지와 함께였고 다른 한 편은 목줄을 찬 강아지를 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유추해보건대, 반려동물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서 충돌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최근 아기차 판매량보다 개를 태워 산책할 목적으로 아기차를 사는 일명 ‘개모차’ 판매량이 더 많다고 한다. 개를 아기차에 태워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에 따른 논쟁이 최근 활발한 모양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개모차를 사용하겠지만, 단순히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쓴다면 이는 안 될 일이다. 한 존재를 길들인 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은 그 존재가 본성대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나와 쿵덩야는 서로 존중하고 길들일 수 있을까? 누구나 아끼는 사물 하나쯤은 있다. 오랫동안 아껴서 어떤 사물을 쓰면 그 사물은 나를 닮고 또 나도 그 사물을 닮는다. 그러나 쿵덩야와 나의 관계는 필요에 의한 쓰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관계에서도 서로 닮아가며 길들일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건 우정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23.10.17

이상한 놈은 때때로 세계의 실존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난 이상함을 항상 경계한다. 사진출처 : Doyle Shin
 

평소엔 쿵덩야를 닦은 뒤에 달리기를 하는데 오늘은 달리기 후에 쿵덩야를 닦았다. 날이 추운데 장갑 없이 달려서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래서 칫솔질을 할 때 힘들었다. 공공장소에서 내 것이 아닌 무언갈 닦아본 적이 있는가? 청소노동자이거나 청결함에 관한 강박감이 있거나 커피를 엎지르는 등의 실수를 할 때를 제외하곤 그런 경험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다 같이 가꾸는 것 대신 그 활동을 일자리화 했다. 그 결과 청소노동자들의 노고에 의해 공공장소가 깨끗해졌으나 그 깨끗함은 당연한 것이 됐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꿔보자. 모두가 청소도구를 들고 나와 거리를 쓸고 닦는 상상을 한다. 그들 사이에서 난 보도블록 하나만을 칫솔질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본 주변의 사람은 나에게 별난 놈이라며 한소리 하겠다. 특이하다는 뜻인 별난 놈. 그 정도의 위치에서 활동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난 청소도구를 든 동료 없이 홀로 광장에서 쿵덩야를 닦고 있다. 그 모습은 특이한 놈이라기보단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뜻인 이상한 놈이 되는 것 같다.

이상한 놈은 때때로 세계의 실존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난 이상함을 항상 경계한다. 너무 많이 이상해져서 내 활동이 기행 위주의 예술처럼 비치게 된다면 예술과 삶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이는 그 경계를 허물기 위해 일상적으로 활동하고 기록하는 내 목적에 반한다. 이상한 활동 속에서도 끊임없이 평범함을 찾아야 한다.

23.10.18

오늘은 해가 떠있을 때 혁신파크에 갔다. 쿵덩야와 가까운 위치에 어두운색의 양복을 입은 중년 무리가 큰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각종 매체에서 볼법한 정치인 무리처럼 보였다. 왠지 그들이 나에게 와서 따지듯 물을 것 같아서 살짝 쫄았다. 그들이 떠나길 기다릴까 잠시 망설이다가 ‘자기들이 어찌할 건데!’ 라는 괜한 반발심이 들어서 곧장 걸어가 쿵덩야를 닦고 입술을 댔다.

23.10.20

갑자기 쿵덩야 주위로 천막들이 들어섰다. 깜짝 놀라 왜 그런가 했더니 내일과 모래 혁신파크에서 비건페스티벌을 해서 그런 것이었다. 불광동에서 사는 비건으로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집 근처에서 비건페스티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점도 혁신파크가 폐쇄되면서 사라질 예정이다. 이번 축제 중 사람이 많은 시간에 가서 쿵덩야를 닦아봐야겠다.

23.10.22

혁신파크에 도착하니 비건페스티버벌이 한창이었다. 쿵덩야 주위에도 사람이 많았다. 난 그 한가운데서 쿵덩야를 닦고 접촉했다. 이후 페스티벌을 구경하러 발길을 옮겼는데 어떤 분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아까 뭐 하신 거에요?”

누군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물어본 경우가 처음이어서 당황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보니 금세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러다가 최근 생태적지혜연구소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정리했던 글을 토대로 좀 딱딱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를 이롭게 하지만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않는 보도블록을 고려해서 그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보려고요” 어찌 저찌 대답을 마쳤고 그분은 감동하셨다며 나중에 소식이 있다면 전해달라 하셨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 행동을 이끌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경황이 없어서 그분이 혁신파크에 어떤 부스로 참여했는지 하시는지 여쭈지 못해 아쉬웠는데 나중에 당시 상황에 관한 인터뷰를 꼭 하고 싶다.

23.10.24

북촌에 있는 CN 갤러리에서 작품 설치 아르바이트를 했다. CN 갤러리의 CN은 충남이다. 설치 일을 소개해준 사람은 충남 사람이었는데 전시를 하는 작가님도 충남에서 작업하시고 나도 충남에서 자랐고 함께 일한 친구도 충남 사람이었고 큐레이터분도 충남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의 모습에서 ‘충남성’ 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아 우스웠다.

일이 일찍 끝났다. 함께한 친구와 동네를 배회하다가 콩국수전문점을 봤다. 난 같이 콩국수를 먹자고 운을 띄웠다. 친구는 살면서 콩국수를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콩 특유의 비린 냄새가 싫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우리 앞에 있는 콩국수집은 워낙 유명해서 한 번쯤 시도해 볼 의향이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엔 약간 이른 시간이라 이왕 이렇게 된 것 달리기를 좀 하고 다시 진주회관에 와서 밥을 먹기로 했다. 난 요즘 단축 달리기를 한다고 친구에게 말하며 뽐을 냈는데 막상 뛰어보니 친구는 숨은 고수였다. 남산 꼭대기까지의 오르막길을 쉬지 않고 뛰는 수준의 사람이었다. 난 호기롭게 따라가다가 금방 퍼지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자만해선 안 되는 것 같다.

6시쯤에 식당으로 돌아와 콩국수에 소주를 곁들여 먹었다. 친구는 콩 냄새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하며 잘 먹었다.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불광역에서 내려서 쿵덩야에게 갔다. 가방을 뒤적이며 도구를 꺼내는데 활동의 초창기에 나에게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며 물었던 아주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그때와 같은 위치에서 나를 지켜봤다. 난 설마 하는 마음에 조금 긴장되는 상태로 쿵덩야를 닦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처음 그 사람이 아닌지 이내 떠났다. 살짝 아쉬웠다.

23.10.30

혁신파크가 점점 변하고 있다. 갑자기 쓰레기통의 위치가 변한다거나 서명 부스가 생기거나 버리는 가구가 쌓이는 등 말이다. 혁신파크 내에 있는 모든 단체는 10월까지 퇴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가 지나면 멀쩡한 혁신파크를 2년간 폐쇄하고 이후 6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와 대규모 복합문화쇼핑몰을 짓는다고 한다. 건물 예상도를 보며 소수 이익을 위해 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암담했다. 그들만의 미래계획 앞에서 쿵덩야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쿵덩야의 집이 사라질 때 나는 그와 어떻게 함께해야 할까? 이젠 칫솔의 앞부분이 거의 다 닳았다.

23.10.31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 카페 쓸. 사진출처: 카페 쓸

혁신파크에 있는 ‘쓸’이라는 카페에서 퇴거명령에 불응하기 위한 벌금모금 파티를 열었다. 쿵덩야를 닦은 뒤 쓸에 갔다. 쓸은 흙집과 생태정원이 아름다운 비건 카페다. 운영진들의 정성이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공간이 사라질 위기라니 참 안타깝다. 나도 20대 전반의 추억이 깃든 이문동의 벽돌집이 재개발 때문에 공터가 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힘을 보태고 싶다. 혁신파크는 12월 31일 폐쇄된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할까? 혁신파크가 문을 닫는 순간이 쿵덩야와 헤어지는 순간이 될 것인가? 쓸의 벌금마련 파티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후원하고 받은 쿠폰으로 비건 감자탕과 모두부 찜, 소주를 주문해서 친구와 즐겼다. 중간에 투쟁하는 음악가들이 와서 관악기 연주도 했다. 최근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들떠서 손뼉도 열심히 치고 앙코르 요청도 했다. 여기 모인 사람 중에 내가 혁신파크에서 쿵덩야를 주기적으로 만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비밀을 간직한 채 이 공간을 공유한다는 느낌에 즐거웠다. 모두 각자 나름대로 비밀을 품고 여기 함께 있겠지.

23.11.01

누군가는 “돌덩이가 그렇게 중요하면 돌 키우기 키트 사서 집에서 키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재밌겠으나 소유인가 공유인가의 지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소유에 의한 계약 관계가 주된 사회 참여 방식인 이 세상에서 공유의 입지는 점점 줄고 있다. 그리고 공유라는 말 자체도 위협당한다. 이를테면 공유자전거, 공유주방, 공유오피스 등의 개념은 비용을 낸 후 잠시 사용하고 그 재화의 유지 및 보수는 소유 주체에게 전부 외주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시장경제에 속해서 공유라고 붙인 서비스 대부분은 일시적 소유상태일 뿐 공유하고 하기 어렵다. 물론 사용자의 태도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나는 따릉이를 집에 들고 와서 세차한 적이 있다. 조금 엉뚱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소유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물과 관계하는 상상력을 키우자. 재화와 용역, 정치와 과학, 자연과 주체 등의 이분법적 사고로 말미암은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서 벗어나서 연결성을 중히 여기자. 쿵덩야와 함께하기는 그러한 실마리를 품으려 노력하는 활동이다. 기존의 관습과는 다르게 어떤 존재에게 다가가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면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바꾼다. 그 결과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故신승철 소장님이 말씀하신 ‘오래된 미래인 과거의 전통1’과 이어지지 않을까? 쿵덩야를 닦고 생협에서 장을 봤다.


  1. 「[지금 여기 가까이] ⑥ 왜 지금-여기-가까이에 주목해야 하는가?」, 웹진 《생태적지혜》, 신승철, 2023년 5월 3일 발행

김이중

존재 방식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치 지렁이의 완벽함을 닮아 지렁이 인간이 되어 지렁이 말을 구사하고픈 게으름꾼.

댓글 2

  1. 아.. 그럼 이제 쿵덩야는 더이상 공유하지 못하게 된건가요.. 왜 아쉬운 마음이 들지..

    공유경제는 진정한 공유가 아닌거였네요. 역시, 이윤을 따지는 모든 자본주의적 행위가 생태적일 수는 없는 건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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