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콜로키움 특집] 기후위기・탈탄소 시대의 동물권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읽고

금본위시대 황금이 했던 역할처럼 탄소량은 그 상품의 근원적 해악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말해 줍니다. 소고기 1kg 생산을 위해 배출된 26kg의 탄소무게를 지구생태계는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육식을 즐길 수 없는 이 객관적 상황에 맞게 우리의 모럴은 재정비 될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기후위기 시대 오히려 동물권이 신장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제7회 생태적지혜연구소 콜로키움 《동물과 더불어 삶》에서 도서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평으로 발표되었던 글입니다.

책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박종무 저, 2021)는 반려동물, 동물원 동물, 실험동물, 축산동물 등 인간과 관계를 맺는 순간 하나 같이 끔찍한 모습으로 살아가야하는 동물들의 현실을 먼저 보여줍니다. 생명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누적된 자기 종의 본성에 반하는 삶의 조건은 너무나 참혹합니다.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박종무 저, 2021)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박종무 저, 2021)

이와 같은 동물들의 현실은 ‘종차별주의’의 입장에서 이해되기도 합니다. 흑인노예제도,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인식론적 맥락이 오늘날 동물의 삶에 대해 거침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 인간에 의해 강요된 동물의 생존방식은 극소수의 ‘야생의 삶’을 제외하면 지옥 같은 풍경입니다. 지구상 척추동물의 30%는 인간이며 67%는 가축(을 비롯한 위의 동물들)이라는 통계와 같이 야생의 영역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에 의한 지구생태계 착취는 더 이상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저자는 그 첫 번째 원인을 자본주의체제(정치경제학적 구조), 두 번째를 인간중심주의라고 말합니다. 사실 15세기 이후 ‘종차별주의’에 의해 벌어진 백인 중심의 제3세계에 대한 야만의 역사도 그 바탕에는 같은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노예사냥이나 대농장에서 벌어진 온갖 학대는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와 다른 종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죄의식 없이 할 수 있는 ‘종족주의’였습니다. 1800년대, 영국 맨체스터의 방직기를 돌리려 고래들을 죽여 고래 기름을 마련했던 것이나 영원히 사냥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여행 비둘기의 멸종과 같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착취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당시엔 야생동물에 대한 착취였다면 지금은 야생에 대한 착취는 물론이고, 케이지 안에 가둬놓고서는 마치 생명이 아닌 것처럼 다루며 착취하는 방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북미지역의 50도가 넘는 폭염이나 서부유럽에 내린 1000년만의 폭우처럼 기후위기의 시대는 매일같이 한 걸음씩 우리의 삶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탈탄소 시대의 도래에 따라 이제껏 인간이 누려온 모든 ‘상식’은 근본에서부터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재점검도 포함됩니다. 최근 언론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 기사를 언급하며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동물권의 신장을 도모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각류의 고통을 인정한 법원

지난 7월 영국의회는 랍스터 등의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하며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 중심의 동물권을 게, 문어, 오징어 등 무척추 동물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국, 스위스 등을 시작으로 EU국가에서는 산 채로 배송하거나 요리하면 형사처벌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식당에서 랍스터 앞발을 묶어 얼음 위에 올려 전시한 것이 고발되어 벌금 250만원이 선고되었더군요. 갑각류 고통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론의 증명이 없이 진행되고 있는 유럽 내의 동물에 대한 인식의 재고는 근본적인 변화의 신호탄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 년 내에 육류의 가격을 조정하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육류 생산을 가시적으로 줄이면서도 유권자들의 비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탄소배출에 대한 설득과 더불어 ‘동물’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위기 대책에 항상 소고기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물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소가 뿜어내는 메탄이 희망이라는 사실. 각종 언론을 통해 고기를 1회용 플라스틱과 같이 환경을 파괴하는 중요한 문화 대상으로 분류하는 기사들이 속속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소고기가 돼지나 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탄소를 배출 한다는 기사들은 얼마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고기 1kg당 탄소 배출량이 소고기 26.5kg, 돼지고기 7.9kg, 닭고기 5kg라고 합니다. 이는 맥도널드 햄버거 패티 2장을 먹으면 30년 된 나무 한그루가 흡수한 탄소량만큼을 배출하는 것에 비유됩니다.

비욘드 미트(Beyond Meat)의 공식 로고. 출처: 위키피디아
비욘드 미트(Beyond Meat)의 공식 로고. 출처: 위키피디아

‘그래서 닭고기는 괜찮다는 것이냐?’는 비난을 들을 수 있겠지만, 오늘날처럼 삼시세끼 고기를 먹어야 하는 육식문화에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철강, 시멘트 등 고탄소 배출원에 우선적으로 부과하는 탄소국경세(탄소세)가 향후 모든 탄소배출에 대해 부과된다면 고기의 시장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오를 것입니다. 소고기는 정말 비싸져서 ‘비욘드 미트(Beyond Meat)’처럼 콩고기나 합성된 인공육을 먹어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탈탄소 시대, 축산업의 축소는 불가피

특히 산업으로서의 축산업은 대표적인 정의로운 전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농가에도 탄소배출권 거래를 허용한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만 축산인들에게 인센티브를 보장하면서 축산업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재 농가에서의 탄소배출권 확보는 겨울철 난방유를 사용하는 농가를 기준으로 히트펌프나 수막식 농법을 사용하여 석유 사용량을 줄이는 경우, 배출권이 남게 되는 방식으로 판매가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사례는 화훼농가에서 히트펌프를 사용하여 연간 8만 리터의 난방유 소비를 줄였고 이에 따라 인정받은 탄소감축량 82톤에 대해 배출권 판매를 승인 받는 식입니다. 두 번째도 양식장에서 해수 히트펌프를 통해 6만 리터를 줄이고 180톤의 배출권을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축산 농가의 경우에도 우사를 돈사나 양계장으로 전환하는 경우 탄소 배출권을 인정받는다거나 아니면 축산업 자체를 포기하고 콩 농사를 지으면 감축된 탄소배출량 만큼을 권리로 판매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축산업 자체의 포기를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행 탄소배출권과는 차이가 있지만 말입니다. 혹은 지자체 조례를 통해 단백질 공급의 식재료를 변경하여 탄소배출을 줄이면 줄인 만큼 혜택을 줘서 군, 학교, 공공기관 급식부터 “소→돼지→닭”으로 전환되거나 콩 소비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육류에 대한 공급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소비 자체를 공공기관부터 앞장서서 줄여야겠지요. 공공기관 식단 개편에 대한 로드맵도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기후위기는 육식문화를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천호 선생의 글에서 언급된 축의 시대1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희망의 빛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처럼 기후위기 대응 속에서 동물권의 범위 확대와 신장의 희망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객관적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인식의 정립

탄소의 대량 배출이 필요로 했던 자본주의 시대(대량생산-소비체제)에 대한 반성, 다시 말해 탈성장 시대로의 본격적인 전환이 이야기는 되는 오늘날, 동물권의 신장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Vegan”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인데 캘리포니아 산불, 허리케인 등 기후위기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더군요.2 이것은 육식문화가 우리의 문명을 파괴하고 있음이 명백하고 대중들은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위기를 통해 인간의 삶이 생태계 및 지구에너지 순환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한 셈이죠. 이는 동물에 대한 오늘날과 같은 착취체제 속에는 인간의 삶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의 확인이며 거시적인 탈탄소 문화 정립의 과정에서 동물에 대한 인식 또한 대전환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됩니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과거의 관념을 바꾸지 않고서 고기를 먹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따라서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하는 대중들은 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는 관념을 통해, 고기를 먹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드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탄소의 극단적 감축 시대에 처음에는 비싸서 먹지 못하고 대체육으로 그 문화만 유지하다가, 결국에는 육식문화를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그것은 노예제도를 수정하는 것처럼 서서히 진행되겠지요. 물리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없을 때 변화하게 될 관념이겠지요. 탈성장 시대는 인간의 자연력에 대한 지배라는 근대적 기획을 수정하는 작업이며 이 과정에서 동물에 대한 전혀 다른 관계 설정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1. BC 8~3세기 기후불안정에 따른 농업파탄으로 세계적 규모의 정치 불안의 시대에 오히려 공자, 부처 등의 종교·철학적 성찰을 통해 보다 ‘인간적’ 세계를 견인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기후위기가 더 나은 세계로의 진입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

  2. vegilog.com

두더지

쌍둥이를 낳아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 하여 나를 상징할 수 있는 동물을 찾다가, 나는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살고 있는 사람 같아 두더지라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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