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⑩ 성공주의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까?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1988년 뜨거운 광주에서

고3 때였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유행이던 시절이었지요.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 선생님들이 무더기로 교단에서 끌어내려지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니체, 스피노자, 샤르트르, 카프카를 좋아하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터라 주말에는 투쟁가도 부르고 짱돌을 던지러 집회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반파시즘과 현실참여는 저에게 큰 화두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시작은 하숙집 형이 ‘극장 구경’하자고 해서 영화관 앞에서 약속을 잡았는데, 달랑 극장 건물만 구경하고 사실은 그 앞에 있는 집회장에 저를 데려가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광주에서는 87년 항쟁이 격발되어 대학생들 대부분과 고등학생들 절반 정도가 집회에 참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집회에 참여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길로 최루탄 냄새가 지독히 밴 옷을 빨고, 여러 가지 꿈을 꾸며 긴 잠에 들었습니다. 당시 성적은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일부 선생님들은 성적 상위의 친구들만이 꿈꿀 수 있는 상위권 대학에 대해 얘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관심 밖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철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철학책을 읽으며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교정 풀밭에서 낮잠과 공상을 일삼던 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제 적성을 잘 간파하신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했고, 참 즐겁게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고3 담임선생님께 반항도 많이 했습니다. 단짝이었던 친구가 불의의 기차사고로 죽고 나서부터 그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저 이유 없는 반항이었고, 사실은 담임선생님은 저에 대해서 멀리서 지켜보고 관심을 갖고 계셨던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의 조언 덕분에 저는 대학에 가서 스피노자와 샤르트르, 맑스, 소크라테스를 배울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분께는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성장의 신화, 성공과 승리와 관계를 끊기

뜨거운 80년대를 함께 했던 학생운동권 선배들이 90년대 말부터 자기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당시 학생회에는 “자기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선배는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경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였지요. 벤처 열풍, 주식 열풍, 부동산 열풍 속에서 너도나도 성공해보겠다고 나서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 사회가 배태한 괴물과도 같은 모습으로 성장주의가 나타났습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연대했던 노동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보장노동자 즉 정규직 노동자가 됨으로써, 이들과 함께 했던 활동가들이 전망을 잃고 방황하며 미묘한 무기력증을 느끼면서 지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당시 한국사회는 경쟁과 성장이라는 채찍과 당근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요. 엄청난 속도로 부와 자원이 사회에 유통되었고, 성장의 달콤함에 사람들은 눈이 멀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학원에서 책을 벗 삼아 그 시기를 보냈습니다. 엄청난 속도와 경쟁, 무리짓기와 파벌, 성공주의와 자기계발의 논리는 저 자신에게는 참 부담되고 어색한 현실이었습니다. 물론 대학원에도 이런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위를 받으면 성공의 반열에 들어선다는 왜곡된 논리도 퍼져 있었죠.

길냥이와 토마토, 애벌레를 관찰하며 생태주의를 연구하기로 마음먹다. 
사진 출처 : Kathas_Fotos
길냥이와 토마토, 애벌레를 관찰하며 생태주의를 연구하기로 마음먹다.
사진 출처 : Kathas_Fotos

2010년 아내가 구해준 손바닥만한 연구실에서 학위논문을 마치고 일주일 동안 그냥 무작정 놀았던 적이 있습니다. 연구실 이름을 〈철학공방 별난〉이라고 지은 것도 그 즈음이었지요. 당시 저는 ‘이상한 관찰자’, ‘괴짜 연구자’와 같은 모습으로 연구실 밖의 길냥이들과 놀거나, 상자 텃밭에서 토마토며 애벌레며 곤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관찰일지를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태주의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공과는 상관없는 책을 사 모으고, 저의 작은 공간에서 서식하던 곤충과 길냥이와 상추와 토마토에 대한 이야기를 확장시켜 생태계와 우주와 생명의 이야기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지요.

2010년 당시부터, 더 정확히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직후부터 전세계는 저성장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다 잘 안된다면서 불만과 걱정들이 많았지요. 예전처럼 하는 일마다 다 잘 되었던 성장주의 시절의 신화는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일을 벌여도 현상 유지나 지속되는 정도였지, 큰돈을 벌거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희귀해졌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성공과 승리보다는 “더불어 함께”, “보다 나은 미래로”, “지구와 생명을 생각하며” 등으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저의 생태주의 연구는 천천히 꾸준히 진행되어서 많은 생각의 경로와 지혜의 그물망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길냥이에 대한 관심은 동물보호운동과 생명사상에 대한 접속으로, 상추와 텃밭에 대한 관심은 농업과 생태주의 사상으로 더 확장되었지요.

저는 마음을 응시하는 마음, 삶을 재발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들뢰즈의 사상도 재발견하게 되었지요.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을 발견주의라고도 합니다. 서로의 깊이와 잠재성을 발견하는 것, 마음과 삶을 응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들뢰즈의 발견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문밖에는 성공과 승리로 줄달음질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있었지만, 그 보이지 않는 곁과 주변부에 저의 자리, 작은 게토가 있었습니다. 느리게 천천히 작동되는 시간, 차 한 잔과 고양이의 재롱이 있는 작은 삶의 영토 그곳에서 저는 생각하고 재발견하고 토론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풍부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철학공방 별난〉에 찾아온 사람들은 이곳의 풍경을 접하고 종종 어리둥절해 합니다. 고양이 중심의 삶, 조용한 음악이 흐르지만 뉴스는 없는 닫힌 공간, 사람들이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어려운 세미나, 책을 쓰는 것이 밥을 먹는 것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공간, 이런 것이 저의 공간의 독특성입니다. 이렇듯 저는 의도적으로 작은 게토를 만들어서 밖의 세상의 원리와 다른 삶을 창조했습니다.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저는 회사에 다닐 때 적응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맹목적으로 성공으로 향하던 사람들, 경쟁에 지친 인간관계, 돈 버는 것에 혈안이 된 일상 등으로 이루어진 그 자리가 모두가 패배자였던 자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쟁이 할퀴고 간 자리에 폐허가 남았지요. 무엇을 위해서 뛰어가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경쟁이 거의 없는 대학원 생활을 했던 저조차도 경쟁사회의 모습은 섬뜩한 것이었습니다. 경쟁의 규칙은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지만, 사람들은 왜 그러한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지요. 저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성공을 향해 줄달음질치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성공이나 승리의 기회가 최소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쟁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이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경쟁사회에 뛰어든 후배나 제자, 동기들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죽음과 죽임의 문화와도 같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경쟁 사회의 일부였던 적이 있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남짓 직장생활을 했던 저는 실적경쟁, 자리경쟁, 성과경쟁의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영원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시골집으로 돌아갔지요. 시골집에서는 대학원 진학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조용하고 고요한 시골에서 바다와 산과 들을 돌아다니고, 이따금 새들이 지나가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을 관찰하며 소일했습니다. 그렇다고 저 자신을 루저, 패배자, 잉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다른 학문의 기회가 저를 기다리고 있고, 색다른 사상과 가치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리고 그 색다른 사상과 가치는 멀리 있지 않았고, 바로 옆, 바로 곁에 있는 벌레와 새와 강아지와 바다와 들이 품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지구의 아이들, 자연의 아이들로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주도로 홀연히 여행을 떠나 거기에서 6개월 동안 아는 선배님과 기거하면서 휴양을 했습니다. 사실 날마다 술을 마셨고, 날마다 노래를 불렀고, 날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요. 조용한 제주도의 두메산골에서의 느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일상은 지금의 느리고 굼뜬 저 자신의 삶의 리듬을 만드는 데 기반이 됩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위를 따고 지금까지도 이후 줄곧 그러한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이상향이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경쟁도 성과도 성공도 비교도 속도도 없는 그런 삶을 구상하자, 공동체가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친구가 보였습니다. 아마 제가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죽을 것입니다. 죽기 전에 특별한 곳에 여행가거나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생활세계, 일상이 평범하게 지속되는 것이 저의 소원이자 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버킷리스트를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삶과 일상이 바로 희망이자 꿈이자 끝까지 지속되어야 할 미래입니다.

성공주의는 소수자의 선택지인가?

주변에 알게 모르게 소수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것이 성공주의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존엄성이 긍정되지 않을 때, 한 사람의 실존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축소됩니다. 이에 따라 선택지를 갖지 못한 소수자들이 성공한 삶이 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이상적인 목표설정을 향해 나아가기도 합니다. 성공 신화는 소수자로의 고단하고 절박한 삶을 감내하도록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성공스토리들 중 대부분은 밑바닥의 삶, 기층의 삶, 낮은 곳의 삶으로부터 출발점을 갖고 있지만, 결국 수렴되는 바는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고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의 소수자 중에서 이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 자신에게 주어진 핸디캡을 감수하고 성과를 내고 승리하고 성공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는 소수자들의 삶의 과정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보장되지 못하고, 다양한 선택지로부터 배제된 소수자들은 성공주의/승리주의라는 맹목적인 추동력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줄달음질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선택지 중 하나가 절실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소수자에게 여유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기획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원이자 기회가 됩니다. 일상이 강퍅하고 여유가 없을 때, 소수자들은 자신의 삶의 가치와 존엄을 미래로 미루면서 성공 이후의 삶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여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생성되었다 사라진다.
사진 출처 : truthseeker08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생성되었다 사라진다.
사진 출처 : truthseeker08

제가 아는 한 장애인 친구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동료 장애인들에게 봉사하고 나누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조금의 여유와 기회가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있지만, 아주 작은 여유가 더 많은 기여와 나눔, 봉사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저는 놀랐습니다. 그러나 녹녹치 않은 일상과 적은 자원, 기회조차도 없는 상황 등이 그들을 침울하게 만들었고, 성공한 미래 이후에 해야 할 목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고 있는 소수자들은 도움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남에게 도움을 주는 데 두는 경우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텔레비전은 성공한 소수자들의 이미지를 쏟아냅니다. 그 영상들은 소수자들에게 선택의 경우의 수는 성공했을 경우에만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소수자들이 진정으로 선택할 경우의 수는 사랑과 정동이 만들어낸 특이점들뿐입니다. 이를 테면 노숙생활에 직면했을 때, 지원시설, 샤워실, 무료 밥차, 노숙인 잡지 등은 모두 사랑과 정동의 특이점으로 설립된 것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노숙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주의는 정작 소수자들이 선택할 경우의 수를 늘리지 못한 채, 개인들의 노력과 행동으로만 기득권에 진입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요행히도 성공한 사람이 몇 명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자들 누구나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 하나를 만드는 것은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노력하는 보이지 않는 실천가들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지각불가능하게 되기, 우주의 먼지 되기

성공주의의 반대편에서는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전날 만원 지하철을 한번 탄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남들처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저로서는 만원 지하철을 탈 일이 별로 없었고,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터라 식은땀을 흘리며 제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어서 고생했지요. 그런데 옆에 사람이 슬쩍 몸을 비켜 저에게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아주 미세한 배려로 인해 불안하지 않게 지하철을 잘 타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배려의 공동체는 불쑥 생겨나고 갑자기 사라집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이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은 채, 자신의 얼굴을 알리지 않는 채, 자신의 명예를 바라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사랑이 곳곳에서 생성되고 사라집니다.

이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파트 경비원, 택배기사, 콜센터 직원, 배달노동자, 청소아주머니 등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하고 살아가면서도, 매사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손님이 만족을 느끼는데 의미를 갖고 작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직면하게 되는 감정노동의 상황은 이들의 삶과 존엄성,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아파트에도 경비 아저씨가 계시는데 아파트 경비실에는 여름에 에어컨이 없고, 겨울에 난방시설도 없습니다. 묵묵히 일하시는 경비아저씨가 정작 자신은 극단적으로 춥고 덥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은 영역에서 활동하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면면에 저는 주목합니다. 성공을 선택하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무척 열심히 노력하고 생명력과 활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의 궁극은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 들뢰즈와 가타리 식으로 말하자면 ‘지각불가능하게 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는 투명인간되기라고도 불립니다. 공동체에서는 투명인간들이 많습니다. 공동체의 자리에서 박수를 치고, 병풍 역할도 하고, 추임새를 놓는 역할도 하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내세우거나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잡고 마치 투명인간처럼 존재하지만, 그들의 비중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삶과 실존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고3때 홀연히 떠나갔던 제 친구에 대해서 이따금 생각나는데, 그 친구가 제게 남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기억, 추억, 감정, 사랑, 우정, 이러한 보이지 않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요소들만이 남아 있었지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실존과 삶의 의미는 지각 불가능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회의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선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자신을 알리지 않고 봉사와 선행과 나눔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SNS에서의 자신을 뽐내고 자신을 내세우는 문화도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부끄럽게도 책이 한 권 나오면 소개하고 홍보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일상사와 삶의 여정, 생각의 경로는 내세우고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연대하고 공감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어릴 적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고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고 있을 때, 어느 날 문득 찾아와 이름을 알리지 않고 감자 부대를 놓고 간 이웃이 기억납니다. 그 기억 속에서 사랑의 궁극, 우주의 먼지가 되는 사랑의 용기 있는 행동을 상상해 봅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댓글 4

  1. 신승철님의 연재 시리즈를 기다리던 독자입니다. 따뜻한 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남기신 저작을 통해 신승철님의 생각을 더 알아가고 공부해야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이렇게 좋은 글을 쓰셨던 작가님이셨군요. 이제야, 이제와서야 읽어보고 마네요. 남다른 뜻과 뚝심으로, 철학하는 삶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셨는데… 더 뜻 깊게 다가옵니다. 지나고 보니, 선생님께서는 이 글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미처 몰라 뵌 점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가시는 길 배웅 나온, 장례식장에 발 디딜틈 없이 가득했던 지인분들은, 진작에 선생님의 사람됨과 글을 알아차리셨는데… 선생님의 삶과 책들이 눈 길의 발자국이 되어, 댓글로 인사를 전하신 ‘독자’님처럼,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바라봅니다. 성장의 속도를 거부하고, 성숙의 느림으로 한 생 치열히 살고 가셨습니다. 삼가 신승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3. 뒤늦게 신승철 선생님의 글들을 접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었는데, 훌쩍 떠나셔서 많이 섭섭하고 아쉽습니다. 생태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을 하셨던 분으로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왜 좀더 일찍 신승철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좋은 글이네요. 글처럼 사람들을 연결하고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성실하고 진정성 있게 지구의 아이로 삶아오셨지요. 그 가치를 저의 마음에 저의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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