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발명] ① 도대체 지역은 어디까지일까?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일상 속에서 더 이상은 계속 될 수 없는 산업문명을 대신할 늦출 수 없는 대안으로 지역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서야 획일화되고 집중화된 자본주의문명의 문제를 깨닫고 지역으로 자본주의 문명을 해체해 다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역은 지속가능성을 구성할 다양한 것들을 키워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지역은 이제 근대산업성장과정에서 대도시, 수도권에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고유한 자기 역사와 정체성을 가진 중심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앞으로 이어질 [지역의 발명] 시리즈에서는 지역 주민 스스로가 오랫동안 지역 안에 축적된 다양한 자산을 가지고 지역을 새로이 발명할 것을 제안하려 한다.

[표지사진] Martin Winkler

어디까지가 지역일까? 이런 질문은 지역과 관련되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떠올렸을 만한 질문이다. 지역자치, 지역경제, 지역문화, 로컬택트(Localtact)까지 예전부터 지금까지 지역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일들이 지역이란 이름을 쓰고 있지만 정작 쓰는 사람에 따라 지역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제각각이다. 중앙(수도 또는 수도권)을 놓고 여기에 대상이 되어버린 지역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기초가 되는 지역을 설명할 수 있어야 중앙의 주변에 있는 지역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지역으로서 지역에서의 일을 차근차근 계획할 수 있겠다.

단순히 사전에 적혀있는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나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영역’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지역을 설명할 수 없다.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출처: Pixabay (www.pexels.com/ko-kr/photo/280221)
단순히 사전에 적혀있는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나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영역’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지역을 설명할 수 없다.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Pixabay

‘지역’이라고 하면 공간적으로 평면적인 이미지를 흔히 생각하게 된다. 머릿속에 지역을 떠올리는 순간, 늘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놓은 정리된 평면공간이 그려진다. 이 평면공간인 지역이 행정적으로는 효율적인 관리의 단위가 되고 선거에서는 정치인들의 지역구가 된다. 잘 정리된 것 같지만 이런 생각이 지역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알게 모르게 답답한 이유는,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지역은 사람들이 어울려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사전에 적혀있는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나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영역’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지역을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이 지역에 매이고 지역에 맞춰 생활하는 불편한 모양이 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의 범위를 제대로 정하려면 공간에 더해 사람들의 생활이 만들어지는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슷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문화는 지역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문화(Culture)의 어원은 직접적으로 자연을 일구는 것(Argricultura)에서 유래되었다. 은유적으로 정신과 영혼을 계발하는 것(Culturaanima)을 뜻하기도 한다. 인류학자 타일러(E.B Tylor)는 문화를 “문화 또는 문명은 지식과 신앙, 예술, 도덕, 관습 및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습득한 다른 모든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라고 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이 문화 속에서 지역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며 시간이자, 나를 구성해 온 것이자 내가 만들어갈 무엇”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지역은 오랜 시간함께 살아온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으로 지역 사람들에게 장소감(Sense of Place), 장소애(Topophilia) 같은 동일한 장소인식과 정체성을 갖게 하는 곳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정체성을 고려해야 지역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고 한 지역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의 생활을 가지고 정리된 지역 개념으로 지역재생이나 지역문화 등의 지역이름을 가지고 진행되는 많은 사업들이 목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는 단순히 행정적인 영역으로는 주민들의 공동체의 정체성 및 문제와 필요를 모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사업에서는 기초지역으로 생각하는 행정구역상의 시, 군, 구와 동, 면 단위는 공동의 정체성을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시, 군, 구는 너무 크고 읍, 면, 동은 너무 작다. 그래서 다시 생활문화를 가지고 지역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서울시 종로구는 87개 동이 있지만 5개의 권역으로, 충남 논산시는 15개의 읍, 면, 동이 있지만 3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행정지역을 다시 생활지역으로 묶는 방법이다.

정체성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활로 지역의 범위를 정할 때 기초지역단위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동네학교, 자전거로 심부름을 다닐 수 있는 곳, 반려견과 산책을 다니는 거리, 동네친구로 인정하는 범위, 공원에 모이는 사람들이 사는 곳, 생협 매장이나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사는 곳, 주택상권에서 도보 배달이 가능한 곳 등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되는 일들이 모두 가능하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나와 공감과 공유가 가능한 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 여기에다 자연과 사회, 경제 등 여러 가지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지역이 지역다워지는 범위다.

지역은 이런 기초지역을 시작으로 여러 개의 기초지역이 만나 조금 큰 지역이 되고, 다시 여러 기초지역이 만나 더 큰 지역을 구성해 나가게 된다. 지역의 정체성이 인정받고 모아진 지역으로 다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 관리와 통제, 목적에 의해 평균이나 일반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지역과는 전혀 다르다. 어느 지역도 소외되지 않고 지역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모두가 중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얼마든지 지역의 범위는 커질 수 있다. 구성적이면서 상향적으로 지역을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필요에 따라 관리나 선거, 경제 등의 목적을 가진 지역구분은 기초지역을 연결해 그 권역을 설정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지역은 생활을 기반으로 한 지역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주민의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기반해 주체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주민자치가 가능하다.

지역은 일상생활로 정해지는 경계이다.

이 글은 2021년 발행예정인 책 『지역의 발명(가제)』(착한책가게)에 대한 출간 전 연재 시리즈입니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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