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제주] ⑭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숲이 필요하다

2018년 2월, 이사를 준비하며 이 아파트를 처음 찾은 그날을 기억한다. 눈이 내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했던 그날. 아파트에는 재건축 업체에서 내건 현수막이 하얀 풍경 속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 팽팽하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아파트와의 영원한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2024 하반기 UN] ① 당사국총회 – 생물다양성 및 기후변화

2024년 하반기 11월에 UNCBD(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와 UNFCCC(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회의의 주요 내용을 토대로,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지 그리고 또 어떠한 점이 부족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11월 25일부터 진행된 INC-5(정부간협상위원회)의 플라스틱협약을 앞두고,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행진의 현장 분위기와 의미를 알아보자.

[월간 기후송_작곡일지 시즌2] ① 차갑고 뜨거운(AMOC) -AI작곡편

‘월간 기후송’(시즌2)의 작곡과정과 주제를 기록한 ‘작곡 일지’. 시즌2의 첫 번째 곡은 ‘차갑고 뜨거운(AMOC)’이라는 곡으로, 현재 해류순환이 점점 느려지고 있고, 멀지않은 때 멈출 수도 있으며, 이는 빙하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한 소식을 노래로 표현한 곡.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읽고

우리는 기후위기 속에서 저마다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일상에서의 여러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정작 숲을 파괴하는 주범인 ‘종이’ 사용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선동적인 환경운동가들'조차도 자신이 사용하는 화장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관심이 없다.

[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⑯ 냇물아 흘러흘러, 강물따라 바다로 간다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숲정이와 새미의 딸이자 언니인 백진솔(파랑새)은 6월 19일 부산 백산초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지를 잃어버린 숲정이와 새미는 지친 서로를 바라본다. 여기, 그 마지막 이야기이다.

커먼즈의 존재론과 공통장의 정치학 -『커먼즈란 무엇인가』와 『예술과 공통장』을 읽고

작금의 기후와 생명(멸종)의 위기를 돌파할 생태적 전략을 수립하는 데 커먼즈(commons)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디디의 『커먼즈란 무엇인가』(빨간소금, 2024)와 권범철의 『예술과 공통장』(갈무리, 2024), 이 두 권의 책에서 제안하는 존재론과 정치학을 넘어서, 비인간존재들이나 상상의 활동, 가상공간을 포함하는 ‘공통체의 생태학’으로 대안적 가능성을 확장해나갈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스피노자의 사랑] ⑮ 사랑은 흐름에 몸을 싣는 것이다

사랑과 욕망, 정동의 흐름은 유일무이한 사건의 원천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이 흐름에 따라 해방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랑은 삶의 원칙이 되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보살피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우주산업과 군사화] ⑦ 국내 최초 〈우주군사화 반대 전국토론회〉 후기

미국은 동맹국들과 협력해 지구 궤도를 군사화하고, AI와 저궤도 위성을 활용해 정보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형 스페이스X 육성 등 뉴스페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화와 우주산업은 환경 파괴는 물론 소수 전쟁수혜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다. 이에 반대하는 전국토론회에서는 신공항 건설, 사드 배치 등 군사적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더 나은 사회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투쟁을 강조했다.

바라보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가상계』 제6장 「시각적 “전체장”의 카오스」 독후기

짧은 인류사 속에서도 인류가 이성의 합리성을 그런대로 공통적으로 승인한 듯한 기간은 그야말로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만큼이나 더 짧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필 ‘우리’는 그 짧은 순간 속에 살고 있기에, 이성의 합리성과 그것이 세계를 설명하는 틀로 제시한 형식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척 힘겨워한다. 그러는 사이, 이성의 합리성 위에 세워진 세계는 치유 불가능할 것 같은 질병에 빠져들어 버린 느낌이다. 다른 세계관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시각적 “전체장”의 카오스」는 그 다른 세계관을 여태까지와는 다른 어법으로 설명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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