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㉑ 우리 사이의 배치가 강렬해질 때

주체성은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가진 우리 중 어느 누군가’이며, 우리 삶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적 '책임주체'가 아닌 이러한 '주체성'에 의해 이루어지곤 한다. 특히 공동체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1부터 3까지는 내가 한 일이고, 4부터 7까지는 네가 한 일이라고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일들이 대부분이다. 공동체의 배치와 관계망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발언과 행동의 에너지와 흐름이 어떤 특이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공동체에서의 정동과 사랑, 돌봄의 따뜻함, 부드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 강렬한 대화 등이 '주체성 생산'을 해내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우리 중 어느 누군가가 그것을 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군가’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는 영어라는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던 시기이며,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빠졌던 시기이고 로맨스만화를 많이 빌려와 읽던 시기였습니다. 아버지 사업이 문제가 생기면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온통 빚쟁이들이 몰려왔고 저는 그 사람들을 일일이 응대 했지요. 부모님 안 계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어느 날 이웃주민이 찾아왔습니다. 두 손에는 감자포대가 들려 있었지요. “맛있게 먹어라, 누가 줬는지 알 필요 없고”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죠. 저는 감자포대에서 어떤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 ‘우리 중 어느 누군가’였습니다. 그 사람이라고 특정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에 우리를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는 이후에도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상상력과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는 우리 중 어느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 중 어느 누군가’라는 개념을 접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2007년도 〈초록정치연대〉라는 공동체에서였습니다.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예비모임 성격을 갖고 있었지요. 제가 참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공동체의 향후 활동을 논의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일을 누가 할 것인지를 정하지도 않고 갑자기 회의가 끝났습니다. 저는 그 과정이 정말 미스테리하다고 여겼지요. 다시 말해 회의의 핵심사안인 역할분담, 책임부과, 직분결정을 안한 채로 회의가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한 선배에게 다짜고짜 물었지요. “그래서 누가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선배는 “우리 중 어느 누군가가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누가 할 것인지를 유심히 관찰했지요. 예를 들어 화장실 휴지는 누가 채워놓을지. 회의록 정리는 누가 할지, 오늘 논의되었던 실천에 누가 참여할지 등을 경찰의 시선으로 관찰하였습니다. 그때 심정은 결국 공동체가 갖고 있는 자율성이 허구이거나 위선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기대는 좌절됩니다. 그때그때 매시기마다 우리 중 어느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일들을 해내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이라고 책임을 내리거나 단정내리지도 않았는데, 우리 중 어느 누군가가 나타나서 홀연히 사라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애 최초 기억의 저편에

생애 최초 기억 이전의 시간은 어머니=자연과 합일되었던 ‘반기억 생성’의 순간일 것이다. 사진출처 : Kristina Paukshtite

“당신의 생애 최초 기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저는 난처해졌습니다. 어릴 적 장독대에서 된장을 꺼내서 소꿉장난을 하며 놀던 기억이 처음인가? 비오는 날 미끄럼 놀이하던 것이 처음인가? 헛갈려서 주저주저 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죠. 생애 최초 기억에 대한 질문이 들자 유년기의 기억 저편이 무엇일까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기억에 없는 그 공백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냥 저의 실존은 세상에 던져지고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생애 최초 기억 이전에 대한 비밀을 탐색하던 중 저는 하나의 단서를 얻게 됩니다. 바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제 후배의 삶에서였습니다. 제 후배 J씨는 유능한 커리어우먼으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다 임신 후 퇴사했습니다. 그 후 연락이 정말 뜸했습니다. 5년 동안 선후배는 물론 친구들에게까지 연락도 않고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최근 친구들 모임에 오랜만에 후배 J씨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5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노라고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을 하면서 가장 밑바닥의 고독과 체력의 고갈 속에서도 아이를 키워냈노라고 당당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모든 커리어를 다 바쳐가며 키워낸 아이가 나중에 엄마의 이 시간을 기억해줄까, 그녀는 자문하면서 피식 웃었지요. 저는 그때 생애 최초 기억 이전의 시간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자연과 합일되었던 ‘반기억 생성’의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습니다.

아동심리학자 다니엘 스턴은 생후 6개월까지의 아동 시기를 출현적 자아의 시기라고 규정합니다. 그 시기는 특이합니다. 아이와 어머니가 완벽하게 합일된 시기니까요. 출현적 자아의 시기 동안 아이는 자아와 대상,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흐름이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젖의 흐름, 똥의 흐름, 시선의 흐름, 손의 흐름, 물의 흐름 등 모든 것이 흐름으로 지각되면서 기억이나 의미의 고정점이 생기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 시기 동안 어머니와의 합일을 느낀 아이들은 따로 자기 세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어머니의 행동, 표정, 몸짓, 색채, 음향 등과 하나가 되어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작은 표정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현적 자아의 시기를 거친 사람들은 타자와의 완벽한 합일을 경험한 이들이며, 즉 전부 공동체를 구성할 능력을 잠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타자로 식별하지 않고 일체화될 수 있는 잠재력도 여기서 생깁니다.

불교의 윤회사상은 생애 최초 기억 이전의 세계가 생애 마지막 기억 이후의 세계가 일치한다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기에 윤회와 억겁의 인연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볼 여지도 생깁니다. 윤회에 담겨 있는 순환적 세계관으로부터 단절 즉 해탈을 통해 부처가 된다는 의미는 인연과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에서부터 자각과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사상 이전에 애니미즘과 같은 순환적 세계관이 2만 년 동안 인류의 뿌리 깊은 사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어머니=자연’과의 합일로 돌아가려는 인류의 바람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 대목입니다.

누구나 공동체를 만들 능력이 있다

철학공방 별난 연구실은 2013년 문래동예술촌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문래동예술촌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연스레 예술가들과 만날 기회가 많아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연구실에 콕 박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철학공방 별난에서 매주 1~2회씩 세미나와 특강 등이 열렸지만, 문래동 예술가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 터라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사실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는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래캠퍼스라는 강좌 및 밥상모임이 생겼고,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예술가들과 사는 이야기, 좋았던 공연, 책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의 짧은 대화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얘기하다는 것을 굉장히 뜻깊고 의미가 새로웠습니다.

그 후로 저희 부부가 공동체의 힘을 체험한 것은, 문래동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가출을 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골목을 헤매고 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며 저희 부부는 허둥지둥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문래동 예술가들이 찾아와서 같이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철공소와 가게 아저씨들도 가세했습니다. 많은 동네 사람들이 고양이를 찾고 있는 상황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던 저희에게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대심이는 철공소 아저씨, 커피 배달하시는 분,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기적적으로 발견됩니다. 당시 절박했던 저희들로서는 고양이를 찾겠다고 나선 문래캠퍼스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와 직접행동이 정말 가슴에 깊게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바쁜데도 함께 돌아다니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문래캠퍼스와 접속할 때마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서로 달라져야 한다”라는 펠릭스 가타리의 아포리즘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의 뜻과 마음으로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연대할수록 서로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달라져야 한다는 말 즉, 공동체가 품고 있는 차이와 다양성이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져야 더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는 사상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다양성을 넓혀가기 위해 모이고 연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또 다른 차이, 시너지효과로서 색다른 차이가 생겨날 여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문래캠퍼스와 같이 미술, 건축, 목공, 미싱, 수예, 도예, 문학, 음악 등등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든 자리에서는, 주인공과 청중이 각각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한명 한명이 모두 판짜는 사람이며 다양성의 하나의 경우의 수로서의 특이점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지방방송이 많고, 중언부언이 많고, 잡담, 수다, 뒷담화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래캠퍼스는 공동체가 미리 주어진 전제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늘 과정이자 진행형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서 모두가 판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문래캠퍼스라는 작은 공동체는 우리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간혹 공동체를 만들 능력이 자신에게만 있다고 여기는 전문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 사람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희생적이고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공동체를 함께 더불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주 간과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만이 판짜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판짜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과 낙관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어머니=대지=자연과 합일되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모두 잠재의식으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는 화려한 언변으로 앞에 나서는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작고 어설프고 아마추어와 같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런 비효율에 참을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꽤 됩니다. 저조차도 서툴고 어색한 자리에서 나서서 자주 개입하고 참견하고 고치고 싶은 욕망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동체는 천천히 발효되는 효모와 누룩과 같아서, 일단 더디게 성숙되지만 사람을 취하게 하고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합니다.

공동체성과 시민성 사이에서

생각해보면 청년 시절 동안 일의 효율성과 속도가 저에게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일처리가 핵심이었지요. 그 빠른 속도와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리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지요. 그러던 중 대학원 시절동안 간주관성, 사이주체성이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우리 중 어느 누군가’를 개념적으로만 이해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사이주체성(inter-subjectivity) 혹은 간주관성이라는 개념을 많은 철학자로부터 발견되었습니다. 가다머, 하버마스, 데리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등, 그중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주체성 논의는 매우 혁신적이고 자율적인 공동체 사상을 품고 있음을 나중에서야 확인하게 됩니다. 주체성(subjectivity)은 근대의 ‘책임주체’(subject)와 같이 책임, 당위, 의무, 믿음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체성’은 사랑, 욕망, 정동, 돌봄, 흐름, 되기에 따라 움직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성은 ‘우리 중 어느 누군가’처럼 사랑과 욕망에 감응하여 홀연히 나타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1부터 3까지는 내가 한 일이고, 4부터 7까지는 네가 한 일이라고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일들이 대부분이다. 사진출처 : James Baldwin

물론 ‘우리 중 어느 누군가’는 책임주체 형태로 바로 그 사람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계망과 배치가 강렬해지고 뜨거워질 때 생산해낸 색다른 사람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다시 쉽게 말하자면, 주체성은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가진 우리 중 어느 누군가’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1부터 3까지는 내가 한 일이고, 4부터 7까지는 네가 한 일이라고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3을 해줬기 때문에 4나 5의 일처리가 더 매끈할 수 있었던 경험, 혹은 아예 그 구분 자체가 어렵게 뒤죽박죽으로 공과를 나누기 불가능한 일도 많지요. 이처럼 나와 너 사이에서 일이 흘러가듯이 진행될 때,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우리 중 어느 누군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즉, 나와 너 사이에서 어느 누군가는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있지만, ‘나다’, ‘너다’를 특정하지 않고 자율성에 기반하여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그럼 가까이에 있는 공동체에 한 번 접속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민이라는 ‘책임주체’와 공동체라는 ‘주체성’는 대립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개념입니다. 특히 시민이라는 권리주의 담론과 공동체라는 자율주의 담론의 차이는 세간에 많이 회자되는 ‘양 갈래로 나뉜 지점’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자율성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권리와 책임을 명시하는 제도화된 영역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의 자율성이 개척한 색다른 자유와 평등, 우애와 같은 가치를 법과 제도와 행정에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공동체의 관계망과 시민의 제도는 긴밀한 관련을 갖습니다. 펠릭스 가타리는 일단 특이한 관계망이 만들어지면 따로 입법화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제도화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요법을 창안합니다. 그의 제도요법은 제도를 만들고 입법화하는 시민의 영역보다 제도 자체가 설립될 수 있는 공동체적인 관계망의 영역을 일차적으로 중시하는 사상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은 복잡해지는데 개인들은 원자화되고 있다는 작금의 엄혹한 현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회 책임과 공공 책임, 공동체 책임이 모두 개인 책임으로 환원되어 버릴 때 제도와 관계망 둘 다 완벽히 무력화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적 관계망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배치와 관계망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요. 사실 우리의 마음은 대부분 배치에 따라 생겨납니다. 그런 점에서 왜곡되고 굴절된 마음의 배후에는 일그러진 배치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오늘날의 활동가들은 배치와 재배치의 예술가, 판짜는 사람, 구도를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느끼고 감응하고 사랑하고 욕망하게 되는 모든 이유의 저변에는 판이나 구도, 배치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달콤한 배치 속에서 달콤한 사랑이 싹트는 것이겠지요.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공동체를 구성할 능력을 가진 사람, 모두가 판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공동체는 소수의 기획에 의해 판이 짜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판들이 교직하고 교차될 때 만들어지는 보다 상위의 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특징은 다시 말해 복잡계, 메타모델, 메타네트워크라는 말로도 설명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공동체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긍정할 때, 낙관, 유머, 해학이 드디어 지상에서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잠재성과 깊이

저는 공동체의 배치와 관계망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저는 공동체의 배치가 갖는 무언의 강도, 온도, 속도, 밀도 속에서 색다른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저 자신 역시도 그중 하나겠지요. 공동체의 배치와 관계망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발언과 행동의 에너지와 흐름이 어떤 특이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의 후배 중 하나는 공동체와 접속하고 나서 맨발로 도시를 걷겠다는 색다른 기획을 하고 몇 달 동안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또한 어떤 후배는 극도로 엄격한 채식을 하겠다고 나서서 몇 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공동체 관계망 안에서 불쑥 팔이 되는 사람, 불쑥 다리가 되는 사람, 불쑥 가슴이 되는 사람을 발견할 때마다 기쁨을 느낍니다. 이러한 돌발적인 사건의 토대에는 분명 관계망의 강렬도와 밀도가 전제되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돌발적인 사건을 만들기 위한 판을 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돌발흔적과 같은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의 역동성, 활력, 생명에너지를 가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색다른 주체성의 감수성과 느낌, 발언은 무척 주목이 됩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저의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펠릭스 가타리는 그것을 주체성 생산이라고 규정하지요. 거창한 철학적 개념까지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주체성 생산’은 비밀스럽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임에는 분명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공동체 사람을 만나다 보면, 돌발흔적처럼 갑자기 그 일을 해낼 능력과 의지를 갖게 되는 과정과 마주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은 공동체에서의 정동과 사랑, 돌봄의 따뜻함, 부드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함, 강렬한 대화 등에 감응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종종 묻게 됩니다. 아무래도 저의 판단은 특이한 사건인 주체성 생산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관계가 성숙되고 강렬해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발효되고 성숙된 판 위에서 사람들이 나서고 설치고 뛰어 놀고 춤추는 것만 같습니다. 공동체의 비밀은 아직 규명되지 않는 바가 많습니다.

저희 부부가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서로를 뻔하게 보는 순간 공동체는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즉, “~은 ~이다”라고 단정내리고 의미화하는 것을 뻔하게 본다라고 표현합니다. 서로의 깊이와 잠재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뻔하게 단정내리는 것은 결국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깨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살면서 ‘아내는 늘상 그런 식이야’ 혹은 ‘아내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신 깊이와 잠재성 속에서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이것을 유머와 해학, 패러디로 만들거나 웃음을 터뜨릴 소재로 만들곤 했지요. 아내는 이제 제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웃게 만들지 늘 기대가 된다고 말합니다.

공동체는 삶과 생활세계가 갖고 있는 깊고 심오한 잠재성의 비밀들과의 접속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공동체가 수 천 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유는, 다니엘 스턴의 말처럼 유아기 때의 잠재의식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의외의 주체성 생산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공동체에 대해서 더 희망과 낙관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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