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문명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연극의 서사구조를 중심으로 ④

생명과 자연의 한계는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새로운 전환사회를 맞이하여 탈성장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전환의 시계는 임박했다. 여기서 연극인들은 새로운 주체성,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내용은 공동체, 농적 가치, 소수자에 대한 사랑, 민주주의 등과 같이 탈성장 시대를 살아갈 주체성에 대해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닐까? 연극이라는 한판의 난장이 새로운 시대를 맛보는 시간이 되면 어떨까?

[탈성장토론회 특집] ① 마그나카르타와 공통의 숲 –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읽고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발제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800년 전 제정된 “진짜” 마그나카르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축소되고 왜곡되기 전, 마그나카르타에는 모두의 자유를 위한 ‘공통권’을 담지하는 삼림헌장이 있었다.

[탈성장토론회 특집] ② ‘전자의 숲’에서도 마그나카르타 정신은 유효할까?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에서 논평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대)도시는 어떤 숲일까?’ 오늘날 대다수의 인구가 살아가는 도시라는 생태적 환경에서는 어떠한 공통권을 추구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④ 패치워크의 미국과 치료사 바틀비

이 글은 1993년 『Critique et Clinique』에 실린 질 들뢰즈(Gille Deleuze)의 「Bartleby, ou Formule」(Paris: Les Éditions de Minuit, 1993. Chapitre Ⅹ, pp. 89-114.)를 번역한 것으로, 2000년에 한국어판 「바틀비, 혹은 상투어」(김현수 옮김)라는 제목으로 『비평과 진단: 문학, 삶 그리고 철학』(인간사랑, P125-163)에 실린 적이 있다. 이번에 「바틀비 혹은 상투어」라는 제목으로 재번역되어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되고 있으며, 이번이 그 마지막회이다.

[전통과 생태] ① 밥상문화_공동체밥상에서 혼밥문화로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공동체밥상은 ‘더불어 가난’에 기반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탈성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동체밥상을 복원해야 할 것이다. 나눌수록 풍요로워지고, 나누어야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밥상, 이야기구조가 폭발하여 열정과 환희가 감돌던 밥상, 보이지 않는 미학과 윤리가 작동하던 밥상, 그런 밥상은 이제 현대적인 트랜드가 되어 다시 복원되고 재구성될 것이다. 그것도 젠더교차성 밥상살림의 주역들이 그것을 해낼 것이다. 그것이 오래된 미래, 탈성장 전환사회의 미래의 공동체밥상의 모습일 것이다.

[소모임 조직화 사례] 생활나눔모임 〈마라나다〉

필자는 1982년부터 1987년도까지 6년간의 마라나다 소모임의 경험을 전한다. 가톨릭 수사님과 영어성경교실로 출발한 소모임은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소모임은 자연스럽게 삶을 나누고 모두의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로 전환된다. 특히 ‘I-Message 중심의 3인조 대화’를 모든 모임에서도 시도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누군가의 행성이 되는 것, 퍼실리테이터가 되기 위한 첫 걸음

퍼실리테이터 혹은 퍼실리테이션 기법 강의를 할 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토론과정이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기술이나 도구 사용법이 아니다. 퍼실리테이터는 누구에게나 내재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 뭐든 잘 해내고자 하는 바람, 인정의 욕구 등을 인정하고 이를 이끌어 내는 조력자이자 산파와도 같다. 내가 누군가의 항성이 아니라 행성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태도가 이를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톺아보기] ⑥ 탈성장, 데팡스와 리추얼의 복원 이야기

탈탄소 사회는 물질적으로 빈곤한 사회일 수밖에 없다. 현재 규모의 경제는 탄소 감축 목표치와 사회유지 사이에서 지속적인 감축의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바타이유와 한병철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그 사상가들의 해법은 결국 공동체의 회복임을 먼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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