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산책] ⑨ 6월이 됐다는 건new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도시 속에서 사는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할 뿐 아니라 변화에 맞서려고 듭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뭇생명들이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생명살이의 장엄한 원리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계절을 따라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대견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찾아 보시겠습니까?

청년 우경화, 무능한 중년 정치판이 문제 아닐까?new

차별과 혐오 정서의 확산은 막아내야 하고, 소수자를 향한 가짜뉴스는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청년 남성 내부에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격차나 노동의 불안정성 같은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효능감을 선사할 수 있고, 이준석 같은 혐오정치인에게 의존하는 구도를 파훼할 수 있다.

[진솔한 몸] ① 진솔빈new

언니는 2023년 6월, 트럭에 치였다. 경사진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를 걷고 있던 중이었다.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언니는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다. 뇌는 거의 죽었지만, 몸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 눈동자는 흔들린다. 하루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고, 이따금 휠체어에 앉는다. 나는 언니 영혼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비루하고 아픈 몸을 벗어 던진 채로.

[콜로키움 특집] ① 얽힘과 말걸기 – 『도플갱어』를 읽고new

클라인은 『도플갱어』를 통해 극우 성향을 보이는 음모론자들을 별세계에서 온 이들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배태된 이들로 바라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도플갱어를 ‘타자화’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와 연결한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가 알던 그리고 살던 이 세계 자체가 거짓말이며, 극우 세력의 “개소리”는 그 거짓말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라는 것을.

[콜로키움 특집] ② 『도플갱어』와 불교의 탈자아적 응시new

이 글은 나오미 클라인의 『도플갱어』와 그에 대한 발제문 「얽힘과 말걸기」를 토대로, 실체론적 자아에서 벗어나 불교적 탈자아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성과 실천의 가능성을 성찰한다. 특히 ‘아니 보기(unseeing)’라는 개념을 통해, 인식은 있으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대인의 심리적・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불교의 여실지견과 자비실천의 대안을 제시한다.

[소울컴퍼니] ⑪ 실패할 수 있는 사회new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교육 기회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실패’를 긍정하는 시도는 어리석다. 젊은 세대조차 사회 양극화에 질려 버린 현실에서 ‘실패’를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실패’ 역시 특정 계층이나 여유를 가진 이가 거머쥔 카드일 수도 있다. 점차 더 계층 이동성이 좁아지고 있고, 과열된 교육과 불평등의 문제가 고착화된 우리 사회에서 ‘실패할 수 있는 사회’를 생각해본다.

[계절동화] ③ 5월_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new

시간은 흐른다. 시간에 따라 나는 무언가 바뀌고 있다. 보였던 것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건반을 더듬으며, 그것이 나타나고 사라지도록,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좋다.

돌봄의 정치: 무엇을 돌볼 것인가?new

현재의 질서 안에서 수행되는 생산 노동이 문제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재생산 노동이 그 문제적인 노동을 계속해서 뒷받침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재)생산 노동의 평등한 접근/분배 이전에 노동 자체를 문제화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 돌봄을 보편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돌봄의 불평등한 분배만이 아니라 돌봄의 사회적 기능 자체를 문제화해야 한다.

[한국철학 조각모음] 박혁거세 이야기로 읽는 자기객관화new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비교는 대단히 유용한 수단 내지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 이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교는 자기객관화와도 연결될 수 있으며 이 또한 균형 잡힌 사고를 위하여 유용하다. 『삼국사기』의 첫 부분을 읽어보며 비교와 자기객관화에 관하여 고찰한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