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사랑] ㉔ 생명은 모두 물음표, 세상은 민주주의 놀이터

아이들이 삶의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놀이를 자꾸 바꾸고 이리저리 횡단하고 방황하는 아이처럼 『에티카』 후반부의 논증을 이끕니다. 그가 주장하는 내재성의 구도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아이라는 주체성처럼 삶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작동할 것입니다.

[무턱대고 비건] ⑨ 닭 죽이기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직접 죽이는 것, 그에 따른 책임을 느껴보고 싶다는 이유로 닭을 죽이는 것은 과연 합리화가 가능한 일일까요? 그에 관한 고민을 썼습니다.

[몸살 앓는 제주] ㉒ 한라산 조망권은 누구의 것인가?

최근 제주도 도심의 고도 제한을 완화하는 조례가 통과되어 한라산 조망권이 사유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조망권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할 공공재이지만, 자본과 개발의 논리 속에서 점점 배제되고 있다. 이 글은 도시의 풍경을 둘러싼 불평등과 시민이 감시하고 기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턱대고 비건] ⑧ 고래와 종차별주의

고래를 좋아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고래를 아끼면서도, 고래와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가진 다른 동물은 먹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습니다. 이 대화로 저는 종차별주의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7세대 후를 생각한다 – 북미 선주민의 지혜에서 배우는 ‘장기주의’

이로쿼이족의 7세대 원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 중 하나가 바로 ‘생명의 연속성’이었다. 족장들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선택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물었다. 생명이 끊어지면 7세대를 생각할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복지를 현재 세대와 동등하게 고려하고, 수백 년 후의 결과까지 내다보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북미 선주민 이로쿼이족에게는 ‘7세대 원칙’을 살펴본다.

[스피노자의 사랑] ㉓ 공동체가 소수자를 더 발명해야 하는 이유

소수자라고 하면 사회적 약자나 양적 소수, 피해자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알고 보면 소수자는 우리 자신을 풍부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공동체의 차이와 다양성을 증폭시켜 주는 존재이면서, 사랑과 욕망, 정동, 돌봄의 흐름을 강렬하고 반복적이게 만들어주는 특이점이기도 하지요. 어떤 공동체나 집단에 아이,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가 등장하면, “소수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암묵적인 태도가 형성되고, 이에 따라 관계망의 좌표를 수정합니다. 여기서 ‘문턱이 있는 유토피아’가 될지, 열린 공동체로서의 배치를 가질지 결정됩니다. 그런 점에서 소수자는 공동체에 심원한 변화를 주는 특이점입니다.

[초록산책] ⑩ 다시 시작하기 위한 각오

추위와 어두움 속에서 새로운 봄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단단하게 각오를 다지며 새해를 시작했건만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았던 봄은 훌쩍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일 년의 반이 남았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어떤 각오로 남은 반년을 계획하시는지요?

두 얼굴의 AI,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최근 여러 범용 AI가 일반인들에게 대중화되면서, AI를 활용하는 사례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가 빠른 만큼, 이를 이용한 범죄와 여러 부작용도 급증하고 있다. 이미 사회 깊숙이 침투한 AI를 제재하기 위한 유럽의 법제화 동향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개선해야 할 부분과 가져야 할 경각심을 점검해본다.

[신승철 2주기 추모(축)제 후기] 가까이서 만나 따뜻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나누다

떠나간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되는 누군가를 기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잊지 않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 누군가를 떠나보낸 이후, 이전보다 더 나아져서, 잊지 않기 위한 앞으로의 모임들을 즐거운 만남의 장으로 만들어가려는 다짐이어야 할 것이다.

[소울컴퍼니] ⑫ 삶의 한가운데, 다시 말 걸기

지난 1년간, 나는 신승철 선생님께 ‘말-걸기’를 시도했다.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실마리 삼아 글을 써왔다. 일상 속에서 마주한 작은 감각부터 예기치 않은 현실 속 타자와의 얽힘, 감정의 미세한 결들을 따라갔다. 결국, 대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타인과 공존할 수 있을지를 묻는 또 다른 물음표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글쓰기는 내게 타인과의 거리에서 시작된 사유를 천천히 좁혀가는 과정이었고, 때로는 침묵하거나 머뭇거리는 나의 자세를 알아차리게 했다. [소울컴퍼니]를 통해 나는 말과 글이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관계를 여는 방식일 수 있음을 배워왔다. 이제 다시 일상에 천착해 그 여정을 되짚어보며, 냉소와 단절의 시대를 건너보고자 한다. 신쌤에게 ‘말-걸기’를 이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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