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되기

들뢰즈와 가타리의 ‘아이되기’ 개념은, 우리 모두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이것은 퇴행이라기보다는 역행(involution)이다. 아이로 돌아간다는 것은 유치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다채로운 상상력과 영감, 창조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속도

공간의 정치가 무력화된 곳에는 속도의 정치만이 존재하게 된다. 정치는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제어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되었고, 대중은 속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움직일 뿐이다. 속도는 민중에 대한 전쟁 선포이며, 자동차나 운송수단은 이동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쟁기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생명정치

생명정치의 특징은 억압하고 통제하고 착취하던 고압적이고 강권을 갖던 권력의 이미지가 아니라, 체제 내부에서 잘 살도록 하는 권력의 이미지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현존문명과 현존체제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야성성과 자율성을 거세당한 채 문명이 주는 달콤한 떡고물에 취해 버린다. 생명정치 단계에서의 외부는 혐오되고 차별되고 배제되는데, 그 대상은 제 3세계 민중, 난민, 이주민, 다른 지역 사람들, 소수자, 생명, 자연 등이 될 수 있다.

권리주의

근대 권리주의의 구도는 시민의 권한과 범위를 넓혀나가고 인권의 확장을 도모했지만, 사실은 자율성을 질식시키고 초월적인 제도 내부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도 작동했다. 그동안 미시세계, 생활세계가 가진 자율성을 누락한 채 딱딱한 책임주체로서 사고되어 왔던 시민의 권리주의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점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정동자본주의(Affective Capitalism)

최근 정동(affect)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그것은 자본주의가 정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플랫폼을 통해서 정동을 활성화하여 부수적인 이득을 얻으려 하는 최근의 상황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정동을 탐내는 자본주의를 채굴자본주의, 추출자본주의, 정동자본주의, 플랫폼자본주의 등으로 부른다.

정동

정동은 곧 사랑이다. 곁을 닦고 아끼고 정돈하고 보살필 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 누군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나를 위해 양치질을 하고, 음악을 듣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 또는 나 자신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하다못해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행동조차 정동이다. 그래서 정동의 동의어는 사랑,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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