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고통, 자각, 살 – 『육화, 살의 철학』 「서론 : 육화에 대한 질문」을 읽고

근대적 객관성의 추구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겪는 살로 자신이 이루어져 있음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된 듯 싶다. 살은 쾌락과 고통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분리될 수도 분할될 수도 없는 것임도 근대의 일상에서는 인식되지 않았던 듯싶다, 미셸 앙리의 저서 『육화, 살의 철학』은 우선 이 점을 상기시킨다.

초대받지 못한 자가 잔치를 풍성하게 한 이야기 – 『반란의 도시』 를 읽고

파리와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 순위의 상위권을 언제나 차지한다. 그런데 그 도시들의 생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약탈적 도시개발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흔적을 드러내면서 그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도시에 초대받지 못하고 단지 ‘끼어들었던’ 자들의 일부가 그 도시와 자본주의에 타격을 가하면서 더 나은 도시로 가는 길을 잠깐씩 열었던 이야기도 전하여 준다.

대도시의 다면적인 문화생활에 대해 생각해보다 –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언젠가 ‘이 복잡하고 비정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전원에서 여유를 즐기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서 누군가 홀로 일어나 ‘대도시의 얽히고설키고 다면적인 문화생활’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서, 좀 더 많이 모여 살자고 했다. 1960년대 이후 많은 사람에게 생각의 계기가 된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적 인식과 소통이 자멸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다크 코메디 – 영화 《돈 룩 업》 관람후기

[※스포일러 주의!!!] 굳이 적용되지 않아도 될 현장에서 매체 친화적 태도와 비즈니스 마인드가 중시되는 경우를 꼽아보다 보면, 인류가 삶의 도구로써 빚어낸 그런 태도와 마인드에 의해 인류가 도리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소통의 도구는 하루가 다르게 개선됨에도, 그것은 지배의 도구로써의 위력만을 더할 뿐, 정작 소통은 경색된다.

진보와 빈곤, 도시의 이야기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을 읽고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다. 그래서인지 클로이 자오의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사람들은 꽤나 떠돈다.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화성 형사 박두만은 그 점을 지적한다. 그 덕분에 남한의 관객들은 반도의 분단국가가 가지는 한계를 진하게 체감한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극단적 중앙집권국가의 수도이며 19세기말에 런던보다 많은 인구를 자랑했던 한양을 가진 나라의 후예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수행적 활동으로 자본의 세계 관리를 가로지르려 하는 개체의 애환 –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 1장 「정동의 자율」 독후기

무상(無常).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기원전에 인도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한다. 변화가 가속화하는 세계에서 이 말은 새삼 주목받을 수 있다. 긴장[서스펜스]이란 무엇일까? 건강에 나쁜 걸까? 그럴 런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하다. 그러나 번득이는 욕망들, 무수한 광고판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이 긴장을 놓을 때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에 경의를 표하고, 빚을 갚고, 어린 양 되기를 권하다 –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관람 후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내가 직접 만든 것을 꼽아보면, 내 삶이 타인에게 얼마나 심하게 의지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있는지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직접 만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에 예민한 사람은 연대라는 가치를 중하게 여길 것이고, 적어도 받은 만큼은 베풀고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세계를 실재적이지만 추상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위한 설계 ;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 〈서문〉 독후기

형식논리를 핵심적인 도구로 하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세계를 대체로 ‘예측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이 예측되고 결국은 관리되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점차 편해지고 안전해지기도 하였으나,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추세가 급격히 진행되어버린 사회에서는 진작부터 의지를 발휘하여 자유롭게 사는 맛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앞서 핵심적 도구라고 하였던 형식논리에서, 두 발이 아니라, 한 발 빼기를 시도하였다. 아마도 “실재적 추상”이라는 말이 이러한 시도를 대변하는 말로 적합할 듯하다.

육식은 메탄을 발생시키고 연민의 대척점에 선다 ; 영화 《카우스피라시》 관람후기

공업화에 수반되는 환경오염은 기후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에 못지 않게 육식도 기후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공장형 목장, 방목장, 가사농장이 모두 열대우림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재배한 유전자 조작 옥수수나 콩으로 만든 사료, 공유지의 목초지화, 메탄의 발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육식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직간접으로 살생을 피할 수 없다.

웃고 즐기며 해양을 오염시키는 동안 노예제는 계속되고 있었다는 이야기 ; 영화 《씨스피라시》 관람후기

이 다큐멘터리는 알리 타브리지가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바다를 기록하는 해양 다큐 작가가 되려다가 알게 된 각종 해양 오염의 실태와 해상에서 벌어지는 노예노동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다큐가 보여주는 해양 오염 실태는 편파적이며 과장되었다는 지적들과 함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고깃배에서의 노예노동은, 적어도 남한 사람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나는 다큐 속 태국 고깃배의 노예노동을 보며 즉각적으로 멍텅구리배에서의 새우잡이, 멸치잡이 그리고 염전노예를 떠올렸다. 이 다큐는 다양한 해양 오염과 해양 생물 학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서양에서 18세기에 성행했던 해적질과 노예매매가 아직도 변형된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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