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⑨ 소비를 줄이면 욕망도 줄어들까? 故신승철2023년 6월 18일조회 751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도주선 분자 정동 소비 욕망 관련글 [지금 여기 가까이] ⑧ 빈곤은 찬양될 수 있을까? [지금 여기 가까이] ⑦ 공동체가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는 착각 [지금 여기 가까이] ⑥ 왜 지금-여기-가까이에 주목해야 하는가?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④ 패치워크의 미국과 치료사 바틀비 이승준2023년 1월 11일조회 515 이 글은 1993년 『Critique et Clinique』에 실린 질 들뢰즈(Gille Deleuze)의 「Bartleby, ou Formule」(Paris: Les Éditions de Minuit, 1993. Chapitre Ⅹ, pp. 89-114.)를 번역한 것으로, 2000년에 한국어판 「바틀비, 혹은 상투어」(김현수 옮김)라는 제목으로 『비평과 진단: 문학, 삶 그리고 철학』(인간사랑, P125-163)에 실린 적이 있다. 이번에 「바틀비 혹은 상투어」라는 제목으로 재번역되어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되고 있으며, 이번이 그 마지막회이다. 공동체 도주선 들뢰즈 리토르넬로 탈주 관련글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① : I WOULD PREFER NOT TO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② : 이상한 배치에 놓이게 된 바틀비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③ : 정당화될 필요가 없는 삶, 그리고 소설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② : 이상한 배치에 놓이게 된 바틀비 이승준2022년 12월 11일조회 1.0K 이 글은 1993년 『Critique et Clinique』에 실린 질 들뢰즈(Gille Deleuze)의 「Bartleby, ou Formule」(Paris: Les Éditions de Minuit, 1993. Chapitre Ⅹ, pp. 89-114.)를 번역한 것으로, 2000년에 한국어판 「바틀비, 혹은 상투어」(김현수 옮김)라는 제목으로 『비평과 진단: 문학, 삶 그리고 철학』(인간사랑, P125-163)에 실린 적이 있다. 이번에 「바틀비 혹은 상투어」라는 제목으로 재번역되어 총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도주선 되기 들뢰즈 배치 비정형 관련글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① : I WOULD PREFER NOT TO
들뢰즈가타리공부모임_천개의고원 3회(online) 생태적지혜2021년 9월 18일조회 565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2001, 새물결)에 관한 들뢰즈가타리모임이 2021년 9월 7일(화) 오전10시 온라인 ZOOM을 통해 진행되었다. 10월 19일(화)로 예정된 다음 모임에서는 『천개의 고원』 3장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9칠44.칠칠56 균열 도주선 발견 절편성 파열
들뢰즈가타리공부모임_천개의고원 1회(online) 생태적지혜2021년 8월 27일조회 656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2001, 새물결)에 관한 들뢰즈가타리모임이 2021년 8월 10일(화) 오전10시 온라인 ZOOM을 통해 진행되었다. 9월 7일(화)로 예정된 다음 모임에서는 『천개의 고원』 3장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9칠44.칠칠56 도주선 리좀 연결망 지도제작 천개의고원
들뢰즈가타리공부모임_천개의고원 1회(online) 생태적지혜2021년 7월 11일조회 751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2001, 새물결)에 관한 들뢰즈가타리모임이 2021년 7월 6일(화) 오전10시 온라인 ZOOM을 통해 진행되었다. 8월 10일(화)로 예정된 다음 모임에서는 『천개의 고원』 2장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9칠44.칠칠56 도주선 리좀 연결망 지도제작 천개의고원
절대적 변주 생태적지혜2019년 3월 11일조회 1.8K 그것은 때로는 삐리리로, 혹은 삐삐리로 표현하지만, 그들끼리 의미가 전달된다. 정해진 기표가 없는 것이다. 그저 삐리리, 삐삐삐, 삐리삐의 절대적 변주만이 있을 뿐이다. 단지 리토르넬로의 연속적 변주인 이 휘파람 언어가 왜 중요한가? 우리의 삶이 욕망의 절대적 변주 속에 있다는 것, 의미화된 질서는 우리의 욕망을 응고시키고 단속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도주선 분자되기 비기표적 기호계 소수자 펠릭스 가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