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사랑] ⑰ 스피노자의 사랑의 혁명, ‘자유인의 해방전략’

담배꽁초 사건으로 시작된 갈등은 고양이 모모의 등장으로 해결됩니다. 입구와 출구는 뻔하지 않으며 상식적인 노선을 따라 진행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능성을 말하지만 증오는 과거의 틀 안에 상대를 가둡니다. 뻔한 해결책, 뻔한 이야기는 미래로 향하지 않고 과거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랑은 욕망과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입구와 출구의 알 수 없는 불일치야 말로 미래를 향한 탈주선에 희망을 줍니다.

[소울컴퍼니] ⑤ 색다른 탈주

한국 사회는 점점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용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그러나 현재의 ‘다문화’와 ‘다양성’ 논의는 특정 중심성을 기준으로 타자를 규정하며 평등하지 못한 관용과 배려에 머물러 있다. 다양성은 단순히 타자를 용인하는 차원을 넘어, 내부와 외부의 얽힘을 통해 변화를 수용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의 다양성은 색다름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새로운 욕망과 관계를 창출하며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우리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다양성의 진정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탈주‘를 시작해야 한다.

저부터 먼저 탈성장하겠습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탄소배출을 급격하게 줄이겠다고 약속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탄소배출이 실질적으로 감축되는 시점은 무한하게 지연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특히 물질조건과 행복을 동조화하는 수 많은 개인들이 어떻게 탈성장을 선택할 것인가?

들뢰즈의 「바틀비 혹은 상투어」 ④ 패치워크의 미국과 치료사 바틀비

이 글은 1993년 『Critique et Clinique』에 실린 질 들뢰즈(Gille Deleuze)의 「Bartleby, ou Formule」(Paris: Les Éditions de Minuit, 1993. Chapitre Ⅹ, pp. 89-114.)를 번역한 것으로, 2000년에 한국어판 「바틀비, 혹은 상투어」(김현수 옮김)라는 제목으로 『비평과 진단: 문학, 삶 그리고 철학』(인간사랑, P125-163)에 실린 적이 있다. 이번에 「바틀비 혹은 상투어」라는 제목으로 재번역되어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되고 있으며, 이번이 그 마지막회이다.

나의 욕망을 알아채고 배치하기 : 펠릭스-가타리의 배움을 따라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 중 욕망과 탈주의 경험을 주제로 글을 쓰지만 어렵다. 어렵긴 하지만 또 재미있다. 쉽게 쓴 철학서도 좋지만 어려운 철학서를 읽고 철학자가 말하는 개념을 쫓아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신선하다. 모두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지점에 공감할 수 있다면 바로 그곳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들뢰즈의 욕망을 통한 탈주

사회는 욕망을 좌절시키라고 명령한다.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의 흐름에 맞추는 것이 순리라고 가르킨다. 정말 그럴까? 욕망은 단순 좌절의 대상일까. 들뢰즈는 순리를 부정하고 욕망을 긍정한다. 들뢰즈의 욕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새로운 현실로 인도한다. 욕망을 통한 자본주의에서의 탈주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리토르넬로 시리즈] ①탈주선을 찾아서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치고 소비되어 버리는 실제 음악 속 리토르넬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상을 닮은 리토르넬로일 수도 있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리토르넬로일 수도 있다. 음악에서 실제 일어나는 리토르넬로는 어떤 모습일지 다함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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