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농부 이야기] ② 토종의 살림살이new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에른스트 헤켈은 이를 ‘자연의 경제’라고 불렀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도 살림살이를 한다고 이해한 것이지요. 자연의 살림살이를 배운 토종은 시중에 파는 종자들과는 다른 경제생활을 합니다. 자식보다는 흙 속 공동체에 더 공을 들이는 겁니다. 토종은 왜 그런 살림을 꾸리는지 살펴봅니다.

[마을에서 철학하기] ② 길 없는 숲에 조약돌 놓기new

생태 철학자 티모시 모튼의 ‘생태적 사유’( The Ecological Thought) 독서 노트-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건 낯설고 무섭도록 쉽다고 한다. 나는 ‘왜 알겠는데 모르겠지?’ 라는 질문을 품는다. 이 질문을 탐색하는 사유는 나의 것이 아닌 모튼의 사유와 나의 경험이 만난 비인간 존재가 아닐까. 이해되지 않는 모호한 상태에서 읽어가지만 길 없는 숲에 조약돌을 놓아 돌아올 길을 찾고 싶다.

[동양철학 조각모음] ⑰ 쉽고 단순한 것에 도가 있다- 이간지도(易簡之道)new

한국 사람이라면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은 모를지언정 극기라는 말은 들어보았고 그 뜻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극기를 쉽고 단순한 것이라고 선뜻 말하게 되지는 않는 듯하다. 이런 현실과는 다르게 유교에서 극기복례를 ‘쉽고 단순한 삶의 방식’ 즉 이간지도(易簡之道)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Z세대가 역사를 만든다] ② Z세대의 반란 — 사회정의의 기쁨을 위해 _by 타소스 타르기스new

2011-2012년 글로벌 점거운동 15년 후 등장한 Z세대는 훨씬 더 황폐해진 세상—따라서 훨씬 더 솔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대는 더 이상 개혁을 ‘믿지’ 않는다. 미래의 잔해 속에서 자라난 세대다. 권력을 장악할 필요조차 없다. 권력이 이미 데이터와 알고리즘, 환경, 그리고 신체 자체로 분산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점거운동이 도시 안에 ‘자율 공간’을 구축하려 했다면, Z세대는 네트워크화된 공동체와 분산된 운동, 일시적인 연대를 통해 영구적인 자율 상태에 산다. 작고 일상적인 불복종, 돌봄 공동체, 생태적 삶, 시스템과의 단절을 원한다. 더 이상 권력 장악이 아니라 소멸이다. 더 이상 선거, 사회민주주의, 위임은 없다. 의회의 완전한 소각과 민중회의(people’s assembly)의 창설이 있을 뿐이다. 항의와 개혁이 아닌, 절망자들의 봉기다.

[생태wiki번역] ⑳ 에코페미니즘의 전설 – 캐롤린 머천트new

캐롤린 머천트는 『자연의 죽음』에서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자연이 유기적이고 생명적인 존재에서 지배·통제의 대상인 기계적 자원으로 전환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의 여성화와 여성 억압이 함께 작동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녀의 연구는 과학사·환경사·에코페미니즘을 결합해 근대 문명이 형성한 자연관을 재검토하고, 인간과 자연의 협력적 관계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 너머의 연대와 보살핌 – 『천 개의 파랑』을 통해 본 동물복지와 로봇권new

날카로운 시선과 사회 속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가벼운 다정함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천 개의 파랑』은 이처럼 오래 구겨진 채로 방치돼 있던 감정의 주름 사이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온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아, 오늘날 경주마를 둘러싼 동물복지 및 기관의 실태를 살펴보고, 인공지능 로봇의 권리문제를 에코휴머니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시대의 침묵을 깨뜨린 사람들 -마야 안젤루, 드레드 스콧, 버지니아 마이너

2025년 가을, 세인트루이스를 다녀왔습니다. 이곳과 연관된 세 인물을 소개하며, 억압받는 환경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주장한 용기에 대해 소개합니다. 바로 마야 안젤루, 드레드 스콧, 버지니아 마이너 입니다. 이들이 외친 사회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인종차별, 성차별, 혐오, 배제, 불평등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을 정의하려는 힘보다 더 큰 존재다."

[생태wiki번역] ⑲ 여성의 삶과 자급의 사회학 – 마리아 미즈

마리아 미즈는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로, '가정주부화'와 '빙산 모델'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시스템이 여성의 가사노동과 돌봄을 어떻게 은폐하고 착취하는지 가시화했다. 그는 또한 에코페미니즘의 선구자로서 여성의 해방이 자연의 보전 및 식민지 해방과 직결되어 있음을 역설하며, 전 지구적 차원의 사회 정의와 환경 정의를 결합한 연구에 헌신했다. 말년에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자급자족적 삶'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전 세계 페미니스트와 활동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남겼다.

[동양철학 조각모음] ⑯ 군자(君子)의 두 얼굴

군자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며, 그 좋은 의미로 이 말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의 여러 의미를 살펴보고나면 이 말을 좀 더 섬세하게 사용하게 될 듯하고, 나아가 모든 말을 좀 더 섬세하게 사용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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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200호 특집] 편집위pick #사물

뉴스레터 200호를 맞이하여 웹진 《생태적지혜》가 그간 다뤄온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관련된 글들을 모아서 다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위가 Pick한 첫 번째 키워드는 #사물입니다. 사물은 단순한 배경이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감각, 노동과 정치, 예술과 생태를 함께 구성하는 존재입니다. 사물과 맺는 관계를 다시 묻는 것은,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사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뉴스레터 200호 특집] 편집위pick #관계

웹진 《생태적지혜》가 창간 후 꾸준히 제기해온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관계’입니다. 생태 위기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위기이며, 돌봄의 붕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망의 해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온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기대고,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묻는 반복적인 실천 속에서 관계는 만들어지고 유지됩니다. 이번 편집위 Pick #관계에서는 가족, 마을, 수다라는 서로 다른 장면을 통해, 관계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며 공동의 삶을 떠받치는지를 살펴봅니다.

[뉴스레터 200호 특집] 편집위pick #여성

웹진 《생태적지혜》가 다뤄온 여성은 하나의 단일한 주체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닙니다. 여성은 언제나 제도와 규범, 돌봄과 노동, 저항과 연대의 교차점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여성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은 곧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나 있던 문제들이 어떻게 정치적 질문으로 확장되는지를 살피는 일입니다. 뉴스레터 200호 특집 #여성은, 여성의 삶이 만들어내는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다시 불러냅니다.

[GEN Z MAKES HISTORY 번역] ① 서문: Z세대가 역사를 만든다

세상이 완전히 망해가는 줄 알았던 바로 그때, Z세대의 봉기가 여러 나라를 휩쓸며 죽음보다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고 외쳤다. 스리랑카·방글라데시·네팔·필리핀의 엘리트 부패, 인도네시아의 경찰 폭력, 가자 지구의 이스라엘 학살, 케냐의 세금 인상, 페루의 의무 연금 제도, 모로코의 터무니없이 부족한 병원, 마다가스카르의 전기와 물 같은 기본 서비스 부족 등,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에 나선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Z세대가 놀랍도록 잘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거리로 나서는 투쟁적인 시위이다. 우리는 Z세대의 영웅적인 정신을 계승하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책자를 제작했다.

농부가 정치경제학을 만날 때 -『한 미식가의 자본주의 가이드』를 읽고

『한 미식가의 자본주의 가이드』 책의 소감문입니다. ‘왜 유기농산물이 그렇게 비싼가?가 아니라 왜 유기농산물이 좀 더 비싸지 않은가?라는 저자의 질문을 토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농산물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살펴봅니다.

[비아냥툰] ② 늑대와 빨간 두건(下)

어쩌면 우리는 늘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 동물의 관점을 상상해본 웹툰. 어쩌면 잔혹극과 반성문의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늑대와 빨간 두건(下)〉.

언어의 힘과 폭력성에 대하여- 『미끄러지는 말들』을 읽고

우리가 교육받을 때는 표준어를 강요받는데, 표준어를 강요하는 것은 언어의 폭력이며, 체제의 폭력이고, 국가의 폭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는 다중 한국어의 세계에 살지만, 단일한 언어로 호명되는 ‘국어’라는 이름은 현실의 수많은 한국어를 그 이름 아래로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어를 쓰는 우리 자신을 타자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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