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슬픔을 넘어 전환의 축복으로new

날로 심각해져가는 기후위기는 지구의 파괴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무기력, 불안, 우울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태 슬픔 또는 기후 우울은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병리적 현상이기만 한 것일까? 모든 생명과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의 존재에 대해 멈추어 바라보자고 초대하고 싶다.

[미래에 대한 질문을 시작합니다] ③ 야마기시즘 연찬과 의식 혁명

야마기시즘은 연찬을 통해 제도와 의식의 전환을 동시에 고려한다. 야마기시즘 연찬은 자신의 생각이 실재와 별개인 개인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자각에 입각한 사유 방식이자 소통 방식, 의사결정 구조이다. 이 인식론적 전환은 야마기시즘의 무소유 일체사회라는 이상향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원리이다.

어쩌면 관계의 기술 -『싸움의 기술』을 읽고

이 글은 정은혜 저자의 『싸움의 기술』(샨티, 2020)에 대한 서평이다. 저자는 싸우더라도 항상 상대방을 바라보고, 관계를 내던지는 것이 아닌 소중히 여기는 방식으로의 싸움을 이어갈 것, 그리고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 관계를 저버리지 않고 지키기 위해 싸우며 도망가지 않는 것 등 싸워서 이기는 기술이 아닌 더 진솔하게 관계하는 기술에 대해 귀띔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고

사회가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근본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저자는 두려움이 증오, 혐오, 분노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절대군주를 원하며, 이러한 원리가 혐오를 선동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와 마음의 생태학] ① 네스의 심층생태학과 자아실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즉, 기후변화 문제가 우리에게는 생존과 이타심의 문제일까? 이 문제를 경험하고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성장이나 인생의 의미 또는 목적과도 어떠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추방된 곳은 어떻게 변했나?

아이들이 추방된 곳은 어떻게 변했나?

노키즈존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욕망은 무엇일까?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상 아이들의 모습을 그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박제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더 커 보인다. 아이들의 활기, 생명력, 호기심이 추방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사회생태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정동

정동은 곧 사랑이다. 곁을 닦고 아끼고 정돈하고 보살필 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 누군가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나를 위해 양치질을 하고, 음악을 듣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 또는 나 자신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하다못해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행동조차 정동이다. 그래서 정동의 동의어는 사랑,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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