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의 내면에 오래 머물 때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야만적인 신자유주의는 자연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마저도 상품화하여 인간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으로 양분화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잘못된 삶’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잘못된 삶’이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을 말한다.

[동양철학 조각모음] ㉕ 리추얼과 습(習)

개체의 독립과 개성의 추구를 미덕으로 꼽는 문화는 정동자본주의의 등장 이후에도 그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자리매김 되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성의 추구가 인간을 고립시키는 면에 주목하면서, 개체 간의 연결이 인간을 독립과 주체라는 요구의 중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 전망을 살펴보고, 『논어』를 매개로, 한국문화 전통 위에서 그와 같은 전망이 어떻게 작동할런지에 대한 상상을 곁들여 본다.

[스피노자의 사랑] ㉓ 공동체가 소수자를 더 발명해야 하는 이유

소수자라고 하면 사회적 약자나 양적 소수, 피해자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알고 보면 소수자는 우리 자신을 풍부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공동체의 차이와 다양성을 증폭시켜 주는 존재이면서, 사랑과 욕망, 정동, 돌봄의 흐름을 강렬하고 반복적이게 만들어주는 특이점이기도 하지요. 어떤 공동체나 집단에 아이,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가 등장하면, “소수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암묵적인 태도가 형성되고, 이에 따라 관계망의 좌표를 수정합니다. 여기서 ‘문턱이 있는 유토피아’가 될지, 열린 공동체로서의 배치를 가질지 결정됩니다. 그런 점에서 소수자는 공동체에 심원한 변화를 주는 특이점입니다.

[신승철 2주기 추모(축)제 특집] ③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중 어느 누군가에게

전 세계가 보수화 열풍에 휩싸여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도 소수자들, 우리들의 열정과 욕망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판을 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소수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특이성입니다. 뜨거운 연대의 감정으로 우리 자신,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인 이들에게 연대의 박수를 보냅니다.

청년 우경화, 무능한 중년 정치판이 문제 아닐까?

차별과 혐오 정서의 확산은 막아내야 하고, 소수자를 향한 가짜뉴스는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 청년 남성 내부에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격차나 노동의 불안정성 같은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효능감을 선사할 수 있고, 이준석 같은 혐오정치인에게 의존하는 구도를 파훼할 수 있다.

어린이, 소수자를 발견하고 긍정하다 – 『모랫말 아이들』 독후기

황석영은 소설집 『모랫말 아이들』에 자신의 어린 시절 풍경을 그려놓았다. 거기에는 풍경뿐만 아니라 소설의 화자 수남이 뜻하지 아니하게 발견하고 교감하는 여러 존재들이 등장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의미있을 수 있는 상상을 하게 하여 준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일까요? 기독교 성서에 나타나는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을 통해 소수자성에 대한 긍정을 발견하고, 오늘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누구인가를 밝혀내어 소수자성이 긍정되던 성서의 자리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하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마이너리티 정동 해방 혹은 다른 기쁨의 배치 – 극단 ‘지금 아카이브’의 2020-2022 코미디캠프 감상기를 겸해

이 세계가 안정되고 균형적으로 보일수록 거기에는 무언가, 누군가를 보이지 않게 은폐하는 구조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마이너 필링스, 마이너리티 정동, 정동적 소외 등은 그것을 느끼는 이의 탓이 아니다.

절대적 변주

그것은 때로는 삐리리로, 혹은 삐삐리로 표현하지만, 그들끼리 의미가 전달된다. 정해진 기표가 없는 것이다. 그저 삐리리, 삐삐삐, 삐리삐의 절대적 변주만이 있을 뿐이다. 단지 리토르넬로의 연속적 변주인 이 휘파람 언어가 왜 중요한가? 우리의 삶이 욕망의 절대적 변주 속에 있다는 것, 의미화된 질서는 우리의 욕망을 응고시키고 단속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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