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마음 씀이 중요했던 시절을 들여다보기 – 기후 위기 속에서 『서경집전』 「우서」 읽기

중국 역사 속 요・순시대 왕들의 마음 씀은, 역사의 맥락에서 떼어놓고 보면 간결하고 매력적인 개념들로 보여서 지금까지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 마음 씀 가운데 몇몇이 지금의 기후 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정동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알고 보면 요・순시대도 기후 위기 시대였으니, 그 시대는 지금의 우리가 가장 먼저 돌아보아야 할 시대일 수도 있다.

공자가 제안하는 외로움 대처 방식 -기후 위기 속에서 『논어』 「학이」편 제1장 읽기

최고의 스승이라고 추앙되기도 하고 최초의 스승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공자는 바로 그러한 면 때문에 외로운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식을 후세에 전하였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공자는 알고 보면 은하계 역사상 가장 대차게 당대 사회의 주된 흐름에 거역한 사람임을 모두 알아야 할 듯하다. 오늘 사회의 주된 흐름에 거역하고 있거나, 내일부터 그렇게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공자의 어록이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거리낌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짚어 보다 – 기후 위기 속에서 『중용』을 읽고

예로부터 사람이 남의 눈치를 보는 모습은 비겁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가, 개인의 욕망이 존중되고 그것을 중심과 추동력으로 움직이고 발전하는 세계가 전개되자. 사람들은 비겁해 보이지 않으려는 것을 넘어,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기후 환경 위기가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지금, 더 이상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을 찬양할 수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경우에서의 거리낌 없음은 자원의 과소비를 가져오고, 그것은 분명 기후 환경의 악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유교 경전 『중용장구』는 거리낌 없음을 새삼스레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

‘모범을 따라 배우기’를 지금, 여기라는 맥락에 놓기 : 기후 위기 속에서 『대학』

‘모범을 따라 배우기’는 낡은 공부 방법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엄정한 논리도, 객관적 기준도 없어 보인다. 이 공부 방법은 값비싼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모범이 되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그에게 영육 양면으로 종속되거나, 엄청난 환멸 속에 모범과 결별하고는, 영웅에게 불필요한 모욕을 가하게 되는 등의 이유에서다. 그런데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어서, 이 방법이 세상의 변화의 어느 국면에서는 빛을 발할 수도 있으니, 한 번쯤은 일부러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생생(生生), 회복력 혹은 강요된 여성 젠더 ; 기후 위기 속에서 『주역 계사전』 다시보기

“걔가 애는 착해”라는 말이 있다. 나쁜 짓을 한 사람들 두고 누군가가 이런 평가를 했을 때, “아 그러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평가는 그저 참고사항 정도로 들어야 한다. 옛글을 읽으면서도 “그게 원래는 아주 좋은 뜻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서, 옛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옛글 속의 글귀들은 금과옥조처럼 떠받들 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가 처한 현실 속에서 되씹어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누구 혹은 무엇과 어떻게 친할 것인가? -기후 위기 속에서 『맹자』 「진심」편 上 다시 읽기

고전에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고전들은 대부분 기후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저술이다. 따라서 고전에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지혜를 바로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기후 위기 속에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읽기 방법을 요구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

쾌락, 고통, 자각, 살 – 『육화, 살의 철학』 「서론 : 육화에 대한 질문」을 읽고

근대적 객관성의 추구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겪는 살로 자신이 이루어져 있음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된 듯 싶다. 살은 쾌락과 고통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분리될 수도 분할될 수도 없는 것임도 근대의 일상에서는 인식되지 않았던 듯싶다, 미셸 앙리의 저서 『육화, 살의 철학』은 우선 이 점을 상기시킨다.

초대받지 못한 자가 잔치를 풍성하게 한 이야기 – 『반란의 도시』 를 읽고

파리와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 순위의 상위권을 언제나 차지한다. 그런데 그 도시들의 생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약탈적 도시개발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흔적을 드러내면서 그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책은 또한 도시에 초대받지 못하고 단지 ‘끼어들었던’ 자들의 일부가 그 도시와 자본주의에 타격을 가하면서 더 나은 도시로 가는 길을 잠깐씩 열었던 이야기도 전하여 준다.

대도시의 다면적인 문화생활에 대해 생각해보다 –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언젠가 ‘이 복잡하고 비정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전원에서 여유를 즐기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서 누군가 홀로 일어나 ‘대도시의 얽히고설키고 다면적인 문화생활’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서, 좀 더 많이 모여 살자고 했다. 1960년대 이후 많은 사람에게 생각의 계기가 된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적 인식과 소통이 자멸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다크 코메디 – 영화 《돈 룩 업》 관람후기

[※스포일러 주의!!!] 굳이 적용되지 않아도 될 현장에서 매체 친화적 태도와 비즈니스 마인드가 중시되는 경우를 꼽아보다 보면, 인류가 삶의 도구로써 빚어낸 그런 태도와 마인드에 의해 인류가 도리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소통의 도구는 하루가 다르게 개선됨에도, 그것은 지배의 도구로써의 위력만을 더할 뿐, 정작 소통은 경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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