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철학에서의 기후정의] ⑥ 소수자되기와 기후정의

이 글은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에서 발주된 기후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기후정의 - 가타리의 ‘구성적 기후정의’ 개념의 구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사회에 닥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시급한 과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의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와 미시정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을 적용해 본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제 3세계 민중, 탄소빈곤층, 소수자, 생명, 미래세대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응과 적응 방법을 찾고자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필사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에 관하여②] 소통에 ‘나’는 없다

‘어떠한 것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한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이 같은 소통 혹은 의사소통의 사전적 정의처럼, 소통이 잘 됐다는 객관적 판단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고실험을 통해 소통에 대한 판단은 매우 주관적이고, 결과중심적이며, 자기만족적일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번엔 소통과 다름, 공감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소통에 관하여] 시리즈 총3회 중 두 번째 글이다.

아이들이 추방된 곳은 어떻게 변했나?

노키즈존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욕망은 무엇일까?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상 아이들의 모습을 그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박제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더 커 보인다. 아이들의 활기, 생명력, 호기심이 추방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사회생태를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되기의 순간 : 드라마 『눈이 부시게』

되기의 순간은 곁을 내어 주고 사랑하는 순간이다.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이 시대, 우리는 과연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비가 된 장자와 장자가 된 나비, 젊은 나를 꿈 꾼 늙은 나와 늙은 나를 꿈 꾼 젊은 나. 되기의 순간은 서로 분명 다르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 많아질수록 기적 같은 일이 늘어날 것이다.

노숙인되기

노숙인되기 즉 부랑아되기는 광인되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바살리아(Franco Basaglia)는 “광기의 척도는 자유의 척도다”라는 말을 통해서 노숙인되기의 야성적 사유, 광야-무의식, 광기가 예속이 아닌 자유라는 점을 보여준다. 노숙자가 된다는 것은, 통속적인 삶에 맞서 거리에서 농성하거나 끊임없이 주류의 삶을 교란하는 것과도 같다.

미래를 준비하는 법 :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an, 2006)』

2027년,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인류는 파국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암울한 미래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임산부 소녀 ‘키’가 나타나고 사회운동가였다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테오가 우연찮게 그녀와 아이를 지켜내기 위한 모험을 떠나게 된다.